제4편 참인간 - 제1장 참하나님이 창조하신 참인간_ 2절

2013. 3. 6. 14:31참사랑 영원까지/천성경

2절 참인간의 마음과 몸

1 피조세계에는 두 축이 있습니다. 두 축이 있는데, 보이는 축과 보이지 않는 축, 이중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하나의 주체를 중심삼고 돌아가는데 그 주체 자신도 돌아갑니다. 몸과 마음이 주고받으면 돌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모든 존재물은 이와 같은 원칙에 의하여 존재합니다. 마찬가지로 타락한 인간세계에서의 복귀의 길도 축을 고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인간에게 몸의 중심은 마음입니다. 마음을 중심삼고 몸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몸은 마음을 중심삼고 도는 것입니다. 마음의 명령에 몸이 움직입니다. 마음이 ‘동으로 가라!’ 하면 동으로 가야 되고, ‘서로 가라!’ 하면 서로 가야 됩니다.


마음과 몸이 뭐냐

2 마음은 뭐냐? 종적인 아버지, 창조주 아버지의 사랑을 이어받은 것이 마음입니다. 그리고 횡적인 부모의 사랑을 통해서 이어받은 것이 이 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은 종적인 나요, 몸은 횡적인 나입니다. 주체대상관계입니다. 환경적으로 나라는 존재에 있어서 비로소 마음과 몸이 초점을 맞춤으로써 종횡의 일치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사랑을 중심삼고 종횡에 있어서 종적인 플러스와 횡적인 마이너스가 90각도를 초점을 맞추는 이상적 결착점이 중앙점입니다. 중앙점은 아무것도 없는데, 모든 힘은 그 한 초점을 통하는 것입니다. 반대가 없습니다. 점프해, 다이빙해 들어옵니다. 태풍같이 들어옵니다. 그것을 막을 도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지혜의 왕입니다. 이 중심은 진공상태입니다. 진공상태에서는 끌어당기는 힘이 그것에 비례해서 몇 백배 강해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라 하지 않는다고 해도 끌려오게 마련입니다. 당기는 힘이 강하니까 그 앞에 있는 것은 태산이든 무엇이든 다 까뭉개는 것입니다.


3 마음은 종적인 주인입니다. 하나님의 핏줄을 이어받았기 때문에 종적인 주인입니다. 몸은 완성한 아담, 횡적인 핏줄을 받은 나입니다. 나에게는 두 주인이 있습니다. 그중에 하나는 수직으로 이어받은 하나님의 혈통입니다. 하나님의 혈통만 있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혈통을 중심삼은 수직 앞에 가로질러서 수평선이 연결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갈라진 동서남북이 중앙으로 통할 수 있어야 됩니다. 수직 앞에 수평선이 연결되어 90각도가 되는 것입니다. 동쪽 서쪽 남쪽 북쪽이 90각도, 수직을 중심삼고 거리가 같은 원형을 이룰 때는 전부 똑같습니다.


4 마음과 몸을 보면 마음은 주체요 몸은 대상입니다. 이것 둘이 싸우게 됐는데, 왜 싸우게 됐느냐? 몸이 플러스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주체 되는 마음 앞에 몸이 영원한 대상이 되어야 할 텐데, 이것이 또 다른 주체가 되었습니다. 그것이 타락입니다.


5 하나님의 사랑이 수직적 사랑이라면 수평적 사랑이 있어야 되는데, 그 수평적 사랑은 누가 차지할 수 있느냐? 누가 차지해야 될 사랑의 자리이겠습니까? 그 자리는 타락하지 않고 완성되어 본연의 참사랑과 화합되어야 할 참된 조상의 자리입니다. 그렇게 해서 하나되었더라면 그 사랑을 통해서 하나님의 마음과 몸을 닮고, 어머니 아버지의 마음과 몸을 닮아 태어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것이 나라는 존재입니다.


6 마음은 수직적 나이고, 몸은 수평적 나입니다. 수직적 부모와 수평적 부모가 함께 나를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그들로부터 참사랑 참생명, 나아가 참혈통을 이어받은 것입니다. 내가 그렇게 된 것입니다. 참사랑으로 하나되어 이뤄진 것이 나입니다. 나는 우주의 중심이요 사랑을 대표한 중심입니다. 또한 공식의 중심입니다. 나는 수평적 사랑의 중심존재라는 것입니다. 수평적 사랑과 수직적 사랑이 합해져서 하나가 된 참사랑의 중심존재입니다. 그것이 바로 나입니다.


7 나를 두고 볼 때, 마음은 종적 면을 대표하고 몸은 횡적 면을 대표합니다. 마음이 바르다, 곧다는 말을 합니다. 바르다는 것은 뭐냐 하면 수직으로도 맞고 수평으로도 맞는다는 것입니다. 세워 놓으면 수직선으로도 맞고 뉘어 놓으면 수평선으로도 맞는다는 것입니다. 마음이 종적이라면 몸은 횡적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이 원하는 대로 몸과 잘 주고받게 될 때 마음의 고통이 없게 됩니다. 그럴 때 잘 자라는 것입니다. 육체적 고통도 고통이지만 마음의 고통이 더 무섭습니다. 그것은 종적인 것이 중심이 되기 때문입니다.


8 우리 몸과 마음은 처해 있는 위치가 다릅니다. 마음은 종적인 것이요, 몸은 횡적인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되지 않고는, 수평이 되지 않고는 본질적인 하나님의 절대적인 사랑의 방향에 일치될 수 있는 수직을 그을 수 없습니다. 이 수직은 둘이 아니라 하나입니다. 그러므로 제일 노력해야 될 것은, 더욱이나 신앙생활을 하는 우리가 노력해야 될 것은 마음을 중심삼고 어떻게 몸을 하나 만드느냐 하는 것입니다.


9 사람은 몸과 마음의 이중으로 되어 있는데, 마음은 종적인 면을 대신하고 있고 몸은 횡적인 면을 대신하고 있습니다. ‘저 사람은 마음이 바르다.’라고 할 때 그것은 수평을 중심삼고 봤다는 것입니다. 수직으로 보았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 사람은 바른 사람이다.’라고 할 때, 그 ‘바른 사람’이라고 하는 것은 수평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불교에서는 참선을 통해 마음이 무엇인가를 연구해 나왔지만, 아직도 마음이 무엇인지를 모릅니다. 마음은 종적인 나입니다. 또 몸은 횡적인 나입니다. 그래서 그 횡적인 ‘나’와 종적인 ‘나’가 통일되는 자리에서 나라고 하는 인격이 완성됩니다. 무엇을 중심삼고 이 종적인 것과 횡적인 것이 통일될 수 있느냐? 공명될 수 있는 본질을 통해 하나되는 데서 완성을 논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돈도 아니요, 지식도 아니요, 권력도 아닙니다. 오로지 하나님의 참사랑에 의해서만이 공명되는 것입니다.


10 몸은 수평을 상징하고 마음은 수직을 상징합니다. 수직과 수평이 90각도를 갖춰야 됩니다. 이 90각도 넷이 합해서 360도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완전한 사람이 못 됩니다. 그래서 수직을 중심삼고 하나되어야 됩니다. 몸과 마음이 하나되는 데는 몸을 중심삼고 하나될 수 없습니다. 마음이 이동할 수 없습니다. 몸이 조종해서 마음, 수직 앞에 완전히 하나될 수 있는, 90각도에 하나될 수 있는 나를 찾아야 됩니다. 그 나라는 것은 사람이 성숙해서 비로소 사랑을 알게 될 때 찾아지는 것입니다. 동쪽에서 사는 사람이 담을 넘어 서쪽을 바라보고, 서쪽에 사는 사람이 담을 넘어 동쪽을 바라볼 수 있으려면 성숙해야 됩니다.


11 마음은 천지의 이치를 따라서 종적인 인격관을 대신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은 높습니다. 마음이 넓다고 하지만 넓다는 개념 가운데는 높다는 개념이 들어가 있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은 넓고도 높다는 것입니다. 바른 데는 어디까지나 하늘 끝에서부터 땅 끝까지 수직이 되어야 합니다. 운동하는 세계, 원형의 대우주권 내도 수직은 하나입니다. 하나여야 됩니다. 모든 만물이 바라고 모든 존재들이 이상으로 바라는 수직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라야 됩니다. 그것이 참사랑입니다. 참사랑이라는 수직은 이 우주에 둘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동양 사람이나 서양 사람이나, 과거·현재·미래를 막론하고 참사랑의 수직은 오로지 하나입니다. 그 수직 앞에 하나님도 달려 있고, 그 하나의 수직 앞에 사랑의 작용이 벌어지기 때문에 하나님이 바라는 이상도 그 수직권 내에서 연결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축이, 그러한 수직이 이 땅 위에 안 생겨났다는 것입니다.


12 우리는 흔히 마음이 곧다는 말을 합니다. 똑바로 수직으로 선 것을 곧다고 합니다. 나무도 옆으로 기울어진 것은 곧다고 하지 않습니다. 마음이 곧다는 것은 수직으로 서 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서서 다니는 것입니다. 수직이 되어야 곧은 것입니다. 자기 마음을 완전히 수직이 되게 해야 됩니다. 거기에 몸이 수평선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수직과 수평이 우리 내부에서 이루어질 때에 수직에서 당겨주는 힘과 수평에서 밀어주는 힘이 균형을 취하게 되어 구심력과 원심력이 형성됩니다.


13 우리는 몸과 마음이 있습니다. 그 몸 마음이 하나됐을 때는 고통을 안 느낍니다. 몸 마음이 하나 안 돼 있을 때, 수평선이 안 되게 될 때 고통을 느낍니다. 마음이 높아도 야단이고 몸이 높아도 야단입니다. 그렇지만 몸 마음이 수평선에 있게 될 때는 고통을 안 느끼는 것입니다. 몸 마음이 수평선일 때는 고통을 안 느끼지만, 몸과 마음이 수직이 됐을 때는 작동하는 것입니다. 약동한다는 것입니다. 기쁘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부가 수직을 맞춰야 됩니다. 수평과 수직이 언제나 조화를 이루어야 됩니다.


14 천국은 남자 여자의 사랑에서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수직선을 중심으로 해서 수평선이 통일되어 있는 곳이 본연의 천국입니다. 하나님이 계시는데, 그 가운데서 남자 여자가 핵이 되어서, 몸과 마음이 같이 딱 둥글어지는 것입니다. 거기서 마음은 수직적인 나입니다. 몸은 수평적인 나입니다. 명확한 것입니다. 수직적인 마음은 하나님이고, 수평적인 몸은 참부모입니다. 그것이 하나되는 것입니다.


15 마음은 보이지는 않지만 수직적입니다. 몸은 보이지만 수평적입니다. 가정은 대우주의 축소체입니다. 사람 가운데 영계가 있습니다. 영이 들어와 있습니다. 그것이 마음입니다. 보이지 않는 마음, 보이는 몸은 세계의 대표입니다. 둘이 중심을 중심삼고 완전히 사방을 돌아다녀도 한자리를 떠나지 않으면 이상적인 사람이 됩니다. 보이지 않는 마음과 보이는 몸이 참사랑의 핵을 중심으로 하나가 될 때, 이것이 이상적인 남자와 여자, 개인의 완성입니다.


마음은 제2의 하나님

16 열 명의 친구 가운데 자기를 위하라고 하는 사람에게서는 친구들이 다 흩어져 갑니다. 그러나 아홉 사람을 위해서 자기 생명까지 바치려는 사람은 중심자가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위해 살게 되면 망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인이 되고 스승이 되고 부모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내 속에 있습니다. 마음이 여러분의 주인입니다. 밤에 나쁜 짓을 하려 해도 나타나서 하지 말라고 하고, 언제든지 나타나 주인 노릇을 하고, 어디에서든지 어머니같이, 스승같이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17 양심은 제2의 하나님입니다. 제1 하나님이 플러스이고, 마음은 마이너스로 제2 하나님입니다. 그런 개념을 가져야 됩니다. 마음이 제2의 하나님입니다. 제2의 하나님이 항상 나와 같이합니다. 양심 깊은 곳에서, 사랑·생명·혈통 깊은 곳에서 나와 관계맺고 있습니다. 모든 것을 정리하고 수습하고 제거해서 나를 자꾸 높은 자리로 인도합니다. 그래서 본연의 양심이 자꾸 올라가는 것입니다. 그 힘이 육신을 주관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플러스와 마이너스로서 하나되어 자동적으로 통일되고 완성됩니다. 나의 양심은 제2의 하나님이요, 이 강력한 힘이 언제나 하나의 중심으로 다 주관하는 것입니다.


18 여러분의 마음은 스승이 필요 없습니다. 마음은 제2의 하나님입니다. 스승을 따라가지 말고 여러분의 마음을 모시라는 것입니다. 마음은 어떻습니까? 새벽에 혼자 일어나서 쥐 소리도 안 들리고 파리 소리도 안 들리고 조용한데, ‘아이고, 나 요런 것을 좀 해야 되겠다. 좋은 일을 해야 되겠다.’라고 하면 마음이 ‘좋아! 좋아! 어서 해라!’라고 하지만, 나쁜 생각을 하면 마음이 ‘이놈!’이라고 합니다. 마음은 그렇다는 것입니다. 마음은 잘 아는 것입니다.


19 마음은 여러분의 파수꾼이 되어 밤이나 낮이나 여러분을 지켜 주고, 여러분을 쉬지 못하게 자꾸 ‘선한 일을 해라. 선한 일을 해라!’라고 합니다. 그러니 얼마나 피로하겠습니까? 의식을 할 수 있고 사회환경에 있어서 모든 제도를 분석할 수 있는 지능이 생긴 그날부터 일생을 따라다니면서, 자기 스승도 못 따라가고 어머니 아버지도 못 따라가지만 태어난 그날부터 죽을 때까지 양심은 영원히 나에 대해서 명령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닮아라, 성인 닮아라, 애국자 닮아라, 효자 닮아라 하는 것입니다. 항상 몸을 대해서 ‘몸 너는 나를 닮아라!’ 한다는 것입니다.


20 나 자신에게 위대한 스승이 있는 것을 몰랐습니다. 마음은 위대한 어머니 아버지 대신인 것입니다. 어머니 아버지가 마음을 거슬러 훈시하는 법이 없습니다. 마음이 어머니 아버지와 같이 훈계할 때는 복종할 줄 알아야 됩니다. 이런 모든 질서적 환경에 있어서 기원이 될 수 있는 도의적인 결론이 안 나와 있습니다. 그런 공식이 안 나와 있다는 것입니다. 마음은 선생 대신, 부모 대신, 하나님 대신입니다. 마음을 가르칠 수 있는 스승이 없습니다.


21 마음은 하나님보다 낫습니다. 마음은 내가 있기 전부터 있었습니다. 하나님보다 낫고, 부모보다 낫고, 왕보다 더 나은 것입니다. 그런 귀한 것이 마음입니다. 나쁜 일을 하려고 할 때 ‘어서 해라!’라고 말하는 마음 소리는 없습니다. 여러분이 나쁜 일을 하려고 하면 마음이 ‘야, 이 녀석아, 하지 마!’라고 하는 것입니다. 양심의 말을 절대 들어야 됩니다. 그래 가지고 이렇게 키워 나오면 양심하고 나하고 말을 합니다.


22 기도할 때는 마음을 붙들고 기도해야 됩니다. 마음이 원하는 대로 얼마나 했느냐? 마음을 뒤에 놓고 하나님을 아무리 불러야 안 통합니다. 마음과 하나되어서야 통하게 돼 있는 하나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의 명령을 중심삼고 생각해야 됩니다. 언제든지 마음보고 물어보라는 것입니다. 부모한테 물어보는 대신 영원한 양심한테 물어보라는 것입니다. 양심은 부모보다 앞서 있습니다. 부모와 갈라질 수도 있고 이별할 수도 있지만 마음과는 갈라질 수 없습니다. 스승과 갈라질 수 있지만 마음과는 갈라질 수 없습니다. 주인과 갈라질 수 있지만 마음과는 갈라질 수 없습니다. 그 3대 주체를 모시고 사는 마음을 무시하는 것은 엄청난 죄입니다. 부모를 무시하는 것이요, 스승을 무시하는 것이요, 우주의 주인인 하나님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23 마음하고 즐기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세상으로 보면 외로운 자리 같지만 마음하고 친구 되는 시간입니다. 앉아서 명상이라도 해보라는 것입니다. 깊은 기도의 자리로 들어갑니다. 남모르는 깊은 세계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런 것이 필요합니다.


24 마음은 내 주인입니다. 내 선생입니다. 마음을 닮은 몸을 낳았으니 마음은 내 몸의 근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은 평면적으로 어머니 아버지 대신입니다. 마음은 부모 대신이요, 스승 대신이요, 주인 대신입니다.


25 마음의 가치, 내게서 마음이 얼마나 비싼 것인가를 생각해 봤습니까? 마음은 몸이 잘못된 곳에 가려고 하면 언제든지 충고를 하고 ‘이러면 안 된다.’라고 전부 다 제재를 합니다. 그러나 몸은 언제나 마음을 공격하고 무시하고 밟아치우고 제멋대로 합니다. 핍박을 당하면서도 죽을 때까지 나에게 있어서 전우와 같이, 스승과 같이 주체적 사명을 감당하기에 희생을 치러 나가는 것이 몸에 달려 있는 마음입니다.


26 어떤 사람을 척 보면 그 사람이 어떻다는 것을 마음은 대번에 압니다. 벌써 그것을 안다는 것입니다. 제일 가까운 선생이 자기 마음입니다. 그러니 그 마음을 괴롭게 하지 말고 슬프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선생을 슬프게 하는 것이요, 천주의 주인을 슬프게 하는 것입니다. 마음이 내 일생의 주인입니다. 그러니 마음을 슬프게 하는 것은 내 일생의 주인을 슬프게 하는 것입니다. 마음이 기뻐할 수 있는 길을 가야 됩니다.


27 여러분의 마음은 부모보다 앞서 있고, 스승보다 앞서 있습니다. 그 마음은 영원히 나와 더불어 하나돼 있습니다. 그런데 부모가 영원히 하나 안 돼 있고, 스승이 영원히 하나 안 돼 있고, 주인이 영원히 하나 안 돼 있습니다. 그러니 마음이 위대한 가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님에게 물어보기 전에 마음과 의논해야 됩니다. 그러면 물어볼 필요가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과 직결돼 있기 때문에 공명권에 들어감으로써, 몸이 원하는 것을 물어보면 주파가 같기 때문에 답이 오는 것입니다. ‘내일 이러이러한 사람을 만나러 가는데 어떨까?’ 하고 마음보고 물어보면 마음이 기뻐하든가 나빠하든가 한다는 것입니다. 가서 만나는 것이 좋은지 나쁜지 마음이 압니다. 싫으면 마음이 쭈그러듭니다.


28 참을 찾아 나간다면 마음을 절대 위하는 몸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되어 하늘땅에 하나님을 중심삼고 90각도로 연결되면, 동서남북 상하 어디에 가든지 압니다. 자동적으로 영계와 통합니다. 배우지 않고도 다 압니다. 선생님이 어떻게 천지의 비밀을 다 알았겠습니까? 그 경지에 들어가니까 다 알게 된 것입니다. 참된 사랑을 중심삼고 몸과 마음이 공명되는 경지에 딱 들어가 보니 다 보이더라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보이고, 천상세계도 보이고, 역사도 보이고, 다 보입니다. 참된 사랑을 통해서 관계맺고 인연짓고 이상적 생활을 할 수 있는 환경적 요건이 본래 하나님의 창조이상 원칙이었기 때문에, 그 경지에 들어가 보니 안 통하는 데가 없습니다. 영계의 조상도 부르면 재까닥 나와서 만나 무엇이든지 물어볼 수 있습니다.


심신일체를 이루는 길

29 양심은 몸이 잘못하게 되면 아무리 밤중이라도 ‘이놈아, 하지 마라!’라고 합니다. 나쁜 일을 하려 하면 벌써 양심의 가책을 받습니다. 죽었던 하나님이 살아오고, 죽었던 스승이 살아오고, 죽었던 부모가 살아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양심이 원하는 대로 안 할 수 없습니다. 타락하기 전에도 하나님의 양심과 몸이 싸웠느냐 하면 아닙니다. 하나님은 양심과 몸이 싸우지 않는데, 그러한 하나님의 아들딸이 못 됐기 때문에 싸우는 것입니다. 근원이 다 달라졌습니다. 간단한 원리인데, 성인현철도 이것을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선생님도 이 문제에 부딪혀서 얼마나 몸부림쳤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우주주관 바라기 전에 자아주관 완성하라.’라는 것입니다. 이놈의 몸이 우주의 원수입니다.


30 모든 인간은 저마다 자신 속에 가장 소중한 스승을 일생 동안 내내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스승을 잘못 대우하고 짓밟고 남용합니다. 그 스승이 바로 인간의 양심입니다. 우리 양심은 항상 우리 자신에게 도움이 되도록 말을 하며, 우리를 참사랑과 연결시켜 주고자 합니다. 우리 양심은 부모처럼 우리로 하여금 선하고 비이기적인 사람이 되라고 촉구하며, 하나님의 뜻에 따라 행동하도록 인도해 줍니다. 그러나 각자에게는 양심의 소리에 항상 거역하는 반란자가 있습니다. 그 반란자는 바로 육체입니다.


31 타락한 세계의 부모와 스승과 주인은 알 수 있지만, 인간으로서 영원히 알 수 없는 그 주인이 양심입니다. 하나님 본연의 부모의 뿌리를, 스승의 뿌리를, 주인의 뿌리를 인간에게 심어 준 것이 양심입니다. 이것을 선생님이 알고 깜짝 놀랐습니다. 선생님이 찾아 나온 모든 것의 최종결, 감추어진 집이 양심이었습니다. ‘내가 하나님께 책임을 추궁할 아무것도 없구나. 내 양심의 사명을 다할 것을 추궁할 수밖에 없다. 책임을 추궁할 장소가 없으니 내가 책임지겠다.’라고 나선 것이 선생님의 입장입니다. 거기에서 하나님은 선생님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32 양심혁명은 양심의 소리 앞에 절대복종해야 되는 내적 혁명입니다. 여러분 속에서 아직도 선을 지향하는 양심의 명령과 육신의 욕망을 좇는 육심의 유혹이 끊임없는 갈등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그런 부끄러운 내면의 싸움을 종식시키기 위해서는 양심의 위치와 작용을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양심은 여러분의 일거수일투족, 더 나아가서는 여러분의 생각까지 일점일획도 가감 없이 파악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스승보다 먼저 압니다. 여러분의 부모보다도 먼저 압니다. 하나님보다도 먼저 압니다. 그런 양심의 명령을 거역하면 여러분 스스로 가책을 받습니다. 여러분의 영혼에 먼지가 끼고, 때가 묻고, 상처가 생긴다는 것입니다. 그 상처는 영원히 지울 수 없이 고스란히 영계로 지고 가야 하는 무거운 짐입니다. 따라서 혁명적 차원에서 자신의 육심을 누르고 양심의 안내를 받아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그날까지 티 없이 맑고 깨끗한 영혼을 간직하라는 것입니다.


33 본래 마음과 몸은 떼려야 뗄 수 없는 하나였습니다. 인간의 마음은 하나님의 마음이요, 인간의 몸은 그 마음을 담는 그릇이었습니다. 그런데 인간의 타락으로 인간의 몸을 악마에게 내주었습니다. 그로부터 인간의 몸은 악마의 종이 되었습니다. 인간의 양심은 하나님을 대표하는 마음입니다. 양심은 나를 위해 존재하지 아니합니다. 하늘의 의를 위해 존재합니다. 양심은 항상 선을 향해 달리려 합니다. 여기에 몸은 반항합니다. 몸은 자기만 편하려고 하고, 이기적이며, 본능적 요구에 따라 육욕을 채우고자 합니다. 양심은 이 몸을 질책하여 마음에 순응케 하려고 합니다. 여기에 항상 피나는 갈등과 투쟁이 한 몸에서 일어나게 됩니다.


34 모든 종교는 내 몸을 치는 길을 가르쳤습니다. 종교는 육욕을 제어하고, 몸을 마음에 굴복시키는 도장입니다. 종교는 인간을 창조본연의 인간으로 이끌어 가는 도장입니다. 그러나 그 누구도 하나님을 내 안에 모셔 들이지 않고서는 내 몸을 정복할 자가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참사랑과 진리의 힘을 중심삼고 주체 되는 마음은 대상 되는 몸을 거느리고 하나님과 일체이상을 이루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종교가 말하는 완성한 인간입니다.


35 인간의 귀중한 가치를 만점으로 만드는 것은 참사랑과 일체가 될 때에 가능합니다. 심신일체는 양심과 육신이 공명권에 서 있는 것을 말합니다. 소리굽쇠의 진동수가 같을 때, 하나를 땡 치면 그 반대의 소리굽쇠가 울립니다. 그것과 마찬가지로 참사랑으로 양심을 치면 육신이 울리는 것입니다. 참사랑으로 육신을 땡 치면 양심이 공명권을 만들게 됩니다. 거기에는 교육이 필요 없습니다. 그 한가운데 들어가면 가르쳐야 될 모든 것을 알게 되어 있습니다.


36 인간 자체를 두고 보면 몸과 마음이 싸우고 있습니다. 그것은 오늘날 이 시대에 시작된 것이 아닙니다. 우리 종주 선조로부터, 성경에 기록된 아담 해와가 타락한 직후로부터 이런 작용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역사상의 성현들 가운데 ‘나는 인류역사에서 인간을 대표해 몸과 마음이 싸우지 않고 완전히 통일을 이루었으니 내 본을 받아라!’라고 한 사람이 있었습니까? 마음도 중요하고 몸도 중요합니다. 더 중요한 것은 내 몸 마음의 통일권입니다. 그것이 중요합니다. 그것이 안 된 사람은 아무리 세계가 통일되었다고 하더라도 그는 불행한 사람입니다. 통일된 세계에서 불행한 싸움을 하는 나 자체는 그 세계에 흡수, 소화될 수 없습니다. 반발을 받습니다. 추방당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계의 통일에 앞서서, 새로운 세계의 이상적 비전을 성취하기 전에 나 자신이 그것을 받아 소화할 수 있고 화합할 수 있는 자체를 발견할 수 있어야 됩니다.


37 통일교인은 어떤 일이 있더라도 심신일체권을 이루어야 됩니다. 이 생애 동안에 심신일체권을 이루지 못하는 사람이 사랑을 생각하고 이상을 생각한다는 것은 부끄러운 것입니다. 천운에 어긋납니다. 그런 것을 완성한 자기 자신을 지향하는 거기에 새로운 희망의 길이 연결되지, 그냥 그대로의 기준에서는 새로운 희망의 천국에 연결되는 길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38 창조본연의 인간은 그 마음과 몸에 하나님의 참사랑을 지니고 그대로 감응하면서 살게 되어 있습니다. 마음은 참사랑을 중심하고 하나님과 감응하며, 몸은 자동적으로 마음에 공명하는 것입니다. 몸과 마음이 싸우지 않는 참된 통일의 기원은 하나님의 참사랑을 그대로 이어받아 체감하는 데에 있습니다. 마음과 몸이 통일체가 되는 인간의 이상은 하나님의 참사랑을 온전히 소유할 때 이룩됩니다. 마음과 몸이 참사랑을 중심으로 통일되는 데서부터 진정한 자유와 평화의 이상이 출발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마음과 몸이 통일된 기반 위에서 자유롭고 평화로운 개인·가정·종족·민족·국가·세계를 이룩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