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리본체론 - 전편 - 제4장 메시아의 강림과 그 재림의 목적 - 5

2013. 1. 6. 20:38참사랑 영원까지/원리 본체론

2. 엘리야의 재림과 세례 요한

 

        1) 유대 민족의 심적 동향               

 말라기 4장 5절을 보면,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크고 두려운 날은 바로 메시아가 오시는 날입니다. 메시아가 오시기 전에 엘리야 선지자를 먼저 보낸다고 했기 때문에 유대 민족은 메시아를 기다리는 만큼 엘리야를 기다렸습니다.

 

엘리야 선지자는 예수님이 오시기 약 900년 전의 사람입니다. 당시 유대 민족은 우상 숭배에 빠져서 많은 고초를 겪고 있었습니다. 엘리야 선지자는 갈멜산에서 바알 선지자 450명과 아세라 선지자 400명을 맞아 싸우는데, 엘리야가 승리해서 850명을 다 멸합니다(열왕기상 18장 19~40절). 그런데 바알신과 아세라신을 믿는 이세벨 여왕이 엘리야 앞에 굴복하지 않고 엘리야를 죽이려 합니다. 그래서 엘리야는 도망가서 토굴 속에서 살았습니다.

 

열왕기하 2장 11절을 보면, 하늘에서 불수레와 불말이 내려와서 엘리야와 엘리사를 갈라놓고 엘리야는 회오리바람을 타고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말라기 4장 5절에서는 메시아가 오기 전에 그 엘리야가 온다고 한 것입니다. 그래서 유대 민족은 메시아가 오기 전에 하늘로 승천했던 엘리야가 다시 구름 타고 오는 것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예수님이 나타나셔서 여러 도시에서 가르치시고 복음을 선포하셨습니다. 세례 요한이 옥중에서 그 소식을 듣고 자기 제자들을 보내어 예수께 ‘오실 그이가 당신입니까?’하고 물었습니다. 그 물음에 예수님은 ‘너희가 듣고 본 것을 요한에게 알려라. 눈 먼 사람이 보고, 저는 사람이 걷고, 나병 환자가 깨끗해지고 귀먹은 사람이 듣고, 죽은 사람이 살아나고, 가난한 사람이 복음을 듣는다. 나에게 걸려 넘어지지 않는 사람이 복이 있다.’고 우회적으로 대답하고 나서, ‘만일 너희가 즐겨 받는다면 말하겠다. 오리라 한 엘리야가 이 사람이니라.’ 하면서 세례 요한을 가리켜 엘리야라고 했습니다(마태복음 11장 1~14절). 그래도 예수의 제자들은 그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마태복음 17장을 보면, 예수님이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 세 제자를 데리고 높은 산에 올라갔습니다. 그때 제자들은 얼굴이 변하여 해같이 빛나며 옷이 빛처럼 희어져 모세와 엘리야와 함께 말씀하는 예수님을 봅니다.

 

그 모습을 보고 베드로가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만일 주께서 원하신다면 내가 여기에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리이다.’고 말하는데 홀연히 빛나는 구름이 그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하는 음성이 들렸습니다.

 

산을 내려오면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인자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기 전에는 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사실을 밝히지 말라는 뜻입니다. 그때 제자들이 ‘그러면 어찌하여 서기관들이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하리라 하나이까?’ 하고 물었습니다.

 

이에 ‘예수께서 엘리야가 과연 먼저 와서 모든 일을 회복하리라.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엘리야가 이미 왔으되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임의로 대우하였도다. 인자도 이와 같이 그들에게 고난을 받으리라. 하시니 그제야 제자들이 예수께서 말씀하신 것이 세례 요한인 줄을 깨달으니라.’ 하는 내용이 있습니다. 제자들이 비로소 오리라 한 엘리야가 세례 요한인 것을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장 21절을 보면,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서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세례 요한에게 보내어 ‘네가 누구냐?’ 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세례 요한이 드러내놓고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들은 다시 ‘그러면 누구냐. 네가 엘리야냐?’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세례 요한은 아니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들은 또 물었습니다. ‘네가 그 선지자냐?’ 세례 요한은 아니라고 했습니다.

만일 그 때 ‘그렇다. 예수님은 메시아고, 나는 선지자 세례 요한이다.’라고 대답했더라면 유대 민족은 자동적으로 세례 요한과 함께 예수님을 따랐을 것입니다. 그러면 유대 민족 전체가 하나님을 모시고 로마 의회에 가서 당당하게 메시아를 선포하고 로마의 세계적인 기반을 타고 하나님의 뜻을 순식간에 이룰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세례 요한이 불신해 버렸습니다. 유대 민족은 심정적으로 많은 갈등을 겪게 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믿을 것이냐, 세례 요한의 말을 믿을 것이냐를 놓고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예수님은 태어난 과정은 비참했지만, 그의 행적을 보면 놀라웠습니다. 전에 들어보지 못한 권능이 있는 말씀을 전했고, 놀라운 이적과 기살를 베풀었습니다. 그래서 함부로 할 수가 없었습니다. 세례 요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유대 민족은 예수님과 세례 요한, 두 사람을 비교했습니다. 세례 요한과 예수님에 대한 문제, 엘리야와 메시아이신 예수님과의 관계 등이 유대 민족 앞에 놓여 있었던 것입니다.

당시 유대 민족의 심적 동향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대제사장 가문에서 태어난 세례 요한이 있었고, 보잘 것 없는 목수의 아들 예수님이 있었습니다. 거기에서 유대 민족은 ‘누구를 믿고 따를 것이냐?’를 놓고 고민했습니다.

 

예수님은 가난하고 천한 목수의 가정에서 태어나 배우지도 못했고 안식일을 범했습니다. 율법에 안식일은 생명과 같이 지켜야 한다고 했습니다. 토요일에 모든 것을 다 준비해놓고 일요일엔 밥도 안 하고 동물의 먹이도 밖에 나가서 먹이지 않았습니다. 동물을 전부 집안의 우리 안에 두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안식일을 범했습니다. 예수님은 안식일에도 전도하러 다녔고, 배가 고플 때는 밀밭에 가서 밀을 비벼서 먹었습니다.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기도 했습니다.

 

유대 민족은 예수님의 그런 행위를 율법을 거역하는 것으로 봤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마태복음 5장 17절)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2장 10절에서 13절을 보면, 안식일에 손 마른 사람이 있자 사람들이 예수를 고발하려고 ‘안식일에 병을 고치는 것이 옳으니이까?’라고 물어보았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양을 치는 유대 민족의 피부에 와 닿는 비유를 들어서 설명했습니다.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양 한 마리가 있어 안식일에 구덩이에 빠졌으면 끌어내지 않겠느냐. 사람이 양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그러므로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으니라.’ 하시고 손 마른 사람을 고쳐주었습니다. 그러나 유대 민족은 한결같이 예수님을 보고 율법을 어겼다며 안식일을 범한 자로 규정했습니다.

 

그리고 세리·몸 파는 창기·죄인들이 예수님의 친구였습니다. 세리는 세금을 걷는 사람인데, 당시 이스라엘은 로마의 식민지였습니다. 유대 민족이 세금을 걷어가는 사람들을 얼마나 미워했겠습니까?

 

또 요한복음 14장 8절과 9절을 보면, ‘빌립이 가로되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하니 예수께서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고 말씀했습니다. 유대 민족은 예수님이 자신을 하나님과 동등한 입장에 세우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그래서 신성모독(神聖冒瀆)으로 생각한 것입니다.

 

그에 반해 세례 요한은 대제사장 가문에서 태어났습니다. 또 출생 시에 기적을 보였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에는 성막과 지성소가 있습니다. 성막은 일반인들이 들어가 정성을 드리는 곳이고, 지성소는 대제사장이 1년에 한 번씩 차례가 되면 들어가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는 곳입니다. 대제사장은 지성소에서 하나님을 만나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백성들에게 가서 알려줍니다. 사가랴도 순번이 되어서 지성소에 들어갔습니다.

 

사가랴 대제사장이 지성소에 들어갔을 때 하늘의 천사가 나타나서 ‘사라갸여 무서워하지 말라. 너의 간구함이 들린지라. 네 아내 엘리사벳이 네게 아들을 낳아 주리니 그 이름을 요한이라 하라.’(누가복음 1장 13절)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그러나 사가랴가 ‘내가 이것을 어떻게 알리요. 내가 늙고 아내도 나이가 많으니이다.’(누가복음 1장 18절)하며 천사를 통해 전해준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습니다. 천사는 ‘보라 이 일이 되는날까지 네가 말 못하는 자가 되어 능히 말을 못하리니 이는 네가 내 말을 믿지 아니함이거니와 때가 이르면 내 말이 이루어지리라 하더라.’(누가복음 1장 20절)고 했습니다. 사가랴가 하나님의 약속보다는 자신의 나이를 생각하며 의심하고 불신하므로 그때부터 벙어리가 되었다가(누가복음 1장 18~23절)아이가 태어나고 이름을 지어야 할 때쯤 혀가 풀립니다(누가복음 1장 60~66절).

 

당시 유대 지도자들은 그런 광경을 다 지켜봤습니다. 세례 요한은 어려서부터 낙타 털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두르고 광야에서 빛나는 수도생활을 했습니다. 세례 요한은 메뚜기와 석청을 먹었습니다(마태복음 3장 4절).

 

그것을 본 유대 민족은 ‘세례 요한이 혹 그리스도가 아닌가?’ 하고 생각했습니다. 누가복음 3장 15절을 보면, ‘백성들이 바라고 기다리므로 모든 사람들이 요한을 혹 그리스도신가 심중에 생각하니···.’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백성들은 세례 요한을 찾아가서 물었습니다.

 

그러자 세례 요한은 ‘나는 물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풀거니와 나보다 능력이 많으신 이가 오시나니 나는 그의 신발 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누가복음 3장 16절)하며 자신이 메시아가 아니라고 부인했습니다.

 

유대 민족은 예수님과 세례 요한을 비교하여 예수님보다 세례 요한을 더 위대하게 보았습니다. 세례 요한의 말을 따르다 보니 예수님은 결국 거짓말쟁이가 된 꼴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자기가 메시아가 되기 위해서 위대한 사가랴 대제사장의 아들로 태어난 세례 요한을 재림한 엘리야라고 말한 것처럼 되어버렸습니다.

 

유대 민족은 세례 요한을 메시아라고 생각할 정도로 존경했는데,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불신함으로써 유대 민족도 예수님을 불신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십자가의 길을 가게 된 것입니다.

 

        2) 세례 요한의 사명         

 세례 요한의 사명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메시아 증언(證言)의 사명이고, 또 하나는 모심의 사명입니다. 증언의 사명이 있었기 때문에 세례 요한은 ‘나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과 같이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라.’(요한복음 1장 23절)며 자신의 사명을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세례 요한은 예수님이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고 나올 때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나를 보내어 물로 세례를 베풀라 하신 그이가 나에게 말씀하시되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는 이인 줄 알라 하셨기에 내가 보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언하였노라.’(요한복음 1장 33~34절)고 증거를 했습니다.

 

누가복음 1장 75절에는 세례 요한이 태어날 때 부친 사가랴의 예언이 나옵니다. 대제사장 사가랴는 ‘종신토록 주의 앞에서 성결과 의로 두려움이 없이 섬기게 하리라 하셨도다.’라고 자기 아들 세례 요한의 사명을 예언했습니다. 그런데 세례 요한은 모심의 사명을 못했습니다.

세례 요한의 불신으로 유대 민족 전체가 예수님을 불신했고, 그로 인해 예수님은 십자가의 길을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3) 세례 요한의 불신 이유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불신하게 된 이유는 여섯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첫째, 세례 요한은 신령했지만, 하나님의 뜻과 섭리의 뜻에는 무지했습니다.

둘째, 자기를 중심하고 생각하고 판단했습니다.

 

셋째, 그릇된 메시아 관을 가지는 있었습니다. 구약성경에는 메시아가 구름타고 온다고 했기 때문에 세례 요한은 육신을 지니고 아기를 태어난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지 못했습니다.

넷째, 예수님의 언행을 불신했습니다. 예수님이 어떻게 태어났는지 세례 요한은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의 위대한 복음의 말씀도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다섯째, 자신의 사회적 위신과 체면이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을 더더욱 불신하게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여섯째는 구약성경을 문자 그대로 믿었습니다.

 

        4) 세례 요한에 대한 예수님의 책망      

 마태복음 11장 11절을 보면, 예수님은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그보다 크니라.’ 하고 세례 요한을 책망했습니다. 지상에서 큰 자로 태어났으면 영계에 가서도 당연히 큰 자가 되어야 하는데, 지상에서 제일 큰 자로 태어났으면서도 당연히 큰 자가 되어야 하는데, 지상에서 제일 큰 자로 태어났으면서도 영계에 가서는 지극히 작은 자도 세례 요한보다 크다고 한 것은 세례 요한이 책임을 못했기 때문입니다.

 

세례 요한은 요단강에서 예수님에게 세례를 베풀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증언하지만, 그 후에는 각기 다른 길을 가게 됩니다. 예수님이 가는 길을 세례 요한이 따라가지를 못했습니다. 또 세례 요한의 제자들과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이 서로 갈등을 일으켰습니다.

 

요한복음 3장 22절에서 30절을 보면, 세례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에게 많은 사람들이 가서 세례를 받는다고 알리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러자 세례 요한이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고 말합니다.

 

이 구절을 보고 오늘날 많은 성도들은 ‘세례 요한이 얼마나 겸손하고 위대하냐?’고 하는데, 그것은 성서를 잘못 보고 하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주님이 흥하면 자기도 같이 흥해야 합니다. 주님을 모시는 제자라면 주님이 쇠하면 자기도 쇠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흥하여야 하고, 자기는 쇠하여야 한다고 말한 것은 같은 길을 안 가겠다는 뜻입니다.

 

세례 요한은 옥에 갇혀서 자기 제자들을 예수님께 보내어 질문을 합니다. 마태복음 11장 2절에서 6절을 보면, ‘요한이 옥에서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을 듣고 제자들을 보내어 예수께 여짜오되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마태복음 11장 2~3절)하고 물어봅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듣고 보는 것을 요한에게 알리되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못 듣는 자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마태복음 11장 4~5절)고 말씀하시고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실족하지 않는 자는 복이 있다.’고 덧붙입니다.

 

마가복음 6장 17절에서 29절에는 세례요한의 마지막 행적이 나옵니다. 세례 요한은 당시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헤롯 왕이 동생 빌립의 아내 헤로디아에게 장가 든 것을 보고, ‘동생의 아내를 취한 것이 옳지 않다.’(마가복음 6장 18절)라고 말했습니다. 그로 인해 헤롯은 요한을 옥에 가두었습니다.

 

헤로디아가 요한을 원수로 여겨 죽이고자 했으나 헤롯이 요한을 의롭고 거룩한 사람으로 여겨 두려워했기 때문에 기회를 갖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헤롯의 생일날 대신들과 천부장들을 초대한 자리에서 헤로디아의 딸의 춤을 추어 좌중을 크게 기쁘게 했습니다. 헤롯은 나라의 절반이라도 주겠다며 소원을 말하라고 하자 딸이 어머니에게 가서 무엇을 구할까? 물어보자 세례 요한의 머리를 구하라고 알려줍니다. 헤롯은 근심하나 자기가 맹세한 것과 좌중의 체면을 볼 때 거절할 수 없어서 세례 요한의 목을 베어 소반에 담아다가 헤로디아에게 주었습니다. 세례 요한은 괜히 여자 문제로 시비하다가 아무 의미도 없이 죽게 된 것입니다.

 

        5) 세례 요한이 엘리야가 된 이유

 누가복음 1장을 보면, 세례 요한의 탄생에 대한 예고와 그의 삶에 대한 예언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특히 누가복음 1장 11절부터 17절까지에는 가브리엘 천사가 성전에서 분향하는 대제사장 사가랴에게 나타나서 네 아내 엘리사벳이 아들을 나을 것이니 이름을 요한이라 하라며 ‘그가 또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주 앞에 앞서 가서 아비의 마음을 자식에게, 거스르는 자를 의인의 슬기에 돌아오게 하고 주를 위하여 세운 백성을 준비하리라.’고 예언합니다. 이 구절을 볼 때 세례 요한은 바로 엘리야의 사명을 하기 위해서 온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6) 성서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           

 성서에는 하늘의 비밀이 숨겨있습니다. 천적(天的)인 비밀은 누구도 알지 못합니다. 영계의 천사도 모르고, 땅위의 어떤 선지자도 성도도 모릅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아시는 비밀을 이 땅위의 선지자들에게 그때그때마다 가르쳐줘서 알게 했습니다.

 

기독교인들은 세례 요한을 위대한 선지자라고 단정하는 성경 구절만 보고 믿어왔기 때문에 무조건 세례 요한을 위대하게 보고 있습니다. 그것은 성경 전체를 잘 모르기 때문에 야기된 문제입니다.

 

성서는 시대마다 달리 해석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감춰진 비밀을 알기 위해서는 인습적인 신앙 관념과 구태를 벗어나야 합니다. 그리고 신령과 진리로 항상 깨어있는 자세로 살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신령하다고 해서 다 알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또 진리만 가지고 신령한 부분을 배척해서도 안 됩니다.

 

이제 앞으로 우리 인류가 갈 길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한을 풀어드리는 것입니다. 만민에게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러 오시지 않았다는 것을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그것을 기독교인들에 제일 먼저 알아야 합니다. 십자가에 돌아가셔서는 안 될 예수님을 십자가에 돌아가시게 해놓고서 십자가에 돌아가신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믿어온 2000년 기독교 역사를 바로잡아야 합니다.

 

누구보다 성직자들이 먼저 회개하고 십자가를 모두 떼어내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이스라엘 민족이 회개해야 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메시아가 아니라며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죄인으로 알고 민족의 반역자로 죽였는데, 기독교인들은 2000년 간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의 공로로 구원을 얻었다고 믿었습니다.

 

십자가 구원의 의미를 바르게 알고 예수님과 하나님의 한을 풀고 뜻을 바로 세워가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