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리본체론 - 후편 - 제8장 메시아 재강림 준비시대 - 1

2013. 1. 6. 20:04참사랑 영원까지/원리 본체론

제8장 메시아 재강림 준비시대          

 

                    서론: 메시아 재강림 준비시대   

 

아담이 타락한 이후 아담가정에서부터 시작된 하나님의 구원섭리가 인류역사의 중심을 이루었습니다. 메시아가 오지 않으면 인류는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메시아를 보내기 위한 섭리를 하시고, 인간은 메시아를 맞이하기 위한 기대를 세워왔습니다.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 인간이 메시아를 맞을 준비를 하는 시대를 메시아 강림 준비시대라고 합니다.

 

메시아 강림 준비시대 400년을 거쳐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셨습니다. 구약시대의 마지막 선지자 말라기를 중심해서 400년 이후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셨듯이 신약시대에는 루터를 중심해서 종교개혁을 일으킨 이후 메시아 재강림 준비시대가 시작되어 400년 만에 재림주가 이 땅에 오시게 된 것입니다.

 

루터 이후 재림주가 오시기 위한 400년을 메시아 재강림 준비시대라고 합니다. 메시아 재강림 준비시대는 1517년 루터가 종교개혁을 일으키면서부터 1918년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까지의 기간을 말하며, 종교개혁기, 종교·사상의 투쟁기, 정치·경제·사상의 성숙기 등 세 기간으로 구분됩니다.

 

루터가 종교개혁의 기치를 든 때부터 베스트팔렌조약(Peace of Westfalen)에 의해서 신·구교의 싸움이 끝날 때까지가 종교개혁기이고, 종교개혁기가 끝난 때부터 프랑스 정치혁명이 일어날 때까지가 종교·사상의 투쟁기이며, 프랑스 정치혁명이 일어난 때부터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까지가 정치·경제·사상의 성숙기입니다.

 

                    1. 종교개혁기              

 

1517년 독일에서 마르틴 루터가 종교개혁기의 기치를 든 때부터 1648년 베스트팔렌조약으로 구교(가톨릭)와 신교(개신교)의 싸움이 끝날 때까지 130년 동안을 종교개혁기라고 합니다. 종교개혁으로 개신교가 나타났는데, 그 이전 중세 유럽에는 교황을 중심으로 한 가톨릭만 있었습니다.

 

중세사회에는 교황이나 성직자 등 일부 특권층만 성경을 볼 수 있었습니다. 가톨릭이 일부 특권 계층의 종교로서 일반 신도들을 지배한다면 재림주가 오셔서 세계를 수습하고 인류를 구원할 길이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루터가 누구나 하나님께 직접 예배하고 교통할 수 있다는 ‘만인제사장설(萬人祭司長說)'을 주장하며 종교개혁을 일으킴으로써 자국어로 성서를 번역하여 귀족이나 성직자뿐만 아니라 누구나 성경을 볼 수 있게 했습니다. 그로부터 약 130년 간 신·구교의 싸움이 벌어졌습니다. 그 싸움이 끝날 때까지 130년 기간을 종교개혁기라고 합니다.

 

그 기간에 중세 봉건사회의 소산인 문예부흥과 종교개혁이 잇따라 일어납니다. 문예부흥과 종교개혁이 발생한 이유는 중세 봉건제도와 로마 가톨릭의 세속화로 인간의 본성이 억압된 데 대한 반항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중세 봉건제도와 로마 가톨릭의 세속화로 말미암아 인간이 본성을 억압한 데 대한 반발로 문예부흥과 종교개혁이 일어난 것입니다.

 

인간 보성의 욕구는 외적으로는 헬라문명 복고운동으로 시작되어 문예부흥으로 발전하였고, 내적으로는 히브리문명 복고운동으로 시작되어 종교개혁으로 나타났습니다. 종교개혁은 초대교회의 신앙으로 돌아가자는 운동입니다.

 

        1) 문예부흥                     

 

문예부흥(文藝復興 : Renaissance)은 14세기경 이탈리아에서 태동했습니다. 헬라사상에 관한 고전 연구의 본산지가 바로 이탈리아입니다.

고전문화 재생운동으로 출발한 문예부흥은 후에 중세 사회생활 전반의 개혁으로 확대됩니다. 문예부흥은 문화적인 면뿐남 아니라 정치·경제 종교 등 사회적 혁신운동으로 퍼져나가 근대사회 형성의 외적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문예부흥이 없었다면 오늘날과 같은 과학의 눈부신 발전은 없었을 것입니다.

 

        2) 종교개혁                        

 

문예부흥에 뒤따라 나온 것이 종교개혁(宗敎改革)입니다. 종교개혁이 문예부흥보다 나중에 일어난 이유는 아담가정에서 사탄 편에 선 가인이 하나님 편에 선 아벨을 죽이고 먼저 출발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언제나 외적인 것이 먼저 나오고, 내적인 것이 뒤따라 나옵니다.

 

종교개혁은 로마 가톨릭 교회의 세속화와 타락이 원인이었습니다. 교황들이 축첩(蓄妾)을 하거나 아이를 낳는 등 타락한데다 성직 매매와 면죄부 판매 등 교권의 세속화로 종교개혁이 일어납니다.

처음에는 형식적인 종교의식과 부패한 교회에 반항하는 신앙인들이 외적으로 문예부흥에 자극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초대 기독교정신으로 돌아가자는 복고운동을 시작했는데, 1517년 교황 레오 10세가 면죄부를 판매하는 것에 반대하는 루터를 중심으로 95개 조항의 반박문을 발표하면서 종교개혁 운동이 폭바랍합니다.

 

그로 인해 신·구교 간의 종교분쟁이 100여 년 간 계속되다가 마침내 독일을 무대로 일어난 신·구교 간의 30년 전쟁(1618~1648)이 1648년 ‘베스트팔렌조약’으로 종결됨으로써 메시아 재강림준비시대 제1기에 해당하는 종교개혁기가 끝납니다.

 

종교개혁은 성서의 권위, 하나님의 은총과 믿음을 강조함으로써 기독교를 새롭게 변혁시키고자 했던 운동입니다. 종교개혁의 결과, 개신교와 성공회가 로마 가톨릭으로부터 분리되었습니다.

 

                    2. 종교 및 사상의 투쟁기             

 

        1) 개요

 

종교 및 사상의 투쟁기는 1648년 베스트팔렌조약으로 신교운동이 성공한 후, 1789년 프랑스 혁명이 일어날 때까지 140년의 기간을 말합니다.

 

문예부흥과 종교개혁은 인간의 본성에 내적·외적으로 자유를 부여했습니다. 중세인들은 문예부흥과 종교개혁으로 본성의 자유를 획득하고 신앙의 자유를 얻었지만, 한편으로는 이념 투쟁과 분열과 갈등이 벌어졌습니다.

 

계몽주의 출현으로 많은 사상가와 철학자들이 자유롭게 논쟁을 벌였습니다. 당시에 신학적으로는 많은 논쟁을 벌이다 보니 새로운 종파가 생겨났습니다. 교파 분열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리기도 했습니다.

 

예전에는 교황을 비롯한 성직자들만 성서를 읽을 수 있었습니다. 신도들은 교황을 중심으로 신앙하고 그것을 따라갔습니다. 그것에 반발하여 인간 본성의 자유를 얻고 보니 너도나도 한마디씩 하게 되었습니다. 결국에 신학적인 교리 논쟁이 벌어지면서 교회도 분열되고 철학적인 싸움도 일어났습니다.

 

복귀섭리는 오랜 역사를 두고 가인형과 아벨형이라는 두 가지 형태로 분립된 세계에서 이루어져 나왔습니다. 역사의 종말에도 두 세계로 분립되는데, 그 두 세계가 가인형 세계와 아벨형 세계로 나타나게 됩니다.

 

        2) 가인형 인생관                

 

가인이 아벨을 죽였기 때문에 하나님 편 아벨은 없어졌습니다. 그래서 가인 편 역사가 먼저 출발합니다.

가인 편 역사는 가인형 인생관으로부터 출발했습니다. 가인형 인생관의 중심사상은 인본주의(人本主義 : Humanism)입니다. 인본주의는 사람을 위주로 하여 모든 사물을 보고 판단하는 이론입니다. 인간의 본성을 외적으로 추구한 결과 헬라사상 복고운동을 일으켜 인본주의를 낳았습니다.

 

중세인들은 인생의 모든 것을 이성적으로나 현실적으로 판단했습니다. 데카르트(René Descartes, 1596~1650. 프랑스 수학자·과학자·철학자)는 이성을 중심한 합리주의를 주장했고, 베이컨(Roger Bacon. 1220~1292. 영국 철학자)은 인간의 이성도 중요하지만 현실 속에서 경험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주류 사상인 데카르트의 이성론(理性論)과 베이컨의 경험론(經驗論)으로 인해 인간의 내·외적인 성향에 따라서 인간의 갈길이 두 갈래로 나뉘었습니다.

 

인본주의는 인간이 내적인 성향을 따라 하나님 편으로 가는 길을 막고, 외적인 성향을 따라 사탄 편으로 가는 길을 열어주는 인생관을 낳았습니다. 다시 말해 이성이냐 경험이냐의 두 사조가 내적으로는 하나님 편으로 가는 길을 막고, 외적으로는 사탄 편으로 갈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인생관을 낳은 것입니다. 그 결과 인간과 자연을 하나님으로부터 분리해 버렸습니다.

 

가인형 인생관은 중세인들을 하나님과 신앙으로부터 분리 혹은 독립시키는 방향으로 이끌어왔습니다. 대개 유무론자와 공산주의자는 가인형 인생관을 추구합니다. 슈트라우스(Davi Friedrich Strasuss, 1808~1874. 독일 철학자)·포이어 바흐(Ludwig Andreas Feuerbach, 1804~1872. 독이 철학자)·마르크스(Karl Heinrich Marx, 1818~1883. 독일 철학자·마르크스주의 창시자)·엥겔스(Friedrich Engels, 1820~1895. 독일 사회주의 철학자)·레인(Vladimir Ilich Lenin, 1870~1924. 소련 국가원수·러시아의 급진적 마르크스 주의자)·스탈린(Joseph Stalin, 1879~1953. 소련 정치가)·마오쩌둥(毛澤東: Mao Tsetung, 1893~1976. 중국 정치가)· 김일성(金日成, 1912~1994. 북한주석)등은 모두 가인형 인생관에 속하는 사람들입니다.

 

문예부흥에서 시작하여 계몽사상으로 발전해 온 무신론과 유물론을 집대성한 가인형 인생과는 더욱 성숙하여 오늘날의 공산주의로 이어집니다.

 

        3) 아벨형 인생관              

 

가인형 인생관에 뒤따라서 아벨형 인생관이 출현했습니다. 아벨형 인생관의 중심사상은 신본주의(神本主義 : Hebraism)입니다. 아벨형 인생관은 하나님을 본(本)으로 삼아 하나님의 뜻을 위해서 출발하는 것을 말합니다. 중세인들의 본성적인 추구는 외적인 것뿐만 아니라 보다 더 내적인 것을 추구하는 데 이르렀습니다.

 

본성의 내적 추구가 히브리사상 복고운동을 일으킴으로써 종교개혁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아벨형 인생관은 더욱 고차적으로 하나님을 지향하도록 하였습니다.

 

아벨형 인생관에 해당하는 인물은 칸트(Imanuel Kant, 1724~1804, 독일 철학자)·피히테(Johann Gottlieb Fichte, 1762~1814. 독일 철학자)·셀링(Friedrich Wilhelm Scheling, 1775~1854. 독일 철학자)·헤겔(Georg Wihelm Fricdrich Hegel, 1770~1831. 독일 철학자) 등이 있습니다. 민주사상의 입장에 선 사람들은 모두 아벨형 인생관에 해당하는 인물입니다. 따라서 가인형 인생관은 공산주의로, 아벨형 인생관은 민주주의로 발전했습니다.

 

공산주의와 민주주의는 그 근본을 따져보면 아담가정에서부터 시작됐습니다. 아담이 하나님의 실체인 참부모가 되었더라면 하나의 사상, 하나의 언어, 하나의 문화, 하나의 전통이 아담가정에서부터 시작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담의 타락으로 인간의 선악의 모체가 되고, 비원리적인 존재가 되었습니다.

 

타락의 장본인인 아담을 둘로 쪼갤 수 없기 때문에 자녀인 가인과 아벨을 나누어서 사탄 편과 하나님 편으로 세웠습니다. 그런데 가인이 아벨을 죽임으로써 언제나 악한 사탄 편이 선두에 서고, 선한 하나님 편은 뒤따라가는 역사가 이어졌습니다. 공산주의는 아담가정에서부터 시작한 가인형 인생관이, 또 민주주의는 아담가정에서부터 시작한 아벨형 인생관이 근대에 와서 마지막 결실을 맺은 것입니다.

 

오늘날 인류는 남자 아니면 여자로 태어나 각계각층에서 활동하지만, 내면적으로는 모두 두 주류로 갈라져 있습니다. 그것이 하나는 가인형 인생관, 또 하나는 아벨형 인생관입니다. 결론적으로 사람들은 저마다 가인형 인생관 또는 아벨형 인생관 가운데 하나의 인생관을 갖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