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사상 - 제8장 역사론 (歷史論) - 3

2010. 1. 6. 16:19참사랑 영원까지/통일사상

二. 창조(創造)의 법칙(法則)

 


위에서 말한 역사의 법칙을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기로 하자. 이미 말한 바와 같이 인류역사는 재창조역사인 동시에 복귀섭리역사이다. 따라서 역사의 변천(變遷)에는 창조의 법칙과 복귀의 법칙이 작용되었던 것이다. 여기서는 먼저 창조의 법칙에 대하여 설명하고자 한다. 창조의 법칙에는 (1)상대성(相對性)의 법칙 (2)수수작용(授受作用)의 법칙 (3)상극(相剋)의 법칙 (4)중심(中心)의 주관(主管)의 법칙 (5)3단계완성(完成)의 법칙 (6)6수기간(期間)의 법칙 (7)책임분담(責任分擔)의 법칙 등이 있다.

 


  (1) 상대성(相對性)의 법칙(法則)

 


피조물 하나하나는 모두 내적으로 서로 상대적 관계를 맺고 있는 두 요소를 지니고 있다. 주체적 요소와 대상적 요소가 그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 개체는 외적으로도 다른 개체와의 사이에 주체와 대상의 상대적 관계를 맺고서 존재하고 운동한다. 이러한 관계 하에서 생물들은 생존(生存)하고 번식(繁殖)하고 발전(發展)한다. 여기서 주체와 대상이 상대적 관계를 맺는다는 말은 양자가 서로 마주 대하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주체와 대상이 마주 대함에 있어서, 공동목적(共同目的)을 중심하고 대할 때와 공동목적(共同目的)없이 대할 때가 있다. 여기의 주체와 대상이 공동목적을 중심하고 서로 마주 대하는 것, 즉 상대적 관계를 맺는 것을 특히 상대기준(相對基準)을 조성한다라고 말한다.

 


여하간에 이와 같이 한 개체가 반드시 다른 사람과 더불어 주체와 대상의 상대적 관계를 맺는다는 사실을 상대성(相對性)의 법칙이라고 한다. 따라서 사회(歷史)가 발전하기 위한 필수조건(必須條件)은 정치, 경제, 문화, 과학 등의 모든 분야에서 주체와 대상의 상대적요소(相對物)가 상대관계를 맺는 일이다. 이러한 상대적관계가 형성되지 않고는 발전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주체와 대상의 상대적요소란 성상(性相)과 형상(形狀), 양성(陽性)과 음성(陰性), 주요소(主要素)와 종요소(從要素; 主個體와 從個體)를 말한다.

 


그 예로서 정신과 육체, 마음과 몸, 이데올로기와 경제적조건(物質的條件), 정신(精神)문화와 물질문명, 정부와 국민, 경영자와 노동자, 노동자와 생산용구, 기계의 주요부분과 종속부분 등을 들 수 있다. 이러한 예는 이외에도 무수히 많다. 이와 같은 상대적요소(相對的要素)가 주체와 대상의 관계를 맺음으로써 상호간에 작용이 벌어져서 정치, 경제, 문화, 과학 등 모든 영역에서 발전이 이루어지게 된다.

 


  (2) 수수작용(授受作用)의 법칙

 


사물의 내부에서 주체와 대상의 상대적인 두 요소가 상대적관계를 맺으면 이때에 일정한 요소 또는 힘을 주고 받는 작용이 벌어진다. 주체와 대상간의 이와 같은 상호작용을 수수작용(授受作用)이라고 한다. 이 수수작용(授受作用)이 행해지는 곳에서 발전이 이루어진다. 역사의 발전도 이러한 수수작용에 의해서 이루어져 왔다. 즉 역사에 있어서 모든 사회분야에서 주체와 대상의 상대적요소(相對物)가 상대적 관계를 맺은 후 공동목적을 중심하고 원만 한 수수작용을 함으로써 각 분야(分野)의 발전이 이루어졌던 것이다.

 


예컨대 국가가 존재하고 번영하기 위해서는 정부와 국민이 국가의 번영을 공동목적으로 하여 주체와 대상의 관계를 맺고 원만한 수수작용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또 기업에 있어서도 기업의 번창을 위해서는 자본가(資本家), 경영자(經營者), 노동자(勞動者), 기술자(技術者), 기계(機械) 등이 서로 주체와 대상의 관계를 이루어 원만한 수수작용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따라서 상대성(相對性)의 법칙(法則)과 수수작용(授受作用)의 법칙(法則)은 표리일체(表裏一體)의 관계에 있으며, 이 두 법칙을 합쳐서 광의(廣義, 넓은 의미)의 수수작용의 법칙이라고 한다.

 


수수작용은 조화적이지, 결코 대립적(對立的)이거나 상충적(相衝的)인 것이 아니다. 그런데 유물사관은 대립물의 투쟁으로 역사가 발전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투쟁은 발전을 위한 하나의 계기(契機)가 될 수는 있어도, 투쟁이 행해지는 동안 발전은 오히려 정지(停止)하거나 후퇴(後退)한다. 그러므로 발전에 관한 한 유물사관의 주장은 전혀 잘못된 것으로서 계급투쟁을 합리화하기 위한 위장이론(僞裝理論)에 불과했던 것이다.

 


  (3) 상극(相剋)의 법칙(法則)

 


수수작용은 주체와 대상의 상대적 요소 또는 상대적(相對的) 개체(個體) 사이에서 이루어지며, 주체와 주체(혹은 대상과 대상)는 서로 배척한다. 이와 같은 배척현상을 상극작용(相剋作用)이라고 한다. 상극작용은 본래 자연계에 있어서는 잠재적(潛在的)인 것일 뿐 표면화되지 않으며, 주체와 대상의 수수작용을 강화 또는 보완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예컨대 자연계에서 양전기와 양전기(혹은 음전기와 음전기)는 서로 배척한다. 이것은 주체(陽電氣)와 대상(陰電氣)의 수수작용을 강화?보강하기 위한 작용이며, 그 자체로서 표면화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자연계에서는 이와 같은 상극작용으로 말미암아 질서가 교란되지는 않는다. 그런데 인간사회에 있어서의 주체와 주체의 상극작용은 두 지도자간의 대립으로 나타난다. 혁명시에 새로운 지도자와 과거의 지도자와의 대립이 그 예이다.

 


이와 같은 상극작용에 있어서 두 주체(보수파의 주체와 개혁파의 주체)는 각각의 대상층(인민대중)과 수수작용을 하여 각각의 세력을 형성한다. 그 결과 두 세력이 대결하게 된다. 이 때, 두 주체(지도자)중의 한편은 하나님의 섭리의 방향에 보다 가까운 입장에 서게 되고 다른 한편은 보다 먼 입장에 서게 된다. 전자(前者)를 선(善)편이라 하고 후자(後者)를 악(惡)편이라고 한다. 따라서 사회에 있어서 주체와 주체의 상극작용은 선악의 대결 또는 선악(善惡)의 투쟁으로 나타난다. 이 투쟁에서 선(善)편이 승리하면 역사의 진행방향은 조금씩 선(善)의 방향으로 전환(轉換)하게 된다.

 


그러나 비록 타락한 사회라 할지라도 상극작용은 그 본래의 수수작용의 보완성을 나타내는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국가와 국가 또는 민족과 민족간에 평화적으로 경쟁하면서 문화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발전되어 가는 경우가 그것이다.

 


  (4) 中心의 주관(主管)의 법칙(法則)

 


다음은 중심의 주관의 법칙에 대하여 설명한다. 주체와 대상의 수수작용에 있어서 주체는 중심이 되고, 대상은 주체의 주관을 받게 된다. 그 결과 대상은 주체를 중심으로 원환운동(圓環運動)을 하게 된다. 자연계에 있어서는 지구가 태양을 중심으로 돌고 전자가 핵을 중심으로 도는 것과 같이, 물리적인 원환운동이 벌어진다. 그러나 인간사회에 있어서의 주체와 대상의 관계는 주체의 마음과 대상의 마음과의 관계이므로, 대상의 마음이 주체의 명령, 지시, 부탁 등에 쾌히 따른다는 의미에서의 원환운동이 벌어진다.

 


복귀역사에서 하나님은 중심인물을 세운 후 그를 통하여 하나님의 섭리에 적합한 방향, 즉 선(善)의 방향으로 역사를 인도해 가지만, 그 경우 사회 환경을 먼저 조성하여 놓은 다음, 중심인물(中心人物)로 하여금 그 환경을 하나님의 섭리에 맞는 방향으로 수습하게 한다. 따라서 중심인물에게는 항상 환경을 수습(주관)해야 하는 책임분담이 주어지게 된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복귀섭리에 있어서 중심인물이 사회환경을 주관하는 것을 중심의 주관의 법칙이라 한다. 이것은 선민(選民)뿐만 아니라 모든 민족이나 국가의 역사에도 적용되는 법칙이다.

 


하나님은 인류역사의 중심사로서, 구약시대(舊約時代)에는 이스라엘 민족사를, 예수 이후의 기독교를 중심으로 한 신약시대(新約時代)에는 서양사를 섭리해 나오셨다. 그리고 하나님은 중심사(中心史)를 섭리함에 있어서 중심인물(中心人物)을 세워 나오셨다. 구약시대의 노아, 아브라함, 야곱, 모세, 열왕(列王)들, 예언자들 그리고 신약시대의 어거스틴, 여러 교황들, 루터, 칼빈 등의 기독교 지도자들과 프랑크왕국의 찰스대제(大帝), 영국의 헨리 8세, 미합중국(美合衆國, USA)의 워싱턴, 링컨 등의 정치적지도자들도 각 시대에 세워진 중심인물들이었다.

 


한편 하나님의 섭리를 방해(妨害)해온 사탄도, 자기를 중심으로 한 지배권을 확립하고자 사탄편의 중심인물을 세운 후, 그를 통하여 하나님의 섭리를 방해하면서 사회 환경을 주관해 나왔다. 汎게르만주의(범게르만主義)를 주창하면서 세계를 제패(制覇)하려고 한 카이젤(빌헬름2세)이나 히틀러, 공산주의사상을 확립한 마르크스, 공산주의혁명을 지도한 레닌, 스탈린, 모택동 등이 그와같은 인물들이다. 그들의 사상이나 지도력이 없는 전체주의(全體主義)의 대두(擡頭)나 공산주의혁명은 결코 일어날 수 없었던 것이다.

 


토인비는 문명의 성장은 창조적(創造的) 개인(個人) 혹은 창조적(創造的) 소수자(少數者)에 의해서 성취(成就)되는 사업이다.'1)라고 하였다. 그리고 다수자(多數者)인 대중은 창조적 개인 또는 창조적 소수자의 지도를 받아서 그들을 따른다고 하였다. 토인비의 이러한 주장은 바로 역사에 중심의 주관의 법칙이 작용해 왔음을 말해 준다.

 


유물사관은 유물론의 입장에서 지도자보다도 환경(사회환경)을 더 중시함으로써, 사회환경의 기층(基層)인 인민대중이 사회발전에서 결정적(決定的)인 역할(役割)을 다 해왔으며, 지도자는 다만 일정한 사회적 조건의 제약을 받으면서 활동을 해왔을 뿐이라고 주장한다. 이것은 정신이 물질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정신이 물질의 제약을 받는 것처럼, 지도자의 정신은 물질적환경인 사회환경의 제약을 받는다는 유물론을 근거로 한 사고방식이 다. 이와 같이 공산주의는 사회환경(人民大衆)을 물질적 개념으로, 중심인물(지도자)을 정신적인 개념으로 취급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올바른 견해가 아니다. 지도자는 주체이며, 인민대중은 대상으로서 지도자는 그 종교적 혹은 사상적인 이념을 가지고 대중이나 사회를 일정한 방향으로 인도하고 있다.

 


  (5) 3단계완성(完成)의 법칙(法則)

 


 창조원리에 의하면, 모든 사물의 성장이나 발전은 소생, 장성, 완성의 3단계 과정을 거쳐서 이루어진다. 예컨대 식물은 씨에서 싹이 나는 단계, 줄기가 자라고 잎이 생겨나는 단계,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히는 단계를 통하여 그 성장을 완성한다. 이 법칙이 역사에도 적용되어서 3단계의 과정을 통하여 재창조(再創造)의 섭리가 이루어져 왔다. 즉, 어떤 하나의 섭리적인 행사가 실패로 끝나면 비슷한 섭리가 3차(三次)까지 되풀이되면서 3단계에서는 반드시 완성하곤 하였다.

 


예컨대 복귀섭리의 기대(基臺)를 세우시려던 섭리가, 가인과 아벨의 헌제(獻祭)실수로 인하여 아담가정에서 이루어지지 못하고, 노아가정을 거쳐 아브라함가정에 가서야 비로소 이루어졌으며, 또 아브라함가정에 있어서도 아브라함의 代에 이루려던 복귀기대조성의 섭리가 아브라함의 제물실수(祭物失手)로 이삭의 대(代)를 거쳐서 3대(三代)째인 야곱때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이루어지게 되었다. 메시아(後아담)의 강림(降臨)도 마찬가지이다. 아담의 타락으로 인하여 창조목적을 이룰 수 없게 되자 하나님은 제2의 아담으로서 예수님을 보내셨다. 그러나 십자가형(十字架刑)으로 인하여 예수님마저 창조목적을 완전히 이룰 수 없게 되자, 제3의 아담으로서 재림주(再臨主)를 강림케 하신 것이다.

 


재림주(再臨主)를 맞기 위한 준비기간인 근세(近世)에 있어서 헤브라이즘 복고운동(復古運動)과 헬레니즘 복고운동(復古運動)도 각각 3단계의 과정을 거쳐서 전개되었다. 헤브라이즘 복고운동이란 신본주의운동(神本主義運動), 즉 종교개혁을 말하며, 루터, 칼빈을 중심으로 하는 제1차 종교개혁에 이어 웨슬레, 폭스 등에 의한 제2차 종교개혁이 일어났다. 그리고 오늘날 통일교회를 중심하고 제3차 종교개혁(第三次 神本主義運動)이 전개되고 있다.

 


한편 헬레니즘 복고운동(復古運動)이란 인본주의운동(人本主義運動)을 말한다. 제1차 인본주의운동인 르네상스에 이어 제2차 인본주의운동으로서 계몽사상운동(啓蒙思想運動)이 일어났고, 이어서 제3차 인본주의운동인 공산주의운동이 오늘에 이르기까지 전개되어 왔다.

 


헤브라이즘 복고운동(神本主義運動)은 하나님편의 복고운동(復古運動)으로서 전개되었으며, 헬레니즘 복고운동(復古運動)은 인본주의운동으로서 전개되었던 것이다. 이 인본주의운동은 인간을 점차 하나님으로부터 분리(分離)시키는 사탄편의 운동이었다. 이 운동이 마침내 무신론(無神論)(공산주의)으로 흐른 것은 그 때문이다. 그런데 신본주의운동(神本主義 運動)이 3단계를 통하여 성공하면, 사탄편의 사상운동인 인본주의운동은 필연적으로 실패하게 된다. 따라서 하나님편의 3단계완성의 법칙은 사탄편에 있어서 3단계 필멸(必滅)의 법칙이 되는 것이다. 즉 제3차 신본주의운동인 통일교회운동의 성공과 제3차 인본주의운동인 공산주의운동의 멸망은 모두 필연지사(必然之事)이다.

 


  (6) 6수기간(期間)의 법칙(法則)

 


성서(聖書)에는 하나님의 우주 창조에 이어서 아담의 창조까지 6일이 걸렸다고 기록되어 있다. 즉 아담의 창조는 6수기간을 앞에 두고 개시되었는데, 이 기간은 아담을 만들기 위한 준비기간(準備期間)이었다. 마찬가지로 재창조(再創造)역사에 있어서도 제2아담인 메시아(예수) 강림(降臨)의 6수기간前 즉 6세기전(世紀前)부터 하나님은 메시아를 맞기 위한 준비를 시작하신 것이다.

 


기원전 6세기경(世紀頃)에 유대민족을 바빌론에 포로로 잡혀가게 하여 그들의 不신앙을 회개토록 하신 것은 6세기후(世紀後)에 강림할 메시아를 맞기 위한 준비였다. 기원전 6세기경 중국에서는 공자(孔子)(551?~479 B.C.)가 나와서 유교를 세웠으며, 공자이후 6세기에 걸쳐서 제자백가(諸子百家)로 알려진 여러 사상가들이 나타나 중국사상의 황금시대(黃金時代)를 이루었다. 인도에도 B.C. 6세기경 석가(釋迦; 565~485. B.C.)가 나타나 불교를 세웠으며, 또 비슷한 시기를 전후하여 우파니샤드((upanisad)'는 '가까이(upa)'와 '다가앉다(nisad)'의 합성어로, 1대1로 은밀히 전수되는 비의를 뜻한다))라고 불리우는 고대 인도철학서(古代 印度哲學書)가 출현하였다. 같은 시기에 중동지방(中東地方)에서는 조로아스터교(敎)가 일어났으며, 그리스에서는 철학, 예술, 과학 등이 비약적으로 발전하였다. 이것은 전부 메시아를 맞기 위한 준비였다. 하나님은 이와 같이 각 지역의 사람들을 종교적으로 혹은 사상적으로 선(善)한 방향으로 인도하여, 그들에게 적합한 방법으로 메시아를 맞이할 수 있도록 준비하신 것이다.

 


실존주의(實存主義) 철학자(哲學者) 야스퍼스는 기원전(紀元前) 5백년경을 전후하여 중국, 인도, 이란, 팔레스타인, 그리스 등에서 서로 아무런 연관도 없이 정신적 지도자들(종교의 開祖나 哲人)이 나타난 것에 주목하고 그 시대를 추축시대(樞軸時代)라고 불렀다.2) 거의 같은 시대에 그와 같은 정신적 지도자들이 서로 약속이나 하듯이 세계의 객지(各地)에 나타난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그것을 역사적인 비밀(秘密)이요, 풀 수 없는 수수께끼3)라고 하였다. 그러나 이 수수께끼는 6수기간(數期間)의 법칙을 이해함으로써 풀려지게 된다.

 


재림 때에도 마찬가지이다. 제3아담인 재림(再臨)메시아를 맞이할 때에도 메시아재림의 6수기간전(數期間前)부터 하나님은 재림맞이 준비를 시작하셨다. 그것이 14세기경부터 태동(胎動)하기 시작하여 16세기에 이르러 본격화(本格化)되었던 종교개혁과 르네상스(文藝復興) 운동이다.4) 18세기말에 일어난 산업혁명(産業革命), 그리고 그 후의 과학과 경제의 비약적인 발전도 역시 이 재림(再臨)을 위한 준비였다. 복귀섭리(復歸攝理)역사에 의하여 하나님은 20세기에 재림(再臨)메시아를 지상에 보내시기 위하여 이와 같은 준비를 해오신 것이다.

 


예수를 맞이하기 위하여 6세기전(世紀前)에 나타난 종교가나 철학자들은 메시아의 길을 준비하는 사명을 가진 천사장(天使長)의 입장이었다. 따라서 그들이 말한 사랑과 진리는 완전한 것이 아니라 부분적(部分的)인 것이었다. 하나님의 아들인 메시아만이 참사랑을 실천하며 참진리를 밝힐 수 있으며, 그 사랑과 진리를 통하여 비로소 그때까지의 종교나 사상의 모든 미해결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이다. 종교의 교리나 철학의 내용은 하나님이 천사를 통해서 가르친 불완전한 사랑이요, 불완전한 진리이기 때문에 메시아강림 때가 되면 어차피 미해결의 문제들이 드러나게 된다. 그리하여 그때까지의 종교는 무력화(無力化)하게 된다. 이 때 메시아가 강림해서 종래의 무력화(無力化)한 종교나 사상을 절대적인 참사랑과 참진리로써 보완(補完)하여 소생시킨 후 종교통일, 사상통일을 이루면서 통일세계(統一世界)를 실현하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십자가(十字架)에 돌아가셨기 때문에 통일세계는 실현되지 못한 채 그 사명(使命)은 재림주에게로 인계되었으며, 따라서 유교, 불교, 동양철학, 그리스철학(哲學) 등도 통일되지 않은 채 그대로 재림때까지 남아지게 되었다. 그리하여 초림(初臨) 때에 이루어야 했던 종교통일, 사상통일의 과업을 재림 때에 비로소 완성하게 된다. 즉 재림주는 이때까지의 종교나 사상의 미해결의 문제를 하나님의 참사랑과 참진리로써 해결한 후, 종교통일?사상통일을 이루어서 통일세계를 실현하게 된다.

 


여기에서 유의해야 할 것은, 재림주를 맞기 위한 6세기전(世紀前)부터의 준비기간은 메시아초림시(初臨時)의 6세기전(世紀前)과 같이 굳이 새로운 종교나 철학을 세울 필요가 없으며, 기존(旣存)의 종교나 철학을 잔존(殘存)시키면 되는 것이다. 오늘날까지 불교 등이 남아져 왔던 것은 그 때문이다. 단, 중동(中東)에 있어서의 조로아스터敎는 선악(善惡)의 2신(二神)의 종교였기 때문에 7세기경에 유일신교(唯一神敎)인 이슬람교에 의해서 대치(代置)되었던 것이다.

 


  (7) 책임분담(責任分擔)의 법칙(法則)

 


인간시조 아담과 해와에게는 하나님도 간섭(干涉)할 수 없는 책임분담(責任分擔)이 주어져 있었다. 그것은 인간에게 우주의 주관주(主管主)로서의 자격을 부여하기 위해서였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책임분담의 터 위에서 아담과 해와가 자신들에게 부여된 인간으로서의 책임분담을 완수함으로써 만물에 대한 주관주가 되어야 했다. 그러나 그들은 그 책임분담을 다하지 못하고, 타락하고 말았던 것이다.

 


재창조(再創造)의 섭리에 있어서도 하나님의 책임분담과 인간(특히 攝理的인 중심인물(中心人物))의 책임분담이 완전히 합쳐짐으로써 同 재창조(再創造)의 섭리가 완성하게 된다. 여기서 인간의 책임분담(責任分擔)이란, 인간(섭리적 인물)에게 주어진 사명을 자신의 자유의지(自由意志)에 의해서, 책임을 지고 완수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섭리적 인물들이 자신의 지혜(智慧)와 노력(努力)으로 하나님의 뜻에 맞도록 책임분담을 다 하면 복귀섭리는 새로운 단계로 발전하지만, 만일 그 인물이 책임분담을 다 하지 못하면 그를 중심으로 한 섭리는 실패하게 된다. 그리하여 섭리는 연장되고 일정한 수리적 기간을 경과한 후에 하나님은 새로운 인물을 소명(召命)하여 동일한 섭리를 다시 반복하시는 것이다.

 


인류역사가 죄악역사(罪惡歷史)로서 오늘날까지 연장되어온 것은, 섭리적 인물들이 계속해서 책임분담을 완수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십자가(十字架)에 달림으로써 통일세계(統一世界)를 실현하지 못한 것은 세례요한이나 제사장, 율법학자 등 당시의 유대교 지도자들이 책임분담을 완수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오늘날까지 공산주의가 전세계를 혼란(混亂)에 빠뜨린 이유도 산업혁명 이후 기독교국가의 지도자들이 책임분담을 완수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공산주의가 무너진 현시점에 있어서도 민주주의국가의 지도자들은 대오각성하여 하나님의 뜻에 맞도록 책임분담을 완수하지 않으면 안 된다. 즉 하나님의 참말씀과 참사랑으로 공산주의국가 사람들까지 인도하여, 하나님편에 서도록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게 함으로써 참된 세계평화와 함께 지상천국(地上天國)의 실현이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