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리본체론 - 전편 - 제5장 부활론 - 1

2013. 1. 6. 20:37참사랑 영원까지/원리 본체론

제5장 부활론           

 

성서에 나오는 부활이 과연 무엇을 말하고자 함인지 제대로 알기 위해서 먼저 죽음과 삶의 개념을 알아야 합니다.

일반적으로 본 죽음과 삶에 대한 개념과 성서적으로 본 죽음과 삶에 대한 개념이 다릅니다.

 

                                서론

부활(復活)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다는 뜻입니다. 일반적으로 죽음과 삶이라는 개념은 육신을 전제로 나온 것입니다. 그런데 성서에서 말하는 죽음과 삶의 개념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생사의 뜻과는 전혀 다릅니다. 성서에서 말하는 생(生)과 사(死)의 의미를 확실히 알면 부활에 대한 많은 의문들이 풀릴 것입니다.

 

성경 데살로니가전서 4장 16절에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에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또 마태복음 27장 52절에 ‘무덤들이 열리며 자던 성도들의 몸이 많이 일어나되···.’라는 기록도 있습니다. 이와 같이 성경에 나오는 부활에 대한 예언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그리스도가 재림하실 때에는 이미 흙 속에 묻혀 썩어 없어진 성도들의 육신이 다시 원상태로 살아나는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장 17절에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고 했습니다. 그 성구가 문자 그대로 이루어진다면 큰일입니다. 지구 환경은 수용 한계가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지상에 왔다 간 수많은 영인들이 다 살아난다면 땅과 식량뿐만 아니라 모든 자원이 부족해질 것입니다.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은 성서의 문자 그대로 부활이 일어날 것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원래 사람은 죽지 않게 창조했는데, 선악과를 따먹었기 때문에 죽게 되었다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주님이 오시면 그때부터는 죽지 않고 영생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기록한 성서의 많은 부분이 비유와 상징으로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문자 그대로 믿으면 신앙생활을 하는데 큰 혼란을 초래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비유와 상징으로 되어 있으므로 올바른 성서관에 따라 재해석할 필요가 있습니다.

 

                    1. 부활의 의의

 

        1) 일반적인 생과 사            

 성서에 나오는 부활이 과연 무엇을 말하고자 함인지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먼저 죽음과 삶의 개념을 알아야 합니다. 일반적으로 본 죽음과 삶에 대한 개념과 성서적으로 본 죽음과 삶에 대한 개념이 다릅니다. 일반적으로는 몸져 누워 있더라도 육신의 기능이 이루어져 활동하고 호흡한다면 그 사람은 살아있는 사람이고, 육신의 기능이 정지되고 호흡하지 않으면 죽은 사람입니다.

 

        2) 생과 사의 성서적 개념                

 요한복음 11장 25절과 26절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비록 육신은 죽지만, 영인체는 하나님 앞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살아서 믿는 자는 죽어서도 영원히 죽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 다음에 요한복음 5장 24절을 보면, ‘내 말을 듣고 나 보내신 자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와 같은 구절을 볼 때 성경에서 말하는 살아있는 인간은 육신의 죽음과 관계없이 하나님과 심정적으로 일체가 됨으로써 하나님의 참사랑 가운데 있는 사람을 말합니다.

반면 죽음은 하나님과 심정적 관계가 끊어진 상태를 말합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참사랑권을 떠나 사탄의 주관권에 있는 사람을 성경에서는 죽은 자라고 했습니다.

 

요한계시록 3장 1절에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라는 구절과 요한1서 3장 14절에 ‘우리는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머물러 있느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여기에서는 사망이 육신의 죽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6장 23절을 보면,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또 로마서 8장 6절에는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는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했고, 육신의 생각도 사망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성경에서 말하는 생사의 개념은 육신의 삶과 죽음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살아있는 인간은 하나님이 이상하신 본연의 인간이고, 죽은 인간은 타락한 인간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선악과를 따먹으면 죽는다고 했습니다. 성서에서 살았다는 개념은 하나님과 심정적으로 일체가 된 상태를 말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생명의 근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심정과 참사랑 안에서 사는 사람은 살아있는 사람입니다.

 

성경에는 죽은 자의 개념이 두 가지로 나와 있습니다. 누가복음 9장 60절을 보면,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의 부친이 돌아가셨습니다. 그가 예수님에게 가서 부친의 장례를 지내고 오겠다고 허락을 구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를 장사 지내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서 ‘죽은 자’는 제자의 부친을 말하고 ‘죽은 자들’은 제자의 친인척이나 동네 사람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죽은 자’도 죽었다고 말했고, ‘살아있는 사람’도 죽은 자라고 표현했습니다. 즉 성경에는 육신이 죽은 사람과 하나님과 거리가 먼 사람까지 모두 ‘죽은 자’로 보았습니다.

 

죽음의 개념은 하나님과 심정적 관계가 끊어져 버린 상태를 말합니다. 비록 살아서 활동하는 사람이지만, 하나님과 심정적 관계가 끊어져버렸다면 그 사람은 죽은 상태입니다. 심정은 참사랑의 뿌리입니다. 하나님의 참사랑권에서 살지 못하고 사탄 주관권에 살고 있는 사람을 결국 ‘죽은 자’로 표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에서 살았다고 하는 말은 하나님과 심정적 관계를 맺고, 하나님의 참사랑 안에서 사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과 심정적 관계가 끊어진 사람, 하나님의 사랑권에서 살지 못하는 사람은 숨을 쉬고 활동하더라도 ‘죽은 자’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살아있는 사람은 ‘하나님과 심정적 관계를 맺고 사는 사람’이며, 죽은 자는 ‘하나님과 심정적 관계가 끊어진 상태에서 하나님과 참사랑의 인연을 갖고 살지 못하는 사람’을 뜻합니다.

 

3) 부활의 의의                   

 부활은 사람이 타락으로 인해 사탄의 주관권에 떨어진 상태에서 복귀섭리에 의하여 하나님의 직접주관권으로 복귀되어 가는 과정적 현상입니다. 그런데 부활은 한꺼번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복귀섭리의 시대마다 하나님의 말씀이 주어지는데, 그 말씀을 믿고 따르면 점진적으로 부활이 이루어집니다.

 

죄를 회개하고, 어제의 나보다 오늘의 내가 좀 더 선하게 되었다면 그만큼 더 부활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복귀섭리역사에 따라서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믿고 실천하면 그만큼 더 부활하게 됩니다.

 

성경에 나오는 부활은 일반적인 개념의 부활과 다릅니다. 죽은 시체가 정말로 다시 살아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 에스겔 37장에 골짜기에 있는 모든 죽은 뼈가 다시 살이 붙고 힘줄이 생겨서 전부 살아난다고 했는데 그것은 비유입니다. 에스겔서에 나오는 바른 뼈들은 곧 이스라엘 민족을 말합니다. 에스겔 37장 11절에 ‘이 뼈들은 이스라엘 온 족속’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벗어나 우상숭배에 빠진 이스라엘 무리가 마치 마른 뼈와 같다는 것입니다. 다시 하나님 앞으로 회복된 이스라엘 민족을 두고 뼈와 뼈가 붙고 힘줄이 생겨 살아난다고 표현했습니다.

 

부활에는 두 가지가 있다고 했습니다. 살아 있으나 죽은 것과 같은 상태인 죽은 자의 부활이 있고, 생명이 없는 죽은 자의 부활이 있습니다. 먼저 살아 있으나 죽은 것과 같은 상태에 있는 죽은 자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 심령이 거듭나야 합니다. 그리고 생명이 없는 죽은 자는 영인체의 부활로 거듭나야 합니다.

 

4) 부활로 인한 인간의 변화            

 부활은 인간에게 외적인 변화를 주지 않습니다. 그러나 내적으로는 심령의 변화를 일으킵니다. 곧 사탄의 집으로부터 하나님의 집으로 바뀌는 내적인 변화가 일어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을 예로 든다면,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 전과 제자가 된 후에도 외형적인 면에서는 변화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은 전에는 사탄의 주관권에서 살았지만, 예수님이 말씀을 따라 하나님의 주관권으로 들어갔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따르기 전에는 죽은 자였지만, 예수님을 믿고 따르면서 죽은 자에서 산 자로 변화되었습니다. 그 변화는 내적인 것이지 외적인 변화는 아닙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이 말씀을 접하기 전의 모습과 이 말씀을 접한 지금의 모습은 외적인 면에서는 하나도 변함이 없습니다. 마음은 하나님 앞에 더 사랑받을 수 있게 나아갔기 때문에 내적인 변화는 일어났지만, 외적인 변화는 별로 없을 것입니다. 죽은 자가 살이 붙어 다시 살아나는 것이 아닙니다.

 

5) 타락으로 인한 죽음          

 부활이 필요한 것은 인간이 타락으로 죽음에 이르렀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인간 조상의 타락으로 초래된 죽음은 어떤 죽음인가?

창세기 2장 17절을 보면, 하나님은 아담에게 ‘선악과를 따먹으면 정녕 죽으리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러나 아담은 선악과를 따먹은 후에도 900년 이상 살았습니다.

 

타락으로 초래된 죽음은 육신의 죽음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과 단절된 영적 죽음의 상태를 의미합니다. 인간은 타락했기 때문에 죽게 된 것이 아닙니다. 육신은 원래부터 흙으로 돌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인간이 타락으로 맞이한 죽음은 하나님과 심정적 관계가 끊어진 상태가 된 것입니다. 심정은 참사랑의 뿌리이고 하나님의 인격의 핵인데, 하나님과 심정적 관계가 끊어지고 나니 하나님의 참사랑이 인간에게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그 자리에 거짓된 사랑이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창조원리에 따르면, 물질로 된 생명체는 어떤 것도 영원성을 가질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무형세계를 창조하셨습니다. 육신으로 영생한다면 무형세계를 처음부터 창조하실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원래 인간은 늙으면 그 육신은 흙으로 돌아가고 영은 하나님께로 돌아가도록 창조되었습니다(전도서 12장 7절).

 

타락으로 인한 죽음은 하나님의 선주관권으로부터 사탄의 악주관권으로 떨어진 것을 의미합니다.

부활이라는 말은 사탄의 주관권에서 하나님의 주관권으로 복귀되어 가는 과정적인 현상입니다. 다시 말하면, 부활은 하나님과 심정적 관계가 끊어진 사람이  하나님과 심정적 관계를 다시 회복하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과 심정적 관계를 맺고 사는 사람이 되었을 때, 온전히 살아있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타락으로 하나님의 참사랑·참생명·참혈통인 참사랑권에 머물지 못하고 사탄의 거짓된 사랑·거짓된 생명·거짓된 혈통권에 있는 사람이 죽은 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