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리본체론 - 전편 - 제2장 타락론 - 7

2013. 1. 6. 20:45참사랑 영원까지/원리 본체론

참고 1

 

타락으로 인한 하나님의 고통

 하나님은 인간이 타락하는 순간 심정의 고통을 느끼셨습니다. 참사랑의 주체 되시는 하나님에게 그와 같은 심정의 고통을 느끼게 한 사탄은 사랑의 간부(姦夫)요, 사랑의 원수입니다.

타락으로 인한 하나님의 고통은 크게 세 가지를 들 수 있습니다.

 

 첫째, 4대심정권을 유린하는 원수 중의 원수 사탄을 대하는 고통입니다.

예를 들어 강도가 집에 들어와서 아버지를 밧줄로 기둥에 묶어 놓고 보는 자리에서 딸을 겁탈했다고 합시다. 그리고 자기 누이동생을 겁탈하고, 자기 부인을 겁탈하고, 어머니를 겁탈하고, 할머니까지 겁탈했다고 생각해 봅시다. 자기 딸을 겁탈하는 것만 봐도 강도를 찢어서 녹여버리고 싶은 마음이 들 터인데, 딸과 누이동생, 부인, 어머니, 할머니(4대심정권)까지 전부 겁탈했다면 어떠한 심정이겠습니까? 그 보다도 더 비참한 것이 사탄에 의해 타락하는 아담·해와를 지켜보는 하나님의 심정적 고통이었습니다.

 

 둘째, 사랑의 원수를 사랑해야 하는 고통입니다.

원래 해와는 장차 하나님의 부인이 될 사람입니다. 얼마 있으면 당신의 부인될 사람을 종놈이 유혹해서 겁탈한 후 데리고 도망쳤습니다. 또 부인이 되었어야 할 해와가 원수의 자식을 낳아서 데리고 다시 왔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쫓아내지 못 하고 받아들여야 하는데 얼마나 기가 막히겠습니까? 하나님은 본성 속에 원수라는 개념이 없기 때문에 과거에 첫사랑을 준비했던 그 마음을 가지고 사랑의 원수가 된 그 여인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입니다.

 

 셋째, 원수의 자식을 자기 자식 이상으로 사랑해야 하는 고통입니다.

사랑하는 여인을 빼앗긴 것도 억울한데, 원수의 자식까지 당신 자식보다 더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되는 원통한 심정을 안고 계신 분이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의 심정 속에 원수라는 관념이 있다면 절대적 창조주 하나님이 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원통하고 억울해도 하나님은 사랑의 원수를 사랑해야 하고, 원수의 자식을 당신 자식 이상으로 사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6000년 동안 하나님은 그런 고통 속에 계셨습니다. 그 누구도 그 같은 내용을 몰랐습니다. 참부모님은 원리의 본체 되시는 하나님 안에서 실체로 오신 분이기 때문에 그런 내용들을 모두 밝히시게 된 것입니다.

 

참부모님은 하나님을 해방하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우리도 그런 하나님의 심정을 알고 하나님을 고통에서 해방해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을 해방하는 것만이 죄악에서 인간을 해방하는 길입니다. 죄악에서 해방한다는 말은 절대성을 두고 하는 것입니다.

 

                                참고 2

 

왜 원수를 사랑해야 하는가?                   

 원수를 사랑하기는 지극히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사랑의 원수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닮은 우리가 원수를 사랑해야 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창조의 동기가 심정이기 때문                      

창조의 동기가 심정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원수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탄은 언제나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 저는 비록 잘못되어 원수가 되었지만, 하나님은 원수를 사랑해야 합니다.”라고 참소합니다. 천사장을 비록 종으로 지었지만 창조의 동기가 심정이었다는 것입니다. 자기는 잘못 되어서 원수·마귀가 되었지만 하나님은 창조주이기 때문에 절대 사랑해야지, 미워하면 안 된다는 말입니다. 사탄을 저주하고 미워하면 사탄이 하나님을 보고 창조주가 아니라고 참소합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려면 성장기간에 천사의 도움을 받아서 성장하고 완성해야 합니다. 그런데 누구도 천사의 도움을 받아서 완성한 사람이 없습니다. 오히려 모두 “사탄, 마귀! 사탄, 마귀!”하면서 저주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보고 사탄이 “하나님! 저들이 그래도 당신의 자식입니까?”하고 참소합니다. 하나님은 그 두 가지에 걸려 꼼짝을 못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창조 동기가 심정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심정의 부모이기 때문                    

하나님은 심정의 부모이기 때문에 원수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만일 원수를 치면 순간적인 화풀이는 될지 모르지만, 그 원수의 부모가 당하는 심정의 고통, 상대가 당하는 심정의 고통, 자녀가 당하는 심정의 고통, 형제와 친척이 당하는 심정의 고통이 더 큰 것을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원수를 칠 수가 없습니다.

 

원수를 치면 원수를 인정하는 것이 되기 때문             

원수를 치면 원수를 인정하는 것이 되기 때문에 하나님은 원수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창조이상에는 원수라는 개념이 없습니다. 그런데 원수라고 해서 사탄을 치면 하나님 속에 원수라는 개념이 생기게 됩니다.

 

하나님에게는 원수라는 개념이 없습니다. 만일 사탄을 치면 원수를 인정하는 꼴이 되기 때문에 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탄을 치지 않고 자연 굴복시키는 섭리를 해 오셨습니다. 그 기간이 6000년이나 걸렸습니다.

 

                    참고 3

 

        사탄이 되는 동기

 

천사장 루시엘이 사탄이 된 동기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하나님과 같은 입장에서 사랑하지 못한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도 하나님처럼 사랑하지 못하거나 사랑의 소외감이나 사랑의 감소감, 또는 어떤 섭섭함을 느낄 때 사탄이 되기 쉽습니다. 그러니까 어떤 경우든지 사랑의 소외감, 사랑의 감소감, 섭섭함을 느끼면 절대 안 됩니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하나님처럼 사랑해야 합니다.

 

사랑의 감소감을 느낀다든가, 섭섭함을 느끼면 바로 사탄의 주관을 받는 동기가 됩니다. 악령들이 우리에게 들어와서 우리가 하나님 편에서 일할 수 없게 만듭니다.

 

 둘째, 자기의 존재위치를 떠난 것입니다.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절대 자기의 존재위치를 떠나면 안 됩니다.

 

천사장은 사랑의 감소감을 느껴서 자기의 존재위치를 떠났습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서 불평하고 불만을 갖게 되면 바로 그 자체가 존재위치를 떠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원리에서는 우리가 모를 때는 의심하거나 불평하지 말고 때를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때가 되면 가르쳐 주게 되어 있습니다.

 

지금 때가 되었기 때문에 ‘원리본체론’도 밝혀서 이렇게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30년, 40년 전, 당시에는 ‘원리본체론’을 내놓을 수 있는 환경이 안 되었기 때문에 ‘원리해설’이나 ‘원리강론’을 세워 교육했습니다. 이제는 ‘원리본체론’을 교육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원리의 본체가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을 모르고서는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알고 보니 원리본체이신 하나님도 절대생식기를 가지고 계시고 절대생식기의 본체로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 기준을 잃어버린 것이 바로 인간의 타락입니다.

 

 셋째, 역주관(逆主管)하려고 한 것입니다. 역주관이라는 말은 질서를 무시하고 자기 생각대로 행동하는 것을 말합니다.

 

원리에는 질서가 있습니다. 그 질서를 누가 세우느냐? 하나님이 세웁니다. 그러니까 어린아이 같은 사람이 후임자로 오더라도 하나님이 세웠으니 그 사람을 존경하고 깍듯이 모셔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 생활을 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만일 하나님이 세운 목회자가 부족하다면 가르쳐주고 그를 도와서 자신보다 더 성숙한 목회자가 되어 하나님의 뜻을 받들 수 있도록 길러줘야 합니다. 그것이 목회를 했던 사람이 가져야 할 진정한 목회자상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질서를 자기 마음대로 무시하면 안 됩니다. 우리는 아직도 사탄의 속성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을 유출하고 발동시키지 않기 위해서는 절대신앙·절대사랑·절대복종으로 생활해야 합니다. 그래야 자신이 절대주인이 될 수 있습니다.

 

                                참고 4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결론은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입니다.

지금까지는 내가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어려울 때마다 하나님을 부정하면서 자기 식으로 돌아갔습니다. 마지막 날에 하나님께서 “내가 너를 한 번 믿어보자.”라고 하십니다. 이제는 하나님이 믿을 수 있는 내가 되기를 바라신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살아오면서 끊임없이 내 고통, 내 사정을 하나님 앞에 고했습니다. “저의 사정이 이렇습니다. 저를 좀 구해주십시오. 제 심정이 이렇습니다. 저희 가정이 이렇습니다.” 이것을 붙들고 하나님께 매달렸습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에게 역사성을 지닌 고통이 있는 것을 몰랐습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 당신의 심정 속에 사무친 고통이 뭔가를 알았으니 제가 아버지의 한 맺힌 심정을 해원하겠습니다.”하고 기도했는데 알고 보니 인간 때문에 하나님이 고통을 당하고 계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하나님을 구해드려야 합니다. 그것이 참부모님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근본 신앙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