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편 참사랑 - 제3장 참사랑의 실천_ 2절 참사랑의 실천

2013. 3. 6. 14:42참사랑 영원까지/천성경

2절 참사랑의 실천

1 하나님의 사랑의 본질과 화합할 수 있는 내용을 갖추지 않고는 선이 못 됩니다. 사랑은 자기가 주체적인 입장을 강조하는 것이 아닙니다. 대상적인 입장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나를 강조해서는 갈 수 없는 길입니다. 나 혼자 고독단신이 되어서는 나라의 주인이 못 됩니다. 반드시 상대적 가치를 결정지어야 됩니다. 남자와 여자는 반드시 가정에서 공인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이상천국 조직의 근본사상입니다. 남자가 여자 앞에 절대적인 공인을 받지 못하면 이상세계에서 절대적인 공인을 받을 수 없습니다. 한 여자 앞에 세계적인 가치를 공인받지 못하는 남자가 세계적인 가치의 세계를 맞이하겠다는 것은 모순입니다. 그런 가치의 세계를 당당히 맞이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분, 그런 가정의 주인공이 되어야 합니다. 그 가정은 둘이 아니라 하나입니다. 그 가정은 주체가 되어 종족을 위해서 희생과 극복의 생활을 해야 됩니다. 그 목적은 자기에게 두는 것이 아니라 상대에게 두는 것입니다.


2 사랑의 길은 이렇게 저렇게 안 갑니다. 한 길밖에 없습니다. 사랑의 길이 두 길입니까, 한 길입니까? 한 길입니다. 한 길만 가게 되면 이것이 안 통하는 데가 없습니다. 사랑의 길은 정숙한 길이요, 고요한 길이요, 사제들이 제사를 드리는 순간을 거쳐 나가듯이 조심스러운 길입니다.

 

 희생을 통한 참사랑의 길

3 사람의 생명은 사랑의 이상을 중심으로 해서 잉태된 것이기 때문에 인간 생명의 본질은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을 본질로 해서 태어난 생명은 하나님이 그러하신 것같이 ‘위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 천리원칙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참사랑을 위하여 태어난 존재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참사랑은 위하는 데서부터 시작됩니다. 창조본연의 인간은 그 마음과 몸에 하나님의 참사랑을 지니고 그대로 감응하면서 살게 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마음은 참사랑을 중심하고 하나님과 감응하며, 몸은 자동적으로 마음에 공명하는 것입니다. 몸과 마음이 싸우지 않는 참된 통일의 기원은 하나님의 참사랑을 그대로 이어받아 체감하는 데에 있는 것입니다.


4 하나님의 사랑은 하늘나라에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만우주, 존재세계 앞에 나타나고 인간 앞에 나타나야 됩니다. 부모의 사랑도 자식 앞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남편의 사랑은 아내 앞에 나타나는 것이고, 아내의 사랑은 남편 앞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것이 사랑의 공약이요 사랑이 가는 방향입니다. 그 길을 따르지 않고는 사랑을 이룰 수 없습니다.


5 하나님의 사랑을 위해서는 하나님도 희생해야 되고 인류도 희생해야 됩니다. 그것이 우리가 가야 할 길입니다. 왜 그렇게 가야 되느냐? 하나님이 그렇게 가기 때문에 우리도 하나님과 같이 가기 위해서는 그 길로 나서야 됩니다. 그러므로 그 길로 가는 자리는 내 개인이 가정의 자리에서 하나님과 동참할 수 있는 자격을 갖는 자리입니다. 그다음에는 내 가정이 종족과 민족과 국가와 세계와 천주까지 동참할 수 있는 자격을 갖는 자리입니다. 사랑의 세계를 출발할 때부터 사랑의 세계를 지나갈 때까지 그런 자격을 갖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출발했고,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사랑의 방향에 언제나 동참자가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타락권을 벗어날 수 있습니다.


6 사랑의 길은 자기를 위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희생하는 길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한마디 말을 듣고는 10년 고생도 극복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놀라운 것입니다. 사랑하는 남편, 사랑하는 아내와 약속한 한마디를 중심삼고 10년, 아니 일생 동안도 극복할 수 있습니다. 극복하는 과정이 험하면 험할수록,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비참하면 비참할수록 약속된 내용의 사랑은 보다 차원 높은 입체성의 가치를 지니게 됩니다.


7 남편이 아내를 위해서 희생하는 마음을 가지게 될 때, 아내는 절대적인 그 희생 앞에 상대가 되기 위해서 일구월심 노력합니다. 싫어하며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좋아하면서 노력하게 마련입니다. 여기에는 고통이 없습니다. 희생이 있지만 그 희생은 불행한 희생이 아니라 달콤하고도 얄궂은 맛을 풍깁니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데에는 희생이 동반됩니다. 희생하고 나서 대가를 치러 달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주고 잊어버리는 것이 사랑을 통한 희생입니다. 하나님은 지금까지 만민을 위해서 많은 것을 주고 희생해 나왔지만 주고는 그 희생의 대가를 잊어버렸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무엇을 주고는 그것을 받겠거니 생각하는 사람은 사랑의 주인이 아닙니다. 주고 잊어버리는 사람이 사랑의 중심자입니다.


8 인간은 하나님이 원하는 사랑의 길을 찾아가야 합니다. 악마가 원하는 타락의 길을 부정하고 하나님이 원하는 사랑의 길을 찾아가야만 악마와 분립됩니다. 지식이 있다고 해서, 교리를 더 안다고 해서, 수완이 있다고 해서, 지혜가 있다고 해서 분립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기독교가 지금까지 남은 것은 희생해 나왔기 때문입니다. 피를 흘리며 나왔기 때문에 남을 수 있었습니다.


9 사랑의 길은 이용당하는 길입니다. 더 큰 곳을 향해서 이용당하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개인은 가정 앞에 이용당하려고 하고, 가정을 끌고 나라에 가서 이용당하겠다는 길입니다. 또 나라를 끌고 들어가서 세계 앞에 이용당하려고 하는 길입니다. 세계를 끌고 들어가서 천지 앞에 이용당하려고 하고, 천지를 끌고 들어가서 하나님 앞에 이용당하려고 하는 길이 참사랑의 길입니다.


10 오래 참는 길이 종교의 길이고, 오래 참고 희생하는 것이 종교의 길입니다. 참음과 희생으로 찾아진 위대한 사랑의 세계를 위해서 하나님을 믿고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랑이다 할 때, 그 이면에는 희생이 깃들어 있고 인내가 깃들어 있습니다.


11 사랑하는 사람과의 사랑, 부자관계의 사랑은 계절을 타지 않습니다. 자기의 사랑하는 사람을 위하여 눈물짓는 그 눈물은 봄이나 여름이나 가을이나 겨울이나 계절을 초월합니다. 참사랑은 젊은 시대, 중년시대, 노년시대를 초월합니다. 영생할 수 있는, 영원히 기쁘고 영원히 행복할 수 있는 궤도와 같은 것이 참사랑입니다. 세상에 변동이 오고, 혁명이 벌어지고, 생사지권이 바뀌는 일이 있더라도 사랑만은 변하지 않습니다. 언제나 그런 심정적 환경을 만들어 가야 됩니다. 기도 생활이 그런 환경을 계속하기 위해서 필요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랍니다. 뜻길을 가는 데는, 사랑의 길을 찾아가는 데는 감옥이 문제가 아니고 죽음이 문제가 아닙니다. 죽음을 극복하고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이 참사랑을 찾아가는 길입니다.


12 참이 영존할 수 있는, 시공을 초월해서 영속시킬 수 있는 힘에 연결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참사랑에 연결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사랑을 위해 희생해서 상대적 사랑을 세워야 됩니다. 부부를 희생시켜서 가정을 찾고, 가정을 희생시켜서 종족을 찾고, 종족을 희생시켜서 민족을 찾고, 민족을 희생시켜서 국가를 찾고, 국가를 희생시켜서 세계를 찾고, 세계를 희생시켜서 하늘땅을 찾고, 하늘땅을 희생시켜서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까지도 희생시켜서 사랑의 길을 가자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희생하신다는 것입니다. 사랑 때문에 하나님도 희생하고 계십니다.


 희생자는 중심이 된다

13 사랑의 길을 찾아가려면 희생봉사를 해야 됩니다. 희생봉사가 없으면 열만큼의 사랑의 인연을 갖고 온 사람이 백, 천, 만의 인연의 길을 가려고 해도 갈 수 없습니다. 선조가 나쁘다면 열만큼의 사랑도 못 갖고 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열만큼의 사랑의 인연을 갖고 온 사람도 백, 천, 만의 사랑의 인연을 차지할 수 있는 길이 있다면 그런 길을 한번 가 보고 싶을 것입니다. 선생님은 이것을 알았기 때문에 욕을 먹고 별의별 수모를 당하고 감옥에 들어가 죽을 고통을 당하면서도 참아 나온 것입니다. 그러기에 민족을 위하고 사랑하는 데 있어서 누구보다도 희생하려고 합니다. 사랑하는 데에 있어서도 이만큼 사랑을 했으면 됐다고 하고 가다가도 선생님보다 희생과 사랑의 도수가 높은 사람이 있으면 선생님은 더한 희생과 사랑, 즉 천배 만배 희생하고 사랑해야 한다면 그 길을 가겠다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선생님이 되어야만 하나님이 사랑을 퍼부어 줄 수 있는 것입니다.


14 남을 위해 희생하는 데에만 사랑의 길이 있습니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데 있어서 ‘내가 너를 20년 동안 공부시켰으니까 너는 탕감복귀원칙에 의해서 20년 동안 부모 앞에 희생해라.’라고 하지 않습니다. 자기의 대가를 치지 않고 수고하면 할수록, 그 수고가 극하면 극할수록 자식은 부모에 대해 사랑의 마음을 갖습니다. 그 대가를 요구하지 않더라도 부모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자식의 본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 앞에는 불효자가 있을 수 없습니다. 부모를 염려시키는 불효자는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자식을 위하여 희생하는 부모 앞에는 효자가 생겨납니다. 한 나라의 군왕이면 군왕이 신하들을 위하여 희생하면 할수록 그 신하들은 충신이 아니 되려야 아니 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의 길이란 보다 수고하고 보다 고생하면 할수록 그 가치가 감소하는 것이 아니라 배가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랑의 길입니다.


15 희생의 자리에 내모는 것이 사랑입니다. 그 자체는 억울할지 모르지만, 쓰러지고 죽어 제물 되는 그 배후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쌓여 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넓혀 종족권을 넘고, 그것을 넓혀 민족권 앞에 영향을 주고, 그것을 넓혀 국가의 기준을 바꾸는 날에는 새로운 나라의 깃발을 들고 세계를 향하여 진군할 수 있는 출발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 목적을 향하여 가는 길이 통일교회의 길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이 나라를 자신의 아들딸보다 더 사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뜻을 따라가는 입장에서는 대표적으로 책임지고 가는 때가 많아야 됩니다.


16 사랑의 길은 희생을 동반합니다. 그것은 상대의 사랑을 완전히 점령하기 위해서입니다. 상대가 완전히 나와 하나될 수 있고, 나에게 순응할 수 있는 터전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랑을 위해서 희생의 대가를 치러 나오는 사람 앞에는 사랑을 중심삼고 완전히 일체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의 소재지는 자기가 아니라 상대입니다. 내가 잘나서 아내나 남편이 나를 사랑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17 사랑의 근거지는 자기 자체에게 있는 것이 아니고 상대에게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상대의 가치를 백 퍼센트 인정하는 데서만이 백 퍼센트 사랑의 가치가 드러나는 것입니다. 사랑의 길에서는 왜 희생해야 되느냐? 그것은 자기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상대라는 근거지를 두고 있기 때문에 그 근거지에 완전히 일치될 수 있는 여건을 제시하지 않고는 사랑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완전한 사랑을 하려면 완전한 희생을 해야 됩니다. 완전한 희생을 넘어서 가는 사랑의 길에는 완전한 통일이 벌어집니다.


18 희생하는 자는 반드시 중심자가 됩니다. 가정에 있어서 효자는 보다 희생하는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정의 중심이 됩니다. 나라의 애국자는 보다 희생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나라의 중심자가 됩니다. 성인 중에서도 보다 희생하는 성인이 성인 중의 중심이 됩니다. 이것이 천리이기 때문에 이 천리의 길을 엄숙히 따라가고 모든 분야에 화할 수 있는 사람이 돼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새로운 희망이 깃들고 하나님의 사랑의 힘이 가중됩니다.


19 사랑의 길은 희생함으로써 빛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에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라고 했고, 이것이 첫째 되는 계명이라고 했습니다. 우주의 모든 계명 중에 제1차의 계명이 있다면 이 계명입니다. 이것이 제일 중요한 법입니다. 이 법을 중심삼고 이루어지게 되면 그 외의 모든 법도는 이 법도권 내에서 치리받게 됩니다. 이런 관점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창조이상을 이루기 위해서는 가야 할 길이 있습니다. 창조이상은 절대적인 하나님의 사랑과 관계를 맺게 될 때 실현되는 것입니다.


20 참된 사랑의 길은 자기편을 희생시키더라도 더 큰 세계를 향하여 전진하고 손을 넓히고 희생하는 것입니다. 가정을 중심삼고 보면 가정이 사회를 위하여 존재할 때는 가정을 떠나더라도 그 가정을 떠나는 것이 아니고 그와 같은 위치에서 사회와 더불어 하나되는 것입니다. 아들이 자라서 상대를 만나 부부를 이루게 되면 부모와 떨어지지만 부부를 이룸으로써 부모와의 사랑의 인연이 더 깊어질 수 있고, 자녀를 낳음으로써 더 커질 수 있습니다. 그 가정이 사회로 나가면 더 커질 수 있고, 발전하면 할수록 더 커질 수 있는 것입니다.


21 부모가 자기만을 위주로 하여 자식을 사랑하면 그것은 가짜 사랑입니다. 또 자식이 자기만을 위주로 하여 부모를 사랑하면 그것도 가짜 사랑입니다. 통일교회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진짜 사랑을 가진 참된 종교라면 통일교회를 위한 사랑은 하지 말아야 됩니다. 자기는 희생하더라도 부모를 사랑해야 효자이고, 자기는 희생하더라도 자식을 사랑해야 참부모가 되는 것처럼, 통일교회는 희생하더라도 나라를 사랑하고 세계를 사랑해야 됩니다. 이것이 사랑의 법도를 세우는 제일 가까운 길입니다.


22 우리 개인이 가정을 위해서 희생하는 것은 가정적인 사랑의 길을 찾기 위한 것이고, 가정을 희생시켜서 종족을 찾으려고 하는 것은 종족적 사랑의 길을 넓히기 위한 것이고, 종족을 희생시켜서 민족을 구하는 것은 민족적 사랑의 길을 넓히기 위한 것이고, 민족을 희생시켜서 세계를 구하는 것은 세계적 사랑의 길을 넓히기 위한 것입니다. 이렇게 세계적 사랑을 중심삼고 하나님의 사랑까지 가야 합니다. 이렇게 가야 할 길이 금후에 우리가 가야 할 길입니다.


23 종교는 개인이 희생하고, 가정이 희생하고, 종족이 희생하고, 나라까지도 희생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나라도 종족권을 희생해 나왔습니다. 그래서 세계의 국가 중에서도 종교를 믿는 국가는 지금까지 희생의 역사를 걸어오는 것입니다. 창조적 사랑의 대상이념을 이루기 위해서는 그것이 사랑의 본질적인 원칙이기 때문에 그 원칙을 통하지 않고는 하나님과 일치될 수 있는 자리를 가질 수 없습니다. 또한 하나님이 주관하는 사랑의 이상세계와 관계를 맺을 수 없습니다. 사랑의 이상세계와 관계를 맺으려면 그 원칙의 전통을 이어받지 않고는 안 되기 때문에 종교가 가는 길은 사랑을, 박애주의를 내세워 희생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천국과 지옥, 선과 악은 여기에서 갈라집니다.


 피와 땀과 눈물의 길

24 하나님은 지금까지 우리를 찾아오는 노정에서 사탄과 대결해 나오셨습니다. 하나님이 수고한 그 노정을 본받아 우리도 그 길을 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알고 보니 하나님은 부모의 심정을 지니고 종의 몸을 쓰고, 땀은 땅을 위하여, 눈물은 인류를 위하여, 피는 하늘을 위하여 뿌리며 잃어버린 자식을 찾기 위하여 역사노정 가운데 숱한 수고를 해 나오셨습니다. 우리도 역시 부모를 찾아 모시기 위해 그러한 땀과 눈물과 피를 대신 흘려야 하고, 부모의 심정을 체휼하기 위하여 종의 몸을 쓰고 나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찾아오기에 수고하고, 우리 또한 하나님을 찾아가기에 수고하는 이 노정에서 맺어진 눈물은 우리 개체만을 위한 눈물이 아닙니다. 이 눈물이야말로 하나님이 함께하실 수 있는 눈물이요, 그 땀이야말로 하나님이 함께하실 수 있는 땀입니다. 그 피와 희생도 개체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피 흘리고 희생하는 자리에 동참하기 위한 것입니다.


25 하나님은 부모의 심정을 지니고 종의 몸을 쓰고 지상에 왔습니다. 만민이 눈물을 흘리면 하나님도 눈물을 흘렸고, 만민이 땀을 흘리면 하나님도 땀을 흘렸습니다. 또 만민이 죽음의 자리에 설 때에 만민을 대신하여 피를 흘렸다는 것입니다. 나를 대신하여 하나님이 몇 천만번 제물이 되었는지 모릅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여러 번 손수 제사장의 노릇을 하였는지 모릅니다. 이러한 일을 개인으로부터 가정·민족·국가·세계로까지 해 나왔으니 얼마나 고통이 많았겠습니까? 아들을 보내어 이 사명을 하게 하려 하였는데, 그나마 실패하여 하나님이 아들의 사명까지 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26 죽은 우리를 살리기 위하여 하나님이 무덤길을 가셨으니 여러분은 부모의 심정을 지니고 눈물과 피와 땀을 흘리며 가야 합니다. 이 길은 타락 후손들에게는 운명길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와서 눈물은 인류를 위해서, 피는 하늘을 위해서, 땀은 땅을 위해서 흘린 것입니다. 과거와 현재를 걸어 놓고 한꺼번에 심정적인 실체 기준을 마련한 것입니다. 심정적인 탕감을 하기 위해 불효자의 입장에 놓여 있는 인류를 대신하여 용서의 기준을 세워 놓고 갔습니다.


27 하나님과 심정적으로 통하고 심정적으로 체휼해야 됩니다. 심정적인 체휼을 하지 않은 사람은 절대로 아버지 앞에 못 갑니다. 예수님 당시의 이스라엘 민족은 어떠했습니까? 하나님의 눈물로 세우고, 하나님의 피로 세우고, 하나님의 땀으로 세운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심정을 통한 눈물이 남아 있고, 하나님의 심정을 통한 피가 남아 있고, 하나님의 심정을 통한 땀이 남아 있는데도 불구하고 택함 받은 이스라엘 민족은 그것을 다 잊어버렸습니다.


28 일편단심 한 길을 가야 할 운명에 있는 우리는 어떻게 그 길을 가야 할 것인가? 지혜로 갈 수 없으면 땀과 눈물로, 땀과 눈물로 갈 수 없으면 피로라도 가야 합니다. 우리의 땀을 하나님의 땀으로, 우리의 눈물을 하나님의 눈물로 바쳐야 합니다. 피는 하나님을 위해, 눈물은 인류를 위해, 땀은 땅을 위해 흘려야 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과 땅과 인류가 상봉할 수 없는 원한의 터전을 여지없이 밟아 치워야 됩니다. 이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내 생활감정이 ‘하나님의 일이자 나의 일이요, 나의 일이자 땅의 일이요, 나의 일이자 인류의 일이다.’라고 할 수 있는 자리까지 나아가 나를 중심한 천적 가치를 노래할 수 있어야 합니다.


29 우리는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존재를 알고, 사탄이 더 이상 이 세계를 망치기 전에 인류를 구해야 됩니다. 나는 비록 낮은 자리에서 망하는 자리로 들어간다 해도, 통일교회가 이 민족과 세계 인류 앞에 제시할 수 있는 재료를 갖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선생님은 그런 것을 염려하는 것입니다. 그 재료가 필요합니다. 역사를 두고 제시할 수 있는 재료, 시대를 두고 제시할 수 있는 재료, 미래를 두고 제시할 수 있는 재료가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그 재료가 무엇이냐? 그것은 피와 눈물과 땀입니다. 심정으로 통할 수 있는 피와 눈물과 땀, 하나님을 눈물 흘리게 할 수 있는 피와 눈물과 땀, 민족을 눈물 흘리게 할 수 있는 피와 눈물과 땀입니다. 개인 개인이, 세계인이 그것을 듣게 될 때에 눈물을 흘릴 수 있는 피와 땀이 있어야 합니다.


30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가장 귀중한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을 아무런 후회 없이 서슴지 않고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에게 가장 귀중한 소유물은 여러분의 눈물과 땀과 피입니다. 여러분은 만물을 위하여 땀을 흘려야 합니다. 하늘을 위하여 여러분의 피를 뿌려야 합니다. 인류를 위하여 여러분의 눈물을 흘려야 합니다. 이것이 원리운동의 표어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것들을 자유로이 나누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심령적으로 하나될 수 있고 심정적으로 하나될 수 있습니다.


31 여러분은 시멘트가 되고, 자갈이 되고, 모래가 되고, 물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의 피와 땀과 눈물은 물로 삼고, 여러분의 살은 모래로 삼고, 여러분의 뼈는 자갈로 삼아야 합니다. 그래서 자기 자신의 기초를 다져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다져진 터전은 창조적인 것이기 때문에 천년의 역사가 지나가도 허물어질 수 없고, 만년의 역사가 지나가도 허물어질 수 없고, 또 어떠한 단체가 천년만년 노력해도 허물어뜨릴 수 없습니다.


 원수 사랑과 원리의 길

32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면서도 왜 원수를 사랑하라고 했느냐? 사탄을 굴복시킬 수 있는 것은 사랑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중심삼은 사랑은 세계를 구하려고 하는 사랑입니다. 사탄세계의 사랑권을 빼앗아 오자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목적이 사탄세계를 굴복시키는 것입니다. 구원의 목적은 하나님이 원하는 섭리의 뜻을 완성하는 것입니다. 그 섭리의 뜻을 완성하는 골자가 사랑입니다. 사랑을 가지고 이 세계를 사탄한테서 탈환해야 됩니다.


33 성경에 원수를 사랑하라는 것은 악마와 접한 사람을 사랑하라는 것이지, 악마 자체를 사랑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소원이 영생입니다. 영생은 참사랑의 길에만 있습니다. 그런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몸과 마음이 위하고 또 위할 수 있는 길을 가게 될 때는 거기에서 통일이 벌어집니다. 통일은 마음이 몸을 위하듯이 몸이 마음을 위하는 자리에서 됩니다. 그런 자리에서 주고받게 되면 중앙을 중심삼고 축을 따라서 반드시 통일이 이루어집니다. 이 원칙적인 사랑의 축 앞에 평형선과 수평선이 십자로 된 여기에 자기 존재 위치가 있는 것입니다.


34 인간은 두 핏줄이 연결돼 있습니다. 하나는 태어나게 한 역사적인 조상을 중심삼고 사탄의 핏줄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 핏줄이 생겨난 동기가 자기 중심삼은 자주적 자각성을 취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핏줄은 뭐냐? 자기가 아니라 전체를 위하는 것입니다. 위하는 핏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만한 사람은 영원히 사탄의 핏줄권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 핏줄권을 벗어나려니까 어떻게 해야 되느냐? 세계 사람은 전부 자기를 위하는데 하늘 편은 반대입니다. 자기를 위하려고 하지 않고 전체를 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타락권을 벗어나기 위한 그 표제가 원수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35 사랑을 찾아갈 때는 마음이 먼저 갑니다. 그런데 상대가 안 될 때에는 지금까지 투입했던 모든 것은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랑이 성립될 때까지 두근거리는 것을 계속해서 자꾸 이으려고 합니다. 중단이 안 됐기 때문에 계속해서 모든 세포에 꽉 채워서 인연을 맺으려는 것입니다. 그러려니 계속해서 완성될 때까지 투입하고 투입하는 마음을 가지고 창조 활동을 해 나갑니다. 여기에 위하는 철학의 근본 논리가 있습니다.


36 하나님이 천지만물을 창조했다는 것은 자기의 모든 사랑의 심정을 투입했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한 하나님이라면 그러한 마음을 가진 대상이 반드시 생겨나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가 형성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이 현현합니다. 그런 사람은 흥하게 마련입니다. 양심은 이런 사실을 이론적으로는 확실히 모르지만 서로서로 사랑하고 서로서로 위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종교는 남을 위해서 희생하라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37 하나님이 위하는 원칙을 세웠다는 것은, 공기로 말하면 평준화된 공기 가운데에서 완전 진공상태로 들어가라는 것입니다. 절대 진공권 내로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고기압은 자동적으로 저기압 쪽으로 순회합니다. 하나님 자신이 사랑의 상대를 찾기 위해서 투입하고 투입하다 보니 그 자리에 있더라도 자연히 돌아오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논리적 근거를 중심삼고 피조물을 쌍쌍제도로 창조했는데, 전진적으로 차원 높은 상부의 급을 통해 인간과 하나님의 이상적 발판을 만들기 위해서 천지를 창조했다는 것입니다.


38 참된 사랑은 위하라고 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참된 이상, 참된 행복, 참된 평화의 기준은 위하라고 하는 데에 있지 않습니다. 위하려고 하는 데서부터 시작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된 부부, 참된 부모, 참된 스승, 참된 애국자는 자기 자신을 중심삼고 끌어 붙이는 데서 시작되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 자신을 투입하는 데서부터 시작됩니다. 창조 자체가 곧 투입입니다.


39 잘되고자 하는 사람은 상대세계를 잘되게 해야 됩니다. 이런 관점에서 통일교회에서는 ‘위해서 살라!’라고 하는 것입니다. 태어나기를 위해서 태어났습니다. 창조는 하나님 전체의 투입인데, 하나님도 사랑을 중심삼고 사랑을 위해서 창조했다는 것입니다. 세계가 지금까지 ‘나를 위해서 살라!’라고 해왔는데, 출발부터 잘못된 것입니다. 부모를 위해서 태어났고, 아내를 위해서 태어났고, 남편을 위해서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내 생은 부모를 위해서 이어받았고, 남편은 아내를 위해서 이어받았고, 아내는 남편을 위해서 이어받았고, 형제를 위해서 이어받았고, 이 나라를 위해서 이어받았습니다. 세계를 위해서 태어난 것입니다.


40 통일원리는 아담 해와가 타락한 후에 만들어졌느냐, 타락 전에 만들어졌느냐? 타락 전에도 원리는 있었습니다. 그 원리의 길은 아담 해와가 가야 할 길입니다. 아담 해와가 인류의 조상으로서 백 퍼센트 완성해 하나님의 사랑권 내에서 일치되면 어느 누구도 떼어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도 떼어갈 수 없습니다. 구원의 길은 복귀의 길이요, 복귀의 길은 재창조를 통해 가야 할 길입니다. 재창조는 아담 해와가 타락하기 전의 원리원칙을 적용해, 그 원리원칙에 일치될 수 있는 완성적 내용을 거쳐서 존재의 가치를 결정지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돌아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 관계를 맺을 수 없는 것입니다.


41 원리의 길은 밟아 가는 길이요, 복귀의 길은 찾아가는 길입니다. 탕감복귀, 복귀의 길은 찾아가는 길이고, 찾았으면 그 길을 밟아 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지금까지 복귀의 길을 몰랐습니다. 선생님에 의해 모두 해명되었기 때문에 원리의 길, 복귀노정의 원리의 길은 그대로 밟아 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공식노정이기 때문에 선조도 후손도 그것을 통과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42 원리의 길은 인간만이 가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도 그 원리의 길을 통해야만 인간을 만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도 원리의 길을 가려고 추구하고, 또 인간도 역시 원리의 길을 가려고 노력해야만 됩니다. 이 둘의 원리의 길을 통해서만 승리의 상봉이 있게 됩니다. 그러면 악이라는 것은 무엇이냐? 원리의 길을 가는 것을 반대하게 하는 것이 악입니다. 그 길을 가지 못하게 하는 것이 악입니다. 거기에 장애물을 갖다 놓는 것이 악이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원리원칙에는 용서가 없는 것입니다.


43 인간조상인 아담 해와가 조상의 길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여러분이 다시 찾아가야 됩니다. 그래서 복귀의 길은 찾아가는 길이요, 원리의 길은 밟아 가는 길입니다. 원리의 길은 밟아 가는 길이기 때문에 여러분은 선생님이 가는 길을 가야 됩니다. 그런데 선생님의 길은 영적인 사탄과 세상적인 사탄, 즉 영육을 중심삼은 천주적인 사탄과 싸워 승리해서 밟아 가는 길이지만 여러분에게는 그것이 없습니다. 세계적인 사탄도 없고 국가적인 사탄도 없습니다.


44 천운을 타려면 원리의 길을 가야 됩니다. 원칙적인 길을 가야 됩니다. 이것이 선생님의 생활철학입니다. 지금까지 핍박받으며 나왔는데, 다 망할 줄 알았지만 망하는 자리에서 도약해서 더 큰 세계로, 더 큰 무대로 발전해 나온 것입니다. 하늘이 협조할 수 있었던 것은 천리원칙에 일치된 길을 걸어왔기 때문입니다.


45 통일교회 교인들은 선생님을 통해서 복귀의 길을 찾아 나가는 원리를 알았으니, 여러분은 반드시 원리의 길을 밟아 가야 됩니다. 원리의 길에는 용서가 없습니다. 할아버지도 가야 되고, 아버지도 가야 되고, 자기도 가야 됩니다. 축복받고 태어난 아들딸이라고 해서 예외가 없습니다.


46 복귀의 길은 찾아가는 길이기 때문에 선생님이 지금 여러분 앞에서 찾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찾아가서 실험을 해서 원리의 길을 닦아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이것을 그냥 그대로 밟아 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길잡이 하는 사람이 바다를 건너게 되면 같이 따라 건너야 되고, 높은 산맥을 타고 넘어가게 되면 같이 따라 넘어가야 됩니다. 그것을 싫다고 해서는 자기 해방권을 맞이할 수 없습니다.


47 선생님은 지금까지 하나님에 대해서 불평 한마디 안 하고 뜻길을 걸어 나왔습니다. 죄 없이 감옥에 들어가서 불한당들에게 맞고 피를 토하는 자리에서도 ‘하나님, 왜 이러십니까?’ 하고 원망을 하지 않았습니다. 종들이 억천만세 반대할지라도 아들만은 그들 편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반대하는 사탄이 있는 것을 알면서 아들이 어떻게 하나님을 반대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죽더라도 아버지 편에 서서 죽어야 합니다. 어떤 어려움도 참고 견디어 나오다 보면 아버지 앞에 말하고 싶은 것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말하지 않는 것이 위대한 것입니다.


48 여러분은 어떠한 비참한 노정이라도 가야 합니다. 선생님도 그런 길을 간 사람입니다. 가는 데에 있어서 세상의 어느 누구를 원망해서는 안 됩니다. 원망에 앞서 이 나라, 이 세계가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것과 뜻이 가는 길을 염려해야 됩니다. 이것이 복귀의 책임자로서 취해야 할 응분의 태도입니다. 여러분은 그런 심적 기준을 하늘 앞에 세우지 않으면 안 됩니다.


49 복귀의 길은 기쁨으로 가야 됩니다. 죽음길도 기쁨으로 가야 하늘이 찾아오지, 우울하고 한탄하는 입장에서 가게 되면 사탄이 따라옵니다. 순교를 해도 자기가 천국 가기 위해서 순교한 사람은 반대의 자리에 들어갑니다. 하나님을 해방하고 세계를 살리기 위해서 내가 순교한다고 해야 됩니다. 예수님의 생애는 로마까지 구하기 위한 생애였기 때문에 로마 병정을 사랑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죽었더라도 로마를 사랑했기 때문에 로마가 기독교 품에 들어온 것입니다. 거기에서 울고불고했으면 하나님이 와서 존경할 여지가 마음세계에 없어지는 것입니다. 자리가 없어지고 사탄이 자리 잡게 됩니다. 그래서 뜻길을 가는 사람은 죽더라도 불평할 수 없습니다. 불평하는 사람을 친구로 하는 것은 제일 위험합니다.


50 기쁨을 느끼면 하나님이 나에 대해 관심을 갖고 하나님의 사랑권 내에 들어가지만, 이 기쁨을 어떻게 실천하느냐가 과제입니다. 모든 것이 기쁘면 기쁜 자기 자체에 머무르지 않고 모든 만물과 더불어 화동할 수 있고 만물의 상대적 기쁨으로 남겨 놓아야 됩니다. 신앙생활도 재미있고, 하나님의 뜻길에 있어서 하는 일도 재미있어야 됩니다. 할 수 없어서 하는 것은 안 됩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재미있고 힘들다는 것이 느껴지지 않아야 됩니다. 생활환경에서 이것을 뿌리박아야 됩니다.


51 천주 형제주의 공동생활 체험을 확대해야 합니다. 자기 한 가정만 살아서는 안 됩니다. 사위기대면 사위기대의 네 가정, 4개국 가정이 콘도 같은 데서 3년 이상 같이 생활하는 것입니다. 아들딸도 자기 아들딸이 아닙니다. 전체를 자기 아들딸같이 사랑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원하는 형제 가정과 같은 제도를 만들어 체험할 수 있어야 합니다.


52 앞으로 가정적으로 훈련시킬 아파트가 생겨나는 것입니다. 문화 주택, 아파트 말입니다. 일곱 가정 이상 적합한 생활을 할 수 있는 가정집을 만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몇 개월씩 들어가 가지고 공동생활을 하면서 문화생활을 할 수 있는 훈련 주택, 아파트 훈련소가 생겨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전부 다 그 훈련소를 거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 아파트에서 3세대가 같이 사는 것입니다. 밥도 같이 먹고 공부도 같이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원리입니다.


53 여러분이 삼위기대의 세 부인들끼리 하나 못 되면 안 됩니다. 그래서 지금 하나되게 훈련시키는 것입니다. 앞으로는 열두 가정이 한집에서 살아야 됩니다. 그다음에는 120가정 혹은 1200가정이 전부 다 한집에서 사는 것입니다. 한 동네에서 살더라도 싸움을 해서는 안 됩니다. 천세 만세의 역사를 움직일 수 있는 전통을 세워야 할 때가 현재 참부모와 같이 사는 이 시대라는 것입니다. 이 시대에 그런 전통을 세우지 못하면 큰일 납니다. 만일 세 가정 중에 한 가정이라도 아들딸을 못 낳게 되면 아들딸을 낳은 가정이 못 낳은 가정한테 아들딸을 낳아서 주어야 됩니다.


 효자·충신·성인·성자의 길

54 효자가 가는 길이 다르고, 충신이 가는 길이 다르고, 성인이 가는 길이 다르고, 성자가 가는 길이 다르지만, 전부 한 계통입니다. 한 계통인데, 무엇이 한 계통으로 하느냐? 세상에서 부모를 사랑하는 것은 효자 일대에 그칩니다. 충신도 그 한 곳에서만 그치는 것입니다. 그러나 참사랑을 중심삼고 가면 그 방향은 영원히 남습니다. 그 조상을 중심삼고 세운 기반이 있으면 그 기반은 자기 후손들이 지키지 못할 때라도 언제나 남아져서 그 기반에서 공을 세우면 거기서 쌓아 올라갈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사랑을 중심삼은 방향성을 가지고 효자·충신·성인·성자의 도리를 하면 할수록 거기에는 발전만이 있을 뿐이지 후퇴는 없습니다.


55 여러분은 하나님이 바라시는 것과 같이 가정에서 효자가 되겠다는 생각, 나라에서 충신이 되겠다는 생각, 세계에서 성인이 되겠다는 생각, 그리고 하늘땅 앞에 성자가 되겠다는 생각을 해봤습니까? 역사적으로 볼 때 모든 성인들은 효자가 되고 충신·성인·성자가 되라고 가르쳐 왔습니다. 이것을 가르치지 못하는 종교는 종교로서 역사에 남지 못합니다. 어차피 이것은 인간의 숙명입니다. 숙명은 부자관계와 같은 것을 말합니다. 숙명은 가를 수 없습니다. 운명은 대치할 수 있지만 숙명은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56 효자라는 명사를 갖고 뜻길을 가야 승리자가 될 수 있습니다. 6천년 죄악의 역사를 책임지겠다는 각오 아래 하나님 앞에 순종의 왕자, 복종의 왕자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내 뜻대로 마시옵고 아버지 뜻대로 하시옵소서.’라고 했던 것처럼 효자의 기준을 세우고 난 다음에 ‘사탄이 드디어 저희 앞에 굴복하였나이다.’라고 해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럼으로써 말씀의 조상이 되고, 실체의 조상이 되고, 심정의 조상이 되고, 순종의 조상이 되고, 혈통의 조상이 되어야 합니다.


57 효자는 자기 일신을 무시하고 자기에 속한 처자를 무시하고 부모의 뜻을 따라야 합니다. 그것이 효자의 도리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뜻이 가는 길은 사랑이 가는 길입니다. 내 개인보다도 큰일을 먼저 사랑하는 길이 뜻이 가는 길이요, 사랑이 가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58 효자는 부모에 대해서 사랑을 중심삼고 절개를 지키는 사람입니다. 충신은 애국, 나라를 사랑하는 사람이요, 성인은 애세(愛世),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성자는 하늘나라의 왕궁권까지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뜻을 품은 사나이로서 세계에 이름을 풍미하면서 만민의 추앙을 받겠다는 소망을 가지고 뜻길을 가고자 한다면 고생하는 길에서 누구보다도 빛나는 투사가 되어야 합니다.


59 나라를 위해서 땅을 파는 것이 충신이 가는 길입니다. 나라를 위해서 소 돼지를 파는 것이 충신이 가는 길입니다. 아들딸을 학교에 못 보내면서도 가는 것이 충신이 가는 길입니다. 살을 에어 땅에 뿌리면서라도 애국하고 후대를 위해서 싸우겠다는 것이 애국자의 가는 길입니다.


60 나라를 위해서 자기 일족과 일가를 희생시키고도 가겠다는 것이 충신입니다. 자기 불행과 불편을 무릅쓰고 남편을 위해서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희생하는 것이 열녀입니다. 부모를 위해서 사랑을 가지고 희생길을 찾아가는 것이 효자입니다. 그것이 원칙입니다. 반드시 좋은 것에는 희생이 따르게 마련입니다. 자기를 부정하는 것이 희생입니다. 완전부정은 완전희생입니다.


61 국민이 가야 할 진리의 길은 뭐냐? 나라의 중심존재를 위해서 변치 않는 사랑의 인연을 찾아가는 길입니다. 그 길이 애국자의 길입니다. 국민은 애국자의 길을 가야 됩니다. 그다음에 인류가 가야 할 진리의 길이 뭐냐? 성인의 길입니다. 성인의 길을 가야 합니다. 자기 일국을 넘어서 만민을 동포와 같이, 형제와 같이, 자기 대상과 같이 사랑하며 가는 것이 세계를 향해 가는 진리의 길입니다.


62 세상에는 가정을 위하여 충성하는 사람도 있고, 사회를 위하여 충성하는 사람도 있고, 국가를 위하여 충성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국가를 위하여 충성한 사람은 국가이념을 후대에 남기는 데 있어서 하나의 전통의 조건을 세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땅과 이 세계의 모든 것은 어차피 한번 심판대에 서야 됩니다. 이것을 넘기 위해서는 일개 민족을 위한 충신 말고, 일개 부모를 위한 효자 말고, 만천하 왕 중의 왕이요, 주인 중의 주인이요, 만유의 아버지인 하나님 앞에 충신이 되고 효자가 되라고 종교에서는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것이 종교의 도리입니다.


63 애국자는 나라를 위하는 충신을 말하고, 성인은 국경을 넘어 세계 인류를 사랑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정에서는 효자, 나라에서는 충신, 세계에서는 성인의 도리, 하늘땅을 대해서는 성자의 도리를 지켜야 됩니다. 예수님과 같이 하늘 궁전법과 하늘나라의 법을 사랑으로 연결시킬 수 있는 개인이 되어야 합니다. 이 길은 전부 직선입니다. 악마의 사랑은 이 길과 반대로 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탄 편적 습관과 하늘 편적 습관은 180도 다릅니다. 사탄 편은 자기를 위주로 하고 투입하라고 하는 역사적 성품을 지녀 왔고, 하늘 편은 상대를 위해 투입하려는 역사성을 지녀 왔기 때문에 투입한 사람이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64 성인과 충신은 뭐가 다르냐? 충신은 국가를 못 넘어서지만 성인은 국가를 넘어섭니다. 자기 나라만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인류와 세계를 중심삼고 모든 수난 가운데서 자기 생명을 뛰어넘어 인류애를 중심삼고 간 사람이 성인입니다.


65 기독교에서 말하는 성자는 예수님 같은 사람을 말하는데, 성자는 하늘나라의 모든 사랑권과 역사를 대표하고 지상세계 인류의 사랑권을 대표한 것입니다. 이뿐만 아니라 하늘나라, 왕궁의 왕권을 중심삼은 안팎의 내용을 갖춘 사랑을 가지고 살려고 한 사람이 성자입니다. 성자와 성인은 다릅니다. 성인은 하나의 세계를 갖추지 못하고 막연하게 전 인류를 동포애로 사랑하려고 했던 사람이고, 성자는 하늘나라와 땅, 지상천국과 천상천국을 중심삼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 주체는 영원해야 됩니다. 나라의 백성들은 한 시대를 거쳐 가지만, 그 주권은 영원을 대표합니다. 하늘나라의 왕권을 중심삼고 끝까지 사랑하겠다고 한 사람이 성자입니다.


66 성자의 길이 뭐냐? 인간세계만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영계까지도 통해서 전통적 충효의 길을 온 우주를 대표해서 가는 길이 성자의 길입니다. 그러니까 성인의 길의 사랑을 희생시켜서 그 이상 사랑의 길을 세우려는 것이 성자의 길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와서 성자의 법, 도리를 따르는 길을 알았기 때문에 원수까지도 사랑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67 성인은 세계를 사랑하는 사람들입니다. 종교지도자들은 전부 성인의 도리를 따라갑니다. 천년만년 역사를 넘고 국경을 극복해 나가면서 세계를 사랑하는 길입니다. 그다음에 예수님과 같은 성자는 뭐냐? 하나님을 중심삼고 하늘나라와 하늘나라의 왕권을 사랑한 사람입니다.


68 가정에서 부모를 위하고 사랑하는 사람은 효자요, 나라를 위하고 사랑하는 사람은 애국자요, 세계를 위하고 사랑하는 사람은 성인입니다. 선생님은 하나님과 세계와 우주를 위하고 사랑하는 성자가 되라고 가르칩니다. 성자가 되려면 하나님과 같은 사랑을 마음에 가져야 됩니다.


69 인류역사는 무엇을 통해서 엮어져 나왔느냐? 타락한 세상이지만 인륜도덕을 중심삼고 나왔습니다. 그 도덕의 중심이 사랑입니다. 부모 앞에 효자는 부모를 더더욱 사랑하는 사람이요, 나라 앞에 충신은 더더욱 나라를 사랑하는 사람이요, 나라를 넘어 세계 앞에 사랑을 가르치고자 하는 것이 성인의 길입니다. 세계를 자기 가정보다도, 자기 나라보다도 사랑하려고 하는 것이 성인의 도리입니다. 성자의 도리는 하늘과 땅의 모든 법보다 왕궁법을 중심삼고 ‘최고의 사랑을 하라.’라고 하는 것입니다. 사랑을 중심삼고 모든 것은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70 효자는 충신이 되면 자연히 되는 것입니다. 충신이 될 때는 천 사람 만 사람의 효자 위에 서는 것입니다. 또 충신보다 성인이 되면 충신 몇 천명이 일군 기반이 있다 하더라도 성인의 자리 앞에 흡수됩니다. 성자는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수많은 성인들이 있다고 하더라도 성자의 길을 가게 될 때는 성인은 거기에 순응해야 됩니다. 사랑해야 되고 위해야 됩니다. 효자의 길, 충신의 길, 성인의 길, 성자의 길을 가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자기 목숨보다도, 자기 처자보다도 더 큰 것을 사랑하고 위해 살려고 하는 사람입니다.


71 성인이라고 해서 다 성자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다 되는 것이 아닙니다. 성자가 돼야 합니다. 아무리 나라님을 사랑하고 백성을 사랑했다 하더라도 성자가 되기 위해서는 하늘나라의 왕궁법을 알아야 됩니다. 왕궁법의 치리를 받아 거기에 박자를 맞출 수 있는 단 하나의 법을 알아야 됩니다.


72 지상에서 충신의 자격을 갖추어야 되고, 세계를 대표하는 성인의 자격을 갖추어야 되고, 하늘땅을 대표하는 성자의 자격을 갖추어야 됩니다. 성자는 누구입니까? 하늘나라의 왕궁법까지 지킬 줄 아는 자가 성자입니다. 예수님을 성자라고 하는 것도 그러한 분이기 때문입니다. 효자는 위하는 사랑을 갖고 가정과 나라와 세계를 위해 사랑을 중심삼고 전 생애를 투입해야 됩니다. 성자의 길을 위해서는 자기 일대뿐 아니라 수백 대를 대표한 자리에서 투입하여 영계의 선한 영들을 지상에 재림시켜서 자기를 협조할 수 있는 기반을 얼마만큼 폭 넓게 하여 국가를 넘어서 영향을 미치고 가느냐 하는 것입니다. 얼마만큼 위하는 사랑을 가지고 가느냐 하는 것이 저 하늘나라에서 등위 결정의 기준이 됩니다.


73 성자의 길은 하늘나라의 왕궁법도 알고, 지상세계의 왕궁법을 다 알고 여기에 맞추어서 살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하늘나라의 왕자의 도리입니다. 하나님이 그러하시니 그 하나님의 부모의 심정을 이어받아, 그 왕권의 모든 심정을 이어받아 밤이나 낮이나 그렇게 살려고 하는 아들이 참된 아들이기 때문입니다. 성자의 걸음걸이가 오늘날 가정에서부터 천상세계까지 곡절의 길을 가는 것이 아니라 직단거리로 연결될 수 있는 사랑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74 성인은 세계 인류를 위해서 희생하고 간 사람이고, 성자는 하나님을 중심삼고 세계 사람을 하나님같이 위해 가는 사람입니다. 역사적인 성인은 지금까지 세계 사람을 위해서 죽어 간 사람이고, 하나님의 아들 성자는 하나님에게도 충성을 하지만 하나님같이 만민을 위해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이렇게 성자는 성인과 다릅니다. 참된 효자는 자기 어머니 아버지를 위하듯이 형제를 위해 가는 사람이고, 참된 충신은 군왕을 위하듯이 백성을 위해 가는 사람입니다. 참된 성자, 하나님의 아들딸은 하나님을 위하듯이 하나님에게 속한 모든 전부를 위해 가려고 하는 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