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편 참사랑 - 제1장 참사랑의 근원_ 1절 하나님의 참사랑

2013. 3. 6. 15:00참사랑 영원까지/천성경

1절 하나님의 참사랑

1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냐? 사랑의 하나님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의 줄을 누가 끊을 것이냐?’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도 하나님의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무엇보다도 좋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생명의 원천이요, 행복의 원천이요, 평화의 원천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란

2 하나님의 사랑은 태양보다 강합니다. 아침에 햇빛이 나면 모든 식물의 순은 태양을 향합니다. 모든 생명의 기원이요, 인간 본심의 기원이요, 이상적 요소의 주체적인 기원이 될 수 있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3 오시는 주님에게는 본래 참된 하나님의 사랑이 있고 하나님의 참된 진리가 있습니다. 이 진리에 의해서 가정이 벌어지는 것이요, 사회와 국가와 세계가 벌어지고, 개인적·가정적·종족적·민족적·국가적·세계적인 사랑·이념·인격이 출발되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은 개인에서부터 출발합니다. 그러므로 개인으로서 참되게 사는 사람은 땅끝 어디에 있더라도 세계를 위해서 사는 사람입니다. 사랑의 세계에서는 그렇습니다. 심정의 세계에서 한 시간 사는 것을 천년사에 자랑할 수 있고, 하루 사는 것을 만년 역사에 자랑할 수 있게끔 인생의 고귀한 것을 체험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참된 사랑입니다. 참된 사랑은 세포가 팽창하는 기운까지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런 세계가 하나님의 사랑이 있는 세계입니다. 그 세계는 말로 표현하기가 어렵지만, 마치 화창한 봄날에 구름을 타고 날아가는 듯한 느낌을 주는 황홀한 세계요, 모든 세포가 춤추는 세계입니다.


4 하나님의 사랑을 무어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까? 따스한 봄날에 하늘에는 흰 구름이 두둥실 떠 있고, 땅에는 아지랑이가 아른거리고, 벌레가 나돌고, 개미들도 세상을 구경하겠다고 발랑발랑 나왔다 들어갔다 하고, 졸졸졸 흐르는 개울가에는 버들강아지가 움트고, 개구리가 봄날 노래를 부르고, 떼를 지어 벌 나비가 날아다니는 환경에 취해서 잠이 드는 것 같은데 잠은 들지 않고 좋아서 영원히 좋다 할 수 있는 맛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찾으시는 이상상대를 중심삼고 느끼는 기분은 나비가 날고 벌이 날아드는 꽃동산과 같습니다.


5 하나님이 계시는 곳에는 사랑이 충만합니다. 주면 줄수록 더 주고 싶고, 받으면 받을수록 거기에 천만 배 더하여 돌려주고 싶은 곳입니다. 그런 곳이 천국입니다. 거기에서는 더 주고 더 받을 수 있으니 폭발적인 자극을 느끼게 됩니다. 온 세포가 터져 나가는 듯한 자극을 느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그런 것입니다.


6 선한 사람은 어떠한 사람인가? 귀하고 좋은 것을 자기만의 것으로 하지 않고 전체의 것으로 하며, 또한 그 가치를 전체의 가치로 연결시키고 싶어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천지를 창조한 하나님은 지극히 선한 분이요, 모든 만물의 근본이 되는 분이요, 사랑의 주체이신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은 자신이 참으로 믿을 수 있고, 사랑할 수 있고, 모든 것을 맡길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제일 귀한 것을 고스란히 넘겨주고 싶어합니다. 이것으로 우리는 자기에게 가장 귀한 것을 참으로 주고 싶어하는 마음이 천리의 원칙이며, 인간 본연의 마음이라는 것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7 하나님의 사랑은 부모의 사랑, 부부의 사랑, 자녀의 사랑을 대표합니다. 물론 거기에는 형제의 사랑도 들어가고, 이것을 확대하면 국가나 세계의 사랑도 들어갑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부모의 사랑이요, 부부의 사랑이요, 자녀의 사랑이라고 말합니다. 그것이 최고 멋진 말입니다. 사랑의 힘은 모든 것을 지배할 수 있기에 운명길도 좌우할 수 있습니다. 만일 이러한 사랑을 확실히 알았다면 이 사랑의 힘 가지고는 모든 것을 지배할 수 있기 때문에 우리의 운명길도 좌우하는 것입니다.


8 하나님이 필요로 하는 사랑은 절대적 사랑입니다. 하나님이 절대적 사랑, 유일한 사랑, 불변의 사랑, 영원한 사랑을 필요로 하는 것처럼 우리 인간도 절대·유일·불변·영원한 사랑을 필요로 합니다. 다 하나님을 닮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남성격 여성격, 양성과 음성으로 계시는 분이기 때문에 거기에서 갈라져 실체대상으로 창조된 인간도 남자와 여자로 창조되었고, 그들이 결혼하게 되면 실체로서 하나님을 대신한 양성과 음성이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결혼을 통해서 종적인 하나님의 사랑이 횡적으로 완전 통일되도록 추구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9 하나님이 우리에게 사랑을 주게 될 때 얼마만큼 주고 싶으실 것이냐? ‘이만큼이면 됐다.’라는 한계를 두는 사랑이 아닙니다. 무한정으로 주고자 하는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몽땅 주고도 ‘너로 말미암아 네 가운데에 살고 싶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될 수 있는 본질이 사랑입니다. 하나님도 사랑 가운데 들어가서는 종살이를 해도 좋다는 것입니다. 아버지는 사랑하는 아들딸이 자신의 밥상 위에 올라가도 그것을 바라보고 기쁨을 느끼는 것입니다. 사랑은 법을 초월합니다. 하나님이 지금까지 사랑을 주었다고 해서 인간에게 ‘나는 완전히 다 주었는데 너는 왜 안 주느냐?’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절대적인 사랑을 가진 하나님은 아직까지도 주고 싶은 사랑을 다 못 주어 안타까워합니다. 자아를 주장할 수 없는 하나님입니다. 완전한 사랑을 주고자 했던 것이 인간을 대한 창조의 원칙인데, 하나님은 지금까지 완전한 사랑을 주지 못했으니 더 좋은 것을 주고 싶어하시는 것입니다. 그런 하나님이기에 생각할수록 좋은 것입니다.


10 하나님이 ‘나는 사랑이다.’라고 했는데, 이 말은 밤에도 좋아하고, 낮에도 좋아하고, 일하면서도 좋아하고, 쉬면서도 좋아하고, 춤추면서도 좋아하고, 울면서도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나에게는 사랑이 있다. 몽땅 있다.’라고 한 것입니다. ‘몽땅’이라는 말은 그 속에 전부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사랑을 제일 좋아하는 분이 하나님입니다. 그런 사랑을 몽땅 가지고 있는 하나님이기에 인간이 그 사랑을 맛보면 죽더라도 놓을 수 없습니다.


11 종적인 사랑을 받으려면 타락하지 않은 본래의 횡적인 90각도가 되어 남자는 바른쪽, 여자는 왼쪽으로 둘이 불이 붙어 딱 어울려야 됩니다. 그렇게 될 때 남자 여자를 중심삼고 그 가운데에 하나님을 모시려면 찾아가서 접붙여야 됩니다. 접붙이는데 어떻게 붙이느냐? 평행선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개인적으로 어떻게 됩니까? 하나님은 사랑의 뼈입니다. 그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랑을 중심삼고 하나님의 사랑은 뼈사랑이고, 인간의 사랑은 살사랑입니다. 뼈와 살이 하나돼 형태를 갖추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뼈가 있는 것과 같이 하나님의 사랑은 뼈사랑이고, 참부모의 사랑은 살사랑입니다.


 영원하고 절대적인 참사랑

12 여러분 마음에 영원한 사랑이 있습니까? ‘하나님의 사랑은 나에게 나타나는 것이야. 영원히 변치 않아. 천지가 변할지라도 이 공약은 변치 않아.’라고 자리가 잡혀 있습니까?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변하지 않는 곳에 나타납니다. 불변의 사랑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은 영원하다는 것입니다. 변하지 않는 사랑이기 때문에 나에게 나타난다면 나 자체의 변하지 않는 마음의 터전 위에 나타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생 동안 먹는 것도 그 사랑을 위해서 먹고, 자는 것도 그 사랑을 위해서 자고, 활동하는 것도 그 사랑을 위해서 활동해야 됩니다. 사랑을 위해서 변하지 않는 완전한 기준을 갖고 있는 한 하나님의 사랑은 나타납니다. 그러지 않으면 이 우주의 공약 전부가 헛된 것입니다.


13 하나님은 인류 앞에 아버지 입장에 계시는 분입니다. 아버지이시기 때문에 자기 아들딸 앞에 중심입니다. 인간을 지었다고 하더라도 부모의 자리에 서 있기 때문에 자식을 대하는 자리에서는 자식을 위해 있게 마련입니다. 부모는 자식을 위해 있으려고 합니다. 밤이나 낮이나 자식이 침해받을까 봐 걱정하고, 자식에게 무슨 문제가 생길까 봐 보호해 주고, 또 어떤 반대적인 요건이 나타날까 봐 방어해 주는 것이 부모입니다. 그런 부모의 본질을 찾아 나가는 것, 부모의 본질에 연결될 수 있는 것이 선의 길, 즉 사랑의 길입니다. 이런 부자관계의 사랑의 인연을 연결시킬 수 있는 것이 선이기 때문에, 그런 선의 자리를 통해서 목적이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에는 반드시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사랑인데 중심적인 사랑이 임재해야 됩니다. 그러지 않으면 지상에 사랑의 중심이 결정될 수 없습니다.


14 하나님은 지금까지 당신과 가까운 편에 있는 사람들과 종족, 나라에까지 사랑을 주었습니다. 하나님은 적다고 받지 않을까 봐 보태고 또 보태어 이스라엘의 개인과 종족과 나라를 축복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것도 부족하여 사랑하는 아들을 보내어 축복해 주려고 하였습니다. 그들이 그래도 받지 않자 그 아들의 생명까지 주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죽고 나서도 또다시 사랑을 보태 주려고 하는 분이 하나님이기 때문에, 그 사랑이 돌아오게 되는 날에는 천지가 몽땅 이상적인 천국으로 화하게 됩니다.


15 하나님과 인간은 어디서 연결되느냐? 생명이 교류하는 곳, 사랑이 교류하는 곳, 이상이 교류하는 곳입니다. 그 점은 부자관계가 아닐 수 없습니다. 내가 하나님하고 동등할 수 있다니 그런 기쁨이 얼마나 큽니까? 사랑의 주체요 생명의 주체요 이상의 주체인데, 기도가 필요하겠습니까? 위신과 체면을 초월하는 것입니다. 서슴지 않고 하나님을 붙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붙안고 비벼 주고 사랑해 주는 것을 체험한다면 뼈살이 녹아날 것입니다.


16 하나님의 사랑을 접하면 어떻게 되느냐? 머리카락도 춤추고 세포도 춤춘다는 것입니다. 백 퍼센트 그 사랑에 취하면 나가자빠지는 것이 아니라 천년만년 살고지고가 됩니다. 누가 깨우려고 하면 깨우지 말라고 하는 것입니다.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른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만큼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고차적인 사랑에 취할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것입니다.


17 만민은 왜 하나님을 좋아하면서 따라가느냐? 하나님은 만민을 위하여 모든 것을 주고 또 주면서도 부끄러워하며 ‘지금은 이것밖에 안 되지만 조금만 더 기다려라. 몇 백배, 몇 천배 더 좋은 것을 줄 터이니.’라고 하면서, 오늘 주는 것으로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주면서도 미래에 더 좋은 것을 주겠다고 약속하는 마음의 여유를 갖고 계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분과 더불어 있으면 비록 못 먹고 못살더라도 행복하다는 것입니다. 못 먹는 자리에 들어간다면 소망의 자극이 현실권 내에서 충격적으로 느껴지는 것입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도리어 새로운 결심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자리는 미래를 위해 서로 위로의 눈물을 같이 흘릴 수 있는 자리입니다. 절망이 같이하는 것이 아니라, 내일의 소망을 현재의 자극으로 여기고 서로 결의하고, 서로 맞부딪쳐서 격려할 수 있는 폭발적인 자리가 바로 그런 자리입니다.


18 하나님은 아담과 해와의 몸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둘 사이의 사랑을 좋아합니다. 그들과 하나될 수 있는 자리를 바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에 대해 바라는 창조목적의 종착점은 아들을 만나서 사랑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인간이 바라는 종착점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그의 아들로서 사랑받을 수 있는 자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하나님의 아들이 되려 하고, 하나님은 인간을 자기 아들로 만들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 둘이 상봉하는 자리가 부자관계의 자리입니다. 그 이상의 자리는 없습니다.


19 하나님에게는 지식이 필요 없습니다. 지식을 창조한 분입니다. 하나님에게는 권력이 필요 없습니다. 전지전능한 분입니다. 하나님에게는 돈도 필요 없습니다. 다이아몬드나 황금도 마음대로 만들 수 있는 분입니다. 하나님에게는 필요한 것이 단 한 가지 있는데 그것이 사랑입니다. ‘하나님 자신이 마음대로 사랑할 수 있지 않느냐?’라고 하겠지만 천만의 말씀입니다. 하나님 혼자서는 작용을 못합니다. 아무리 훌륭한 박사님이고, 천하를 호령할 수 있는 권세자이고, 천하를 장악하고 소유하고 있는 황금 대왕이라 할지라도 혼자서는 사랑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에게 제일 필요한 것은 참사랑을 나눌 수 있는 대상자입니다.


 참사랑의 모체이신 하나님

20 정서적인 문제를 중심삼고 볼 때 하나님은 사랑의 모체입니다. 여기에서 부모의 사랑이 우러나왔고, 부부의 사랑이 우러나왔고, 자녀의 사랑이 우러나왔고, 형제의 사랑이 우러나왔고, 친척의 사랑, 민족의 사랑이 우러나왔습니다. 사랑의 갈래는 원줄기에서 뻗어 나가는 가지나 잎과 같이, 물결의 파문이 되어 나가는 것과 마찬가지로 먼 데로 가면 갈수록 점점점 감도의 차이가 있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사람이 된다면, 여러분의 친척 중에 심정적으로 제일 가까운 자리에 선 사람과 가까워지게 됩니다. 하나님이 같이하게 되면 벌써 그 무엇인지 모르게 끌린다는 것입니다.


21 여러분은 아버지의 심정을 염려할 수 있는 아들딸의 모습이 되어 아버님을 모실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여러분은 불쌍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을 모른다면 모르거니와, 안다면 우리를 찾아 수고하시는 하나님은 우리가 마음의 주인공으로만 모실 분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나와 영원히 일체를 이루어 먹어도 같이 먹고, 살아도 같이 사는, 즉 영원히 동고동락할 수 있는 실체적인 주인공입니다. 영원히 변할 수 없는 사랑의 본체요, 영원한 소망의 화신체입니다. 이러한 하나님 앞에 예수님은 어떠한 변명도 조작도 없이 자기 자체를 잊어버리고 아버지를 대신한 뜻이라면 어떠한 행동도 할 수 있는 분이었습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예수님의 발자취를 인계 맡는 아들딸이 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22 여러분 마음은 큰 것이 있으면 전부 내 것 만들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마음 앞에 갖다 두지 못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마음은 하나님을 모셔 놓고, 그 하나님 앞에 따르는 모든 나라가 있으면 그 나라까지 다 갖다 넣고, 혹은 세계가 있으면 그 세계까지 모두 갖다 넣고 싶을 만큼 방대하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 가운데 하나님을 모시더라도 사고가 나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이 마음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그렇게 큽니다. 이 마음속에 하나님을 모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분이요 절대적인 분이기 때문에, 그 절대적인 가치가 있는 분을 딴 데다 둘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끼리는 같이 가고 싶어하고, 같이 있고 싶어하고, 같이 살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같이 살고 싶어하느냐? 거기에 파고들어 가서 하나돼 같이 살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사랑의 본질입니다.


23 남자는 ‘나는 남성을 대표한 완성한 사랑의 주체자요.’라고 하고, 여자는 ‘나는 여성을 대표한 완성한 사랑의 주체자로서 당신과 나는 절대 필요한 것입니다.’라고 해야 됩니다. 남자에게 절대 필요한 것은 여자입니다. 남자에게 하나님 대신 지상에 절대 필요한 것이 여자라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 대신 여자에게 절대 필요한 것이 남자입니다. 그 대신 필요로 하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하나님의 사랑을 받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려면 남자 여자는 참된 완성의 자리에서, 돌아서려야 돌아설 수 없고 사랑을 안 하려야 안 할 수 없는 자리에서 하나님을 모셔야 됩니다. 사랑의 주인은 남자도 아니고 여자도 아닙니다. 하나님입니다.


24 하나님의 사랑의 발굴지가 어디냐? 형제간에 사랑하는 거기에서 하나님의 사랑이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남녀가 사랑하는 그 사랑을 중심삼고 하나님의 사랑이 세워지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부자관계의 사랑에 의해서 세워집니다. 종적 관계가 성립되어야 합니다. 그 종적 관계는 부모의 사랑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부자의 사랑 이외에는 없습니다. 이 사랑에는 거리가 없습니다. 이 종적 관계에서는 하나의 중심이 있어야 합니다. 중심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중심은 제일의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중심이 둘이면 세상에서는 싸움이 벌어집니다.


25 참사랑을 가지고 자기보다도 훌륭한 분을 찾겠다고 하니 백 퍼센트, 천 퍼센트 이상 투입하고 또 투입하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투입이 끝났다고 생각하는 그 순간 멈추게 됩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게 될 때 자기보다도 더 훌륭한 사랑의 상대를 만들려고 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모든 요소, 보이지 않는 무형요소를 백 퍼센트 실체화시키기 위해서 투입하고도 더 투입하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투입하고 잊어버릴 수 있는 그 자리에서만이 참사랑의 기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간단한 내용입니다. 이것이 우주의 근본원리입니다.


 창조는 참사랑의 투입

26 하나님은 절대자인 동시에 참된 사랑의 주체이고, 영원불변의 유일권에 서 계시지만 위하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없으니까 있게 하려니 자기로부터 투입해야 됩니다. 투입은 위하는 것입니다. 자기를 투입해야 됩니다. 투입해서 우주가 생겨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된 사랑의 근원이, 근거지가, 출발원지가 존재하는 세계 앞에 위하려는 참된 사랑입니다. 참된 사랑으로부터 출발한 것입니다. 이것이 이상적 출발의 본연점입니다.


27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할 때 자기의 모든 것을 투입함으로써 그 투입된 대상이 확정되면 거기로부터 사랑이 찾아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공적인 세계에 투입하면 투입할수록 거기에서 사랑이 인연돼 들어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정에서 효도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부모 앞에 효도하고, 형제끼리 왜 우애해야 되느냐? 그러면 그럴수록 사랑이 나에게 엮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나는 어떤 주인이 되고 싶으냐? 지식의 주인이 되고 싶은 것도 아니고, 권력과 명예의 주인이 되고 싶은 것도 아닙니다. 사랑의 주인이 되고 싶은 것이 인간이 지음 받은 최고의 목적이요, 인간이 찾아가야 할 종착점입니다.


28 어머니는 자기 몸을 투입하고 잊어버립니다. 자기 피와 살을 나눠 주면서 기억하는 어머니는 없습니다. 아기에게 젖을 먹이면서 ‘오늘은 몇 그램을 아기에게 공급했구나!’라고 수첩에 기록하지 않습니다. 투입하고 잊어버리고 투입하고 잊어버린다는 것입니다. 어머니가 아기를 기르면서 서 있는 곳이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면서 투입하고 잊어버리고 투입하고 잊어버리는 일을 하던 그 자리와 똑같습니다.


29 창조의 기원은 사랑을 중심삼고 위하는 논리입니다. 대상을 위하여 투입하는 것이 위대합니다. 여기에서 ‘위하여 살라!’라는 생활철학이 나옵니다. 사랑은 이상적인 항해를 해야 됩니다. 우리가 그런 목적 세계를 향해 방향을 갖추어 살아가기 위해서는 위하여 살아야 한다는 생활철학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완전투입을 하면서 가는 길 외에는 참된 사랑의 길을 만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완전히 투입하고 완전히 위하는 데서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30 참사랑은 위하는 사랑입니다. 준다는 것, 위한다는 것은 제2의 창조의 대상, 사랑의 대상을 찾는 것입니다. 하나님만이 창조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도 지금 창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할 때 자기를 완전히 투입한 것과 마찬가지로 참사랑은 자기를 완전히 투입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자기를 완전히 투입하면 자기 대신 창조물이 생겨납니다.


31 참된 사랑은 섬김을 받는 것이 아니라 남을 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맨 처음 당신의 사랑의 대상을 창조할 때 당신의 모든 에너지, 즉 당신 자신을 백 퍼센트 투입하였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참사랑의 본보기를 만들었습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은 자신을 완전히 소진시키는 참사랑의 전통을 세운 것입니다. 그 참사랑은 우주의 중심입니다.


32 참사랑이 가는 길은 위함을 받기 위한 길이 아니고 위해 주기 위한 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자신도 사랑의 상대를 창조할 때, 하나님 자신이 위하는 입장에 서서 당신이 소유하고 있는 전부를 투입하고 또 투입했습니다. 이런 마음을 가진 본연의 중심존재가 천지를 창조한 하나님입니다. 참사랑은 위하는 데 있어서 백 퍼센트, 천 퍼센트 다 주고 나서 진공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33 사랑은 완전투입입니다. 남자가 사랑을 찾아가기 위해서는 전부 투입해야 됩니다. 인간의 오관, 눈·귀·코·입·촉감 모두 완전히 투입해야 됩니다. 창조의 원형을 따라 모델의 완성 형태를 거치지 않으면 사랑에 미칠 수 있는 자격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닮았다는 자리에서 완전히 투입해야 됩니다.


34 하나님은 사랑을 중심삼고 창조를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은 손해나는 일을 한 것이 아닙니다. 투입하는 것은 손해인데, 하나님이 왜 그렇게 했겠습니까? 사랑은 모든 것을 채우고도 남을 수 있는 힘이 있기 때문에 소모시켜서 투입했지만, 그 대신 사랑을 찾아오는 것입니다. 참사랑은 투입할수록 점점 작아지는 것이 아니고 투입하여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커 갑니다. 그러지 않고 참사랑이 작아진다는 원리라면, 하나님 자체가 투입되면 소모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참사랑은 투입하면 투입할수록 커지는 것입니다. 참사랑의 세계는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커 갑니다. 사랑을 점령하려면 투입하고 잊어버리고 투입하고 잊어버려야 됩니다.


35 하나님이 심정을 가지고 만물을 지은 것은 자기 투입과 더불어 상대를 위해서입니다. 그 상대는 사랑의 상대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이 창조할 때 자기를 투입하고,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좋아하였던 것과 마찬가지로 여러분도 만물을 사랑하게 되면 하나님 편에 서게 됩니다. 만물을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하나님 뒤를 찾아 들어가는 것입니다.


36 우주적 원리의 근원은 하나님입니다. 우주 창조에서 하나님은 자신의 창조물을 위하여 자기 전체를 투입하였습니다. 또한 역사를 통해서 제멋대로 사는 타락한 인류를 구원하기 위하여 끊임없이 희생해 온 분이 바로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안 예언자나 성인, 그리고 철인들은 자신들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원리를 따랐습니다. 그리고 그들 자신이 진리를 지키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을 가르치기 위해서 희생의 길을 걸었습니다.


37 남을 위해 책임을 지고 희생하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자기가 어려움을 극복하는 한이 있더라도 나로 말미암아 상대방에게 영향을 미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마치 아무것도 없는데 하나님이 힘을 투입해서 창조하는 것과 마찬가지 입장에 서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은 만들어 놓은 것을 보고 ‘선한지라.’라고 하였기 때문에 그러한 결과로 나타난 것도 선하게 마련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원리원칙을 따라, 하나님의 창조원칙을 따라 하나님과 같은 입장에 서지 않고는 선할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