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사상 - 제5장 교육론(敎育論) - 5

2010. 1. 6. 16:36참사랑 영원까지/통일사상

四. 종래의 교육관(敎育觀)


다음에는 종래의 대표적인 교육관의 요점을 소개하고자 한다. 종래의 교육관(敎育觀)과 통일교육론을 비교함으로써 통일교육론의 역사적인 의의(意義)가 보다 더 뚜렷이 밝혀질 것이기 때문이다.


(1) 그리스의 교육관(敎育觀) 플라톤의 敎育觀)


플라톤(Platon, 427~347 B.C.)에 의하면, 인간의 혼(魂)은 정욕적부분(情慾的部分), 기개적부분(氣槪的部分), 이성적부분(理性的部分)의 세 부분으로 되어 있으며, 정욕적부분의 덕(德)을 절제, 기개적부분의 덕(德)을 용기, 이성적부분의 덕(德)을 지혜라고 하였다.

 

그리고 이 세 가지 덕(德)을 조화시킬 때 나타나는 덕(德)을 정의(正義)라고 하였다. 국가에는 이 혼(魂)의 세 부분에 대응하는 세 가지 계급이 있다. 농공상(農?工?商)의 서민은 정욕적부분(情慾的部分)에 대응하는 하층계급(下層階級)이며, 군(軍)?관료(官僚)는 기개적부분(氣槪的部分)에 대응하는 중간계급이며, 철학자는 이성적부분(理性的部分)에 대응하는 상층계급(上層階級)이다.


그리고 선(善)의 이데아를 인식(認識)한 철학자가 국가를 통치할 때, 비로소 이상국가(理想國家)가 실현된다고 하였다. 플라톤에 있어서의 교육의 당면 목적은 사람들을 이데아의 세계에로 이끄는 것이었다. 그것은 소수(少數)의 지배계급인 철학자를 양성하는 교육이었으며, 이상적 인간상은 `愛智者(철학자)'이며, 동시에 심신(心身)이 조화하고 지혜, 용기, 절제, 정의의 4덕(四德)을 겸비한 `조화적인간(調和的人間)'이었다. 그리고 교육의 궁극적인 목적은 선(善)의 이데아가 실현된 이상국가(理想國家)를 이룩하는 것이다.


(2) 중세(中世)의 기독교적 교육관(敎育觀)


그리스시대의 교육이 사회에 봉사하는 선(善)한 인간을 목표로 한데 대하여 중세(中世)의 기독교사회에 있어서는 기독교를 이상으로 하는 인간의 육성(育成)을 목표로 하였다. 그리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존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종교적인간(宗敎的人間)이 이상적(理想的) 인간상(像)이었다. 특히 수도원에서 이러한 인간상(像)을 위한 엄격한 교육이 행해졌으며, 그것은 순결(純潔), 청결(淸貧), 복종(服從)을 덕으로 삼고 완전한 영적생활(靈的生活)을 영위하게 하는 교육이었다. 즉 교육의 목적은 기독교적 인간의 육성인 동시에 내세(來世)의 생활에 대한 준비였다.


(3) 르네상스시대(時代)의 교육관(敎育觀)


르네상스시대에 들어오면서 복종(服從)이나 금욕(禁慾)을 덕으로 하는 신본주의(神本主義)의 세계관을 타파하고 인간성의 존중(尊重)을 중시하는 인본주의(人本主義)의 세계관이 출현했다. 인본주의의 교육관을 대표하는 사람은 에라스무스(D. Erasmus, 1466~1515)로서 그의 교육의 목적은 본성적(本性的)으로 자유인인 인간으로 하여금 그 인간성의 완전한 발달을 이루게 하는 것이며, 개성적(個性的)인 풍부한 교양을 몸에 지니게 하는 것을 주장하였다.


그리고 문학, 미술, 과학 등의 인문적 교양(人文的 敎養)을 강조했으며 중세시대에 무시되었던 체육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다. 르네상스시대의 이상적(理想的) 인간상(像)은 심신이 조화적으로 발달한 만능(萬能)의 교양인이었다. 에라스무스의, 인간 본성(本性)에의 복귀 사상은 코메니우스와 루소에로 계승(繼承)된다.


(4) 코메니우스의 교육관(敎育觀)


코메니우스(J. A. Comenius, 1592~1670)에 있어서 인생(人生)의 구극(究極, 궁극)의 이상은 하나님과 하나가 되어 내세(來世)에 영원한 행복을 얻는 것이며, 현세(現世)의 생활은 그 준비였다. 그러기 위해서 인간은 첫째, 모든 사물을 알고 둘째, 사물 및 자기를 통제할 줄 아는 자(者)가 되며 셋째, 하나님을 닮은 모습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면서 지적교육(知的敎育), 도덕적교육(道德的敎育), 종교적교육(宗敎的敎育)의 3교육(三敎育)의 필요성을 역설(力說)하였다. 모든 사람에게 모든것을 가르치는 것이 코메니우스의 교육론의 주제였기 때문에 그의 교육사상을 범지주의(汎知主義; pansophism)1)라고 불리운다.


코메니우스는 이러한 교육이 달성(達成)되는 소질이 본래 인간에게 내재(內在)하고 있으며, 이 내재(內在)하는 소질(素質), 즉 자연(自然)을 이끌어 내는 것이 교육의 역할이라고 생각하였다. 코메니우스는 또 교육은 본래 부모가 책임을 져야 하지만, 그렇게 안될 경우에 부모를 대신해서 학교가 필요하다고 하였다.


코메니우스에 의하면, 이상적(理想的) 인간상(像)은 하나님과 자연과 인간에 관한 참된 지식의 모든 것을 아는 범지인(汎知人)이며, 교육의 목적은 모든 것을 아는 실천적인 그리스도人을 육성하여 기독교에 의한 세계의 평화(平和)통일을 실현하는 것이었다.


(5) 루소의 교육관(敎育觀)


계몽시대(啓蒙時代)의 인물(人物)인 루소(J. J. Rousseau, 1712~1778)는 에밀이라는 교육소설을 저술(著述)하고, (인간은) 만물을 만드는 者(창조주(創造主))의 손을 떠날 때는 모든 것이 선(善)하지만 인간의 손에 넘어오면서 모든 것이 악(惡)하게 된다.'2)고 하면서 자식을 자연 그대로 교육할 것을 주장하였다. 즉, 인간은 본래 내재(內在)하는 자연의 선성(善性)을 가지고 있으므로 그것을 그대로의 모습으로 개발해야 한다고 力說하였다.

 

인간의 자연능력의 개발에 방해가 되는 요인-기성(旣成)의 체계적(體系的) 문화나 도덕적(道德的)?종교적(宗敎的) 관념의 주입(注入)-을 제거하면서 인간을 자연 그대로 성장시켜 간다는 것이 루소가 주장하는 교육이다. 그런데 현실의 타락한 사회에서 자연 그대로의 인간은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다. 그러나 이상적(理想的)인 공화제사회(共和制社會)에서는 자연 그대로의 인간과 사회속의 시민이 양립(兩立)한다고 생각하고, 사회인(社會人) 교육(敎育)의 필연성도 주장했다.


루소의 교육관(敎育觀) 서의 이상적 인간상(像)은, 자연인(自然人)이며, 교육의 목적은 자연인을 육성하고, 자연인이 시민이 되는 이상적(理想的)인 공화제사회(共和制社會)를 실현하는 것이었다. 루소의 교육관은 칸트, 페스탈로치, 헤르바르트, 듀이 등으로 계승되어 갔다.


(6) 칸트의 교육관(敎育觀)


칸트(I. Kant, 1724~1804)는 인간은 교육받지 않으면 안되는 유일한 피조물이다"3) 인간은 교육에 의해서만 인간이 될 수 있다"4)라고 하여 교육의 중요성을 역설(力說)하였다. 교육의 사명은 인간의 자연적 소질을 조화적으로 발달시켜 도덕률에 따르면서 자유로이 행동할 수 있는 인간을 양성(養成)하는 것이었다. 거기에는 루소의 영향이 있었다. 또 칸트는, 교육은 특정한 사회에 순응하는 것을 목표로 삼아서는 안 되며, 일반적으로 인간 그 자체의 완성을 목표로 삼으며, 세계주의적이 아니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한편, 칸트는 인간의 본성(本性)에 근본(根本)악(惡)이 있음을 인정하였으며 악(惡)이란 도덕율(道德律)을 자기애(自己愛)에 종속(從屬)시킴으로 해서 성립한다고 했다. 그러므로 내적인 전환(轉換, 回心)에 의해서 도덕률을 상위(上位)에 두지 않으면 안 된다고 했으며, 의무(義務)가 그렇게 하도록 명령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도덕의 존중과 과학에의 신뢰(信賴) 그리고 하나님에의 경외(敬畏)가 칸트의 교육관?인간관의 특징이다. 칸트에 있어서 이상적 인간상은 선인(善人)이며, 교육의 목적은 세계주의적인 인간성의 완성이며, 구극적으로는 국제적인 영구 평화(永久 平和)의 확립이었다.


(7) 페스탈로치의 교육관(敎育觀)


페스탈로치(J. H. Pestalozzi, 1741~1827)는 루소의 영향을 받아 자연(自然)에 입각(立脚)한 교육을 주장함으로써 인간에 내재(內在)하고 있는 고귀한 소질인 인간성을 해방하려고 하였다. 단순한 것, 순수한 것을 기초로 하면서 근본원리(根本原理)를 직감함으로써 인간은 선(善)한 행위를 하게 된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리고 교육은 가정에서의 어머니의 사랑으로부터 시작한다고 하면서 가정교육이 교육의 기초라고 주장했다.


페스탈로치는 인간성을 구성하는 데는 세 가지의 근본(根本)된 힘, 즉 정신력(精神力), 심정력(心情力), 기술력(技術力)에 있다고 보고, 이것은 각각 머리, 심장, 손에 해당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정신력의 교육이 지식의 교육이며, 심정력(心情力)의 교육이 도덕*종교교육이며, 기술력의 교육이 기술교육(체육을 포함)이라고 하였다. 이것들을 통일하는 내적인 힘이 사랑이다. 사랑은 심정력(心情力)의 기본이며, 도덕*종교교육의 추진력이다. 따라서 도덕*종교교육을 중심으로 이 세 가지 교육은 조화(調和)롭게 통일된다고 주장하였다.


페스탈로치가 생각한 이상적(理想的) 인간상은 세 가지의 근본된 힘이 조화(調和)롭게 발달한 인간, 즉 全人이었다. 그는 사랑과 신앙을 중심으로 한 전인격적교육(全人格的敎育)을 주장한 것이다. 교육의 목적은 인간성을 도야(陶冶)하여 도덕적*종교적인 국가사회를 건설하는 것이었다.


(8) 프뢰벨의 교육관(敎育觀)


페스탈로치를 신봉(信奉)하며 페스탈로치의 인간교육을 체계적(體系的)으로 구성한 사람이 프뢰벨(F. Frobel, 1782~1852)이다. 프뢰벨에 의하면, 자연과 인간은 하나님에 의해 통일되고, 하나님의 법칙에 의해 움직인다. 신성(神性)이 만물의 본성을 형성하고 있으며, 그 본성을 표현하고, 계시하고, 발전시키는 것이 만물의 사명이다.

 

따라서 인간은 인간에 내재(內在)하는 신성(神性)을 생활속에 나타내지 않으면 안되며, 교육은 그런 방향으로 인도하는 것이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이와 같은 신적(神的)인 것의 표현이야말로 바로 모든 교육, 모든 생명의 목적인 동시에 노력(努力)의 목표이며 인간의 유일한 사명(使命)이다.“


프뢰벨은 특히 유아교육(幼兒敎育)과 가정교육(家庭敎育)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유아를 자연 그대로 성장시키는 장소는 가정이며, 교사는 부모이다”라는 것이 프뢰벨이 주장하는 교육의 기본이다. 그리고 페스탈로치와 마찬가지로 그도 어머니의 역할을 강조했다. 또 가정교육을 보충하기 위하여 유치원(Kindergarten)이 필요하다고 주장함으로써 유치원의 창립자가 되었다.


루소가 주장한 선성(善性)을 가진 자연인(自然人)은 페스탈로치에 이르러 고귀(高貴)한 인간성을 가진 全人이 되었는데, 프뢰벨에 있어서의 이상적 인간상은 신성(神性)을 가진 인간이 되었다.


(9) 헤르바르트의 교육관(敎育觀)


헤르바르트(J. F. Herbart, 1776~1841 독일 관념론적 철학자, 교육학자)는 교육학을 과학적으로 체계화하고자 하였으며, 이 때 윤리學과 심리학(心理學)을 기초과학으로 채택하고자 시도하였다. 즉 윤리학을 기초로 하여 교육의 목적을 세우고, 심리학을 기초로 하여 교육의 방법을 수립코자 했던 것이다.


먼저, 헤르바르트는 칸트에 따라서 이상적 인간상을 선인(善人)으로 하고, 교육의 목적을 도덕적 품성의 도야(陶冶)라고 하였다. 그 다음 심리학(心理學)의 입장에서 교육의 방법을 추구하였다. 헤르바르트는 인간의 정신생활의 기초(基礎)를 이루는 것은 표상(表象)이며, 표상의 집합(集合)인 사상권(思想圈; Gedankenkreis)을 도야(陶冶)함으로써 도덕적 품성이 도야된다고 생각하였다. 즉 지식(知識)을 교수(敎授)하고 그것으로 도덕적 품성을 형성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헤르바르트는 표상(表象)의 형성에 있어서 가르침 즉 교수(敎授; Unter\richt)의 중요성을 지적하고 교수의 과정에 대해서 설명하였다. 헤르바르트의 이론을 나중에 수정한 헤르바르트학파(學派)에 의하면, 교수의 과정은 예비(豫備), 제시(提示), 비교(比較), 총괄(總括), 응용(應用)의 五단계였다.


(10) 듀이의 교육관(敎育觀)


19세기 후반에 이르러 미국(美國)에서는, 행동을 인생의 중심에 두는 프래그머티즘의 인생관이 생겨났다. 듀이(J. Dewey, 1859~1952)는 지성(知性)은 행동에 유용(有用)한 도구(道具)이며, 사고(思考)는 인간이 환경을 통제(統御)하는 노력의 과정에서 발전한다고 주장하면서 도구주의(道具主義, instrumentalism)를 주창하였다.


듀이는 교육(敎育)은 성장하는 것과 전적으로 일체(一體)이며, 그것은 그 자체를 초월하는 어떤 목적도 가지지 않는다"7)라고 말하고, 미리 제시(提示)할 수 있는 교육의 목적을 부정하고, 성장(成長)으로서의 교육을 주장하였다. 교육이란 생활上의 통신(communication)에 의한 전달(transmission)이며,8) 체험(體驗)을 부단히 재조직(再組織, reorganization) 혹은 개조(改造, reconstruct -ion)하는 것"9)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전달은 직접(直接), 성인(成人, 敎師)으로부터 아이들에게 行하는 것이 아니며 환경이라는 매개물(媒介物)을 통하여 행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였다. 이와 같은 교육에 의하여 사회는 발전해 가는 것이다. 듀이가 의도(意圖)한 것은 사회의 개조를 목표로 하는 실천적인 기술교육(技術敎育)이었다. 그의 교육관에 있어서의 이상적인 인간상은 행동적(行動的) 인간이었다.


(11) 공산주의(共産主義)의 교육관(敎育觀)


마르크스나 레닌은 자본주의사회의 교육을 다음과 같이 예리(銳利)하게 비판하고 있다. 마르크스에 의하면, 부르주아지 사회의 교육정책은 우민화정책(愚民化政策)이며, 교사들은 기업가의 치부(致富)를 위해서 아동의 두뇌(頭腦)를 가공하는 생산노동자이다." 레닌에 의하면, 자본주의 교육은 부르주아지의 계급적인 지배의 도구(道具)이며, 부르주아지를 위해서 순종적이며 약삭빠른 종복(從僕), 자본의 의지(意志)의 집행자, 자본의 노예(奴隷)를 기르는 일을 맡고 있다는 것이다. 그와 같은 자본주의 사회의 교육에 대하여 레닌은, 사회주의사회에 있어서 학교는 프롤레타리아트 독재(獨裁)의 도구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주장하고, 교사는 노동자 대중에게 공산주의의 정신(精神)을 심는 군대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였다.


공산주의교육의 목적은, 소련의 국민교육기본법(國民敎育基本法)(1973년)의 전문(前文)에 다음과 같이 명시되어 있다. 소련방(蘇聯邦)의 국민교육의 목적은 마르크스 레닌주의의 사상으로 길리움을 받고 소비에트법(法)과 사회주의 질서의 존중, 노동에 대한 공산주의적 태도의 정신으로 양육된 높은 교양을 가지고, 전면적으로 발달한 공산주의사회의 적극적(積極的)인 건설자의 육성(育成)에 있다. 즉, 교육의 목적은 공산주의사회의 건설에 헌신적(獻身的)인 인간을 육성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상적 인간상은 전면적으로 발달한 인간이다.


그러면 공산주의교육은 어떠한 내용을 가지고 있을까. 먼저 개별적(個別的)인 기술교육에 반대하고 총합(總合)기술교육(技術敎育)(polytechnism)을 중시한다. 그리고 총합기술교육은 노동과 결부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주장한다. 또한 사회주의사회에 있어서 개인과 집단에는 이해의 대립이 없으며, 또 집단을 떠난 개인은 있을 수 없다고 하면서 집단주의교육(集團主義敎育)의 필요성을 주장한다. 총합기술교육을 체계화한 사람이 크루프스카야(N. K. Krupskaya, 1869~1939)이며, 집단주의교육(集團主義敎育)을 체계화한 사람이 마카렌코(A. S. Makarenko, 1888~1939)였다.


(12) 민주주의(民主主義)의 교육관(敎育觀)


민주주의의 교육이념(敎育理念))이란, 민주주의사상에 기초를 둔 교육관으로서 민주주의교육관의 형성에는 듀이의 교육관이 20세기의 전반을 통하여 큰 역할(役割)을 다 하였다. 여기서는 제2차 세계대전(第二次 世界大戰) 후의 민주주의의 교육이념을 대표하는 것으로서, 미국 교육사절단보고서(美國 敎育使節團報告書)"18) 에서 인용코자 한다. 同 보고서는 먼저 민주주의란 무엇인가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민주주의(民主主義)란 종지(宗旨)가 아니며, 인간의 해방된 힘을 모든 다양성(多樣性)속에 발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유효(有效)한 수단이다. 민주주의를 가장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아무리 빛나는 것이라 하더라도, 멀리있는 저 편의 목표(目標)로서가 아니라 현존(現存)하는 모든 자유의 침투적(浸透的)인 정신으로서 파악하지 않으면 안 된다. 책임은 이러한 자유의 본질을 이루는 것이다. 의무는 권리가 서로 상살(相殺)하는 것을 방지한다. 나눠진 권리에 대해서든지 메워진 의무에 대해서든지 평등한 취급(取扱)의 음미(吟味)는 민주주의의 근본이다."


그리고 민주주의교육(民主主義敎育)에 대하여 同 보고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민주주의 생활에 적응하게 하는 교육제도(敎育制度)는 개인의 가치와 존엄과의 인식(認識)을 기본으로 한 것이다. 그것은, 각 개인의 능력과 적성에 따라서 교육의 기회(機會)가 주어지도록 조직되어야 한다. 교과(敎科)내용과 방법을 통하여 그것은 학문의 자유, 비판적인 능력의 훈련을 중요시할 것이다. 그것은 서로 다른 발달단계에 있는 생애(生涯)의 능력의 범위내에서 사실적 지식에 관한 광범(廣範)한 토론을 장려할 것이다.

 

이들의 목적은 학교의 일이 미리 규정(規定)된 교과(敎科) 과정이나, 각교과(各敎科)에 관하여 하나만이 인정된 교과서에 한정(限定)되어서는(이들의 목적은) 수행될 수 없는 것이다. 민주주의에 있어서의 교육의 성공은 획일성(劃一性)이나 표준화(標準化)에 의해서 측정될 수 없다. 교육은 개인을, 사회의 책임있는, 협력적인 일원(一員)이 되도록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


민주주의(民主主義)의 교육이념(敎育理念)은 이와 같은 민주주의의 원리를 준수(遵守)하면서, 그리고 자아(自我)의 인격완성을 지향(指向)하면서 타인(他人)의 인격을 존중(尊重)하며, 자기의 책임과 의무를 다한 다음 자기의 권리를 주장하는 시민, 즉 민주적 시민(民主的 市民)을 양성(養成)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교육의 목적은 인격을 완성시키고 사회의 책임있는 성원(成員)으로 육성(育成)하는데 있으며, 민주주의 교육의 이상적 인간상은 `민주주의적(民主主義的) 인격자(人格者)'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