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리본체론 - 후편 - 제7장 섭리역사의 각 시대 연수 형성 - 1

2013. 1. 6. 20:07참사랑 영원까지/원리 본체론

제7장 섭리역사의 각 시대 연수 형성       

 

‘동시성’이란 후시대의 역사가 전시대의 역사노정과 유사한 모습으로 반복되어 나타나는 것을 말합니다.

복귀역사를 자세히 살펴보면 후시대의 역사가 범위만 넓혀졌을 뿐 전시대의 역사노정과 유사한 모습으로 반복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서론                

 

복귀섭리는 타락한 인간을 본연의 인간으로 복귀하기 위해서 수고해 오신 하나님의 발자취입니다. 복귀섭리 속에는 하나님의 뜻이 담겨 있고, 우리와 우리 가정을 찾아 세우기 위해 6000년 간 수고해 오신 하나님의 피와 땀과 눈물이 들어 있습니다.

 

또 역사상 수많은 선열이 흘렸던 피는 바로 하나님을 대신해서 흘린 것이므로 복귀섭리노정을 모르면 우리가 하나님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느끼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아담이 타락한 직후부터 메시아를 맞이하기 위한 섭리를 시작했습니다. 그것이 믿음의 기대와 실체기대입니다. 믿음의 기대를 세우는 데는 중심인물이 있고, 믿음을 세우는 조건물이 있고, 믿음을 세우는 기간이 있습니다. 그 기간은 원래 아담·해와가 지켜야 하는 성장기간입니다.

 

‘섭리역사의 각 시대 연수 형성’에서는 ‘역사 속에 하나님은 살아 계시는가?’, ‘하나님이 계시다면 어떻게 역사하시는가?’, ‘하나님의 역사는 어떤 원칙에 의해서 하시는가?’를 알아봅니다.

 

                    1. 섭리적 동시성 시대          

 

        1)동시성이란?

 

‘동시성(同時性)’이란 후시대(後時代)의 역사가 전시대(前時代)의 역사노정과 유사한 모습으로 반복되어 나타나는 것을 말한다. 복귀역사를 자세히 살펴보면, 후시대의 역사가 범위만 넓어졌을 뿐 전시대의 역사노정과 유사한 모습으로 반복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동시성이란 말은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가 제일 먼저 썼습니다. 그러나 토인비는 동시성이라는 말은 언급했지만, 왜 역사가 동시성으로 나타나는지 그 원인은 밝히지 못했습니다.

 

토인비의 역사관은 ‘역사는 나선형(螺旋形)으로 반복되어 동시성의 형태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토인비는 역사가 한 시점에서 출발해서 그 자리로 되돌아가고 또 돌아서 그 자리로 되돌아가는 나선형 구조를 띠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역사는 전시대와 같은 유사한 모습으로 반복되어 나타난다고 주장했습니다.

 

‘통일원리’에서는 섭리적으로 본 전체의 역사가 동시성의 역사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섭리적 동시성은 섭리사의 중심인물인 개인이 가정으로, 가정이 민족으로, 민족이 국가로, 국가가 세계로, 세계가 천주로 역사의 범위가 점점 확대되지만, 탕감복귀라는 공식으로 인해 그 과정이 반복되면서 발전해 온 역사를 말합니다.

 

        2) 동시성이 생기는 이유        

 

역사가 동시성을 띠고 나타나는 이유는 인간이 하지 못한 책임분담을 탕감복귀(蕩減復歸)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절대·유일·불변·영원하듯이 하나님이 세운 뜻도 절대·유일·불변·영원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절대적인 뜻을 이루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책임분담과 인간의 책임분담이 합쳐져야 합니다. 앞에서 하나님의 책임분담은 95퍼센트이고, 인간의 책임분담은 5퍼센트라고 했습니다.

 

지금까지 종교인들은 하나님이 모든 뜻을 다 이루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인간책임분담으로 완성됩니다. 인간책임 분담은 5퍼센트이지만, 이 5퍼센트는 100퍼센트와 같은 것입니다. 인간이 5퍼센트의 책임분담을 완수하면 하나님의 책임분담 95퍼센트도 완성되고 하나님의 절대적인 뜻도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인간이 5퍼센트의 책임을 다하지 못하면 하나님의 책임도 완성되지 않고, 하나님의 뜻도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인간책임분담이 이처럼 중요합니다.

 

개인시대에 책임을 다하지 못했을 경우 섭리가 개인시대에서 가정시대로 확대되고 연장되어도 인간이 져야 할 책임분담은 그대로 남습니다. 범위는 개인시대에서 가정시대·민족시대·국가시대·세계시대로 넓어지지만, 인간이 담당해야 할 책임분담 5퍼센트는 그대로입니다.

 

다시 말해 섭리의 범위가 넓어져도 가장 중요한 인간책임분담은 전시대와 동일하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정시대나, 민족시대나, 국가시내나 세계시대나, 천주시대나 인간책임분담 5퍼센트와 하나님 책임분담 95퍼센트라는 공식은 똑같습니다.

 

인간책임분담을 완수하면 뜻이 이루어지고, 인간책임분담을 완수하지 못했을 경우에는 섭리가 반복되면서 연장됩니다. 이처럼 역사가 동시성으로 나타나는 이유는 인간책임분담 때문입니다.

 

        3) 동시성의 형성 요인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복귀하기 위한 것이 바로 동시성의 형성 요인입니다. 아담이 타락한 직후부터 하나님이 복귀섭리를 시작하셨는데 복귀섭리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은 메시아를 보내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타락한 인간은 원죄를 가졌고, 메시아가 오지 않고서는 인간 스스로 원죄를 청산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보내주신 메시아를 통해서 하나님의 순수한 혈통을 상속함으로써 사탄과의 관계를 끊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 복귀섭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담가정부터 노아가정·아브라함가정·모세가정, 예수님까지 전체 역사노정이 메시아를 위한 기대 복귀노정입니다. 메시아를 위한 기대가 실패하면 섭리가 연장되면서 또 복귀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복귀하는 것이 동시성의 형성 요인입니다.

 

메시아를 위한 믿음의 기대는 하나님과 종적인 관계를 맺는 것이고, 실체기대는 천사장과 만물을 주관할 수 있는 횡적 기대를 세우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의 기대에는 중심인물이 있고, 조건물이 있고, 기간이 있습니다. 그 기간이 아담가정에서는 1대의 믿음의 기대를 세우는 3단계 성장기간이고 내적으로 볼 때는 수리적 기간입니다.

 

실체기대에도 중심인물이 있는데, 조건물 대신 타락성을 벗기 위한 탕감조건을 세워야 합니다. 타락성을 벗기 위한 탕감조건은 가인이 아벨에게 애중굴통(愛仲屈通)함으로써 아벨과 하나되어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인류역사의 핵심입니다. 따라서 메시아를 위한 믿음의 기대와 실체기대를 세우는 것이 동시성이 형성되는 요인입니다.

 

        4) 동시성의 종류     

 

원리에 의하면 모든 존재는 소생·장성·완성의 3단계 성장기간을 거쳐서 성장·완성합니다. 그에 따라 동시성도 소생·장성·완성의 3단계로 되어 있습니다. 아담은 소생기를 거쳐 완성급에서 타락했습니다. 복귀의 길도 이 원칙을 가지고 걸어야 합니다.

 

동시성의 종류에는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소생적 동시성(蘇生的同時性)으로서 역사적으로 볼 때는 상징적 동시성 시대(象徵的同時性時代)입니다.

둘째는 장성적 동시성(長成的同時性)으로서 역사적으로 볼 때는 형상적 동시성 시대(形象的同時性時代)입니다.

셋째는 완성적 동시성(完成的同時性)으로서 역사적으로 볼 때는 실체적 동시성 시대(實體的同時性時代)입니다.

모두가 소생·장성·완성이라는 3시대의 동시성을 띠고 있지만, 내용으로 볼 때는 상징적·형상적·실체적 동시성 시대로 나타나게 됩니다.

 

(1) 소생적 동시성         

 

타락한 장본인인 아담부터 아브라함까지 2000년 노정은 메시아를 위한 가정적 기대(家庭的基臺)를 세우는 기간입니다.

 

인류역사는 하나님이 메시아를 보내서 인류를 구원하는 섭리역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메시아를 위한 기대는 믿음의 기대와 실체기대를 세워야 이루어집니다.

 

믿음의 기대는 하나님과 종적인 관계를 맺는 것이요, 실체기대는 횡적인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종적인 관계는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절대 믿고 실천해서 말씀의 실체가 되어 인격을 완성하는 것입니다. 완성한 인간이 천사와 만물세계를 주관하고 다스려야 하는데, 타락함으로써 아담과 해와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졌고, 종인 천사장이 아담과 해와를 주관하는 역주관 현상(逆主管現像)이 벌어졌습니다.

 

복귀섭리가 시작된 후 아담가정에서 아벨은 믿음의 기대는 세웠지만, 실체기대의 중심인물인 아벨이 가인에게 살해당함으로써 실체기대가 이루어지지 않아 메시아가 올 수 없었습니다. 다시 메시아를 맞을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1600년이 지나서 노아가정을 세웠는데 노아가 120년 동안 방주를 지어서 믿음의 기대를 세웠지만, 둘째 아들 함이 실수함으로써 실체기대를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또 메시아가 올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담부터 10대 1600년 만에 노아가정을 세운데 이어 다시 10대 400년 만에 아브라함가정을 세웠습니다. 아브라함가정에서는 메시아를 맞이하기 위한 믿음의 기대인 상징헌제를 실패했습니다. 아브라함은 비둘기·양·암소를 둘로 쪼개서 제물을 드려야 하는데 비둘기를 쪼개지 않아서 결국에 전체가 다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이삭을 헌제하여 이삭을 중심한 믿음의 기대를 세우고, 야곱이 에서와 하나 되어서 실체기대를 세웠습니다. 야곱은 형 에서로부터 장자의 자리를 빼앗아 장자권(長子權)을 복귀하고, 부모로부터 축복을 받고 나서 사탄세계인 외삼촌 집에 가서 에덴동산에서 잃어버린 가정을 찾아오는 조건을 세우게 됩니다.

 

역사를 돌아보면, 아담가정에서는 여자 한 사람을 잃어서 천주를 잃어버렸습니다. 반면에 야곱은 외삼촌 집에 가서 외삼촌의 두 딸과 두 딸의 몸종까지 모두 사랑으로 주관해서 잃어버린 해와를 복귀합니다. 뿐만 아니라 종들과 재물을 취하여 만물을 복귀하고, 사탄이 가장 사랑하는 우상을 가지고 나와서 상수리나무 아래에 묻습니다.

 

그리고 얍복강에서 영적 사탄인 천사와의 씨름에서 천사를 자연 굴복시켜 승리자라는 뜻을 가진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얻습니다. 이와 같이 야곱은 아담가정에서 잃어버린 전체를 탕감복귀합니다.

 

인간조상 아담과 해와가 음란으로 타락한 것을 탕감복귀한 것이 아브라함가정의 아브라함과 사라입니다. 아브라함의 뒤를 이은 이삭의 아들 야곱은 해와를 복귀하고, 야곱의 아들 요셉은 아담을 복귀합니다. 그들은 음란한 환경에 들어가서도 음란하지 않고 생명을 걸고 절대성을 지켜서 복귀해 옵니다.

 

그 다음엔 요셉이 사탄 편 세계인 애급에 가서 재물을 모아 찾아온 형님들에게 축복해주고 형님들을 사랑했다는 조건을 세우게 됩니다. 이로써 아브라함가정에서 비로소 야곱을 중심한 메시아를 위한 가정적 기대가 세워집니다.

 

그러나 야곱을 중심해서 메시아를 위한 가정적 기대를 세웠지만, 이미 사탄 세계는 민족을 형성하고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바로 메시아를 보낼 수 없습니다. 사탄은 민족을 중심으로 국가를 세웠기 때문에 가정적 기대의 환경에 메시아를 보내면 죽인다는 것입니다.

 

에서와 야곱이 하나되어 세운 메시아를 위한 믿음의 기대와 실체기대는 장차 예수님을 맞이할 때까지 필요합니다.

 

아브라함의 제물 실수로 애급에서 고역살이를 하기 위해 야곱의 12자식과 70가족이 애급으로 갑니다. 그런데 에서가정이 야곱가정과 같이 애급으로 가지 않았기 때문에 또다시 사탄은 에서가정을 중심으로 악의 역사를 펼칩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 민족이 애급에서 나올 때 바로가 수없이 반대하고, 이스라엘 민족은 애급에서 나와 그토록 소망하던 가나안으로 가면서도 수없이 불평하고 불신합니다.

 

이상과 같이 아담부터 아브라함까지는 메시아를 위한 가정적 기대를 마련하는 기간입니다. 그 시대를 복귀기대 섭리시대 또는 상징적 동시성시대라고 합니다.

 

(2) 장성적 동시성

 

아브라함부터 예수님까지 2000년 노정은 메시아를 위한 국가적 기대(國家的基臺)를 마련하는 기간입니다. 거기에서 하나님의 본격적인 복귀섭리시대가 펼쳐지는데 그 시대를 형상적 동시성 시대라고 합니다.

 

아담부터 아브라함까지가 메시아를 맞이하기 위한 복귀기대 섭리시대라면, 아브라함부터 예수님까지는 복귀를 위한 기대가 닦은 터전 위에 하나님이 하고자하는 섭리를 본격적으로 전개하는 복귀섭리시대입니다. 그때부터는 동시성이 일정한 형상을 가지고 우리가 볼 수 있도록 나타나므로 형상적 동시성 시대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메시아를 보낼 때 사탄이 공격할 것을 알고 미리 엘리야 선지자를 보냅니다. 엘리야 선지자가 바알신과 아세라신을 믿는 850명의 선지자들과 싸워서 승리했지만 사탄은 굴복하지 않습니다.

 

결국에는 엘리야 선지자가 이세벨 여왕을 피해서 도망갑니다. 엘리야는 40일 낮과 밤(四十晝夜)을 호렙 산 토굴 속에서 지냅니다.(열왕기상 19장 8절), 그런데 선지자 엘리야를 반대하고 죽이려 하기 때문에 하늘에서 불수레와 불말이 내려와서 엘리야는 회오리바람을 타고 하늘로 승천합니다.(열왕기하 2장 11절).

 

아브라함부터 예수님까지는 메시아를 위한 국가적 기대를 마련하는 기간입니다. 그 시대를 복귀섭리시대 또는 형상적 동시성 시대라고 합니다.

 

(3) 완성적 동시성

 

메시아를 보내기 위한 섭리노정에서 사탄의 공격을 막기 위해서 하나님은 예수님에 앞서 엘리야의 사명을 띤 세례 요한을 보냈지만 그는 사명을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 전체가 예수님을 존경하고 따를 수 있도록 세례 요한을 세웠습니다. 세례 요한은 대제사장 사가랴가정에서 화려하게 태어났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가 메시아인 줄 착각할 정도로 존경받는 인물이었습니다. 세례 요한 한 사람을 그렇게 키워서 그가 예수님을 바로 증거하고, 예수님을 모시면 이스라엘 백성 전체가 한꺼번에 따를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그런 메시아를 위한 기대 위에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그렇다면 유대민족이 예수님을 메시아로 받들어서 하나님 앞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예수님을 이단자, 민족의 반역자로 몰아서 십자가에 돌아가시게 했습니다. 예수님이 돌아가신 후 사탄이 그런 전체의 역사를 다 가져갔습니다.

 

세례 요한이 책임을 다하지 못함으로써, 사탄은 예수님을 시험했습니다. 예수님은 40일 금식을 하면서 사탄의 시험에서 승리했지만, 잠시 떠났던 사탄이 또다시 불신하는 이스라엘 민족과 하나 되어서 예수님을 공격합니다. 예수님 제자들도 배신하고, 오랫동안 준비했던 이스라엘 민족도 배신하고, 사가랴가정과 요셉가정도 모두 예수님을 따르지 않고 불신했습니다.

 

하나님은 세례 요한에게 많은 은사도 주고 영광도 보여주었습니다. 마태복음 3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갈릴리로부터 요단강에 이르러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려 하시니 요한이 말려 이르되 내가 당신에게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 하고 세례 요한이 고사합니다. 그러나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세례 요한이 예수님에게 세례를 줍니다(13~15절).

 

예수님이 세례를 받고 물에서 올라오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더니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서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16~17절)고 했습니다.

 

그처럼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증거하고, 하늘의 음성까지 들었는데도 돌아가서는 부정해 버립니다. 예수님의 성장 과정과 자기를 비교해보고 ‘어째서 그 분은 메시아이고 나는 엘리야인가’ 하는 인간적인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세례 요한의 인간적인 생각으로 인해 사탄에게 예수님을 공격할 수 있는 조건을 제공하게 됩니다.

 

결국 이스라엘 민족이 불신하고 예수님을 죽였기 때문에 하나님의 섭리는 이스라엘 민족에게서 떠납니다. 하나님의 섭리가 서양으로 옮겨지게 되는 것입니다.

 

로마시대부터 시작해서 재림주가 올 때까지 2000년 노정은 메시아를 위한 세계적 기대(世界的基臺)를 마련하는 기간입니다. 따라서 그 시대를 복귀섭리연장시대라고 합니다. 예수님 때에 이루어야 하는데 못 이루었기 때문에 섭리가 연장되었다는 뜻입니다. 동시성으로는 그때가 실체적 동시성 시대입니다. 실체적으로 이루는 때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이제는 생각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이 그대로 이루어지며, 하나님의 뜻이 특정한 국가나 민족에게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세계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의미입니다. 그런 모든 노정을 2000년 간 준비해서 마지막 재림주님이 오시면 재림주를 중심해서 인류는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가정에서 이삭과 야곱을 거쳐서 메시아가 올 수 있는 기대를 세우는데 그 기간이 예수님을 만날 때까지 2000년입니다. 그 기간은 메시아를 위한 국가적 기대를 마련하는 기간입니다. 적어도 민족과 국가를 형성한 터전 위에 메시아가 와야 그 메시아를 보호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가정은 개인을 보호하고, 민족이나 국가는 가정을 보호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정은 국가의 기본 단위이고, 사회의 기본 단위입니다. 국가가 없으면 가정을 보호할 길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소원은 가정을 지키고 하나님의 아들딸을 보호할 수 있는 국가를 건설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역사를 보면, 하나님께 수없이 기도하고 죽어간 선지자들, 또 하나님을 위해 살다가 죽어간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붙들고 몸부림치며 죽어가는 그 생명들을 바라볼 때마다 그들을 보호해주지 못하는 것이 너무너무 가슴이 아팠습니다. 전지전능한 하나님이 그들을 보호해주지 못한 이유는 하나니의 나라가 없기 때문입니다.

 

사탄은 거짓말을 하고 강제로 죄인을 만들어서라도 하나님의 아들딸을 죽입니다. 그 이유는 사탄이 국가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지금까지 국가를 가지지 못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소원은 사랑하는 아들딸과 하나님의 가정을 보호하기 위한 국가를 세우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