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리본체론 - 후편 - 제2장 아담가정을 중심한 복귀섭리 - 1

2013. 1. 6. 20:28참사랑 영원까지/원리 본체론

제2장 아담가정을 중심한 복귀섭리

 

아담은 하나님의 창조이상을 실현할 사람으로 지음 받았지만, 사탄과 하나가 되어 타락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잃어버리고 타락한 인류의 조상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메시아를 보내서 타락인간을 구원하려는 복귀섭리의 뜻은 아담 직후부터 세워졌습니다.

 

                    서론

 

‘원리본체론’ 후편에서는 하나님이 중심인물을 세워 복귀섭리를 하시는데 중심인물들은 그 뜻을 어떻게 대했는가, 어떻게 해서 성공하고 어떻게 해서 실패했는가를 고찰해 봅니다. 핵심은 중심인물이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 되면 성공하고, 말씀을 소홀히 하면 실패한다는 것입니다.

아담은 하나님의 창조이상을 실현할 사람으로 지음 받았지만, 사탄과 하나가 되어 타락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잃어버리고 타락한 인류의 조상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메시아를 보내서 타락인간을 구원하시려는 복귀섭리의 뜻은 아담의 타락 직후부터 세워졌습니다. 따라서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세우는 하나님의 섭리도 아담가정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아담가정에서는 하나님의 창조와 타락과 복귀가 시작 되었습니다. 아담가정을 살펴보면, 하나님의 창조이상을 알 수 있고, 타락이 무엇인지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복귀섭리를 아담가정에서부터 시작했기 때문에 아담가정에는 복귀섭리가 들어 있습니다.

 

복귀섭리의 궁극적인 목적은 본연의 아담가정을 찾은 것입니다. 이 땅에 메시아가 오시는 목적도 아담가정을 찾아 세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복귀원리에서는 아담가정을 확실히 알아야합니다. 아담가정을 알지 못하면 복귀의 길을 갈 수 없고, 복귀섭리는 그만큼 연장됩니다.

아무리 연장되고 반복되더라도 본연이 아담가정을 찾지 않으면 복귀섭리는 끝나지 않습니다. 아담가정을 알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1. 메시아를 위한 기대

 

아담가정을 중심한 복귀섭리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메시아를 위한 기대가 세워져야 합니다. 왜냐하면 타락한 인간은 창조본연의 인간으로 복귀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메시아를 맞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메시아를 맞으려면 먼저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세워야 합니다.

 

메시아를 위한 기대가 없으면 타락인간이 메시아를 죽이게 됩니다. 그래서 인간이 메시아를 맞기 위한 기대를 세워야 합니다. 메시아를 위한 기대가 세워지면 하나님이 메시아를 보냅니다.

아담가정에서 메시아를 맞기 위해서 세워야 할 조건은 무엇인가? 이것을 알기 위해서는 원래 아담·해와가 세워야 할 조건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탕감복귀는 반대 경로에 의해 조건을 세우기 때문입니다.

 

아담가정에서는 아담이 하나님 앞에 종적으로 믿음의 기대를 세워야 하고, 횡적으로는 실체기대를 세워야 합니다. 믿음의 기대는 아담·해와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실천하여 믿음을 세움으로써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고, 실체기대는 아담·해와가 절대성 위에 하나님을 모신 실체가 되어서 천사장과 모든 피조물을 주관하는 주관주가 되는 것입니다.

 

        1) 믿음의 기대                        

 

아담가정에서 믿음의 기대의 중심인물은 바로 아담입니다. 그런데 아담가정에서는 아담이 중심인물이 되지 못하고 그 둘째아들 아벨이 중심이 되어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렸습니다.

하나님이 원래 아담에게 말씀을 주셨습니다. 아담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실천해서 말씀의 실체가 되어야 하는데, 말씀을 불신해서 말씀의 실체가 되지 못했습니다. 그것이 아담이 중심인물이 되지 못한 이유입니다. 만일 아담이 ‘따먹지 말라.’는 말씀을 절대 믿고 지켰으면, 아담은 절대성 위에서 하나님을 모시는 거룩한 성전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말씀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아담은 만물보다 못한 입장에 떨어졌습니다. 그래서 인간이 만물을 앞세워서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는 복귀의 길이 시작되었습니다. 말씀 대신 조건물(條件物)을 세운 것이 상징헌제입니다. 아담가정에서 조건물은 양입니다.

 

믿음을 세우는 기간은 소생기·장성기·완성기로 아담의 성장기간입니다. 아담 1대에 완성해야 하는데 아담이 타락했기 때문에 1대에 완성하지 못하고 섭리가 연장되었습니다.

그 성장기간 안에는 12수·4수·21수·40수의 ‘수리적인 기간’이 있습니다. 아담이 완성하면 40수의 수리적 실체가 됩니다. 그 말은 12수도, 4수도, 21수도 전부 승리한 실체가 된다는 뜻입니다.

 

        2) 실체기대               

 

믿음의 기대가 세워지면 실체기대를 세워야 합니다. 실체기대는 천사장으로부터 들어온 타락성을 벗는 것입니다. 실체기대의 중심인물은 차자입니다.

실체기대에서 실체적 조건은 조건물이 아니고 타락성을 벗기 위한 탕감 조건입니다. 실체적 조건은 어떤 물질을 드리는 것이 아니라 실체적으로 천사장이 아담에게 애중굴통(愛仲屈通)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원칙인데 아담이 절대성을 지키지 못했기 때문에 천사장이 아담에게 애중굴통하지 못하고 사탄이 되어 오히려 아담·해와를 타락시켜 점령해 버렸습니다.

 

천사장이 아담과 해와를 타락시킨 것이 음란이었습니다. 천사장이 자기 위치를 떠나서 아담·해와를 타락시킬 때 순간적으로 생긴 우발적인 성품이 타락성인데, 그 타락성을 벗기 위한 탕감조건은 실체기대에서 세워야 합니다. 즉 천사장 입장에 있는 인물이 아담 입장에 있는 인물에게 애중굴통하여 타락성을 벗는 것입니다.

 

(1) 아담이 중심인물이 될 수 없는 이유             

 

아담가정에서 아담이 중심인물이 될 수 없는 이유는 네 가지입니다.

 

첫째, 아담은 타락한 장본인입니다. 아담이 타락한 장본인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아담을 직접 대하는 중심인물로 세울 수가 없었습니다.

둘째, 하나님은 원리적 하나님이신데 타락으로 아담은 비원리적인 존재가 되었습니다. 원리적 존재는 한 주인만을 상대합니다. 그런데 아담은 타락으로 비원리적인 존재가 되어 두 주인을 상대하게 되었습니다. 타락한 아담은 하나님도 상대하고, 사탄도 상대하는 인간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담을 중심인물로 세울 수가 없었습니다.

 셋째, 아담은 타락으로 선악의 모체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선의 본체이시기 때문에 선의 실체만 대할 수 있는데, 타락으로 선악의 모체가 된 아담을 하나님은 직접 대할 수가 없었습니다.

 넷째, 아담은 책임을 전가했기 때문에 중심인물이 될 수 없었습니다. 책임을 지는 자는 주인이 되지만, 책임을 전가하면 종이 되는 것입니다.

 

에덴동산에서 아담·해와·천사장 루시엘 셋이 모두 타락했습니다. 거기에서 다시 어떤 존재를 창조해 세울 수가 없습니다. 그 세 존재 중에서 누군가 하나를 중심해서 복귀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아담을 먼저 불렀습니다. 거기에서 하나님이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실과를 네가 먹었느냐?’(창세기 3장 11절)하고 물었습니다. 그런데 아담은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하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창세기 3장 12절)라고 대답합니다. 아담은 책임을 지는 것이 아니라, 해와에게 책임을 전가했습니다.

 

하나님이 해와에게,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하였느냐.’라고 물었습니다. 그 때 해와는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창세기 3장 12절)라고 대답합니다. 해와도 타락한 책임을 뱀에게 전가했습니다. 결국 뱀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아담·해와의 타락을 아시면서도 물어보신 것은 그들로부터 ‘자신이 책임지겠다.’는 말을 듣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아담과 해와, 둘 중 하나가 ‘제가 책임을 지겠습니다.’ 했다면 하나님이 복귀섭리는 아담가정에서 완성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아담가정의 중심인 아담·해와가 책임을 다 전가해 버렸습니다. 그래서 결국에 종인 천사장이 타락한 세계 전체의 주인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당시 아담·해와는 타락만 했을 뿐 아직 자식이 없었고, 나쁜 짓을 행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들 스스로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들었다면 복귀섭리를 위한 탕감조건은 아담가정에서 쉽게 세울 수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책임을 전가했기 때문에 그들은 중심 인물이 될 수 없었습니다.

 

(2) 선악의 분립 역사               

 

아담과 해와가 타락으로 선과 악의 모체가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도 대할 수 있고, 사탄도 대할 수 있는 중간위치에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역사하기 위해서는 선과 악의 중간위치에 있는 아담을 쪼개어 선악을 분립(分立)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아담을 어떻게 쪼갤 것인가가 문제입니다. 아담을 분립하면 아담은 죽습니다. 그래서 아담의 아들들을 선 편과 악 편으로 쪼개는 것입니다. 아담은 첫째아들 가인과 둘째아들 아벨을 낳았습니다. 이 두 아들을 아담 대신 분립하게 됩니다.

 

해와의 타락 경로에 따라 선 편과 악 편이 결정됩니다. 그것은 해와가 타락하여 아담을 타락시켰고, 아담이 타락해서 선악의 모체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해와의 타락 경로를 놓고 볼 때, 해와는 먼저 종인 천사장과 관계를 맺었습니다. 인류역사상 처음으로 해와가 사랑했는데 그것이 종과의 사랑입니다. 해와가 첫사랑을 맺은 것은 비원리적상대(非原理的相對)였습니다. 하나님께서 해와를 지은 것은 천사장과 사랑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그들의 타락은 과분한 욕망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천사장은 주인집 딸을 사랑하고 싶은 과분한 욕망을 가졌습니다. 해와는 타락하지 않고 완성하면 하나님의 허락을 받고 선악과를 따먹게 됩니다. 그런데 때가 되기도 전에 때의 것을 바라는 과분한 해와의 욕망과 절대 가져서는 안 될 천사장의 잘못된 욕망이 하나가 되어 해와가 타락하게 된 것입니다.

 

해와가 타락하고 나서 자신의 원리적인 상대를 알게 되었고, 양심의 가책을 느끼게 됩니다. 해와는 자기 남편 될 사람이 영적인 천사가 아니라, 발로 실체로 있는 아담인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 아담과 같이 하나님 앞에 서고자 하는 심정으로 아담을 유혹합니다. 해와의 두 번째 사랑은 이처럼 심정이 동기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해와는 한 존재가 천사장과 아담이라는 두 존재를 동시에 사랑하게 된 것입니다.

 

가인과 아벨은 아담과 해와의 사랑의 열매입니다.

장자인 가인은 첫사랑의 첫 열매입니다. 해와가 천사장과 첫사랑을 했기 때문에 첫사랑의 표시체인 장자 가인을 사탄 편에 세웠습니다. 둘째아들 아벨은 두 번째 사랑의 표시체로서 하나님 편에 세웠습니다. 첫사랑을 천사장과 했기 때문에 장자를 사탄 편에 세우고, 두 번째 사랑을 원리적 남편인 아담과 했기 때문에 두 번째 사랑의 열매인 아벨을 하나님 편에 세운 것입니다.

 

거기서부터 가인이 아벨에게 타락성을 벗기 위한 탕감조건을 세우게 됩니다. 원래 천사장이 아담에게 세워야 할 타락성을 벗기 위한 탕감조건을 장자와 차자를 통해 세우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서에 장자와 차자에 대한 이야기가 자주 나옵니다. 출애굽 때 바로 왕이 이스라엘 민족을 놓아주기로 한 약속을 계속 어기자 하나님께서는 장자와 가축의 처음 난 것(맏것)을 전부 쳐버립니다(출애굽기 12장 29절). 장자와 동물의 맏것을 친 이유는 장자와 맏것이 사탄 편이기 때문입니다. 사탄 편 장자를 치고 나서 비로소 이스라엘 민족이 애급에서 나왔습니다.

 

또 광야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한 두 석판을 담은 법궤(法櫃)를 메고 갔는데 장자는 법궤를 메지 못하고 하나님 편에 있는 차자 격인 레위 족속이 법궤를 메고 갔습니다(신명기 31장 25절).

그 다음 하나님은 리브가의 복중에 있는 장자 에서는 미워하고 동생 야곱은 사랑했습니다(창세기 25장 23절). 왜 쌍둥이 중에서 형 에서는 미워하고 동생 야곱은 사랑했느냐? 형에서는 사탄 편에 세우고 동생 야곱은 하나님 편에 세웠기 때문에 하나님은 사탄 편에 세운 에서를 사랑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에서를 사랑하면 사탄은 야곱을 사랑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에서를 미워하고 야곱을 사랑한 것은 예정된 것이 아닙니다. 복귀섭리역사의 프로그램을 맞추기 위해서 그런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복귀노정은 둘로 쪼개는 사탄분립의 역사를 하는 것입니다.

또 이삭이 나이가 많아서 요셉의 아들인 에브라임과 므낫세를 축복해주려고 불렀습니다. 에브라임과 므낫세를 앞에 놓고 축복을 했는데, 그 때 오른손과 왼손을 엇바꾸어 오른손을 차자 에브라임의 머리에 얹고 왼손을 장자 므낫세의 머리에 얹었습니다(창세기 48장 14절).

동생의 머리에 오른손을 얹고, 형의 머리에 왼손을 얹은 것은 오른손은 하나님 편을 상징하고, 왼손은 사탄 편을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4장을 보면, 아벨은 양을 치면서 살았고 가인은 농사를 지으면서 살았습니다. 그 둘은 각자 자기의 소산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아벨의 제물은 받으시고, 가인의 제물은 받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분립된 차자로서 아담의 입장인 아벨의 제물은 받을 수 있고, 분립된 장자로서 천사장의 입장인 가인의 제물은 직접 받을 수 없습니다. 본래 아들인 아담은 직접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지만, 종인 천사장은 직접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많은 기독교들은 가인은 곡식을 가지고 정성 없이 제사를 드렸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 제물을 받지 않았고, 아벨은 양을 길러서 털도 뽑고, 쪼개서 피도 내고, 정성을 다해서 제사를 드렸기 때문에 그 제물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틀린 말입니다. 하나님이 분립해 놓은 실체인 장자는 사탄 편에 세웠고, 실체로 분립된 차자인 아벨을 하나님 편에 세웠기 때문에 아벨의 제물만 받은 것입니다.

 

분립된 사탄 편에 선 장자, 가인은 분립된 하나님 편에 선 차자, 아벨에게 애중굴통해야 합니다.

천사장이 아담에게 애중굴통하지 못했던 것을 가인은 아벨에게 애중굴통함으로써 타락성을 벗는 탕감조건을 세워야 하는 것입니다. 천사장은 아담을 통해서 하나님 앞으로 가야 하는데, 천사장이 오히려 아담을 타락시키고 주관했습니다.

 

우리의 몸과 마음도 가인과 아벨로 분립돼 있습니다. 우리의 몸은 가인의 입장에, 마음은 아벨의 입장에 놓여 있습니다.

따라서 사탄 편의 입장에 있는 몸은 하나님 편에 있는 마음을 통해서 하나님 앞으로 가야 합니다. 그런데 타락한 세계는 몸이 마음을 끌고 다닙니다. 우리 몸이 마음을 끌고 다니는 것을 탕감복귀하려면 몸이 마음을 따라서 가야 합니다.

 

몸을 치고 힘들게 해서 하나님을 향한 마음이 더 강해질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신앙길입니다. 올바른 신앙길은 가기가 쉽지 않습니다. 신앙인들이 고행을 견디면서 수행을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기독교를 보면, 금식이나 철야를 한다든가, 냉수목욕을 하는 등 어려운 길을 가면서 몸을 점점 치고 약하게 만듭니다. 결과적으로 하나님이 대할 수 있는 마음을 강하고 담대하게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그 다음에 타락한 인간은 제물을 통해서 하나님 앞으로 갑니다. 십의일조를 드린다든가, 물질을 드려서 하나님 앞으로 가고자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신앙자들이 제물을 앞세워서 가는 것은 타락으로 인간이 만물보다 못한 입장에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원래는 모두가 하나님의 것인데, 타락한 인간은 전체가 열이라면 그 중에서 아홉이 사탄의 입장에 떨어졌고, 하나만 하나님에게 남아 있습니다.

 

신앙길을 가는 것이 쉽지가 않습니다. 우리들은 그냥 왔다갔다하는 것같지만 그 자체가 정성이고 수행입니다. 그런 길을 올바르게 한 번 가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가야 합니다. 우리는 가다가 힘들면 ‘쉬었다가 가자.’ 하고 넘기고, 잠도 자고, 그 다음에 ‘건강할 때 좀 하겠다.’ 하는데 도의 길을 가는 사람들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하나님은 그 고비를 넘기기를 바라시는 것입니다. 그것을 깨달았다면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극복하고 넘어가야 합니다. 자기의 육신이 고달프고, 힘들다고 해서 그것을 넘지 못하면 안 됩니다. 그런 모든 것이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세우는 일입니다.

 

타락한 아담의 후손인 인류는 결국 메시아를 통해야 하나님 앞으로 가게 됩니다. 타락한 인간은 메시아를 만나 타락성을 벗고, 본연의 인간으로 돌아갑니다. 그래서 천사장이 아담에게 하지 못한 일을 하고, 가인편에 있는 존재가 아벨 편에 있는 존재에게 책임을 다하면 복귀를 위한 탕감조건이 세워집니다.

 

        3) 가인의 제물과 아벨의 제물          

 

선악을 분립해서 가인과 아벨을 하나님 편과 사탄 편으로 세웠는데, 장자는 사탄 편, 차자는 하나님 편에 세웠습니다.

아벨은 선악이 분립된 차자로서 아담의 입장에 세웠습니다. 원래 아담은 직접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담의 입장인 아벨의 제물은 하나님께서 받으셨습니다.

 

가인은 분립된 장자로서 천사장의 입장에 세웠습니다. 천사장은 직접 하나님께 나아갈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가인의 제물은 하나님께서 직접 받으실 수가 없었습니다. 천사장이 아담을 통해서 하나님 앞으로 가야 하듯이 분립된 가인도 아벨을 통해서 하나님 앞으로 가야 합니다.

 

하나님이 아벨의 제물을 받으신 것은 죄인들도 하나님 앞에 뜻 맞게 조건만 세우면 받아주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벨도 원죄를 가진 죄인입니다. 그런데 아벨의 제물을 하나님이 받아주신 것은 뜻 맞게 제물을 드렸다는 조건이 세워졌기 때문입니다. 뜻 맞게 조건을 세운다는 말은 정성을 다해서 제물을 드린다는 말입니다. 제물이 하나님의 뜻을 위해서 쓰일 수 있도록 마음을 담아서 드린다는 말입니다.

 

그 다음에 타락인간이라도 하나님이 취하실 수 있는 조건이 성립되면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용납하십니다. 이처럼 사탄 편에 있는 사람이 하나님 편으로 돌아가려면 반드시 어떠한 탕감조건을 세워야 합니다.

 

        4) 믿음의 기대와 실체기대               

 

아담가정의 믿음의 기대에서 중심인물은 아벨이고, 조건물은 양입니다. 그리고 기간은 성장기간입니다. 실체기대에서도 중심인물은 아벨입니다. 조건은 타락성을 벗기 위한 탕감조건입니다.

탕감조건을 세우려면 가인이 아벨에게 애중굴통(愛仲屈通)해야 합니다. 그런데 가인은 하나님이 자기의 제물을 안 받고, 동생의 제물은 받았다고 화가 나서 동생을 돌로 쳐 죽였습니다(창세기 4장 8절). 거기에서 인류 투쟁의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5) 결과

 

아담가정에서 아벨이 믿음의 기대는 세워 성공했지만, 가인이 아벨을 살해함으로써 실체기대가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그로 인해 아담가정에서는 메시아를 보낼 수 있는 기대가 세워지지 않았기 때문에 아담가정에서 복귀섭리를 이루지 못하고 아담가정 대신 노아가정을 선택하게 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믿음의 기대는 아버지가 세운다는 사실입니다. 아버지가 중심이 되어 믿음을 세우고, 실체기대를 찾아 그 믿음을 계승하는 것입니다. 실체기대의 중심인물은 차자가 중심이 되어 아버지가 세우신 믿음을 찾아 계승해야 합니다. 그래야 비로소 실체기대의 중심인물이 되는 것입니다.

 

아담가정에서는 아담이 책임을 못했기 때문에 아벨이 대신 믿음의 기대를 세웠습니다. 따라서 아벨은 아담의 믿음을 계승할 필요도 없고, 계승받을 필요도 없습니다. 아벨이 믿음의 기대의 중심인물이자 실체기대의 중심인물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가인이 아벨을 살해했기 때문에 아담가정에서는 실체기대를 세우지 못하고 실패했습니다. 믿음의 기대는 성공했지만, 실체기대는 실패했습니다. 가인이 아벨을 살해했기 때문에 메시아의 기대가 세워지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섭리는 연장됩니다.

 

아담가정에서부터 선악의 분립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타락한 인간이 선악의 모체가 되었기 때문에 선 편과 악 편으로 쪼개서 선 편이 승리할 때까지 투쟁을 전개하는 것이 타락 이후의 인류역사입니다. 그러므로 인류역사는 선악의 투쟁사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먼저 맞습니다. 사탄은 거짓말을 해서라도 치고 빼앗아가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언제나 원리와 법도에 따라 다시 찾아오는데, 원금에 이자까지 붙여서 찾아옵니다. 그래서 ‘하늘은 맞고 빼앗아 오고, 사탄은 치고 빼앗긴다.’고 한 것입니다.

 

악은 항상 선보다 먼저 출발합니다. 하나님 편에는 하나님이 대할 수 있는 실체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아벨이 죽은 다음에는 노아가정이 세워질 때까지 하나님이 대할 실체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가인이 항상 아벨보다 한발 앞서 출발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