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리본체론 - 후편 - 제2장 아담가정을 중심한 복귀섭리 - 2

2013. 1. 6. 20:27참사랑 영원까지/원리 본체론

2. 아담가정이 보여주는 교훈              

 

        1) 원리적 교훈

 

아담가정이 보여주는 교훈은 하나님의 뜻 성사가 하나님의 예정과 인간의 책임분담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절대적으로 예정된 것입니다. 그렇지만 뜻 성사 여부는 인간의 책임분담에 따라서 결정됩니다.

 

인간책임분담은 하나님이 절대 간섭하지 않으십니다. 아담·해와가 선악과를 따먹을 때에는 하나님은 간섭하지 않으셨고, 가인이 아벨을 죽일 때에도 하나님은 간섭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중심인물이 뜻을 이루기 위한 책임을 못하면 대신할 중심인물을 다시 세워야 합니다. 그래서 아벨 대신 셋을 세워서 새로운 섭리를 하시게 된 것입니다.

 

인간책임분담은 5퍼센트이지만 인간이 책임분담을 완성하면 하나님의 책임을 완성하는 것이 되고, 하나님이 소망하는 뜻도 완성하는 것이 됩니다. 하나님의 뜻은 인간을 완성시키는 것입니다. 인간이 5퍼센트의 책임분담을 완성하면 하나님의 95퍼센트 책임분담도 완성되고, 하나님의 뜻 100퍼센트가 완성되는 것입니다.

 

        2) 주의해야 할 교훈           

 

아담가정에서 아벨은 하나님이 자기의 제물만 받았다고 절대 자만하거나 교만하거나 자랑하면 안 됩니다. 절대 온유겸손(溫柔謙遜)한 마음가짐으로 가인을 위해 희생해야 합니다. 피와 땀과 눈물도 흘릴 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이 형식적이면 안 됩니다. 그런데 아벨은 가인 앞에서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아벨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때 하나님이 자기의 제물은 받고, 가인의 제물은 받지 않자 교만해졌습니다. 언제나 자기 자신을 내 세우게 되고, 자기를 자랑하려고 했습니다. 또 가인을 위해서 희생하려고 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는데 그런 마음을 갖지 못했습니다. 결국 아벨은 가인이 던진 돌에 맞아 죽고 맙니다.

 

아벨은 교만하지 말고 자랑하지 말아야 합니다. 언제나 온유겸손하고 희생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아벨의 책임은 ‘가인을 절대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하나님의 사랑을 중보(仲保)하고 실천해야 합니다. 그럼으로써 가인을 자연 굴복시켜야 합니다.

 

아벨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사랑을 가인에게 중보해 줘야 합니다. 형님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전해주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니 자기가 하나님을 사랑했던 정성까지 합해서 형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것이 아벨이 가인을 절대 사랑하는 것입니다.

 

가인은 아벨을 죽이고 싶어도 참아야 합니다. 아벨을 죽이면 순간적 화풀이는 될지 모르나 천국 가는 길이 막힙니다. 죽이면 그 순간부터 지옥으로 가는 것입니다.

또 언제나 불평불만하거나 사랑의 감소감(減少感)을 갖지 말아야 합니다. 가인의 책임은 아벨에게 절대 순종굴복하는 것입니다. 가인은 아벨을 통해서 복을 받습니다. 그래서 인내심으로 자아주관(自我主管)을 하면서 동생이 하는 일을 도와야 합니다.

 

        3) 가인·아벨의 법도                

 

복귀섭리가 완료되고 하나님의 뜻이 완성될 때까지 가인과 아벨이라는 명칭은 빠질 수 없습니다. 가인과 아벨은 아담가정의 두 아들 이름입니다. 그런데 이 두 이름이 아담가정에서 끝나지 않고, 타락한 인류역사가 끝날 때까지 따라다니는 이유는 아담가정에서부터 복귀섭리가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복귀섭리가 완결될 때까지는 가인과 아벨의 이름이 꼭 따라다닙니다.

 

아벨은 하나님과 절대 하나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절대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절대사랑이라는 말은 마음과 몸과 뜻과 성품과 생명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뜻입니다. 그 사랑은 절대·유일·불변·영원한 사랑입니다.

 

그래서 아벨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사랑에다 하나님을 사랑한 자기의 사랑을 합쳐서 가인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것이 아벨이 해야 할 책임입니다. 가인의 천국 가는 통로는 아벨입니다. 아벨이 잘못하면 가인의 천국 가는 길도 막혀 버립니다. 아무리 혼자 잘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아벨은 하나님만이 간섭할 수 있습니다. 아벨은 누구도 노터치(No touch)입니다. 가인은 절대적으로 아벨을 노터치해야 합니다. 똑같은 원죄를 가진 형제인데 가인은 사탄 편에 세우고 아벨은 하나님 편에 세운 것은 그들이 선악으로 분립된 장자와 차자이기 때문입니다. 아벨이 원죄가 없고 선해서 하나님 편에 세운 것이 아니라, 분립된 차자로서 세운 것입니다.

 

아벨은 아담을 대신한 하나님의 아들 입장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상대하는 것입니다. 아벨을 택하신 분도 하나님이요, 아벨을 세우셔서 책임을 주신 분도 하나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 이외에는 누구도 아벨을 대해 이래라저래라 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가인은 어떠한가? 가인에게는 심정이 없습니다. 위하고 싶은 참사랑이 없습니다. 자기를 위하기만 하면 좋아할 뿐입니다. 가인은 자기를 위하는 것은 좋아하는데 남을 위하고 남을 존경하는 것은 싫어합니다. 그래서 남을 죽이려 하고 미워합니다.

 

그러니 아벨은 자신이 죽음의 길을 가면서도 가인에게 하나님의 심정과 참사랑을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심정을 가르쳐서 위하는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원수까지 사랑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가인에게 가르쳐 주는 것이 아벨의 책임입니다.

 

가인과 아벨을 따로 분리해서 설명한다면, 나는 복귀섭리역사에서 가인도 되고 아벨도 됩니다. 참부모님 앞에 나는 가인입니다. 그렇지만 여러분 앞에는 아벨이 될 수 있습니다. 가인이 할 일과 아벨이 할 일을 언제나 생각해야 하는 입장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아벨이 주의해야 할 것, 가인이 주의해야 할 것을 생각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4) 가인과 아벨의 생활 태도                 

 

아벨은 가인의 심정을 최대한 헤아리고 배려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아벨을 세우신 것은 아벨이 좋아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창조이상은 장자에게 상속권이 있는데 장자가 타락을 해서 그 상속권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차자를 세워서 장자를 복귀하는 것입니다. 아담가정에서 아담과 해와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자기들이 책임을 지겠다고 나섰다면 하나님이 그들을 통해서 섭리하시기가 쉬웠을 것입니다.

 

아벨과 가인은 똑같이 타락한 후손으로 원죄를 가진 죄인입니다. 그런데 아벨과 가인을 다르게 대한 것은 가인을 사탄 편에, 아벨을 하나님 편에 세워 선악으로 분립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아벨은 가인의 심정을 최대한으로 헤아리고 배려해야 합니다. 아벨은 가인을 위해서 자기의 전체를 희생할 줄 알아야 합니다.

 

역사에 보면, 악한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 선한 사람이 희생의 길을 갔습니다. 그것이 성인들이 가는 길이었고, 참부모님도 그 길을 가시는 것입니다. 우리도 그런 자리에 섰으면 우리를 죽이려고 반대하고 핍박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희생의 길을 가야 합니다. 그들은 모르니까 가르쳐줘야 하는 것입니다.

 

가인은 아벨을 통해서 천국에 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인은 먼저 사탄과 상대적 관계를 끊고 하나님이 세우신 아벨의 말을 듣고 따라가야 합니다. 그런데 아벨은 동생입니다. 그러니까 가인은 아벨을 동생이라고 업신여기거나 함부로 여기면 안 됩니다. 그것이 사탄의 근성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가려면 먼저 사탄을 분립해야 합니다.

 

예를 들면 아벨과 가인의 관계는 나무뿌리와 같습니다. 나무가 살려면 뿌리가 흙에 묻혀 있어야 합니다. 뿌리가 드러나면 그 나무는 죽습니다. 뿌리가 길게 뻗을수록 흙이 잘 덮여 있어야 합니다.

흙은 영양을 공급합니다. 흙이 깨끗하냐가 문제가 아니라 뿌리가 영양을 섭취하여 나무를 살릴 수 있는 요소가 흙 속에 있으므로 뿌리는 더럽고 냄새가 나더라도 흙을 부둥켜안고 있어야 합니다. 만일 뿌리가 저기는 깨끗하니까 냄새나는 흙이 싫다며 흙을 모두 파헤쳐 버리면 제일 먼저 나무가 죽습니다.

 

아벨은 가인을 놓고 ‘내가 지식이 있고, 내가 지도자니 내 말을 들어야 한다. 당신은 형편없이 않느냐? 당신 말 들을 수 없다.’라고 무시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비록 부족한 점이 있더라도 그 사람이 겪은 풍부한 경험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경험담을 귀담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남의 말이라도 귀한 것이 있으면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을 지녀야 합니다. “나는 이렇게 모든 분야를 갖추고 있는데 당신이 아무리 좋은 얘기를 해도 내게는 필요 없다.” 하면 안 됩니다. “나는 그 길을 이미 통과했다.” 해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에게는 나름대로 정말 어렵게 터득한 경험들이 있습니다. 그런 것들을 기쁘고 감사하게 받아 그를 칭찬해주고, 존경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 사람은 그 경지에 이르기까지 정말로 어려운 길을 걸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런 마음을 가져야 하는 것이 진정한 지도자이고 신앙자입니다.

 

총 결론은 모든 것은 순간에 결정되기 때문에 순간을 귀하게 여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이 순간이 다른 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나로부터 시작됩니다. 우리에게는 오늘 이 순간이 중요합니다. 순간이 1초라면, 모든 것은 1초에 결정됩니다. 그 순간의 결정이 선한 결실이 되기도 하고, 악으로 가는 출발점이 되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 점이 중요합니다.

 

하나님도 한 점에서부터 시작하셨습니다. 그 점은 시커멓게 보이지만 그 점 속에는 빛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빛과 어둠은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빛이 끝나면 어둠도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세상에도 밤이 있고 낮이 있습니다. 언제나 그 순간을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순간이 자신의 일생과 연관된 것이라고 한다면, 순간이 잘못되면 자신의 일생이 비참하게 됩니다. 그 순간이 자기의 일생과 연결되어서 좋은 방향으로 출발하면 그 일생은 좋은 결실을 봅니다. 그것은 나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어떤 지도자가 하나님의 뜻을 대하는 중심에 있다면 그가 하나님의 섭리에 미치는 영향도 큽니다. 자기가 맡고 있는 교회면 교회, 지역이면 지역의 생명길을 열어줄 수도 있고, 막을 수도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중심하고 벌어지는 일들이 순간에 결정된 것 같지만 그것은 오랜 준비를 거쳐 이루어진 일입니다. 아담과 해와도 순간에 타락했지만, 그런 자리에 가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또 가인이 아벨을 죽인 것도 단순히 제물을 받아주지 않는다고 화가 나서 바로 죽인 것이 아닙니다. 거기에는 오랜 시간 축적된 원한이 있습니다. 아벨도 오랜 시간을 두고 원인을 제공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가인이 순간의 잘못으로 동생을 죽였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6000년 역사를 비참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런 일이 옛날 아담가정에서만 벌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개인의 생활과 하나님의 섭리가 순간과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참고

 

                                죄의 근원                         

 

오늘날 인류가 저지르는 죄는 수없이 많습니다. 도둑질에서부터 살인죄·음란죄 그 외에도 크고 작은 죄들이 많습니다. 그런 죄가 바로 아담가정에서 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먼저 부모인 아담은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는 불신죄(不信罪)를 지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따먹지 말라’는 말씀을 불신한 것이 불신죄입니다. 불신죄는 역적죄와 같습니다.

 

과거 전제군주(專制君主) 시절에는 왕의 명령이 바로 하늘의 법이었습니다. 일개 왕의 명령을 하늘의 명령으로 봤습니다. 그래서 왕명을 어기면 살아남지 못했습니다. 왕자라도 왕인 아버지의 명을 어기면 역적이라 하여 가차 없이 처벌했습니다. 충신이 아무리 바른말을 하더라도 왕명을 어기면 그 즉시 친족, 외족, 처족까지 3족을 멸한 때가 있었습니다.

 

인간인 일개 왕의 명령도 어기면 그렇게 무서운 것이 불신죄인데, 하나님의 명령을 어긴다는 것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불신죄를 절대로 소홀히 여기면 안 됩니다.

또 아담과 해와는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면서 음란죄(淫亂罪)를 지었습니다. 그의 자녀들을 보면, 형인 가인이 동생인 아벨을 죽이는 살인죄를 저질렀습니다. 그것이 아담가정에서 부자가 저지른 죄입니다.

 

천사장도 아담과 마찬가지로 불신죄를 지었습니다. 주인인 하나님의 말씀을 어겼습니다. 역시 천사장도 역적죄를 지은 것입니다. 그리고 거짓말 죄를 지었습니다. 하나님은 ‘따먹지 말라.’고 하셨는데, 천사장은 해와에게 따먹어도 좋다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섭리역사에서 거짓말을 한 첫 번째 존재가 천사장 루시엘입니다. 거짓말을 하면 처음에는 잘될 수도 있지만 나중에 비참하게 됩니다. 마지막에는 항상 진실한 사람이  승리하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에 천사장도 음란죄를 지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주인집의 딸을 겁탈해서 자기 사람으로 만들고, 자기 몸으로 만들고, 자기 아들딸을 갖게 하는 엄청난 죄를 저질렀습니다. 그리고 사탄이 하나님의 것인 천주를 몽땅 도둑질해갔습니다. 그것을 절도죄라고 합니다. 물건이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인 하나님의 아들딸을 다 도둑질해 간 것입니다. 아담가정에서 이뤄진 모든 범죄가 그대로 역사 속에 나타납니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십계명을 주신 것은 죄를 방지하기 위해서입니다. 십계명을 보면, 제일 중요한 계명이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라(거짓말하지 말라)입니다. 이 다섯 가지가 십계명의 중심입니다. 이것이 아담가정에서 저지른 잘못을 청산하기 위한 조건으로 주신 열 가지 계명 중의 핵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