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리본체론 - 전편 - 제6장 예정론 - 1

2013. 1. 6. 20:34참사랑 영원까지/원리 본체론

제6장 예정론               

 

예정론은 인간 개개인의 운명이나 국가의 흥망성쇠는 인간의 행위나 노력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의지로 미리 정해진다는 학설입니다. 특히 기독교에서는 예정론을 두고 ‘타락 인간의 구원과 멸망이 미리 정해져 있다. 그렇지 않다.’ 하는 논란이 끊이지 않으면서 신앙생활에 큰 혼란을 주고 있습니다.

 

                                서론                 

 예정론(豫定論)은 인간 개개인의 운명이나 국가의 흥망성쇠는 인간의 행위나 노력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의지로 미리 정해진다는 학설입니다.

특히 기독교에서는 예정론을 두고 ‘타락 인간의 구원과 멸망이 미리 정해져 있다. 그렇지 않다.’ 하는 논란이 끊이지 않으면서 신앙생활에 큰 혼란을 주고 있습니다.

그런 논란은 성서를 보는 시각의 차이에서 온 것입니다. 성서에는 예정론을 긍정하는 측면과 부정하는 측면의 상반된 예언이 나옵니다.

 

긍정적인 예언을 보면, 로마서 8장 29절과 30절에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로마서 9장 15절과 16절을 보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 하셨으니···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고 했습니다. 즉 하나님은 불쌍히 여길 사람, 긍휼히 여길 사람을 이미 다 정해 놓았다는 것입니다.

 

또 로마서 9장 21절에는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들 권한이 없느냐.’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도 사람의 귀천을 예정하신다는 것입니다.

 

로마서 9장 11절에서 13절을 보면,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로 말미암아 서게하려 하사 리브가에게 이르시되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나니 기록된 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이삭과 리브가의 쌍둥이 아들 에서와 야곱 중에 에서는 미워하고 야곱은 사랑했습니다. 아직 세상에 태어나지도 않았는데,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긴다고 한 것은 예정으로 볼 수 있습니다.

반면 예정설을 부정하는 성구도 있습니다.

 

마태복음 7장 7절을 보면,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구하고 찾는 것은 우리 인간들의 책임입니다. 인간의 노력에 따라 뜻 성사 여부가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5장 14절을 보면,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저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그를 위하여 기도할지니라.’고 했습니다.

병중에 있는 형제가 있거든 교회에 가서 믿음이 있는 장로를 데려다가 합심해서 기도하라는 말씀입니다. 만일 그가 아픈 것이 예정되었다면 왜 교회에 가서 장로를 데려다가 기도를 하라고 했겠습니까? 그것은 예정된 것이 아니라 인간의 노력 여하에 따라 이루어지기도 하고, 안 이루어지기도 한다는 뜻입니다.

 

창세기 2장 17절을 보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선악과를 따먹으면 죽고, 따먹지 않으면 죽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이것도 역시 선악과를 따먹고 따먹지 않는 것은 예정된 것이 아니라 아담·해와의 행동(책임)여하에 달려 있다는 뜻입니다.

 

창세기 6장 6절에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하는 성구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담의 타락 이후 인간들이 많은 죄악을 저지르고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사람을 지으신 것을 한탄하셨다고 했습니다.

 

아담의 타락은 예정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창조이상을 두고 인간을 선하게 지었는데, 인간이 타락하여 많은 죄를 짓고 원죄를 가진 후손을 번식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탄식하신 것이지, 탄식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신 것이 아닙니다. 인간 자신의 책임분담 여하에 따라 타락할 수도 있고 타락하지 않고 완성할 수도 있는데, 책임을 못해서 타락했고 죄를 지은 것입니다.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절대 예정을 뒷받침하는 성서의 기록도 있고, 그것을 부정하는 식구도 있습니다.

 

                    1. 뜻에 대한 예정           

 통일원리에서는 하나님이 예정을 하기는 하시되, 뜻에 대해서만 절대 예정하시는 것으로 봅니다. 뜻을 이루는 데는 예정된 대로만 되는 것이 아니고 자기 자신의 노력 여하에 따라 예언이 이루어지기도 하고 안 이루어지기도 합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뜻은 유일하고 영원·불변하며 절대적입니다. 하나님은 절대·유일·불변·영원하므로, 하나님이 세우신 뜻도 절대·유일·불변·영원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예정은 인간이 죽고 살고, 지옥 가고 천국 가고 그런 예정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에 대한 예정은 절대적입니다. 복귀섭리의 목적이 창조목적을 반드시 이루는 것이듯이 하나님의 절대·유일·불변·영원한 그 뜻을 완성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에 대한 예정은 절대적입니다.

 

                    2. 뜻 성사에 대한 예정           

 하나님의 절대적인 예정을 이루는 데 있어서는 하나님뿐만 아니라 인간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 성사에 대한 예정, 즉 뜻을 이루기 위한 예정을 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창조목적을 이루는 것인데 그것은 절대적입니다. 하나님이 복귀섭리를 해 오신 것도 절대적인 창조목적을 이루기 위해서입니다.

 

창조목적을 이루는 뜻 성사는 하나님의 책임분담에 인간책임분담을 더해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의 책임분담 95퍼센트는 이미 있는 것이므로 인간책임분담 5퍼센트만 이루면 100퍼센트의 절대적인 뜻이 이루어 지지만, 인간책임분담 5퍼센트가 없으면 뜻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인간책임분담이 중요합니다.

 

이미 말씀드린 대로 아담·해와가 완성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완성됩니다. 완성한 자녀는 부모를 완성시킵니다. 부모가 완성되면 애당초 계획했던 하나님의 뜻이 성사됩니다. 하나님에 의해서 뜻이 성사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에게 주어진 책임분담을 완수함으로써 뜻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7장 7절의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하는 말씀은 인간이 해야할 책임이 있기 때문에 주신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대한 예정은 절대적이지만, 뜻 성사에 대한 예정은 상대적입니다. 인간이 책임분담을 다하면 뜻이 성사되지만, 책임분담을 다하지 못하면 뜻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인간이 책임을 하느냐, 못하느냐에 따라 뜻이 이루어지느냐, 안 이루어지느냐가 달려 있기 때문에 뜻 성사는 절대적이 아니고 상대적입니다. 뜻 자체는 절대적이지만 뜻을 성사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예정했다는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