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리원본 - 第三編 復歸攝理 - 第二章 第一次 하나님的 責任分擔 攝理期間은 노아부터 예수까지 (3)

2013. 1. 7. 11:22참사랑 영원까지/원리원본

第三節 모세에게 대한 하나님의 役事의 路程이 왜 예수의 路程 全貌되   는 理由

 

 위에서도 簡單히 表示하였지만 하나님이 本來 지은 것이 있기에 根本 責任存在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사람이 墮落한 後에 사람 지으심을 恨歎하시었다(창세기 6장6절) 하심은 여기에 基因되는 바이다. 其 外에도 聖經에는 하나님이 後悔하시었다는 말삼도 있는 적을 볼적에(사2/18) 하나님도 後悔와 恨歎하는 原因은 自己의 몸으로 되는 人間이기 때문이다. 卽 사람 잃어버린 것은 自己 몸을 잃은 것과 한가지었다.

 

 그런고로 사람들이 第一次 審判으로 因하야 全滅 當한 後 하나님은 다시금 恨歎하시어서 다시는 審判하지 않을 것을 宣布하심과 同時에 審判받게 된 最終局點은 自己가 지었든 人間이었는데 墮落되었음으로 審判이 生起였으나 墮落하게 한 사탄도 本來 하나님 自身이 지으신 存在로부터 始作基因이나 全部의 責任은 하나님 自身이니 사람을 다시금 찾아서 根本을 다시금 成事코저 한 目的을 두고 審判한 것이지만 다시금 찾으려 할 때에 하나님 自身이 直接 이 目的의 길을 닦기 爲하여서 노아 以後 아브라함을 通하여 모세를 通하여서 役事를 始作하였다. 卽 사람의 墮落의 第一間接的 原因은 하나님이고 그 다음에는 아담이고 그 다음에는 해와이라는 本來 墮落시킨 直接的 原因과는 反對로 하나님은 보게 되었다. 그래서 찾는 役事의 第一責任者는 하나님이 本이 되며 中心이 되어서 아담 해와가 찾을 수 있는 길을 닦고자 함이었다. 그래서만이 아댐 해와가 나아갈 直接 本으로 表示를 定하는 同時에 사탄 對한 勝利路程이 되어야 되니 이 本대로 하여서 아담 해와의 勝利할 수 있다는 길을 定하는 것과 같은 基礎를 세워 놓으려 하는 것이 卽 모세를 通하여 하나님이 役事시키는 事實이다.

 그런고로 아담 代身 오는 예수는 하나님이 敎示하여 준 勝利의 本路程樣으로 사탄 對하여 第一次 勝利의 路程을 본삼아 나아가지 않으면 아니 될 義務가 있음이있다. 그래 예수는 하나님이 먼츰 하신 事을 本삼고 하신다는 말삼을 요한복음 5장 19절-20절에 其內容的 事實을 發表하였었다. 卽 子이 父의 行하신 事을 見外에는 其事로 自爲할 수 없나니 父께서 行하시는 것을 아들도 또 그와 같이 行하시나니라. 父께서 子를 사랑하사 그 하시난 것을 啓示하시고 또 그 보다더 큰 일을 示하시 爾等로 기히히 여기게 하심이라 하시였다.

 

  이와같이 예수는 하나님을 本받아 第二次 勝利의 路程의 始作을 第一次 勝利路程과 같은 路程을 取하여야 할 根本意義가 있음을 알어야 한다. 예수와서는 全使命役割은 하나님 責任分擔 路程에서 보여진 사탄한테 더럽힌 바를 다 成事하여야만이 始作의 出發을 보는 바를 알어야 한다. 그런고로 하나님의 責任分擔을 모세를 세워 원수 품에서 뽑아내는 것과 같이 예수 와서 全人類를 찾어 사탄한테 빼어야 할 使命的 基臺를 象徵사킨 事實의 根本原理를 알어야 한다.

 

 예수는 하나님이 하신 길을 따라서 하야한다. 그러야 같은 目的하나를 合하게 할 수 있는 바이다. 이와같이 分擔하여 責任成事는 非公式路程을 아는 人間 우리는 切痛치 않을 수 없는 事實이다. 예수와 聖神分擔役事도 사람 때문이었다. 이 모든 原理的 根本을 아는 우리는 全 精力을 무엇아끼랴. 이와같은 基本原理를 아지 못한 墮落人 世界에 處하였든 自我들을 알게 될 때에 그 原理의 全部가 사탄 때문이라는 것을 아는 人間이 되었으니 사탄 對하여 總攻擊하여 急速한 時日을 두고 復歸하여야 할 것을 알았도다. 이제야 참살길의 始作을 알았고 人生의 뿌리를 알았고 또 하나님이 누구라는 것을 알았으니 우리는 무엇으로 報答을 하랴. 問題가 이제 나타난 뜻 侍奉이 最高問題로 되는 바는 두말할 바 없는 事實이다. 잃어버렸든 아바지는 六千年前이고 잃어버린 子息찾는 것도 六千年間에 쉬지 못하고 나를 찾으려시든 그의 存在 누구였는가. 卽 아버지 어머님의 存在이다. 이 기쁘고 고마운 消息을 널리 傳할 者 世上에 어데있는가. 찾으시는 그 모습을 아는 者 몇 名이었는가.   지금까지 아바지 對하여 춤배았고 아들로서되 子息이 아바지를 모른다는 언통함을 기리 참으신 그 앞의 心情을 누가 同情할 孝子가 世界에 어데 있는가. 이 길을 닦기 爲하여 世上에 孝子之道와 忠臣之道와 師弟之道를 미리 傳播하여 그 基盤삼고저 함이었는데 至今 그 自體들이 없는 恨歎之事를 또 몰라주는 人間이 되어지려는가 아는 者는 直接 對하여서 孝子로 멀리 對하여만이 뜻을 세울 수 있는 事實이다. 이스라엘 百姓은 하나님 對하여서 以上과 같이 三綱이라는 儒敎的 中心體로서 하나님을 侍하였든가. 그 原理를 아지 못하므로 그리함이었다. 그와 같은 關係를 敎示 못하는 하나님의 마음은 얼마나 슬펐으랴. 그것은 創造原理를 全部 完全히 찾어 첫 理想을 成事할려니 숨은 原理的 間隔을 두고 墮落하였기에 敎示못함은 前番 말한바와 같다.   이와 같이 알어야 할 百姓이 아지 못하고 王으로 알어야 할 主人公을 아지 못하며 師이라면 以上없는 者로 侍奉할바로 아지 못하는 원수편 對立하여 섰든 그 自體를 對하여서 하나님은 얼마나 안타까운 心情이었으랴. 無知한 百姓을 찾아서 子女삼으려니 모세를 세워서 바로를 直接 對立하심이었다. 至今부터 모세는 그 使命의 첫 出發을 원사 사탄의 代辯人 바로 한테로 발을 옮기게됨이 크나큰 歷史의 希望의 焦點이었다. 모세가 바로 앞에 나타나서 거듭나는 異蹟으로 바로를 屈服하게하는 役事를 始作하였다. 바로에 對하여 十餘次에 對한 異蹟을 通하여서 바로 自身이 하나님 앞에 犯罪하였다는 告白과 함께 完全屈服을 標準하고 役事하심이었다. 하나님이 바로를 屈服케 하심은 무슨 目的이었는가 하며는

 (1) 바로(사탄)가 다시는 擇한 百姓에게 生覺조차 못하게 하고저 하심이고

 (2) 바로(사탄)는 힘이 없으니 하나님의 要求대로 自服하는 同時에 順從하여야 할 것을 自覺케 하기 爲하여

 (3) 원수의 모든 것을 善하게 하기 爲하여

 (4) 하나님을 反하는 者는 망한다는 것을 自覺케 하기 爲하여

 (5) 長子의 根本 血받은 者를 쳐서 원수의 血을 滅하기 爲하여

 以上과 같은 것이 원수 바로(사탄)는 自覺하여 自然屈服을 標準함이고 이스라엘 百姓에게는 무엇을 찾게 하기 위하여 바로를 剛愎케 하였냐하면은

 (1) 바로(사탄)은 원수로 憎惡心을 품게 하기 爲하여

 (2) 바로便은 하나님의 원수라는 것을 알리기 爲하여

 (3) 우리편에는 絶大能力 하나님이 같이함을 알게하기 爲하여

 (4) 애급 대하여 이스라엘 百姓의 미련을 全燒하게하기 爲하여

 (5) 애급 사람 對하여 한사람이라도 이스라엘 百姓의 情을 通하는 자가 없게하기 위하여

 (6) 하나님이 미워하는 程度만침 이스라엘 百姓을 올라놓게 하기 위하여

 (7) 하나님의 뜻에 一貫된 行動을 培養하기 爲하여

 (8) 어떤 難關이라도 하나님은 打開하여 줄줄 알게하기 위하여

 (9) 하나님을 對立하여 反對하는 者는 누구나 永遠한 원수로 알게하기 爲하여

 (10) 前程의 勝利的 要素를 培養하기 爲하여

 (11) 뜻을 바라 躁急하지 않게하여 永遠한 順從을 세우고저 하여

 이상과 같은 意義로서 이스라엘 百姓을 오래 連帶시켜서 하나님의 바라는 條件이 具備할 때를 보기위하여 바로(사탄)을 剛愎케 하심이었다. 이리하여 極度의 하나님을 대신한 모세와 사탄 代身한 바로와는 對立戰을 展開함이었다. 그리하여서 最後 勝利와 함께 이스라엘 百姓은 希望과 所望과 幸福의 곳 가나안 福地로 향하기 始作하였다. 이 始作은 오날 信仰生活 出發 路程한 表示的 路程이라는 것을 알어야 한다.

  長子를 치심은 하나님과 사탄과의 對峠戰 展開에 失敗하는 終局에는 애급에 있는 長子에 對한 재앙을 내리심이었다. 이것은 무슨 意味냐하면은 사탄의 어두움의 血을 받은 百姓代表의 長子들은 더욱이 그의 直接的 먼츰 받은 血의 種子니 하나님이 미워하심의 百姓中 먼츰 난 者로 무엇이나 치게 되었다. 卽 사탄의 所有物 中心이었다. 이스라엘에게도 長子에는 羊의 血로 代贖하게 한바는 이 재앙을 避하게 하였음이라. 이것은 무슨 뜻인가 하면은 예수는 배암血을 받았던 百姓을 치는 自體로 오는 同時에 예수便에 屬하는 者도 代身血로 卽 예수의 生命을 받아 살수 있는 言約의 表示이었다.

  모세 앞에 屈服한 바로는 드디어 이스라엘 百姓을 내보내게 되매 애급에 있는 財物을 取하여 가지고 오게 되었다. 이스라엘 民族은 모세를 中心하고 出發함과 同時에 하나님과 直接生活하는 한 路中으로 들어서게 되었다. 이스라엘 百姓을 아주 내보내게 된 것을  안 바로는 분하여 兵車를 몰아 이스라엘 百姓을 追擊하게 되었다. 그래 이스라엘 民族은 애급 兵車가 오는 것을 騷動하난지라. 앞에는 紅海가 가로 막히고 뒤에는 追兵車가 있으니 할 수 없이 죽는구나하고 全民族을 騷動하난지라. 그때 모세는 여호와께 알리니 여호와 하나님은 모세에게 손에 든 杖으로 紅海를 치라 하심에 打신지라. 紅海가 갈라저 陸地와 같이 건느난지라. 이것은 우리 過去信仰路程에 있어 사탄 主管下에서 예수 품으로 드러올적에 사탄은 바로와 같이 우리 뒤를 追兵하는 것을 表徵하는 바라. 예수를 依하고 나아가면 卽 杖로치면 紅海를 갈른것과 같이 우리로 예수는 杖의 代身으로 우리의 紅海같은 過去 世上에 苦海를 갈라서 紅海를 건느는것과 한가지로 살수 있다는 表示이엇든 事實이 있는 바이다.

 

래 이스라엘 百姓이 紅海를 걷는 後에 메추리와 만나와 生水를 주어서 苦痛에서 救援하심은 예수 오셔서 우리 生命蘇生要素를 無條件으로 줄 것을 보여 줌이었다. 신曠野로부터 호렙山 盤石 生水까지의 路程은 우리에게 無條件으로 만나와 메추리와 生水까지의 路程을 우리에게 無條件으로 만나와 메추리와 生水를 줌이었다. 그 生命要素를 받고 나아가는 이스라엘 民族 앞에는 아말렉 族屬의 攻擊을 받게 되었다. 그때 모세는 아말렉을 對하여서 여호수아에게 싸우라고 命하시고 山頂에 올라가 하나님의 杖을 들고 서니라. 모세가 手에 杖을 들면 여호수아 勝利하고 손을 내리우면 敗하난지라. 그래 아론과 훌은 石을 取하여다가 모세를 앉히우고 아론과 훌은 右左손을 終日들어 아말렉을 天下에서 除去하려니 爾는 是事를 記念하기 爲하여서 冊에 記하야 여호수아의 耳에 읽어드리라. 모세가 祭壇을 築고 其名을 여호와 닛시(我의 旗)라 하야 가로되 여호와의 寶座에 手을 置한 것이 有하니 여호아 아말렉과 代代로 戰리라 한지라. 이 事實은 무슨 意味인가하니 無條件保護받은 이스라엘 民族에 勝利 資格者로 세우고저하니 아말렉의 與戰을 보게함이었다.

 

  이 事實은 卽 예수와서 우리 人間에게 無條件으로 사랑을 세어주시라. 예수의 生命받아 산 者에게는 원수 사탄의 한 對立을 주어 그 自體가 다시는 원수와 合하지 않게하고저 함이 目的이었다. 그런고로 언제나 信仰路程이 平坦한바가 아니고 혼자 살수 있는 保護 時期가 있으면 원수 對하여 勝利하여만이 될 義務가 있는 바이다.

 

 勝利者가 되기 爲하여는 모세의 손을 들어주는 立場과 같은 條件을 保障하여만이 勝利할 수 있는 것이 原因으로 되어있다. 卽 모세는 手을 든 것은 무슨 뜻인고 하니 하나님이 품으시는 表示요 아론과 훌은 품길수 있도록 協助함이요, 여호수아는 信仰者 中心 代表者를 表示하면서 우리 自體들을 表示함이었다. 이와 같은 뜻이 成立되어만이 원수 아말렉을 問題없이 勝利條件이 成立하는 바를 表示함이었다. 그런고로 이 모든 것을 後日 第二 次 責任分擔 使命勘當者로 오는 예수와 우리가 合하여만이 勝利한다는 條件들의 要素를 보여줌이었다. 모세와 杖은 하나님의 代身을 表示함이고 石은 하나님의 寶座를 表示함심이다. 아론과 훌은 예수와 해와를 表示함이고 여호수아는 믿는 信仰者를 表示하는 바이다. 그런고로 後日에 예수를 侍하고 聖神을 右左p 두고 하나님을 받드는 者라야만이 勝利한다는 表示的 意義가 있음이다. 그리고 사탄이는 卽 아말렉과 代代로 戰하리라 하심은 石을 쌓아 모세를 앉히우신 緣故니라 이것은 아론과 훌이 한것이지만 하날과 땅을 나눠 세우여야할 立場에서 어렵다고 自己自意行事가 사탄이 하날 成事時까지 對敵할 수 있는 길을 지어주었으니 아말렉과 代代로 싸우심이라 하시었다. 이와같이 聖徒는 사탄 對하여 서 있음으로 뜻에 屬한 立場을 確固히 잡지못하면 끝까지 戰을 하여서라도 勝利하여야 할 것을 豫告함이었다.

 

 이와같이 우리 聖徒는 아말렉과 같은 원수 對하여 싸워 勝利하여야할 責任이 있는 바이다. 聖徒를 사탄과 함께 싸우시게 하는 理由는 사람까지 全部가 사탄 主管할 수 있는 資格者되어야만이 根本이니 이런 싸움이 있게하는 바이다.

 

  이와같이 하나님의 直接指導를 받으면서 낮이면 구름기둥 밤이면 불기둥으로 引導함을 받아 시내 曠野에 至심이었다. 卽 이것은 直接품에 保護하여 引導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시내 曠野山前에 留한지라. 그때 모세는 山上에서 돌아와 이스라엘 百姓에게 告하며 가라대 하나님의 말삼을 善히 듣고 나의 規禮를 지키면 祝福받아 世界에 없는 祭司長國과 聖한 百姓이 된다는 말삼을 宣布하신지라. 이 말삼은 예수 오셔서 大祭司長이 되어 全世界를 統治할 後日의 約束을 세우심이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하는 바의 理想目的이다. 이와같이도 사랑을 받은 이스라엘 百姓은 더욱 하나님한테 合할수록 사탄은 이스라엘 뒤를 따르면서 曠野까지 따라나와 不信 不順從의 自體를 對할려고 試圖는 如前히 繼續하였다. 그런고로 이스라엘 百姓 뒤에 사탄이는 뒤를 따르게 되었다.

 

 이것을 아지 못하는 이스라엘 百姓은 다시금 不信 不順從이면 死亡에 處하는 것을 切切히 뼈에 세기지 못하였다. 때마침 시내 山上에 70 長老를 데리고 모세는 40日40夜를 지내면서 十誡命 말삼 石碑를 받게 된지라. 그때에 六日間은 여호와의 榮光의 雲이 시내 山을 덮더니 7日에도 여호와 雲中에서 모세에 顯메 여호와의 榮光의 形狀이 이스라엘의 目前에 火焰과같이 비치심에 모세는 그 雲裏으로 入해 四十日四十夜를 지내게 되었다.

 

  이 期間은 이스라엘에게 있어서는 가장 重大한 期間인 同時에 百姓에게 가장 지루한 期間이었다. 이 十誡命 받음과 同時에 聖殿建設 始作을 보게된바이다. 이것이 가장 重要한 實體의 事實이었다. 聖殿構造를 살펴보면은 至聖所가 있고 聖所가 있음이었다. 至聖所에는 法櫃가 있고 그 우에 두 그릅이 있고 그 間에 贖罪所가 있고 또 그 앞에 聖所가 있난지라 聖所와 至聖所는 區別되어 있게 되었다. 卽 聖殿은 예수님의 한몸의 建設의 터를 表示함이었다. 聖殿으로되는 예수속에는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을 表示함이었다. 그런고로 至聖所는 하날 世界를 表示함이고 聖所는 地上世界를 象徵시키는 뜻이 있는 것이었다. 예수한 自體에게는 하날과 땅 完成이 한 存在로 있어야 한다는 表示를 말함이었다. 至聖所를 살펴보면 法櫃가 있고 그 우에는 두그릅이 있고 其間에 贖罪所가 있음은 무슨뜻이냐 하면 本來人間이 墮落함에 말삼을 잃어버린 것과 같은 言의 理想實體인 하나님 몸인 아담과 해와를 잃어버림이었다.

 

 아담 해와 墮落한 後 그릅들을 두어서 하나님 世界와 相隔(?)하였든 것을 表示하기 爲하여 예수오시면 하날 生命樹를 찾어 生命果를 받을 수 있으니 하나님이 그릅 間에 顯나시어 直接法櫃를 덮으심을 말하심이니 하나님이 그릅의 間隔을 通하게하는 것을 表示하여 이와같은 構造를 보게한바다. 贖罪所에 나타나심은 贖罪한곳은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을 表示함이다. 이것은 卽 自身의 한몸인 예수와 聖神을 通하여 罪를 贖하신 後에 各사람의 마음까지 하나님이 계시고저 함이 目的이었다. 그런고로 예수는 이 基本터를 닦는 存在로 올 것을 말함이고 그 聖所같은 그에 接하여 안기게 되면 그도 亦是 하나님을 모실수 있는 理想을 再建設코저함이 根本目的이었다. 그때 예수 오신 後부터도 至聖所와 聖所 區分이 없게 된 것은 聖殿 쓸데 없는 바는 예수의 한몸을 象徵하였든 基本自體가 表現하니 聖殿은 無必要로되니 舊約時代의 理想은 完成함을 結論할수 있음을 表示함이었다. 그때 예수는 自己가 聖殿이라는 것을 明白하게한 意義는 여기에 有함이라. 예수오셔서 그릅으로 막었던 하날 世界와 通路를 지었고 生命果의 理想目的 達成의 始作은 全宇宙를 通하여 成事코저하는 重大目的意義를 두고 聖殿建設을 하게하였다 하심은 누구나 다잘알어야 한다.

 

 그런고로 아말렉을 勝利한 後에 이 聖殿建設始作이라 하심은 예수를 믿는 信者들은 원수를 勝利할 수 있는 資格者가 되면 우리 信者도 聖殿 建設할수 있다는 意義를 告함이었다. 이것이 하나님이 全人類에게 對하여 苦待하는 最高目的이니 이 얼마나 貴한 所望의 存在였을가. 卽 누구나 하나님을 直接 對할수 있는 한몸 될수 있는 基本原理를 세우고저함이었다.

 

 여기에 하나님은 人間과 父子之間인 根本을 찾는 뜻의 成立이 始作이다. 이와같이 貴重한 聖殿의 始作을 보려고 모세는 山上에 四十日 四十夜를 지내는 中에 百姓들은 아론을 衝動시켜서 금송아지 偶像을 지어 심기난지라. 여기에 벌써 이스라엘 百姓들은 사탄 工作의 基礎를 지어준 行動으로 나아가 그 偶像을 自己들의 神으로 섬기난 것을 目見한 모세는 大怒하여 手에 든 二石板을 던저 破한지라. 그런고로 여기에 모세는 非法的 行動을 始作하였다. 石板들은 言을 記錄한 것이었으나 이것은 아담 해와의 實體들을 表示함이라. 卽 石碑를 깨는 行動은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을 對하고 있는 사탄 對하여서는 기뻐하는 行動이다. 卽 結果에 있어서는 사탄의 시킴받아난 行動에 지나지 않는 行動이었다. 그러니 여기가 하나님께 있어 크나큰 重大之事가 表現을 보는 事實이다. 卽 다시금 오실 存在에 對한 한 破壞를 意味하는 바를 表示하는 行動의 結果이었다.

 

 이 二石板이 무엇이냐하면 自己의 몸을 表示한바이요 全이스라엘 보다도 貴한 自體인것이었기에 여호와 大怒하여 全百姓과 아론 以下 全部를 塗抹하시고 모세로 하여금 이보다 强하고 담대한 나라로 되게 하시겠다고 하심에 모세는 다시금 四十日 四十夜를 禁食하여 하나님이 같이하지 않는 것을 돌리켜서 贖함을 받고 石板 二를 만들게한 石板에다 다시금 여호와 한테 言을 記錄받으니 前과 같이 모세에게 光彩가 發하난지라.

 

 그런고로 다시금 뜻 繼承할바를 알게함이었다. 그러나 사탄은 이스라엘 民族뒤를 다시금 이와같은 原因을 通하여 侵入의 길을 엿보고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도 不拘하고 이스라엘 百姓은 모세를 反對하여 애급에서 나온 것을 恨歎하여 먹을것이 없음으로 애급에서 나온 것을 말하니 모세는 會幕間에 도착하여 伏니 여호와의 榮光이 그 上에 顯아 가로되 杖로 아론과 더불어 會幕을 묶고 그 目前에서 盤石을 쳐서 水를 내어서 會衆과 牧畜에게 먹이게 하라하메 여호와의 命대로 모세는 其 目前에서 杖을 들며 갈아대 悖逆한 百姓들아 我言을 들으라. 우리가 물은 此 盤石에서 水을 내게하여 너희가 飮케 할려고 한다하면서 모세는 杖으로 盤石을 二次나 처서 水이 더 많이 나오난지라. 이것이 가데스에서 한것이었는데 그 때에 여호와 모세와 아론에게 謂시기를 너희가 我를 信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子孫의 目前에서 我를 聖케하지 아니함으로 너희를 引導하야 我가 너희에게 베푸신 땅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니 이스라엘 子孫이 여호와를 向하여 爭매 여호와 自己의 거룩함을 顯심으로 此水을 무리바라 하심이었다.

 

  이와같이 하나님의 뜻 들지 못하는 行動이 卽 므리바 水로 因함이었다. 이로 因하여 모세와 아론도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였다. 이것은 무엇을 뜻하는 根本意義였는가 하면 盤石한번 打것은 許諾된바지만 두 번打것은 許諾하지 않은 일인 同時에 또 許諾할수 없는 犯罪이었다. 盤石한번 打라는 것을 許諾하는 바는 너희가 順從하고 信지 못함으로 墮落하여 하나님의 몸되는 實體에 사탄으로 侵害받아 하나님의 몸을 破하는 行動의 始作을 보았기에다.   그런고로 하나님은 盤石을 말함은 무엇을 말함인가 하면 卽 하나님의 몸의 表示다. 고린도전서 10장4절에 盤石은 곧 그리스도라 하심을 보아도 盤石은 하나님의 몸인 同時에 그리스도를 말함이었다. 그런데 한번 打한 바를 容恕한 바는 아담이 不順從으로 말미암아 破한 것을 表証하는 바이었기에 하나님 自身의 代身 몸의 表示인 盤石을 打라고 하심이었는데 意外에 두 번을 打한 것은 한번은 意外의 것의 行動인 同時에 사탄이 다시금 하나님의 몸을 치는 表示的 行動을 함이었다. 한번더 打한 것은 모세가 치섰지만 사탄이 打것과 같은 行動의 結果로 되어지었다.

 

 이 表示的 實事의 失敗는 다시금 石板과 함께 破함을 받은 行動과 같은 바이었다. 石板 二은 다시 찾을 수 있는 예수와 해와의 表示이므로 다시금 찾어서 세울 수 있으나 盤石은 石板의 根가 되는 하나님의 根本되는 바를 表示하는 바의 몸이었다. 그런고로 實體 몸과 根本 몸을 犯하는 犯行이야 사탄에게 있어서는 다시금 勝利할 수 있는 行動의 基礎를 不順과 不信한 結果로 잡게 되었다. 그렇게 되니 하나님 앞에 犯한 모세와 이스라엘의 罪는 사탄의 터가 되는 始作인 同時에 다시 보내시어 第二 次 責任分擔 使命者로 오는 예수까지에 對한 未完成의 한 表示的 根本實體를 犯하는 行動이 되게 되었다.

 

 그런고로 이스라엘 百姓의 不順과 不信은 예수까지 다시금 打수 있다는 根本原理가 始作됨이라. 이 무서운 行動이라 아니할 수 있으랴. 이 行動은 즉 하나님만 앞에서 한 바가 아니고 사탄 앞에서 하였기에 이와같은 사탄의 기쁨의 한 勝利圈을 보여주게 되었다. 그러므로 사탄은 더욱 이스라엘 百姓 對하여 侵入의 基臺를 잡고 侵入할 수 있는 行動이 始作됨으로 이스라엘 民族 앞에 蛇을 遺받아 물리게 하게 한 것은 다시금 그 墮落시킨 本體의 侵入한다는 것을 表示하여 준 바이었다.

 

  이 蛇에 물린바를 無事하게 되려면 火蛇을 지은 것이 旗等上에 있는 것을 보여만이 나옴을 받으리라고 한 것을 表示하여 준바이었다. 그런고로 모세가 盤石 두 번 친것이 卽 하날蛇的 예수의 自體가 侵犯當하여 死케 하는 行動의 基因을 許할수 있는 原因이 됨이러라 하는 表示였다. 이것은 卽 不順과 不信의 結果의 膳物이니 이것을 防備하려면 무엇보담도 實體인 예수 앞에서 順從과 信는 것 外에 要求되는 根本이 없게되었다. 그런고로 不順從 子孫들은 배암 사탄한테 便한바되어 曠野에서 全滅하게 한지라. 그런고로 가나안 땅은 信과 順從한 者만이 基業받을 곳이라는 것을 表示함은 우리 理想國家로 不順從者와 不信者와 恐怖者는 못가는 곳이라는 것을 象徵함이라.

 

  乳과 꿀이 흐른다고 하는 바는 가나안 福地는 우리 本理想 하날 나라라는 곳을 表示하여 준바이다. 모세가 死는 것은 不順으로 인한 失手로다. 이와같이 예수도 其 結果를 보리라한바를 알어야 한다. 이스라엘 民族이 가나안 땅에 드러와서 基業받게 될 때에 가나안 民族을 물리치는 役事를 始作하여서만이 基業地를 찾게됨이다. 모세가 失手로 因하여 여호수아가 뜻을 세움이었다. 이것은 盤石 두 번친 연고니라. 여호수아는 예수의 한 表示的 存在도 되면서 모세의 뜻 成事者도 된다. 하나님의 全 뜻 成事的으로 보면은 모세부터 예수까지매 여호수아는 예수로 象徵한바고 모세한 뜻 中心하고보면 第二 모세 뜻 成事者이다.

 

 이 모든 것은 예수오셔서 勝利하여야할 基礎인 하나님的 責任分擔路程이니 예수 世上에 와서도 卽 하날나라 建設中에서 원수와 싸와 基業作定이 남어 있음을 表示함이었다. 師士들을 세워서 役事하여 基業을 完全成事할수 있도록 協助하심이었다. 師士後에 王을 세우심 王으로 그의 目的을 達成할 수 있기에다. 이와같이 예수 오시기 前에 벌써 예수 오시면은 直接王으로 설수 있는 基礎工作이 있다함을 豫告함이었다. 그런고로 이스라엘 百姓이 勝利한 後에 사울王을 세우심은 누구를 表示함이었나하면은 第一次 아담格者의 王位格을 表示함으로 失敗도 그 原因을 表示한바다. 다윗 王을 세워 하나님의 權勢를 드러내고 그 子 솔로몬은 榮光의 王으로 聖殿 完成王이라는 것을 表示한바는 예수 오셔서 뜻 成事하여 權勢로서 榮光으로서 本뜻 聖殿完成理想이 展開될 것을 表徵한바이었다.

 

  그런고로 예수는 이 目的을 完成하여야 할 使命的 課業을 받고 있는데 이스라엘 百姓이 믿지 않고 順從치 아니함으로 예수 自身의 死게 함을 보여 하날的으로는 榮光이요 땅的으로는 權勢로 成事할 全根本理想을 未成事하고 갖기에 다시금 오시겠다고 하심이었다.

 

 그런고로 이와같은 하나님的 第一次 責任分擔 勝利路程에서 사탄이한테 侵犯을 받았기에 行動의 侵犯은 예수로 하여금 第二次 成事責任使命 分擔을 未成事케하여 다시금 實體成事로서 오지 않으면 안될 重大課業인 榮光王으로 나타날 수 있는 터를 예수는 權勢王格으로 사탄 對하여 勝利하여 全人類를 根本子女되로 百姓되로 復歸하여야 할 責任이 남아 있기에 再臨하신다는 根本目的이 있음이었다. 再臨이라는 것은 하날 슬픔의 한 事實이고 사탄이 기뻐하는 行動의 發露의 結果이었다.

 

  그리하여 예수오셔서 靈的으로 이 舞臺를 世界舞臺로서 擴大하여 靈으로 全人類를 찾어서 根本터까지 卽 墮落 사람 部分까지 靈的으로 끄러 올려야할 責任的 使命을 聖神과 合하여 成事하여 다시 몸으로 成事의 터를 세우심이었다. 이런고로 靈먼츰 成事하고 肉身成事코저하여 남어지는 바가 目的이다. 그런고로 예수는 肉身몸을 쓰고 再臨하여야 된다는 바를 아러야 한다. 사탄 對하여 權勢로 찾어 榮光을 누리어야만이 根本目的이 完成하는 바이다. 이것을 全世界的으로 한 主管下에 成事할려고 하는 바가 하나님의 뜻이며 또 根本 創造理想이었다.

 

 그런고로 世界에서 예수를 中心한 國家들이 權勢로 사탄 對하여 勝利하게 되면 榮光王 再臨主가 나타남이 멀지 않음을 表示한다. 예수가 사탄 對하여  全世界的 大勝利의 한 分水嶺 戰爭이 卽 審判 時期이다. 其 後 再臨主는 사람을 갖고 榮光王 格으로 나타난다. 그런고로 예수 와서 未成事 部分을 完全히 達成하여야만 예수의 要求와 目的이 完成할 것이다. 이 舊約에 結果인 三大王 卽 사울王과 다윗王, 솔로몬王들은 全部 하나님의 攝理的 全部를 表示한바의 王들이다. 사울王은 墮落케 하여 하나님 反하는 아담의 表示가 되고, 다윗王은 예수를 表示함이 되고 솔로몬은 再臨主를 表示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直接的으로 責任分擔의 한 路程은 第一段階를 보게 되었다. 그런고로 最高目的인 하나님이 再臨할수 있는 聖殿造成한 根本完成意義는 한 成事를 보았으나 全이스라엘 百姓과 하나되는 것이 至今以後의 한 사람 對한 要求의 對象이었다. 그것은 聖殿에서 要求하는 卽 하나님이 要求하는 全規例가 이스라엘 百姓全 生命의 基本이면서 全財産의 基本이며 國家成事의 基本이며 理想完成의 基本이었다. 이것은 卽 이스라엘 百姓에게 무엇하고도 바꿀 수 없는 貴한 存在가 聖殿을 높이면서 뜻 成事를 基礎잡아야 할 重大義務가 남아 있음이었다.

 

 여기에 聖殿成事하여서 예수와서 한 基臺를 成事할 수 있다는 表示的 成事는 보았으나 百姓으로 하여금 聖殿 뜻 즉 하나님의 言이 全守行의 始作이 完成부터 예수와서 뜻 成事할수 있는 聖殿될수 있는 第二使命的 準備의 터를 各自가 닦는 것이 舊約歷史가바라는 所望이었는데 全 百姓은 어려우나 너무나 하나님과 合함에 繼續하여 나아가여야 할 義務를 分擔하시었다.

 

  그리하여야만이 예수와서 傳하는 바의 福音에 順應함으로 예수의 몸될 수 있는 聖殿에서부토 우리는 한 分聖殿 建設理想을 造成하여서 하나님의 뜻을 承할 수 있는 터를 成事하여야 할 使命段階가 즉, 솔로몬 王以後에 이스라엘 百姓이 질머진 근 重大目的이었다. 그런 反面 사탄은 이스라엘 百姓들에게 妙한 手段을 하여서라도 하나님이 直接 取하여 나오는 그 뜻 成事의 길을 分裂하고저하여서 여러 모양으로 不順과 不信의 씨를 찾어서 이스라엘 百姓에 對하여 侵入의 魔手를 뻗치려는 試圖에 强硬히 對峠하여서 하나님 便에 더 깊이 서서 나아가야 할 立場임에도 不拘하고 王으로부터 百姓은 淫亂의 神의 根本인 원수를 섬기는 方向으로 나아갈려는 百姓을 또 打여 覺心케 하여 오면서 가진 手段을 다하여서 이 百姓을 保護하여 왔는바이었다.

 

  그러나 그 心情을 알고 안타까하는 者는 漸漸 그 뿌리조차 보기 難하게 聖殿을 더럽힌 行動이 몇번이었든고 하나님은 聖殿을 세워서 뜻 成事基礎의 表示는 完成한 目的基本을 잡어서 約束은 始作하였으니 그만 둘수 없는 責任感 그 外 사탄은 氣勢堂堂하여 하날뜻을 破壞하는 그것을 볼적마다 功드렸던 이스라엘 百姓을 破棄할 수 없는 事實이다. 破棄하면 全部가 死亡의 苦에 삼켜질 것이며 하나님 亦是 不安할 根本意義를 避할 수 없는 事實이니 아모리하여도 그 뜻을 成事하여야 할 바가 하나님의 課業이니 先知들을 세워서 그 뜻을 百姓들이 聯和할 수 있도록 聖殿 뜻 維持를 繼續하여 왔든바이다. 그런고로 그 뜻 根本目的은 예수 한 存在가 中心이었다.

 

 그 다음은 예수께 合하여 한몸되어 第二次 예수 存在와 같은 繁殖理想目的始作의 全部가 이스라엘 百姓行動 如何로 基盤을 잡을 수 있는 바이니 얼마나 아바지 뜻에 안타까운 心情이랴.

 

 그런고로 聖殿지키면서 하날 뜻을 받들 수 있는 周圍工作을 繼續하면서 基本되는 自體인 메시야를 보내여서 뜻 成事할 最高目的을 이스라엘 百姓에게 豫告하여서 그 뜻을 받들 수 있는 그 路程을 지켜나가게끔 하여서 先知者를 通하여서 메시야 보내실 것을 豫言하여 이스라엘 百姓을 刺戟하시었다. 그러나 그 뜻을 바라면서 十數百年 동안을 繼續하면서 勸告하여 왔든 바이었다. 그러나 그 뜻을 이스라엘 百姓이 積極協助못하여서 이와같이 뜻 成事의 時日을 延長 시켜왔든바이었다.

 

 메시야 約束을 받고 바라는 百姓은 躁急하게 바랐으나 하나님의 뜻 中心하고 實踐에 對하여서는 忘却하고 自己의 要求들만 바라는 그 自體는 墮落의 血을 받은 悖逆의 百姓이라 아니할 수 없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기리 참으시면서 메시야 오기 前에 對한 期間도 알려주어 그의 바라는 希望性을 높여주어왔다. 메시야 오기 전에 먼츰 그의 全目的을 받들 수 있는 準備工作使命者로 오는 엘리야를 보내준다고 約束하여 그 時期的 限度를 보여주었든 바이다. 그런고로 이스라엘 百姓은 全部가 메시야 降臨이 全 바라든 所望으로 그를 生活內로서 뜻을 찾어 나오게 되었다. 그런고로 이스라엘 百姓은 聖殿中心하고 메시야 所望이 한 目的으로 바라오면서 希望을 높이하여 自然的으로 自己들의 準備를 繼續하여왔든 바이었다.

 

 이리하여 하나님은 이스라엘 百姓과 合하여서 基礎工作과 함께 메시야를 世上에 보내주어 그들의 所望을 成事하여주는 同時에 自己의 目的實行의 한 기쁨과 期待이었다. 그런고로 하나님이 願하시는 메시야 보내주면 全 이스라엘 百姓은 生命代身 貴하게 알면서 그의 全 周圍에 대한 團束을 지어 聖殿理想을 실현코저 함이었는데 그 뜻을 아는 者 몇名이였는가? 그래 하나님은 한 所望을 갖고 第一次 하나님的 責任時期는 끝마추어 第二次 責任使命分擔의 行路를 잡아주고 攝理繼續하여서 自己몸으로 지었든 아담 해와의 使命的 分擔成事路程으로 옮기기 爲하여 오신바가 즉 예수였다.

 

 예수는 第二 아담이다. 聖經에는 고린도전서 15장 45절을 보아도 로마서 5장 14절을 보아도 예수는 第二아담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람 祖上 아담 해와가 墮落시켰으니 原理되로 自己들의 犯한 責任使命을 다찾어 復歸하여야만이 根本뜻을 成事할 수 있는 創造理想이 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