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리원본 - 第五編 理想攝理 - 第一章 - 創造性 復歸로 된 理想論

2013. 1. 7. 11:08참사랑 영원까지/원리원본

第 五 編 理想攝理

 

第一章 創造性 復歸로 된 理想論

 

本來 하나님이 天地創造할때에 어느 存在物이라든지 全部는 相對할수 있는 存在를 對케 하여 지으심이었다. 被造物중에 相對할수 없는 格없이 지은 것은 없다. 直接으로 對한은 相對格이라든가 間接的이라는 相對라든가 全部 어떠한 相對位置를 잡고 있는 同時에 그 相對들로 因하여 自我의 한 完全造成을 補充하는 作用인 聯關性으로 天宙의 存在物들은 서로 相對를 要케 되었다. 그 相對를 잡으면 그로 因하여 自我를 中心하고 全要求의 한 目的成事를 始作하여서 自我아닌 他自我格으로 對象 存在格으로 造成하고저 그 目的의 作用을 始作케 된다. 그런고로 相對가 나타나면 그 相對는 나의 한 對象될수 있는 한 資格을 追窮하게 된다. 相對는 始作이고 對象은 自我를 中心하고 한 目的過程을 經過한 成事格이 卽 對象이다.

 

어떤 存在든가 全部는 自我의 幸福을 標準하고 對象格을 要케 된다. 相對없는 者는 存在의 價値기 없게 된다. 相對로부터 對象을 完成하면 할사록 그 價値와 幸福世界를 展開하는바다. 그런고로 天宙萬相은 全部가 對象格 體系內에서 完全對象의 한 始作을 보아야만이 理想이란 世界를 보는바가 事實이다.

 

어느 社會나 國家라든가 그 目的達成할 수 있는 對象境을 떠나서는 發達도 없고 理想도 없는 바이다. 그런고로 存在하는 그 自體는 理想境의 한 影体的 한 本理想体에서 보는 位置를 要하는 바는 必然的要求이다. 그런고로 我와 理想과는 하나면서 한 動作形線을 떠날 수 없는 同格 應할수 있는 한 要求的 立場에 處하는 바는 事實이다. 그 要求를 充當하여야 하는 우리의 使命이 每日 生의 한 課業이다.

 

이런 課業을 하게하며 達成케 할려니 나로 하여금 그 理想에 對하는 向心인 刺戟과 衝動心이라는 維持가 第一重要問題이다. 이 마음 없다면 理想과 나와는 벌써 成事할수 있는 길을 앓어버린바와 한가지다. 그러므로 마음으로 한 對象格位에 있어 그 理想을 成事할려는 衝動心이 作用을 갖게하는 것이 있어서만이 그 理想과 我와는 應線上格으로 되는 바는 事實이다.

 

그러니 우리 人間에는 언제나 向上을 標準하고 理想을 마음으로 自己도 아지 못하게 더 要求되는 存在格에 있다는 바를 否認못한다. 그런 그 作用心要素의 始作과 刺戟과 衝動의 始作을 至今나와 關係上에 있어 한 附合應線을 取하여지는 한 不可避한 立場을 體得하게 될 때 나는 벌써 더 높을 수 있는 한 要求에 應하는 第二 存在格에 處함은 事實이다. 그러니 要求에 應할수 있는 길을 잡고 나아간다면 그는 벌써 幸福과 함께한 理想의 興味를 體得할바는 事實이다.

 

그런고로 여기에는 벌써 人間은 創造的 原理로 完全을 標準하고 지었든 그 原理的 힘이 나와 聯하여 있기에 이 힘의 要求에 對象價値追窮이 人間이 理想을 生覺케하는 原因인바다. 이런 關聯된 自我라는 存在를 示定하는 곳에는 한 對象格 完成을 要케하는 位置와 立場을 떠나서는 그 根本原理와 配置로 된다. 그런 造化로 지음받은 人間이니 이 對象理想을 充當할 目的과 配置되는 立場에 處하면 自然的 原理 性品되는 良心的 追窮은 必然的으로 나에게 强하게 作用한다. 그것은 原理脫線이니 이를 保障하기 爲할려는 作用이 良心作用이다.

 

그런고로 우리 人生은 벌써 나아닌 한 本體를 中心하고 한 對象格 達成이 남어진 한 課業으로 아러야 한다. 이 對象格 完成이 卽 理想의 길인 同時에 幸福이 基本인바다. 나는 하날 對하여서 한 對象格存在로 基本하고 創造받았다. 그런고로 하날 對한 完全對象格 價値者로서 되었기에 하날의 要求하는 原理的 要求이다. 이 要求는 根本 힘의 作用과 共通하니 어느곳이나 通할수 있는 原理要素로 被造物世界는 共히 通하고 있다. 그러니 누구나 한 完全格 對象目的을 共通히 갖고 있는 바는 事實이다. 이 對象格을 하날 對하여 나 自體가 完全하는 同時에 現實界에 있어서는 相對格을 取하여서 그 目的을 한 回路的 路線格인한 딴 對象体를 成立하여야만이 本 하날의 對象價値와 合할수 있는 것으로 되어있다. 我는 하날 對하여 對象完成하는 同時에 相對性의 한 對象을 完全成事하여야 만이 根本과 合하는 三位一體格 한 回路를 造成코저함이 創造原性인바다.

 

그러니 良心的으로는 몸이 指向을 받고 다음에는 이와함께 우리는 相對性을 取하여 完全하나되는 對象格性 存在를 合體하여야만이 基本原理上線이 비로서 설수 있는 바이다. 그러한 곳에는 根本 하나님은 居할수 있는 創造原理的 基臺이다. 이런고로 이 基臺造成하는 것이 人間의 最高理想境으로 되어 있다. 그래서 人間은 흔히 말하는 理想의 곳은 어디나 하면은 良心理想要求本體와 合하는 곳이다. 卽 이 点은 모든 完成된 原理上点이니 幸福이나 喜樂이나가 全部가 始作하는 根據地다. 그런고로 基本理想은 卽 하나님과 同居하여 한 原理上에서 萬事를 바라볼 그때가 人間에게는 最高기쁨이다. 이곳에 處하면 지금까지 찾어올라온 한 絶頂上에서 處하여 昔日의 下部分 向하여 볼수 있는 그곳을 알게 될 때 모든 새 始作이 生活境地로 한 付與를 始作하니 卽 理想世界다. 그야말로 幸福世界다. 問題는 이 根本始作을 하여야 할 使命的 存在에 處하니 良心은 나를 因하여 完成에로 再促하는바다. 이것이 良心과 肉身이 相衝形體를 取케하는 原因인바다. 我 하나를 中心하고 보아도 幸福할려면 먼츰 마음과 몸이 하나되는 그 基点을 離脫하면 벌써 不滿이 始作한다. 이 角度가 甚할수록 苦痛이 甚하다. 이 角度 合하여서 한 目的基点上에 뜻 成事를 볼적에는 幸福이란 바는 事實이다. 그런고로 本來人間은 내가 마음과 몸이 完全 하나되어 良心要求를 肉體가 完全히 채워줄수있다면은 그곳은 벌써 原理成事이니 그곳은 卽 하나님이 지으신 根本形이니 이곳에는 하나님이 계실수 있는 時間이다. 이 時間이 長期間 維持할수 있는 生活形體가 理想生活이다. 그런 生活體를 取한곳이 卽 線한 곳이다. 線한 곳에는 하나님이 같이하면서 根本幸福要素와 合할수 있는 始作이다. 이곳을 人生은 잃어버렸든바다. 이곳을 다시금 찾어서 채우여야할 存在이니 어찌 良心的으로 그 目的達成을 追窮받지 않으랴.

 

그러면 하날의 要求成事가 始作하니 나도 또 하날이 줄바를 받을 수 있는바니 이곳이 卽 하날 對한 對像格 完成位置이니 그야말로 原理的인 곳이니 幸福이다. 사람은 本來 이와같은 理想原理上点에서부터 始作함이 根本目的으로 되었든바다. 그것이 墮落으로 因하여 이 基本原理点上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이와같이 한 根本体에 對하여 한 對像格 存在의 本路線인 根本原理를 復歸하여야 할 重要한 責任이 누구로 因하여 生起었나 하면은 그는 두말할 것 없이 非原理存在인 한 惡의 主人公 사탄으로 因한바다. 이 사탄 對하여 지금 우리는 아지 못하고 그저 自身自體의 不足과 未洽함에 嘆息을 하게되는 바도 사탄으로 因하여 너머 蹂躪받은 自體가 되어 感覺하지 못하는바다. 이와같이 根本對像的 位置를 잃어버린 人間이지만 그 根本良心은 우리로 하여금 根本 位置에 對한 要求를 始作하여 주기를 要하는 바다.

 

어떤 사람이나 全部가 自己가 第一이라는 한 個性要求를 세우고저 한다. 그것은 누가 갖지 못한 個性眞理体인고로 그 要性性品을 어느곳에서라도 한 相對되는 位置를 잡아 完全한 對像格 成事를 要케하고저 하는 第一原理本體와 合할려하는 第一基点을 잡고저 함에서 始作한다. 이와같이 根本 한 個性을 中心하고 한 相對始作의 完成인 對像格 存在性으로 完成만 하면은 그 基臺上에는 한 對像格 完成으로 原理路線上을 成事하는 原理的目的을 造成하니 그곳은 벌써 根本 創造原理로 나타난 바이니 線한 것이다. 그러니 하나님의 通性을 取할수 있는 幸福의 한 基点位置인바다. 그런고로 人生世界에는 누구나 自己中心 第一主義로 나아가는 바는 自己로 因하여서 根本基点上 原理位置를 取하는데는 第一가까운 距離를 自己가 누구보다더 가까운 바이므로 他中心하고 成事보담 自己中心하고 個性理想을 成事코저 하여서 自己 第一主義로 取케 하는바는 事實이다. 이것이 蘇生 長成 完成하여 한 目的達成하면은 그 다음은 第二次的 對像位置를 널리하여 全體 基本目的으로 延長되는 바다. 그런고로 第一 自己부터 始作하여 全體에로 完成理想을 協助하게끔 本來 人間은 되어있다. 그런고로 사람이 本來 이러한 基本原理上에서 지었기에 墮落은 되었을 망정 自我中心을 주로 하는 바는 사실이다. 純粹한 良心的으로 善으로 나아가는 곳이라면 누구나가 그 한 自體들 合하여 나아가면 언제든지 그 基本点上 善을 合하게 되는 바이다. 이러니 우리가 相對를 要케될 때 相對된다든가 相對안된다든가 하는 곳은 벌써 善한 理想이 始作인가 아닌가의 決定的 解決의 表示로서 보여주는 事實을 證據하는 바다. 相對된다 하면은 벌써 對像格位置인 한곳을 所望케 하여 주는 바는 事實이다.

 

그러면 善과 理想成事니 我에게 큰 기쁨의 始作이니 自己를 中心하고 이런 決斷을 짖게 하는 바다. 이런고로 사람은 自己를 닮아라 하는 相對格 存在를 占有할수 있어야 한다. 그러야만이 對像成事를 잡을 수 있다. 全人間은 善한 者를 對像하고저 하는 바는 自己의 한 目的達成을 速進시키려고 하는 바는 原理로 된 바다. 사람이 根本的으로 自己를 세워서 大衆의 한 中心되고자 하는 그 本心 마음은 我自身이 根本的으로 善하다는 한 根本体다하는 宣言의 表示인바다.

 

그런고로 이런 것보아도 나 닮아라하는 要求를 세우고저 하는바는 나는 本來 한 善한 標準上 存在라는 것을 宣布하는 것은 事實이다. 나와 合하면은 善할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것보아도 벌써 自己는 第一存在善境의 한 表示的 力活을 주어서 相對를 잡아 對像을 세워서 그 善을 直接 自己와 連結 짓고저 하는 第二存在 善을 目標하는 바는 事實이다. 그런고로 自我란 存在는 第二存在며 그 目的은 第一存在의 한 對像格의 存在로 되어야 된다는 바도 原理的으로 感觸받는 바는 事實이다. 이 事實만을 알게 된다면은 하나님에 對한 問題도 問題 外로 되게 된다.

 

 第一存在 善 + 第二 存在善 = 하나님 + 我 = 하나님 + 對像 = 하나님 +自己(我+對像)라는 表示로 規定도힌다. 第一 먼츰 問題는 自己다 내가 먼츰 第一存在의 完全 對像者 成事할 것, 卽 마음과 몸이 하나되어 善하여지는 基本点上 自己를 造成할 것이다. 다음은 이런 自己를 中心하고 第二自我格 對像格者 完成할 것이다. 이것이 始作하면 創造性이 完成된다. 卽 이곳은 男子면 女子가 要求된다. 相對로부터 對像追窮을 要케 된다. 다음은 이것이 基本的 創造性 第二 對像存在다. 하나님과 사람은 한몸이니깐 이런 基本原理로 되어 있다. 그런고로 獨身生活이란 바는 非原理가 存在하는 惡에 屬한 世界니 그런 것은 있을 수 있으나 理想時代가 되면 基本原理背馳行動이란 結論이 나온다. 다음은 大衆 對하여서도 한 相對로부터 그 어떤 目的完成할수 있는 이와같이 나의 한 相對로서 對像格的 態度로 對하여서 그 事業 目的인바다. 이러한 目的으로 한 相對로 하나님은 人生 對하여 對像 繁殖을 要求하고 第一存在의 善을 事業體와 自己 對하는 어데나 善한 것으로 하날과 合할수 있는 길을 造成하는 것이다. 이러여야만이 全天宙도 根本부터 사람과 하나되면 사람은 萬物世界上까지 하나되게 하믄 目的達成하여야만이 하나님이 善히 계시는 발등상이 되는 바이다. 이리하여 하나님의 根本 善理想展開를 第一은 사람이 重要한 位置에서 上으로는 하날 下으로는 萬物 右로는 家庭 左로는 社會 또 크게 보면 丹和世界에로서 根本創造理想造成이 目的인바다. 그런고로 我를 中心하고 自我 善으로부터 家庭善으로 事業善으로 이것이 第一責任完成함의 하나님의 創造한 對像善 目的인바다. 이와같이 全人類에게 要求하는 하날 第一世界의 要求이다. 즉 하나님의 要求目的이다. 世界 떠난 하나님은 世界上에 쓸대 없는 바다.

 

하나님= 全天宙= ①되는 世界가 善世界이다. 善은 하나님이시다. 善에는 性分別始作으로부터 個性完成으로 相對個性完成이 合하여서 한 回路의 造成으로 要求하는 根本存在다. 善은 對像位置確保가 要求條件이다. 이와같이 天宙는 相對性으로 對像으로 單位하고 全天宙까지 善을 造成하고저 함이 사람 創造면서 天宙創造이다. 사람은 天宙中心이다. 사람 中心하고 第一存在 하나님 사람 中心하고 第三存在 萬物이다. 하나님은 사람 通하여 善 繁殖始作하며 그 善을 사람은 個性善으로 萬物善까지 造成하여 善의 主管路線을 세우는 바다. 그러니 사람없는 하날 없고 사람없는 萬物없다. 사람이 天宙中心이니 사람 墮落하니 하날 嘆息이 生起고 사람 墮落하니 萬物嘆息生起였다.(롬8/18 참조) 이것 復歸事業의 目的이 하나님의 攝理이다. 至今 以上과 같은 原理를 보아서 우리 사람은 相對 될수 있는 第一資格成事가 무엇 보담도 貴한바다. 내가 하날 對하여 第二存在로써 第一 存在의 한 對像의 要求가 全目的됨은 事實이다. 그러니 相對할수 있는 位置를 取하여야 하겠다.

 

이런 立場을 取하는 것은 사람은 第一存在의 利用物인가 生覺하여서는 안된다. 이 相對의 要求는 第一存在目的 達成하기 爲함은 勿論이나 나로서는 完成하는 基本 完成이란 目的으로 되어 結局은 나 때문이라는 바는 事實이다. 하날의 要求하는 바의 目的은 주기 爲한 目的이고 나는 받기 爲한 目的이 卽 내가 하날 對한 相對始作으로 對像完成을 爲한 바다. 그런고로 하날은 주고저 하나 줄수 있는 相對없으니 그 얼마나 서러우랴 서러움이 生起는 것은 주고받고 할 存在가 없게 되는 것에서 始作이다. 이런고로 참주고 받고 하는 者의 要求로서 對像이 要求되는 바이다. 내가 줄적에 第二 나에게 준다면 거기에 벌써 기쁨이다. 그런고로 子女 對한 사람은 여기서부터고 男便 對한 사람도 여기서부터고 社會(事業體) 사람은 여기서부터고 하날 對한 사람도 여기서부터다.

 

이와같이 貴한 根本上 自我가 되면 참 받을수 있는 者이다. 上으로는 참주는 者를 갖고 下으로는 참 줄者를 갖었다. 이얼마나 幸福이라 아니하겠는가. 참주고 받을 곳을 所有한 者는 언제나 기쁨의 動力이 躍動하는 바다. 그 表示가 子女 對하여 주고싶고 夫婦는 서로 사랑하고 받고 하는 根本原理인 表示다. 이 모두가 完成은 하날과 合하여야 되는 바다. 하날은 發電所고 우리는 配電所와 充電所와 같고 만물은 需給所와 같은 것이다. 發電所 있는 配電所 需給地는 原理이나 이 中間 우리되는 配電所, 變電所 없으면 모두가 生命使命이 中斷인바다. 이와같이 주고받은 變電所 配電所의 位置가 卽 우리 人生이며 나이다. 이런 原因으로 받고 주는데 原理消耗없는 것을 바란다. 電氣로 말하면 損失없는 것을 要하는바와 한가지다. 損失이 많으면은 基本 電氣가 消耗된다. 損失은 그 導線物質로 因하여 右左되는 것이다. 이렇듯이 物質의 力되는 電氣를 잡아먹는 作用이 生起게 하는 敵 作用의 始作은 電氣要素를 反하는 作用을 갖고 있는 存在니 그런 損失을 갖어오는 것과 同一하게 우리는 電線과 같은 肉身을 갖고 있는 그 自體와 良心과 合하여서 完全하나되면은 良導體作用하는 것과 한가지고 그렇지못하면 不良導體와 같은 副作用 損失을 生起게 하게 하는 것과 한가지다. 그런고로 우리는 完全히 주고 받는 對像을 連續的으로 어떤 方面으로 한다면은 그는 다시금 主人에게 돌리는데도 損失없는 原理復歸가 成立하는바와 한가지다. 이와같이 完全히 받고 完全히 주워 돌리수 있다는 것이 第一要求目的인 同時에 善繼續이다.

 

電氣가 잘되게 하는 것이 電線類에 있는것과 같이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잘 成事케 하는 것이 사람에게 있는 바이다. 그러나 잘받으려니 잘 接觸하여 完全導體가 되어야 한다. 그런고로 하나님은 한 生命의 中心地이며 喜樂의 中心地이다. 生命中心과 喜樂中心은 하나님이시다. 하날 喜樂도 幸福도 모두가 하날사랑 받을 때에 始作이니 第一 要求가 하날사랑 받는 것이 目的이다. 하날 사랑 받으면은 幸福도 喜樂도 始作이다. 完全하날 사랑받으려면 완전히 받을 수 있는 資格의 成立이 要求되는데 사랑받으려면 받을 수 있는 美가 있어야만 완전 사랑을 줄수 있는 바다. 하날은 주고저 하니 愛이요 사람은 받으려니 美이다. 이와같은 相對要求成事條件이 始作은 愛였다면 美가 있어야 한다. 愛를 +라고 한다면 美는 -라는 相對存在다. 이것이 完全히 주고받는 것이 善이다.

 

 善=愛+美+(義)이다.

 

그런고로 하나님은 지금까지 찾고저 하는바는 美의 한 存在이다. 예수는 사람 中心인 同時에 하날 사람 代身者이다. 예수 보내심은 完全 하날 사람을 人間들한테 줄수 있는 基礎工作을 始作키 爲하여서다.

 

 예수 愛+ 我 = 善되어야 한다.

 

 그런고로 하날 對한 對像格完成 我가 되어야 한다. 그러니 我는 하날 사랑 對하여 받을 수 있는 美가 要求條件이다. 完全 사랑 對하여서 完全 美를 相對하여 始作을 보아 完全히 주고받는 一로 되는 對像存在가 손이다. 義라는 것은 무엇인가 하면은 相對를 決定하여 對像始作을 보아서 이루어 나가는 한 路程敵 要素가 義라한다. 예수도 義人은 없나니 한 사람도 없다 하심은 自己自身이 義를 세울 수 있는 한 相對者 始作을 보지 못함을 表示한바다. 그런고로 지금 天宙는 善을 完成할려니 사랑과 美가 生起여 義의 한 路程을 지어야만이 하나님이 理想始作이다. 우리가 하날 對하여서 美로워야 하겠다. 그러니 먼츰 原理로 돌라서는 것이 基本目的이다.

 

그런고로 良心理想存在 位置位까지 必要하다. 그러니 良心的이어야 한다. 그것은 몸과 마음이 하나되어야 한다. 我는 하날 對하여 美여야 한다. 그러면 自然的으로 사랑을 始作한다. 電氣의 한 原理와 같은 것이다. 完全 (-)가 되면은 자연적으로 (+)는 生起는 것과 한가지다. 原理的으로 美가 完全히 造成되면은 하날 사랑은 나와 하나되는 作用이 始作한다. 이 作用이 始作하여 繼續하는 것이 한 義이다. 이 作用이 繼續하여 完全 合하는 것이 善이다. 作用繼續하는데는 副作用을 이겨야 한다. 이것이 義의 使命位置이다. 義는 善한 路程을 結實하게 하는 要素이다. 例로 表示하면은 善할려고 하기 爲하여 사랑으로 美로 義로가 經過 合하여 一 되는 바다. 하날 對한 사랑 받으려니 아름다워야하는데는 여기에 良心 對하여서 몸을 그 良心에 中心하게 한 維持繼續하게 하는 것이 卽 義다. 그러니 하날은 第一存在 良心을 第二存在 몸을 第三 存在으로 하면은 義는 第一存在 사랑에 對하여 第二存在 良心과 合하게 하는 第三存在몸이 있는 바이니 이 몸을 良心要求되로 繼續維持하여 完全 美를 갖게 되어 完全 사랑을 받아 合하게 하는 其 第三 存在를 第一 存在까지 合하게 하는 要求가 義다. 이와같이 하날 사랑 받으려면 良心만으로 아니되고 몸이 合하여야만이 始作되는 바다. 이렇게 우리 사람에게는 三位要素 位를 세워서 一로 되는 原理 創造性이 있다. 義라는 것은 第三 存在 位置를 第一存在位를 屬하게 하는 基本工作의 實果이라는 바는 事實이다.

 

義는 몸에서 良心 合하게 하는 要素가 義다. 나를 中心하면은 한 對像을 對하여서 義하면 其 對像이 나와 같이 설수 있는 位置를 造成하여야 義다. 事業을 對하여서 亦是 나를 第二存在 位置 두면 第三 位置는 事業이니 이 第三 存在位置가 나와 하나의 位置繼續 取케하는 바가 義다. 義없는 곳에는 하날의 美를 造成 못한다. 그러니 하날이 나를 對하여서는 對像本體니 사랑이고 나는 美敵이고 나를 中心하고 對像格者에 對하여서는 내가 사랑이고 對像位置가 美이다. 義는 對像美를 造成하게 하는 平衡要素다. 그러니 義라는 것은 나로 하여금 維持하는 生活이 要求되는 重要生活이다. 義라는 것은 나로 하여금 第三存在가 完成造成이 되어야 되는 한 分立性 對像 造成目的으로 因하여 必要한 바다.

 

人間社會에서 義가 第一 나와 直接的 關係의 位置에 있는 바다. 나도 먼츰 마음 中心하고는 몸 自身 中心하고는 對像으로 對像中心하고는 萬物世界로 이와같이 關係的 因緣을 中媒하여 주는 그 自身은 義라는 存在다. 義는 完全美를 造成하는 한 基本에 向하여 移動하는 長成要素이다. 그런고로 完全 사랑과 完全美가 造成되면은 完全義는 造成되는 바면서 善은 完成된다. 例를 들면은 10 사랑을 줄려고 할적에 10 美를 보고 주어야 한다. 10 사랑 받고 10 美를 돌리는 完全 一되는 한 回路를 造成하여야만이 善인 것이다. 義는 完全 사랑에 對하여 完全美를 維持하게 하는 過程이 義의 分擔過程이다. 그런고로 美의 位置는 加減的 움직임이 있는 바이다. 義와 不義와는 한 境界線上에 서 있다. 그런고로 對像格 右左如何로 사랑과 合하여 善成事右左하는 重要位置가 美的 位置이다.

 

그러니 義는 한 基本善中心体 모양과 같은 것으로 나에게서는 作用한다. 줄래도 對比되는 美를 보지 못하고 주는 하날 存在는 不義인 行動으로 된다. 그런고로 하날 사랑 받는 者라면은 주는 것도 하날化하는 基臺線上에 서서 만이 된다. 그런고로 우리 人生앞에 舊約時代는 行義로 新約時代는 信義로 成約時代는 侍義로서 한 人類生心中心으로 되었다.

 

例圖를 보면 사랑 線과 美線과는 對像되어 한 回路를 造成한다. 義는 한 中心 B 点이 되어 A, C를 連結한다. 이와같이 한 線上에서 설때에 善이  

 

   A        ㄱ                                                    愛

 

     B        ㄴ                                                  義

 

 

 

   C         ㄷ   ㄹ                                             美

 

成立된다. 한 目的 對像 取하면은 義를 中心하여야 始作된다. 한가지 目的을 이루면은 其目的 終結을 짓는다. 卽 圖面 A, B, C 線을 중심한 한 回路는 造成되어 善成事한다. 다음은 딴 目的物 對할때도 전번 義를 基臺로 하여 美를 찾게 된다. 그런고로 전번 義와는 繼續하여야만이 따른 뜻 成事美로 이룰수 있는 連結線을 造成한다. 圖示 ㄱ, ㄴ, ㄷ 線 善 回路完成하고는 ㄱ, ㄴ, ㄷ 線으로 他에로 始作하여 언제나 永遠 標準 善 完成 目的을 要求하는 回路를 永遠繼續하고저 하는바가 人生 生涯의 目的이다. 이와같이 하날 對하여 美로 始作成事가 始作되어야 다른 相對를 取하여 사랑격으로 對할 수 있는 바이다. 그것은 하날 사랑과 合하는 美를 찾었든 資格者니 善 所有者라는 立場을 復歸하는 바이다. 그리하여 對像格者를 나로 因하여 세우면 理想始作이다. 그곳에서 하날 사람 代身 사랑으로 夫婦 사랑 子女사랑을 取할 수 있는 資格者다. 그리여야만이 하날 기뻐하고 나 기뻐하고 對像者 기뻐하는 第一 第二 第三 存在 全部가 기뻐할 수 있는 한 目的 回路線上을 完成하게 될 때에 善한 家庭이라 하는바다.

 

善한 我 中心한 善한 家庭으로부터 善한 社會始作이니 여기에는 義의 事業이 要求케된다. 그런고로 我中心하고 그 事業을 한 美로서 보면서 한 對像格的 善을 造成하여야 하는 한몸 代身的 마음으로 對하여 한 美의 對像格 事業 始作이 造成하여야 만이 義의 事業이다. 그런고로 한 代身 나의 事業의 結果를 가져온다. 그 事業은 그 사람이 代身이니 한 連結된 義를 中心한 한 目的上에서 있기에 義와 善을 標準하고는 하나라고 表示하여지는 것이므로 事業은 그 本人代身이라는 바다. 그려면은 온 天宙는 한몸과 같은 構造로써 되어 있다. 物質世界로 한 하날의 表示体이니 하나님의 한 솜털과 같은 것이다. 그런고로 사람은 事業을 通하여 生活을 始作하여 사랑 成事目的과 理想合하븐 그 理想을 세우는 것이 우리 生活上 中心이다.

 

그러니 義의 事業이 美를 造成하는 것이며 善을 造成하는 中心도 된다. 내가 中心도 되고 事業이 中心도 되고 하날이 中心도 된다. 이것은 한 回路잡고 되어있기에 始作하면 善이나 義로만이 始作하니 그 線上에서 어데나 同姓要素를 感覺하니 그 中心도 各位置한데로 表示도 된다.

①  ②  ③ 이와같이 自由基臺線上을 어데를 脫線하여도 우리 良心苛責이 始作된다. 家庭이나 社會나 나혼자나 全部가 한 回路線上에 있다는 結論的 存在니 그 自然法理와 같다. 그런고로 理想家庭을 生覺하기 前에 理想 사랑 받으라. 다음에는 理想事業하여라. 그러면 理想家庭도 必然的으로 維持하는바다.

 

人間世上에는 먼츰은 理想같은 것이 漸漸가다가 中斷되나 하면은 基本原理를 脫線하는 行動으로 因하여 基本理想 向上 要素가 그 良心 苛責으로 因하여 長成하지 못하고 中斷됨으로 始作이라는 바는 事實이다. 그런고로 이 根本原理上에서면은 始作과 同時에 永遠標準理想하고 나아가는 바다. 그런곳은 사랑이면 永遠이고 義면 永遠 標準한 義로서 繼續하고저 함이 根本이다. 그런고로 하날뜻 合한 사랑부터 理想家庭復歸로 理想事業復歸로 第一段階를 天宙之間 始作보고저 함이 하나님께서 創造하신 創造目的이다. 이곳이 自由理想世界다.

 

사람은 하날 對하여서 愛로 對하여 주기를 바라서 사람을 中心으로 온 天宙 和動하는 作用 始作이 理想論의 結實目的地다. 그리하여 온 天宙는 하나의 뜻으로 始作하여 乃終으로 또 始作으로 하여 알파와 오메가的 原理成立을 보는 同時에 萬世前 理想實現인바다. 하나님은 이 目的을 人間들 向하여 바라는 바를 알고 成事하여야 한다. 이 크나큰 理想의 根本을 사람 對하여 付與하였고 땅에서부터 하날로 延長으로 永遠生活始作하는 者가 되어지는 幸福의 創造攝理를 누가 感謝치 않으랴. 이와같은 生活하는 자라면 하날은 我를 中心하고 敎示하면서 모든 것을 指導하는 한 目的이 始作한다. 그런고로 이 原理 上 理想은 하날의 中心存在인 한 存在 再臨主 中心하고 始作을 보는바는 事實이다. 그런고로 再臨主와 合하여 뜻 成事하는 世界子女가 되어지는 것이 하날의 한 所望인바다. (51. 6.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