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리원본 - 第三編 復歸攝理 - 第三章 第二次 하날 뜻 成事責任使命者로 오신 예수의 責任分擔 攝理期間에 대한 根本意義 (7)

2013. 1. 7. 11:16참사랑 영원까지/원리원본

第七 節 나를 더 사랑하라는 根本意義

 

 지금까지 不信世界에서 信仰世界로서 出發할려고 하려면은 誰보담도 예수 自己를 사랑치 않으면은 안된다는 原因의 程度는 如何인 程度까진가 하면은 聖經에 말하기를 “ 我가 世上을 和平케 하려 온 줄로 知지말라. 和平케 하려온 것이 아니오 兵器를 起기로 來노라. 我가 온 것은 子이 父와 不和하며 女이 母와 不和하며 婦와 姑와 不和하게 함이니 人의 仇가 其家內의 食口니라. 父나 母를 愛하기를 我보다 더하는 者는 我에게 合當치 아니하고 十字架를 負고 我를 從치 않는 者는 我에게 合當치 아니하고 自己 生命을 惜하는 者는 特以 失코 我를 爲하야 生命을 失는 者는 特以 索하리라 하시었다.

 

 이와같은 말삼을 宣布하심은 예수 當時 時代的으로나 모든 方向으로 보아도 容恕할 수 없는 一大 革命的 宣布이었다. 지금까지 사람들이 生活하여온 全部가 하나님의 뜻 成事할 수 있는 家庭이면서 하날뜻 成事할 수 있는 家庭이냐하면은 그렇지 않다. 前日의 그 家庭은 全部가 사탄의 뜻과 理想을 發展시키는데 도움을 推進시키는 길인 同時에 하나님 앞에는 미워하는 그 家庭이었고 그 生活舞臺

이었다. 그런고로 지금까지 사랑하든 父母, 兄弟, 妻子들은 사탄이 기뻐하는 生活의 사랑 舞臺이었다.

 

  그런고로 하나님이 사랑할 수 없는 家庭이었다. 하나님이 善義를 높여 찾고저 할적에 惡의 屬한 터를 지나서 善에 屬할 수 있는 곳이 始作되어야만이 始作하는 바이다. 지금까지 家庭生活하면서 살던 너희가 그 家庭을 사랑하는 마음이 예수 믿고나서 예수를 더 사랑하여만이 하날의 한 뜻 成事의 뜻을 볼 수 있는 한 뜻이 있는바이다. 10程度로서 예수를 사랑하면은 昔日 사탄 사랑함을 比하는 級까지니 그런고로 昔日 사탄의 舞臺에서 사랑하든 以上의 사랑이 없다면 하나님은 사탄 取하든 한 터위에서 始作하는 樣이 됨으로 昔日 10 사랑보담 남을수 있는 10以上의 사랑이 始作되어야 하날 사랑할 수 있는 한터를 잡을 수 있으니 예수는 사랑할래니 이런 矛盾과 같은 한 宣布하심이다. 10사랑이면 10사랑으로 蕩減하고보니 아무도 남지 않는 樣이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善한 것으로 한터의 사랑 部分이없기에 10사랑 以上을 要求하심은 全部가 하나님 사랑을 注入하고저 하는 根本意義가 있는바이다. 이 部分이 始作됨으로 所謂 重生이 始作의 基本點 始作과 같이 하날 사랑 對하여 生命 始作의 基因을 보니 이런 時期에 難한 宣布가 卽 사랑에 對한 宣布이었다.

 

이와같이 하날사랑 찾어나서니 사탄은 極的으로 그런 路程을 지키려니 食口를 通하여서 對立케하는 工作이 始作되니 卽 사람 中心하고 하나님과 사탄의 對敵을 보니 直接 仇가 家庭食口라고 하심의 直接對仇者된다는 基本原因이었음이다. 그러나 그것 問題하지 않고 한 十字架가 될지라도 끝까지 生命다하여 勝利하여야할 人生의 根本義務的 關係를 打開하여야할 根本的 意義였다하심의 意義있는 한 宣言이었다. 이런 信觀 目的을 達成하는 信仰 生活者가 몇 名이나되는가. 傳하여야할 예수의 心情과 받으여야할 人間의 責任的 使命의 一로써 世界가 始作을 얻는 때가 언제일까하고 바라든 責任的 使命에 對하여서 얼마나 서러워 하였을까. 우리로 最後的 勝利한 十字架의 路程을 成事하는 것과 같은 뜻을 生覺하여서 사탄 敗케 하는데 如何한 十字架라도 개이치 않고 나아가는 者라야만이 예수의 弟子가 될것이었다. 또 新郞되어야겠으니 예수 對한 斷的 愛이 各自가 所有하여 하날 生命繁殖을 하여야할 責任이 있기에 이런 使命을 圓滿히 完成하기 爲한 宣布가 根本意義를 둔바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