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리본체론 - 후편 - 제5장 모세 중심한 복귀섭리 - 7

2013. 1. 6. 20:16참사랑 영원까지/원리 본체론

5) 성막을 중심한 복귀섭리               

 

출애굽기 19장 이하를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르비딤을 떠나 시내 광야에 도착합니다. 원래는 가장 가까운 길을 통해 21일이면 가나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는데, 이스라엘 민족이 불신해서 21일이 21개월 노정으로 연장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시내 광야에서 1년 동안 성막(聖幕)을 짓게 합니다.

성막은 장차 오실 메시아를 상징합니다. 하나님이 성막을 짓게 한 이유는 사람은 변하더라도 영원히 변치 않는 신앙의 푯대가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1) 성막의 구조             

 

성막의 구조를 살펴보면 성막은 하늘(=天)과 영(靈)을 상징하는 지성소(至聖所)와 땅(=地)과 육(肉)을 상징하는 성소(聖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지성소는 대제사장이 들어가는 곳이고, 성소는 일반 백성들이 들어가서 기도하고 정성 드리는 곳입니다.

 

지성소 안에는 언약궤 또는 증거궤로 불리는 법궤(法櫃)가 있습니다. 법궤는 크게는 천주(天宙)를 상징하고, 작게는 성막의 축소체입니다. 법궤 안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새긴 두 석판, 만나 항아리, 그리고 아론의 싹 난 지팡이를 모셔놓았습니다.

 

법궤 위에는 속죄소(贖罪所)가 덮여 있습니다. 또 속죄소 좌우에는 금으로 만든 두 그룹이 날개를 높이 펴서 속죄소를 덮은 채 얼굴을 마주 대하고 서 있습니다. 두 그룹(K'rũb, 히브리어. 하나님의 보좌를 지키는 천사)이 속죄소의 좌우에서 날개를 높이 펴서 서 있고 대제사장이 기도할 때, 하나님이 두 그룹 사이에 나타나서 이스라엘 민족에게 명할 모든 일을 말씀으로 주십니다.

 

하나님은 아담이 타락하고 나서 그룹으로 하여금 생명나무로 나가는 길을 막았다고 했습니다. 속죄소 좌우로 갈라져 서 있는 이 그룹은 누가든지 생명나무 되시는 예수님께 나아가 하나님 말씀을 받을 수 있음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2) 두 석판과 성막의 의의               

 

두 석판은 예수님과 성신을 상징하고, 하늘과 땅을 상징합니다. 또 만나는 민족의 양식이자 예수님의 몸을 상징하며, 금항아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며 아론의 싹 난 지팡이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주던 것입니다.

 

지성소와 성소로 이루어진 성막(聖幕)은 상징적인 메시아입니다. 메시아가 오기 위해서는 기대(基臺)를 세워야 합니다. 성막은 메시아를 상징하기 때문에 성막을 지을 때에도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세워야 합니다. 여기에서 메시아를 위한 기대는 가나안에 입성할 때까지 필요한 것입니다.

 

원래 이스라엘 민족은 가나안에 들어가서 실체 메시아인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너무나 불신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메시아를 상징적으로 보내주신 것이 성막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가나안에 들어가서는 실제 성전을 짓습니다. 미디안 광야의 성막이 상징적으로 성전이라면, 가나안의 성전은 형상적인 성전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실체 성전입니다.

 

지성소는 대제사장이 1년에 한 번 들어가 제사를 지내는 곳입니다. 마태복음 27장 51절을 보면, 예수님이 운명할 때 성막의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로 찢어집니다. 지성소와 성소를 가르는 성막의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로 찢어졌다는 것은 비로소 예수님의 영과 육을 통해서 하늘과 땅이 교통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을 의미합니다.

 

(3) 성막을 주신 섭리의 목적                   

 

이스라엘 민족은 가나안 복귀를 완성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민족은 가나안 입성을 위해 가는 도중에 계속 모세를 불신했습니다. 모세는 지도자로서 불신하는 이스라엘 민족을 달래면서 시내 광야까지 데려갔지만, 모세도 인간인지라 계속되는 이스라엘 민족의 불신 앞에 그들을 불신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만일 모세가 불신한다면 이스라엘 민족을 데리고 가나안으로 들어갈 사람이 없어지게 됩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설사 사람이 변하더라도 영원히 변치 않는 신앙의 대상이 필요했습니다. 하나님은 단 한 사람이라도 그 대상을 믿으면 신앙의 대상을 바통같이 인계하여 하나님의 섭리를 파탄시키지 않고 성취하려 하셨던 것입니다.

 

(4) 성막을 위한 기대                      

 

성막을 지었다는 것은 메시아를 상징적으로 정립했다는 뜻입니다. 상징적 메시아도 메시아이기 때문에 믿음의 기대와 실체기대가 세워져야 합니다. 믿음의 기대의 중심인물은 모세이고, 조건물은 40일 금식의 정성을 토대로 하나님으로부터 십계명이 새겨진 두 석판(石板)을 받아오는 것입니다.

 

또 실체기대의 중심인물은 모세이고, 조건은 이스라엘 민족이 모세에게 애중굴통(愛仲屈通)함으로써 하나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모세가 석판을 받아올 때까지 기도하고 정성을 드려야 함에도, 아론을 중심으로 금송아지를 만들어놓고 그 금송아지가 지금까지 자기들을 인도해 왔다며 모세를 불신해버렸습니다. 그것을 본 모세는 화가 나서 두 석판을 깨뜨리고 금송아지를 깨서 가루로 만들어 물에 타서 60만 대군을 먹이고 회개시킨 후 다시 석판을 받으러 시내 산에 올라갑니다.

 

제1차 성막을 위한 기대가 깨졌고, 두 석판도 없어졌습니다. 모세는 다시 40일 금식을 하고 두 석판을 다듬어 시내산으로 가서 하나님으로부터 두 석판에 글을 받아서 내려옵니다.

모세가 두 번째 석판을 받으러 간 때에는 이스라엘 민족이 믿음으로 모세를 기다리고 있어서 제2차 성막을 위한 믿음의 기대와 실체기대가 조성됩니다. 그래서 영원히 변치 않을 신앙의 대상으로 성막을 짓게 되는데, 성막을 지은 것은 시내산에서 새로운 출발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5) 시내산 출발섭리                         

 

석판이 든 법궤를 메고 시내 광야를 출발한 이스라엘 민족은 가나안에 가서 예수님을 맞이할 때까지 영원히 그 믿음이 변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민족은 가는 도중에 또다시 먹을 것이 없다고(생선이 없고 수박이 없다고), 불평을 늘어놓으며 수없이 불신했습니다.

 

이미 두 석판으로 성막을 지었지만 제3차 성막을 위한 믿음의 기대를 세우는 40수에 사탄이 침범했습니다. 그리하여 제3차 성막을 복귀하기 위해 모세는 가나안 근처에 이르렀을 때 이스라엘 민족을 대표해서 12지파에서 한 사람씩 뽑아서 가나안 땅으로 40일 정탐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40일 동안 정탐을 마치고 돌아와서 열 지파장은 현실적인 보고를 합니다. 가나안으로 정탐가서 보니까 여리고성은 견고하고 병사들은 키가 장대 같고 창과 칼을 들었는데 어떻게 그들과 싸워서 이기고 가나안으로 들어가겠느냐는 불신의 보고를 했습니다. 그와 달리 두 지파장인 여호수아와 갈렙은 아무리 현실이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는 하나님이 인도하고 있기 때문에 반드시 이긴다는 믿음의 보고를 합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돌을 들어 믿음의 보고를 한 여호수아와 갈렙을 치려고 했습니다. 그래도 여호수아와 갈렙과 하나 되지 못하고 불신하여 제2차 가나안 복귀 노정을 새롭게 출발하지 못하고 가데스 바네아로 내려갑니다.

 

40수는 사탄분립수라고 했는데, 40일 가나안 정탐에 사탄이 침범했습니다. 그러나 두 석판을 중심한 성막은 남아 있기 때문에 40년 광야생활로 섭리는 연장됩니다. 하루가 일년으로 바뀌어서 40일이 40년이 된 것입니다.

 

애급에서 출발한 이스라엘 민족 1세대는 모세와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살고 나머지는 광야에서 독수리 밥이 되어 다 죽었습니다. 애급을 탈출한 후 태어난 이스라엘 민족 2세들이 40대가 되었습니다. 40년 광야노정은 2세들을 중심으로 새로 출발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