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편 참사랑 - 제1장 참사랑의 근원_ 2절 참사랑의 근원 - ㉠

2013. 3. 6. 14:59참사랑 영원까지/천성경

2절 참사랑의 근원

1 참사랑은 어디에서부터 시작됐느냐? 여러분에게서 시작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됐습니다. 그 참사랑을 중심삼은 하나님이 참사랑의 이상상대가 필요해서 이 세상을 지었습니다. 천지창조도 참사랑에서부터 비롯된 것입니다. 사랑의 개념은 반드시 상대적 세계에서 이루어집니다. 상대 개념을 떠나서는 사랑을 찾을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자가 있으면 여자가 있어야 되고, 오른쪽이 있으면 왼쪽이 있어야 되고, 위가 있으면 아래가 있어야 됩니다. 상하·전후·좌우가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들이 연결되어서 하나의 구형이 이루어집니다. 창조 전 하나님에게도 몸과 마음이 있었습니다. 몸과 마음이 하나된 자리에서, 상충이 없는 사랑 가운데 이상적 사랑의 세계 실현을 꿈꾸면서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은은한 사랑이 아니라 폭발적인 사랑, 360도를 회전할 수 있는 사랑을 바라십니다. 그런 사랑의 상대를 찾기 위해서, 만들기 위해서 천지창조를 했습니다.


 하나님은 참사랑의 근원

2 여러분 가운데 신비스러운 체험을 한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우주의 근본을 찾아 들어가서 우주의 근본이 뭐냐 하고 궁금증을 갖게 될 것입니다. 이런 문제를 제시하고 우주의 근본을 찾아들어 갈 때, 우주의 근본은 이 만상의 세계를 대신해 있는 사람입니다. 인간의 근본은 무엇이냐? 생명입니다. 생명의 근본은 무엇입니까? 사랑입니다. 사랑이 없으면 생명이 생겨나지 않습니다. 그러면 사랑의 근본은 무엇입니까? 여기에서는 인간 이상의 것으로 올라갑니다. 그런 분이 하나님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랑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랑이라는 명사를 들고 나오게 될 때, 그 사랑이라는 명사는 혼자서는 성립될 수 없는 말입니다. 사랑은 반드시 상대적 관계를 가질 때에 쓸 수 있는 말입니다.


3 사랑이란 말은 상대적 관계에서 성립되는 말입니다. 아무리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하더라도 하나님 혼자 계시면 사랑이 성립되지 않습니다. 반드시 상대적 관계가 있어야 사랑이 성립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담 해와를 지은 목적이 어디 있느냐 하면, 기쁘기 위해서입니다. 기쁜 데는 무엇을 중심삼고 기쁜 것이냐? 보고서 기쁜 것이 아니요, 말하고 기쁜 것이 아니요, 만져 보고 기쁜 것이 아닙니다. 사랑을 중심삼고 기쁜 것입니다. 따라서 기쁨을 성사하기 위해서 만물 창조를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4 사랑은 나에게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은 상대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 사랑을 받으려면 내가 문을 활짝 열고 그를 위해서 투입해야 됩니다. 밀어줘야 됩니다. 천지를 창조한 하나님이, 참사랑을 차지하고 있는 하나님이 세상을 만들게 될 때 자기를 위해서가 아니라 상대를 위해서 만들었습니다. 상대에 대해서 하나님이 전체를 투입한 것입니다. 가치 있는 전체를 투입한 것입니다.


5 참사랑은 위하는 데서부터 나옵니다. 하나님이 우주를 창조하실 때 사랑의 이상을 걸고 시작했기 때문에 하나님 자신도 지으신 물건을 위해 수천년의 역사를 거쳐 나오면서 하나님이 인류 앞에 그렇게 배반당하고, 그렇게 수욕을 당했지만 잊어버리고 또, 또, 또, 또 계속해서 사랑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랑이 이 땅에, 타락한 인간세계에 남아 있는데 그것이 부모의 사랑입니다. 그러면 참된 부모의 사랑은 무엇이냐? 자식을 사랑할 때 ‘아이고, 내가 이것 전부 이자 쳐서 받겠다!’라는 마음을 가진 부모는 참된 부모가 아닙니다. 밤낮으로 희생하면서도 위하여 사랑하고, 또 하고, 또 하고, 어떤 자리에 가서도 잊지 않고 더 해주려고 하고, 24시간 거리를 초월하여 그를 위하려고 하는 사랑이 본질적인 사랑에 가까운 것입니다. 이런 사랑의 기원이 있기 때문에 인간을 구도할 수 있고 구원할 수 있는 기초를 찾을 수 있습니다.


6 사랑은 자기를 중심으로 한 입장에서 하게 되면 성립되지 않습니다. 상대를 대신하여 상대의 입장을 옹호하고 받드는 데서, 상대의 입장을 세우는 데서 비로소 사랑이란 말이 성립됩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야, 이놈아! 너는 내 종이다.’라고 말합니까? 상대를 누구보다도 높여 주고, 누구보다도 위해 주고, 상대로 말미암아 있고자 하는 자리에서 사랑이 성립됩니다. 나를 중심삼고 ‘너는 내가 하라는 대로 해라.’라고 하면, 그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7 하나님이 피조세계를 창조한 것은 하나님도 혼자서는 행복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행복이란 말은 상대적 관계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사랑이란 말도 상대적 관계에서 벌어지고, 좋다는 말도 상대적 관계에서 벌어집니다. 자기 혼자서 행복하다는 사람이 있습니까? 혼자 좋다는 사람은 미친 사람입니다. 좋다, 사랑한다, 행복하다, 바란다 하는 것은 차원 높은 의미의 상대적 관계를 요구하는 데서 필요한 것입니다. 거기에서 행복 요건의 등위가 결정되는 것입니다.


8 사랑은 자기를 중심삼고 하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 사랑은 나로부터 오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은 상대를 통해서만이 관계가 맺어지지, 상대가 없어서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자도 여자도 상대가 필요합니다. 그것은 자기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공유물입니다. 우주의 모든 전체를 품을 수 있는 힘입니다. 그 사랑은 자기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상대를 통해서 오기 때문에 상대가 없게 될 때는 사랑을 느낄 수 없고, 있다 하더라도 작용을 안 한다는 것입니다.


9 부모의 사랑이 좋고 부부의 사랑이 좋다 할 때, 진짜 사랑은 자기를 중심삼은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이란 나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상대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남편 아내로부터 사랑이 생겨나고, 아들 형제로부터 사랑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또한 사랑은 자기 혼자에게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상대로부터 시작됩니다. 그러므로 사랑의 주인은 상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