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리본체론 - 전편 - 제7장 기독론 - 1

2013. 1. 6. 20:33참사랑 영원까지/원리 본체론

제7장 기독론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신학이론을 기독론이라고 합니다.

기독론은 기독교의 강령입니다.

정치인들이 속한 각 정당에도 강령이 있습니다.

어느 단체든 강령이 있어서 그것을 중요시합니다.

 

 

                    서론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신학이론을 기독론(基督論)이라고 합니다. 기독론은 기독교의 강령입니다. 정치인들이 속한 각 정당에도 강령이 있습니다. 어느 단체든 강령이 있어서 그것을 중요시합니다.

기독론은 기독교의 강령임에도 불구하고 기독교인 가운데 기독론을 확실히 알고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로 인해 기독교의 교리 연구와 신앙생활에 적지 않은 혼란을 일으켜 왔습니다.

 

구원을 향해 나아가는 인간들에게는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습니다. 그 중에서도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중심한 예수님과 성신의 관계, 예수님과 성신과 타락한 인간과의 관계, 중생과 삼위일체 등게 관한 것입니다. 그것들이 기독론에서 다루어야 할 문제들입니다.

 

                    1. 창조목적을 완성한 인간의 가치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이냐, 아니면 인간이냐? 또 예수님은 어떤 가치를 가지고 있는가? 등을 먼저 규명하지 않으면, 예수님과 성신의 관계, 예수님과 성신과 중생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누구인지를 알기 위해서는 먼저 창조목적을 완성한 인간의 가치를 어떤 것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1) 하나님과 완성한 인간의 이성성상적 관계      

 인간 조상인 아담은 타락하지 않았으면 창조이상을 완성한 인간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아담이 타락하여 하나님이 세우신 창조목적을 완성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이 소망하신 창조목적을 완성한 인간의 가치를 상실해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가치는 한 줌의 흙만도 못한 존재로 떨어져 버렸습니다.

 

하나님은 본성상과 본형상의 이성성상으로 계십니다. 인간을 놓고 보면, 본성상은 마음과 같고 본형상은 몸과 같습니다. 마음은 보이지 않지만 주체의 자리에, 몸은 보이지만 대상의 자리에 있습니다. 보이는 몸은 보이지 않는 마음을 닮은 제2의 마음입니다.

 

수상(手相)이나 관상(觀相)·골상(骨相)등 외모를 보고 보이지 않는 마음의 세계를 예측하고 측량하듯이 몸은 바로 보이지 않는 마음을 전개한 실체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는 몸을 마음이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몸은 마음과 같은 가치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완성한 인간과 하나님의 관계는 마치 몸과 마음의 관계와 같습니다. 온전하신 하나님처럼 인간도 완성하면 온전하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이 완성하면 하나님의 신성(神性)을 닮아 거룩한 하나님의 성전(聖殿)이 됩니다. 신인일체(神人一體)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었을 때 인간은 하나님적 가치를 지니게 되고, 영원한 가치를 지니게 됩니다. 그렇다고 해서 인간이 곧 하나님은 아닙니다.

 

        2) 창조목적으로 본 인간의 가치          

 하나님의 성상 가운데는 내적 성상이 있고, 내적 형상이 있습니다. 내적 형상은 하나님의 다양한 개별상입니다. 그 개별상 가운데 독특한 하나의 개별상을 가지고 나타난 실체가 바로 인간입니다. 그래서 사람에게는 저마다의 개성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 속에 있는 A라고 하는 개별상을 나타내고 어떤 사람은 B라고 하는 하나님의 개별상을 나타냅니다. 그들은 각각 하나님의 앞에 유일한 개성진리체(個性眞理體)입니다. 완성한 인간은 하나님께서 가지고 계신 무수한 속성 중에서 독특한 하나의 개별상을 가지고 태어난 유일한 개성체입니다.

 

그래서 유일무이(唯一無二)한 가치를 지닙니다. 개인은 과거에도 없고, 앞으로 다가올 미래에도 없는 오직 하나밖에 없는 개성진리체입니다. 그것은 하나님 속에 있는 유일한 개성체를 그대로 이어받았기 때문입니다.

 

        3) 인간과 피조세계의 관계                 

 하나님은 당신의 형상대로 인간을 지었습니다. 그리고 인간을 본으로 해서 모든 피조물을 창조했습니다.

인간은 본성상과 본형상의 이성성상으로 계신 하나님을 닮아서 영인체와 육신을 지니고 있는데, 영인체는 보이지 않고 육신은 보입니다. 그래서 보이지 않는 영인체는 무형실체세계(無形實體世界)와 관계를 맺고, 보이는 유형실체세계(有形實體世界)와 관계를 맺게 되어 있습니다. 무형실체세계와 유형실체세계, 이 두 세계를 천주라고 합니다.

 

무형실체세계와 유형실체세계는 인간을 중심해서 서로 화동하며, 인간이 중심이 되어 두 세계를 주관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인간은 천주의 총합실체상(總合實體相)으로서, 완성한 인간은 천주적(天宙的)인 가치를 지닙니다.

 

                    2. 창조목적을 완성한 인간과 예수님           

 창조목적을 완성한 인간은 하나님 안에서 분립되어 나온 마음과 몸이 완성되어 하나님과 일체가 된 인간이며, 그 인간은 하나님적인 가치·영원한 가치·유일무이(唯一無二)한 가치·천주적(天宙的)인 가치를 지닙니다. 그것이 바로 완성한 인간의 가치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분립된 마음과 몸을 지닌, 하나님과 일체를 이룬 분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나님적인 가치·영원한 가치·유일무이한 가치·천주적인 가치를 지녔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그토록 소망하시던 창조목적을 완성한 인간의 가치를 지닌 분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같은 형상을 지니고 있지만, 가치로 볼 때는 위 타락한 인간과는 전혀 다릅니다. 예수님은 창조목적을 완성한 인간으로서 후아담으로 오신 분입니다. 예수님은 아담이 타락하지 않고 완성해야 했던 그 기준을 이루신 분입니다. 예수님은 아담이 소원하던 생명나무요, 창조이상을 완성한 남성입니다.

 

창조목적을 완성한 인간의 가치는 하나님적 가치·영원한 가치·유일 무이한 가치·천주적인 가치 이 네 가지를 넘어설 수 없습니다. 아무리 가치를 부여하더라도 창조목적을 완성한 인간의 가치 이상 가치의 기준을 높일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아무리 높여도 하나님적인 가치·영원한 가치·유일무이한 가치·천주적인 가치 이상으로 높일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은 가치로 볼 때 하나님적인 가치를 가졌지만, 그렇다고 해서 예수님 자신이 곧 하나님은 아닙니다. 여기에서 지금까지 예수님이 곧 하나님이냐, 아니면 인간이냐? 하는 논쟁은 끝납니다. 예수님은 바로 창조목적을 완성한 인간으로서 하나님적인 가치를 지니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1) 생명나무 복귀로 본 완성한 아담과 예수님

 ‘생명나무’에 대한 기록은 성경에 여러 번 나오는데 맨 먼저 구약 창세기 2장 9절에 나오고 마지막으로 신약 요한계시록 22장 19절에 나옵니다.

에덴동산의 생명나무는 ‘창조원리’에서 말씀드린 대로 완성한 아담을 상징합니다. 창조이상을 완성한 남성을 가리켜서 생명나무로 비유한 것입니다.

 

그런데 아담은 타락해서 생명나무가 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후아담이 오시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후아담이자 생명나무의 실체로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창조이상을 완성한 남성으로 오신 것입니다. 생명나무 복귀로 볼 때 완성한 아담과 예수님의 가치는 같습니다.

 

        2) 예수님이 곧 하나님인가?

 지금까지 많은 기독교인은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믿고 있습니다. 성경에는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볼 수밖에 없는 기록이 있습니다.

왜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믿고 있는지, 그렇게 믿도록 하는 성경 구절을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1) 요한복음 14장 9절

 요한복음 14장을 보면, 빌립이 예수님께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8절)라고 요청합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빌립에게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9절)라고 말씀했습니다. 이 말씀을 문자 그대로 보면, 예수님은 바로 하나님이 됩니다. 많은 사람이 이 말씀을 근거로 예수님을 하나님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구절은 인간의 마음과 몸의 관계를 비교해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마음이 주체이고 제1의 마음이라고 한다면 그 대상인 몸은 마음을 닮아난 제2의 마음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몸이 마음 그 자체는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과 예수님의 관계를 놓고 볼 때 하나님은 제1창조주로서의 하나님이고, 예수님은 하나님적인 가치를 지닌 제2창조주입니다. 예수님이 책임분담으로 자신의 인격을 창조해냄으로써 하나님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지만 하나님은 아닙니다.

 

로마서 8장 34절을 보면,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을 보면 예수님은 하나님이 아니고 하나님의 오른쪽에 계신 분입니다.

 

마태복음 27장 46절을 보면,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니라.’고 십자가 상에서 하신 예수님의 기도를 인용하고 있습니다.

 

또 요한복음 17장 1절을 보면,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이르시되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 하는 예수님의 기도 장면도 묘사되어 있습니다.

 

하늘을 우러러 아버지라고 불렀다는 말은 하나님은 아버지요, 예수님은 아들이라는 사실을 가르쳐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40일 금식을 한 후 사탄의 시험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십자가에 돌아가셨습니다. 만일 예수님이 기독교인들을 믿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이었다면 하나님이 40일 금식을 하시면서 사탄에게 시험받았다는 얘기가 되고,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죽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만일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본다면 신(神)이 죽었다는 엄청난 결과를 초래하게 됩니다. 그런즉 예수님은 하나님적인 가치를 지녔지만 하나님은 아닙니다.

 

(2) 요한복음 1장 10절            

 요한복음 1장 10절에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세상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다는 말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도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요한복음 1장 3절을 보면, 말씀에 의해서 피조만물이 창조되었습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말씀과 함께 계셨고 말씀에 의해서 세상이 지음 받게 되었습니다. 말씀이 곧 하나님이고, 말씀의 수육자(受肉者)로 오신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요한복음 1장 14절을 보면,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하는 구절이 있습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은 말씀이 수육(受肉)된 분입니다. 예수님은 말씀의 실체로 오신 분입니다. 예수님은 창조목적을 완성한 분이요, 천주의 총합실체상(總合實體相)이요, 창조성을 지니고 모든 것을 관장하고 주관할 수 있는 창조주의 입장에 계신 분입니다.

 

아담의 타락으로 만물도 본연의 주인을 잃어버려서 탄식하고 있습니다(로마서 8장 22절). 예수님은 아담이 완성하지 못한 본연의 뜻을 완성한 후아담으로 오셨기 때문에 예수님에 의해서 모든 피조물은 본연의 창조가치를 드러내게 되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예수님에 의해서 피조물이 지음 받았다고 표현된 것입니다. 완성한 인간으로 인해 창조의 가치가 실현된다고 볼 때 예수님은 창조주의 자격을 지닌 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곧 하나님은 아닙니다.

 

(3) 요한복음 8장 58절                

 요한복음 8장 58절을 보면, ‘예수께서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 하시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혈통적으로 볼 때 아브라함의 후손이지만, 복귀섭리역사로 볼 때는 인간의 조상입니다.

 

예수님은 전 인류의 원죄를 청산하기 위해 오신 분입니다. 인간 조상 아담까지도 원죄를 청산해서 본연의 인간으로 돌아가도록 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혈통적으로 보면 아브라함의 후손이지만, 복귀섭리로 볼 때는 아브라함의 조상이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고 하신 것이지, 예수님이 곧 하나님이기 때문에 아브라함보다 먼저 있었다고 하신 것은 결코 아닙니다. 결론은 예수님은 하나님이 아니라 하나님의 제1축복을 완성한 인간이라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