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리원본 - 第五編 理想攝理 - 第三章 - 歷史的 실두루머리 原理的 解決은 韓國에서 始作 (1

2013. 1. 7. 11:05참사랑 영원까지/원리원본

第三章 歷史的 실두루머리 原理的 解決은 韓國에서 始作

 

第一節 歷史的 실두루마리의 原理的 解決은 韓國에서 始作

 

 歷史의 실무더기는 하나를 端緖로 하야 始作하고 돌고도라 지내서 六千年 年限을 두고 도라 왔지만 始作된 끝과 終熄되는 끝은 自由롭게 감기어 나온 것이 아니매 트러지고 웅크러져 始作과 끝을 잡을 수 없는 두루뭉시루된 歷史의 實狀은 누가 탄식치 않으랴. 이 嘆息을 햇치러니 現實과 지내온 歷史와의 알 수 없는 흥크러짐으로 나온 것에 對하여 이 두루뭉수리 된 歷史의 끝을 잡아 終熄点을 찾아 한 自由의 실무더기로 만드려 보려고 所望하여 나온 바가 歷史的 所望城으로 되어 뜻 있게 왔든 聖賢과 偉人烈士들은 이 길이 잠겨진 端緖의 한 끝을 잡아 단겨보나 제 멋대로 웅크러진 실무더기는 自由롭게 나가게 한 뺨의 길이도 融通 못하니 이 끝을 잡고 나타났든 偉人 聖賢들은 絶望과 함께 嘆息의 惡憂의 根據地로 저주하고 나니 이 실무더기는 如前히 廻轉을 繼續하여 變함 없는 하루의 延長을 웅크러지면서 굴러나오고 있다.

 

 이 흥크러지진 歷史的 실두루마리를 골라 펴놓아 自由의 실 두루마리로 하고자함이 歷史的 要求였고 굴러 나가는 未來의 要求에도 된다. 이 실두루머리가 自由端緖로부터 自由 終熄点까지 남길 수 있는 실두루머리를 本來부터의 原理를 가지고 存在하는 실두루머리의 目的이었건만 存在할 수 없는 흥크러짐의 모양이란 全部 全體에 對하여 存在의 實狀이 실두루머리를 슬프게 하는 矛盾의 始作이다. 이 始作은 存在하는 價値性을 破壞하여 찾을 수 없는 隘路의 무더기로서 그 眞狀으로 그 眞狀은 全部가 원한의 根據地로 되어 死亡의 구렁텅이로 通하게 되는 처량한 모습으로 變하여 나왔다. 그러면서 人間들은 찾고 찾아 始作된 端緖와 끝 된 端緖를 찾아 당기어보니 당기면 당길수록 실무더기는 옮으로 되어 한 덩어리 罪의 두루뭉수리로 되어 당기는 者의 멋대로 이 실무더기는 움직이게 되니 끝은 있으나 그 繼續은 그 繼續을 連한 실무더기로 한 갈래 갈래에 連하여 있는 실 모습도 찾아 볼 수 없이 한두루뭉시리도 보이게 되니 끝을 잡고 있는 者들의 마음대로 끌리어 당기는 두루뭉시리의 놀음 노리가 오날의 歷史의 表現으로 된 現實의 實狀이다.

 

 始作한 첫 끝을 잡으려할 때 唯心의 門은 열리게 되고 나종의 끝을 잡으려 할 때 有物의 門으로 通하게 되니 始作의 門을 나온 歷史의 出發은 굴으기 始作하는 路程을 取하여 꼬부라지고 웅크러진 軌道를 잡아 굴러나와 돌고돌아 두루뭉수리의 길을 잡고 나오고 있으니 뒤를 도라 보아도 흥크런진 실무더기료 앞을 보아도 흥크러진 실무더기니 이끝 저끝을 헤아릴 수 없는 한무더기를 이루어 나종 끝으로 쥐이게 되는것이 有物의 門으로 寄着点을 잡게 되어 있는 바가 歷史的 실두루머리며 人間世界의 실두루머리인 바다.

 

 처음 잡고 있는 者가 唯心이요 나종 끝을 잡고 있는 者가 有物이니 서로 당기어 이 실두루머리를 自己便으로 가까이 옮겨 놓으려고 하고 있으되 옮기면 옮길수록 自己에게 가져 놓을수록 옮겨지는 自體에 대하야 한끝은 反作用의 原理에 比例되는 力의 作用을 받게 되니 하날 당기면 相對便이 헤기우고 相對便이 헤기우면 이 편도 당기어져 漸漸 疑心하게 웅크러지는 것은 두루뭉시리의 실무더기뿐이다.

 

 이것을 풀려하는 人間에게 있어서는 唯心的 끝의 部分과 有物的 끝의 部分만이 原理線인 모양으로 보게됨에 唯心은 唯心便에서 解決向線을 向하여 나오고보면 有物에 固着되어 당기여 있는 실두루머리를 逢着하고 有物에서 自由向上을 찾어 올라가면 唯心便에서 당기고있는 실두루머리에 逢着하게 됨이니 唯心에서 有物로 通하여야 하는 것이 原理의 끝을 가진 連하여 있는 실두루뭉시리의 路程을 通하여야 만이 되겠고 有物에서 唯心으로 通하여야 하는 것이 原理인데 이 두루뭉수리 된 실무더기를 通하여야 만이 끝에서 끝을 通하는 바인데 이 두루뭉수리의 通하는 길을 찾어보려 요길도 고길같고 고길도 여기 같아 붙잡을 수 없는 形狀을 取한 路程이니 通하는 길을 잡을 수 없으매 이 두루뭉수리의 路程은 除하여 놓고 끝만으로 보여주는 그 自體들 만으로 갖고 처음과 始作으로의 맺고저하니 唯心便만으로 하고 보면 唯物이 달려오고 唯物便으로 하고 보면 唯心이 달려오고 하는 것은 흥크러진 실무더기가 나타날 未知의 路程으로 그 存在를 갖고 있기에 그 取하는 自體들의 始作 끝에는 自然的 膳物로서 보여줌이 아니겠는가. 이것을 풀기 爲할려는 것이 人間의 理想인 同時에 創造主의 바라는 바의 所望이며 두길을 그냥 잡고 있어서는 풀 길이 萬無하므로 한 끝만을 固着시켜놓고야 만이 다음 끝을 되풀이한 路程을 反駁하여 풀어 올라가야만이 될바가 至今 실무러기를 풀려고 하는 것이 現時的 課業이 아니겠는가.

 

 그러니 한 끝을 놓아야 하겠는데는 造物主가 계시므로 뿌리되는 唯物論的 根據를 놓을 수 없는바다. 이를 놓으면 中心을 잃어버린 存在物과 같이 居處없는 方向線을 取하여 回轉하다가 破壞를 이루는 것이 原理的 事實이며 葉部인 唯物論的 事實이 놓으여야할 責任이 自然的 公式原理로 되는 바다.

 

  그럼에 두루머리의 現實의 歷史的 潮流는 한 基着点을 보아야 할바가 要求되는 路程으로 나타난다. 그러니 創造主가 있다 할진대 必然的으로 끝을 잡고 잇는 唯物的 固着点은 끊게 되어야 되는바가 原理로 되는바다. 그렇게 하면 이 두루뭉수리는 唯心便으로 옮겨 놓아 創造主인 根本体 앞에 나타나게 될 때 이 실두루뭉수리의 端緖로부터 낱낱이 골라놓아 歷史的 路程에 펴 놓아 唯物的 根據地까지 一年線 路程으로 펴 놓을 수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는 卽 歷史路程을 主管하여왔든 主人公이기에 이런 실무더기의 흥크러진 通路를 움직여 나왔기에 이것을 풀수 있는 存在는 基本되는 創造的級에 屬하는 하날 存在가 아니겠는가.

 

 이 目的 課業을 감당하기 爲한 그 存在가 歷史的 中心存在며 原理完成할바도 말할바 없는 바이다. 그러므로 이 存在도 하날적으로도 中心存在요 歷史的 人類에게 對한 中心存在로 되는 바는 事實이다.

 

인간은 그저 人類의 歷史的 실두루뭉수리를 푸는 그 中心存在를 所望城으로 하여 그의 뒤를 連하여 풀어야 할 第二次的 立場에 세우려 하여서 創造主는 그 中心存在로 因하여 풀수 있으며 뭇 人類에 對하여 이 存在에게 合하여 하나되라고 要求한바도 보내신 存在가 卽 그리스도 예수이었다. 예수는 이 全部의 路程의 目的을 풀수 있든 길을 다 잡지 못하였기에 再臨이라는 名詞를 남기고 가게 되었다.

 

 그러매 歷史的 모든 人類는 예수를 中心하고 설수 있게 되며 다시 人類 앞에 남아진 根本의 路程을 밝혀주어야 할 하날의 責任이 있기에 다시 地上에 나타나 原理의 路程을 찾어 주어야 하겠으니 地球上 남어져 있는 唯物史觀을 通하여 役事하는 사탄의 固着점을 끊어야 할바이니 이것이 끊기어야만이 하날의(創造主)의 뜻대로 이 실두루마리를 풀 수 있겠으니 이것을 取케 하는 것이 終末審判의 劃期線이다. 그리하야 한끝을 끊었으니 하날은 自由로 原理路線을 찾아 展開시킬 수 있겠으며 이 뜻 目的을 두고 보내심의 그 存在가 나타나여야 할 再臨主의 存在이다. 이로 因하여 끝에서 通할 수 있는 웅크러진 실무더기를 펴 놓은 自由路程을 建設하는 目的의 完成을 볼 수 있음으로 墮落이 없었든 그 原理的 世界를 門으로 하여 온 人類가 이로 因하여 웅크러졌든 실무더기를 보지 않든 끝에서 끝을 通할 수 있는 自由路程을 取할 수 있는 原理를 다시 찾어 이룰수 있는 것이므로 復歸라는 名詞로 完成되어 無限히 通할 수 있는 始作点부터 終熄点까지 通하여 거리낌 없는 向線으로 다시 始作点의 企劃을 보게 될 때 原理的 路線을 完成되므로 永遠히라는 바는 自由原理인 것이다. 이 路線에 선 者는 始作과 끝을 잡은 者로서 처음과 나종을 通할수 있는 要素로서 알파와 오메가적 理想을 完成하여 原理脫線 없으면 永遠 自由向線에서 活動할 수 있는 解放 存在로 하게 하고저함이 人類 對하여서 約束하였든 中心存在로 因하여서 누구가 解決짓지 못하든 웅크러진 실무더기를 헷치어 原理的 路程으로서 建設할려니 歷史的으로 未知였든 端緖的 路程이 보여지어 萬原理와 通할수 있는 共通基点으로 되어야 할바이므로 흥크러진 歷史的 실두루머리를 解決할수 있는 바이다.

 

 그러니 누구나 이 基盤 우에 서서 自由理想을 復得하게 될 때 至今까지 원한의 根據地로 움직여 나오던 廻轉은 變하여서 所望의 廻轉으로 永遠無限世界로 向進할바가 目的으로 되었다. 至今 이와같은 原理世界를 目的하는 우리에게 있어서는 서 있음을 忘却하여서는 아니된다. 至今보면 두 路線은 非原理로 出發한 膳物로서 나타나는 結果的 路線이니 原理的 唯心과 非原理的 唯物이 相隔을 取하여 두루뭉수리인 실두루마리를 中間에 놓고 自己便으로 (右, 左. 上, 下) 당기고 있는 現實的 實狀이니 어찌되어야하는 結論은 各自의 推測으로 맡기이고 同一한 答으로 나타날 바이다. 지금 地球上에 唯物主義가 나타나서 모든 原理的 眞理라고 말하는 바는 한끝만 쥐고 두루뭉수리를 中間에 놓고 한끝의 部分인 엉크러지지 않는 部分을 全部로 되어 있다. 卽 解決해야 할 실두루뭉수리를 모든 基本의 中心으로 하는 物質格 中心地로 잡고 잇다. 그러니 여기에서 連絡되어 있는 唯心的 한 端緖의 立場을 잡지 못하는 末級的 段階에서 論理라는 事實을 摘發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主義를 根本的으로 破壞시키어 실두루머리를 通過하여 唯心的 端緖의 起着点을 連하게 하여주어야 할 使命的 潮流時代가 現 潮流的 象徵인바다. 歷史는 始作하였으며 完成의 目的을 向하여 움직이고 있나니 이 右左의 判結을 짓는데가 原理上에 나타난 非原理始作의 完成期이다. 그리하여 새로운 原理世界를 出發을 보아야 할 것이 地球上 한 基点을 中心하고 나타나여야 할 바가 要求되는 바이다. 여기에 非原理的 時代로부터 原理世界에 드러서게 될 때는 前에 論한 歷史的 起點은 作定하여야 할바이므로 原理와 非原理와는 相對를 지어 한 線을 境界로 하여 對陣하지 않을 수 없는 中心線 起點으로 된다. 이 起點의 立場이야 非原理의 最高部의 末路이며 原理인 始作의 起點인바도 事實이다.

 

러므로 世界上에 이 起點地帶도 새 出發의 起點地帶로서 나타나야 할바가 根本으로 되어야 할바는 事實이다. 그것이 卽 歷史的 所望의 터요 希望의 터이었다. 卽 非原理存在인 사탄과 原理存在인 하날과 決戰할 勝敗를 決하는 起點地라는 바는 事實이다. 그러기에 起點地부터 歷史的 새로움의 端緖가 始作되어야 하는 바가 歷史的 要求로 바라든 所望의 始作이라는 것을 아러야 한다. 至今이 起點線上을 分立하여 싸우게 하는 中心起點과 그 線을 世界上에 찾어보게 될 때 韓國이라는 나라를 起點으로 하고 三八線이라는 線을 分立으로 하여 歷史的 終止符를 찍고저 하는 일이야 말로 人類의 서러움과 悲哀의 起點이 되는 同時에 幸福과 기쁨의 起點이 되어야 한다는 原理的 結論上을 離脫할 수 없으며 그 起點을 向하여는 하날이 總動員하는 起點임은 事實이다. 그 反面에 惡이 總動員하여 나타나는 起點임은 事實이다.

 

이 原理的 對峠戰을 바라보는 世界人間들은 不安으로 바라보아야 할 焦點地라는 것은 사실인 同時에 反面에 希望의 焦點地라는 것도 事實로 되어야 하는 바가 事實이매 世界上에 없는 새로운 事實들이 이 起點地 韓國을  中心하고 이루어 진바는 우에서 論한바 없는 事實이다. 그러매 世界平和의 새로운 構造로 된 UN은 韓國에서부터 그 出發을 보는 바이고 反對인 共産衛星國家도 韓國을 對하여 相衝을 보지 않으면 아니될 歷史的 攝理路程의 根本地로 되기에 이러한 現象을 展開하는 바이다. 그런고로 韓國平和는 世界平和의 起點되는 韓國으로서 되어야 하며 韓國戰爭은 世界戰爭으로 나타나는 바가 結論的 目的으로 되는 바이다.

 

 이 韓國은 하나님과 사탄과 人을 中心하고 對峠되는 戰爭이며 그리스도의 理想을 出發볼수 있는 解決짓는 根本의 戰爭이매 하날의 總動員하야 그리스도를 中心하고 이루어지어야 할 사탄 根本追放으로 하는 審判目的完成하는 根據地이매 聖經完成하여야만이 하나님이 攝理아여오든 歷史的 새로운 出發은 基臺잡을 수 있는 바이므로 하나님을 中心한 世界人은 總合하야 하날 直接主管으로 나타나야 할바가 目的이므로 韓國 戰爭中에 歷史上에 보지 못하였든 그리스도의 空中現顯함이(基督新聞 發表 一九五一年 十月 三十一日 水) 神奇한 일로 世界 사람은 생각하고 있는 바이다.

 

 이리하여 韓國戰爭은 世界戰爭으로 또 韓國 戰爭은 하나님과 사탄의 戰爭으로 旣必코 勝利할 綿羊的 하나님 便되는 UN機構는 山羊的 共産國家를 敗亡시킨 後에야만이 平和理想을 始作하는바가 原理로 된다. 이것은 사탄이 最後屈服이므로 完成되는 同時에 非原理的 歷史를 終結짓는바이다.

 

그리하여 새로운 原理的 平和理想을 中心한 新天新地의 新世界는 希望의 世界란 展開를 볼바가 原理的 根據点으로 되어 있다. 이리하여 흥크러진 歷史的 실두루마리는 原理 根據点으로 되어 있다. 이리하여 흥크러진 歷史的 실두루머리는 終止符를 찍고 始作 끝에서부터 나종 끝으로 通할 수 있는 한 回路的 理想을 完成할 수 있고 理想論을 中心한 善의 世界의 目的을 中心하여 唯心 唯物의 分別없는 一體的 目的을 完成하여 丹和世界를 建設하여야 할바가 하나님이 바라는 바의 目的이며 또 人類가 질머진 課業으로 되어있다. (1951年 11月 18日 아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