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리본체론 - 전편 - 제6장 예정론 - 2

2013. 1. 6. 20:33참사랑 영원까지/원리 본체론

3. 인간에 대한 예정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는 인간의 역할이 절대적입니다. 하나님은 뜻 성사를 위해 어떻게 인간에 대한 예정을 하셨는가?

하나님의 뜻은 구원섭리 전체를 이루는 것인데, 그 전체의 구원섭리는 하나로부터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구원섭리는 하나로부터 시작해서 전체를 완성·완결지어야 합니다.

 

전체를 이루기 위한 하나님의 구원섭리는 하나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하나가 중요합니다. 구원섭리가 출발할 수 있는 하나라는 것은 중심인물을 말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하나의 중심인물을 세웁니다. 그 중심인물을 택하기 위해서는 조건이 있습니다.

 

중심인물이 갖추어야 할 조건은 다섯 가지입니다.

 첫째, 중심인물은 반드시 선민(選民)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택한 민족 가운데서 중심인물을 고른다는 것입니다.

 둘째, 조상의 선한 공적(功績)이 많아야 합니다. 선민 중에서도 조상의 공적이 많은 사람을 우선으로 선택합니다.

 셋째, 개인의 선천적 성품, 곧 천품(天稟)이 좋아야 합니다.

조상의 공적이 많더라도 뜻을 이룰 수 있는 개인의 천품이 좋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넷째, 뜻을 이루기 위한 후천적 조건이 좋아야 합니다. 주변의 환경이 좋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조상의 공적도 많고 천품도 좋은데, 주변의 환경이 나빠서 뜻을 이루는 데 방해가 된다면 그 사람을 중심인물로 세울 수 없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중심인물은 천품이 좋아야 하지만 후천적 조건도 좋아야 합니다.

 다섯째, 반드시 하나님이 필요로 하는 시기와 장소에서 태어나야 합니다. 앞에서 열거한 조건을 다 갖추었다 하더라도 만일 다른 곳에서 태어났거나 적기에 태어나지 못했다면 그 사람은 중심인물이 될 수 없습니다.

 

 열거한 중심인물이 갖추어야 할 다섯 가지 조건을 갖춘 사람은 하나님이 불렀다 할지라도 그가 세우신 뜻을 감당하지 못하면 예정된 인물로서 사명을 할 수 없게 되고, 뜻도 이뤄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책임을 완수하면 예정된 사명도 완성하고, 하나님의 뜻도 이뤄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조건을 모두 갖추고 중심인물이 세워졌다 하더라도 그가 책임을 못하면 안 됩니다.

 

마태복음 27장 3절에서 10절을 보면, 예수님의 제자 가운데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은 30냥에 대제사장에게 팔았습니다. 가룟 유다는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있는 시기와 장소에 태어났습니다. 아마 그는 다른 사람보다 더 개인의 천품이 좋았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런데 결국 그에게 사탄이 들어가서 예수님을 팔았습니다. 그러므로 가룟 유다는 하나님으로부터 예정된 인물로서 부름을 받았지만 예정된 사명을 다하지 못했습니다. 가룟 유다가 책임을 못하고 열두 제자 가운데서 탈락함으로써 하나님은 가룟 유다 대신에 맛디아를 택했습니다(사도행전 1장 15~26절). 이처럼 뜻은 절대적으로 예정하지만 뜻 성사는 상대적으로 이루어집니다. 인간이 책임을 하면 뜻이 이뤄지고, 책임을 못하면 이뤄지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또 어떤 인물이 뜻을 이루지 못해서 대신 다른 인물을 세울 때 그 사람을 어떻게 정하느냐? 위의 다섯 가지 조건을 갖추어야 하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이 세 가지입니다. 다섯 가지 중에 세 가지만 충족하면 하나님이 세우셔서 일을 맡길 수 있는 인물이 됩니다. 다만 메시아는 위의 다섯 가지 조건을 다 갖춰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에 대한 예정은 절대적이지만, 인간은 상대적으로 예정합니다. 지금까지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이 다 예정했다고 하는 것은 뜻도, 뜻 성사도, 인간에 대한 예정도 100퍼센트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통일원리에서는 뜻은 절대적으로 예정하지만, 뜻 성사와 뜻을 이루기 위한 인간은 상대적으로 예정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4. 예정설을 세워주는 성구 해명      

 

예정설을 뒷받침하는 성구로는 다음의 네 가지를 들 수 있습니다.

 

        1) 로마서 8장 29절과 30절

 로마서 8장 29절과 30절에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복귀섭리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미리 인물을 예정하시고 부르시지만, 하나님의 책임분담인 부르시는 것만으로 그가 의롭다 함을 얻고 영화롭게까지 될 수 없습니다. 인간이 책임분담을 다할 때 의롭다 함을 얻고 그 후에야 하나님도 그에게 영화를 누리도록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주시는 영화도 인간이 책임분담을 다함으로써만 누릴 수 있습니다.

비록 하나님이 예정하셨지만, 인간이 책임분담을 감당함에 따라 예정된 모든 절차가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2) 로마서 9장 15절과 16절                

 로마서 9장 15절과 16절에는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 하셨으니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고 했습니다. 이 구절은 하나님의 권능과 은총을 강조하기 위해서 하신 말씀입니다.

 

그리고 로마서 9장 21절에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들 권한이 없느냐,’고 했습니다. 토기 만드는 사람이 진흙 한 덩이로 귀한 도자기와 같은 그릇도 만들고 천하게 쓰는 그릇도 만드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타락한 인간을 당신 마음대로 하실 수 있다는 뜻입니다.

 

        3) 로마서 9장 11절에서 13절          

 로마서 9장 11절에서 13절에는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이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 리브가에게 이르시되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나니 기록된 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고 하신 말씀처럼 하나님은 복중에서부터 에서는 미워하고 야곱은 사랑했습니다.

 

그것은 복중에서부터 이미 예정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복귀섭리노정의 절차에 맞추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 사연은 ‘후편 복귀원리’에서 자세히 설명할 것입니다.

아담은 타락함으로써 선과 악이 공존하는 중간 위치에 떨어졌습니다. 그래서 선과 악으로 쪼개야 할 아담이지만, 사람을 쪼개면 죽기 때문에 실체 아들인 가인과 아벨을 선 편과 악 편으로 나눴습니다.

 

또 아브라함가정에서는 이삭을 중심해서 에서와 야곱을 선 편과 악 편으로 나눴습니다. 아담가정에서 가인은 사탄 편에 세우고, 아벨은 하늘 편에 세웠던 것처럼 아브라함가정에서도 장자인 에서는 사탄 편에 세웠고, 차자인 야곱은 하나님 편에 세운 것입니다.

 

에서와 야곱은 복중에 있었지만, 에서를 미워한 이유는 장자인 에서를 야곱과 분립하여 사탄 편에 세웠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야곱은 분립된 차자로서 하늘 편에 세웠기 때문에 하나님이 사랑했습니다. 예정되었기 때문에 에서는 미워하고 야곱을 사랑한 것이 아닙니다.

 

에서는 비록 복중에서는 미움을 받았지만, 태어나서는 책임을 완수해서 모든 일을 하나님 뜻에 맞게 실천하면 하나님의 사랑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야곱은 복중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지만, 지상에 태어나서 책임을 못하면 하나님은 그를 사랑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복중에서부터 미움을 받거나 사랑을 받았던 것은 섭리의 절차에 맞추기 위해서 그런 것이지, 복중에서 이미 예정되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통일원리’에서는 하나님이 예정을 하시되, 뜻은 절대적으로 예정하시고, 그 뜻을 이루는데 필요한 인간에 대한 예정은 상대적으로 예정하신다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