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리원본 - 第三編 復歸攝理 - 第二章 第一次 하나님的 責任分擔 攝理期間은 노아부터 예수까지 (2)

2013. 1. 7. 11:23참사랑 영원까지/원리원본

第二 節 아브라함부터 예수까지 攝理하신 根本意義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自己 故鄕山川과 情든 鄕土와 情든 父母에 對한 情理라든가 親戚에 對한 情理라든가 아브라함에는 큰 苦痛의 相對였으나 하나님의 뜻을 세우는 路程은 이 모든 것이 問題있는 곳에는 始作할 수 없는 事實이다. 이와 같은 情은 하날 情을 成事하고저 하는데는 反對되어 直接行動 如何를 00하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不拘하고 아브라함은 이와 같은 것을 問題로하지 않고 갈대아우르를 出發하는 그 行動은 果然, 人間으로써 讚揚하여야 할 問題인 同時에 사탄에게 대한 復讐的인 하나님 뜻을 成事하는 터의 行動이었다. 그런고로 하나님은 自己의 基本 뜻을 아브라함으로부터 本格的 出發을 보고저 함이었다. 사탄은 아브라함을 빼앗기고는 아브라함에 대하여 恢歸 工作을 始作하는 同時에 하나님의 뜻 成事를 破壞하고저 함이었다.

 

 그래 하나님이 아브라함에 대하여 祝福하려할 때 아브라함 自體에 대한 祝福보담도 뜻 中心하고 祝福하는 것이 하나님의 根本意義이다. 아브라함의 福의 機關될 祝福을 하여주며, 그로 하여금 大族屬을 이루리라고 祝福하여 주마하신 뜻을 받들어서 故鄕山川을 出發하는 아브라함 自體에는 하날의 工作始作을 받게되는 하나님 代身 뜻 成事의 基本行動의 始作은 完成되었다.

 

 아브라함을 빼앗아낸 하나님은 自己가 하고저하는 全目的을 두고 祝福과 約束에 對한 새로운 決定的 言約을 세우지 않으면 안되었다. 卽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대하여 決定的 言約을 세우게 된 것은 하나님이 미워하는 族屬에게 잡혀간 롯을 다시금 찾아와 勝利한 後에 始作이었다.

 

 이와같이 한바는 하나님이 미워하는 民族과 대립케 함은 하나님 자신이 뜻을 세울 수 있는 確固한 基礎를 세우는 同時에 벌써 하나님이 미워하는 나라와 怨讐的 立場에서 하나님 便 쪽에 섰기에 決定的 言約 成事를 始作함이 있었다. 이 言約이란 아브라함의 子孫으로부터 始作하여 하나님의 뜻을 세우는 民族建設의 始作이며 이를 擴大시켜서 國家建設에로 그리하여 世界復歸의 根本意義를 두고하신 言約의 全部의 始作이 卽, 아브라함의 全 言約중에 包含되어진 根本 事實을 알수 있는 바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非夢似夢間에 말삼하시기를 懼하지 말라, 나는 너의 盾이다. 네가 받을 報償이 크다.  아브라함이 말하기를 나는 無子하오니 나의 相續者가 없다하니, 아브라함에 대하여 하나님이 하시는 말삼이 너의 親子息으로 因하여 後嗣가 되게 하리라 하시며 데리고 外로 나아가 갈아대, 天을 仰로 보라 하시며 衆星을 計數할 수 없는 바와 같이 너의 子孫이 이와같이 되리라 하시매 아브라함이 이를 믿으니 義로 여기시면서 하시는 말슴이 이 目的을 完成키 위하여 갈대아우르에서 引導하였다 하시면서 이 땅을 너에게 주어 基業이 되게하리라 하시었다.

 

 그때에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말삼하시기를 제가 이땅을 얻어 基業삼을 것을 무엇으로 알리있가 하니 네가 나를 爲하여 三年된 牝牛 一와 三年된 山羊 一와 三年된 牡羊 一와 산비둘기 一와 집비둘기一를 獻라 하니, 아브라함이 그 모든 것을 取하여 그에 쪼개어 右,左에 놓고 그 비둘기는 쪼개지 아니하여 祭壇우에다 놓고 祭祀를 드리니 그 祭物위에는 독수라가 날라서 앉게 되었다. 그런고로 여호와, 아브라함에게 말하기를 너의 丁寧히 알라. 너의 子孫이 客이 되어 四百年 동안 苦役하리라 하신 怒함을 보게 되었다.

 

  이 祭物은 무슨 祭物이었는가 하면 그 後孫에 대한 全部의 祭物의 表示物이었다. 卽 其祭物이 全 하나님의 뜻이 되는 百姓을 찾고저 하는 目的이며 全人類를 찾어야 할 하나님의 根本目的을 表示한 代身的 祭物이었다. 이 祭物위에 독수리가 내렸다 하는 바는 무엇을 말하는가 하면은 벌써 사탄의 侵入을 證據하는 事實이다. 卽, 아브라함 하나를 中心하고 하나님의 뜻을 세우려고 할 때에 사탄은 뜻을 破하기 위하여 아브라함 한 自身의 結果的 行動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 이 아브라함과 하나님 사이의 言約祭物을 卽, 全 하나님의 目的을 두고 豫約的 祭物임에 틀림없다. 이 祭物 失敗하면은 다시금 사탄한테 侵入路程을 讓步하는 行動인데 아브라함이 全 뜻을 合意있게 獻祭치 못함은 하나님의 計劃의 뜻은 벌써 未成事 한 것을 表示하는 重大한 것이 이 祭物이었다. 그런데 아브라함 自身은 이 重大한 祭物을 드리는 自身으로서 祭物을 全部 쪼개지 못 함은 무슨 뜻이냐 하면은 그 祭物을 쪼개는 것은 사탄편 사람과 하늘편 사람이 있다는 全人類의 表示였다. 그런데 비둘기를 쪼개지 않는 바는 하나님의 所有된 子孫과 사탄 所有된 사람과를 갈라서 攝理코저하는 것이 하나님의 全意義였는데 쪼개지 않는 것이 있으니 하나님 子孫될 約束과 言約의 成立을 보는 祭物에 完成한 成立을 보지 못하고 마는 事實이니, 다시금 그 子孫까지 사탄이 侵入할 수 있는 터를 지은 것이 始作을 보이게 되어 사탄은 自己便쪽 表示로 갈려지지 않는 祭物 비둘기를 取하려하여 祭壇 위에 내린 바이다.

 

 이와같이 하나님이 뜻한 全 目的은 사탄이가 다시금 차지하는 뜻으로서 祭物獻祭는 失敗로 돌아가게 되었다. 이 三大 祭物은 무슨 表示냐하면 하나님이 하시고저 하는 眞理 目的 中心은 蘇生에서 長成으로, 長成에서 完成으로써 한 祭物을 通하여 表示한 바이었다. 卽, 비둘기를 드리게 하심은 하나님의 뜻 蘇生을 表示함이고, 羊을 드리라하심은 長成을 表示함이고, 牛를 드리라고 하심은 完成을 表示하는 重大祭物이었다. 萬一 이 祭物이 뜻에 合意하게 獻祭하였으면은 애급 四百年 苦役이라는 것의 生活은 이스라엘 民族에게 없었을 것이었는데 四百年 苦役이라는 것은 이 獻祭物의 重大한 失敗를 告하는 바의 事實이다. (四百年 年代意義는 나중에 論하려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豫約 祭物에 失敗를 보니 그것은 子孫을 사탄한테 빼앗기는 表示로 되었다. 그런고로 아브라함 子孫 中에도 사탄이 侵入할 수 있게 되었으니 根本目的은 다시금 未成事的 原因으로 基因되니 하나님은 다시금 아브라함 子孫에게 사탄 侵入의 길을 막으려니 代身 祭物은 사탄한테 빼앗기었었기에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사탄의 뜻 成事를 본 것과 같은 結果를 가져왔는데 卽, 사탄한테 祭物드린 것과 같이 되어버렸다. 卽 아브라함도 자기 所有의 根據點이 되어 全 目的 未成事를 가져오게 되니, 다시금 하나님은 約束祭物은 빼앗겼지만 아직 實體 子孫되는 것은 빼앗기지 않으려니 하나님은 不得己 한 立場을 取하여 아브라함을 따르려는 子孫에 대한 사탄의 侵入을 막으려하매 하나님은 그 子孫의 始作인 한 自體가 사탄과 하나님과의 直接問題 要求物이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을 取하여야 하겠고 사탄은 벌써 이삭에 대하여서 取할 수 있는 豫約祭物, 代身祭物을 自己가 所有하였는 것이기에 사탄 亦是, 祭物 代身되는 實體인 이삭도 要求物이었다.

 

  그런고로 하나님은 다시금 順從을 세워 하나님 便으로 全子孫을 돌리려니 아브라함에 對하여 實體 子息 이삭을 祭物로 드리라는 問題를 提起시키는 것이었다. 그것이 卽 아브라함으로 모리야 山上에서 이삭을 드리라는 根本意義는 여기 있는 바이다. 그때 뜻 中心하고 順從하면 사탄은 떠러지고 하나님 便으로 屬하는 것이었다. 그래 아브라함은 順從하여 代身祭物 잃어버린 것을 實體로서 찾는 樣으로 獻祭의 命令에 順從하게 되었다. 이때 아브라함은 이런 原理的 問題는 아지 못하였다.

 

  이와같은 立場에 아브라함의 順從은 容易한 問題가 아니었으나 豫約祭物 獻祭時 失敗가 全子孫에게 四百年 동안의 苦役의 뜻을 알고나니 이번 失敗면은 말할 수 없이 큰 難한 問題가 生起리라는 것을 아는 아브라함은 全的으로 하나님의 命令을 順從하게 되어 뜻대로 燔祭로서 子息을 드리는 確固한 立場에서 사탄은 目的 相對인 이삭에게서 물러가게 되는 바의 始作을 볼 수 있었다.

 

  그런고로 이 事實의 根本 뜻을 現下 信者들은 아지 못하는 것이나 聖經에 아브라함의 失敗한 句節을 알게하는 句節이 있다. 卽 창세기 22章 12節에 아브라함이 이삭을 죽이려 할 때에 그 아이에게 手를 대어 害하지 말라. 네가 네 獨子를 나에게 獻기를 惜지 아니하니 이제야 네가 너 하나님을 두려워 하난줄 知노라 하심이다. 이 聖經句節 中에 이제야 하는 그 句節이 卽 前番 失敗를 警告하는 同時에 뜻 繼承成事를 告함이었다. 이리하여 사람이 하나님의 뜻 路程을 찾아나가는 그 途中에는 豫約時代祭物로 失手한 허물로 받은 아브라함 子孫에게는 四百年동안 원수 앞에 苦役하여만이 本路程에 들러설것이었다.

 

 그래 이스라엘 民族 애급 四百年 苦役은 必然的 過程이었다. 眞理를 찾으려니 眞理에는 蘇生이 있고 長成이 있고 完成이 있는 바이니 하나님도 이 찾고저 하는 뜻을 한 眞理路程이니 이와같은 意味에서 三大祭物이 要求되었다. 이 祭物的 使命의 蘇生部分은 卽 舊約時代의 表徵이니 蘇生하면은 長成 完成으로 할려하든 것이 인간이 絶對 順從치 못함으로 分立을 자아내는 것으로 展開할 것이 表徵되어 있다. 한 祭壇위에 三祭物은 한번에 뜻 成事하여야 할것이 根本뜻이었다.

 

  여기에 蘇生役事는 하나님 責任分擔 始作 基礎를 잡는 것이고 長成은 예수 오셔서 根本復歸의 復讐의 例로 해와를 찾아야만 되는 것이고 完成은 예수를 中心하고 全人類와 合하여 또 하나님과 合하여서 全根本創造目的 達成을 보고저 함이 表示로된 祭物에 意義다. 祭物중에 비둘기는 蘇生을 表示함이니 舊約時期를 말함이고 羊은 長成이니 新約時期를 表示함이고 牛는 완성이니 再臨을 말함이다. 장성과 完成과는 함께 하려는 뜻은 사람들이 不順從과 不信으로 因하여 예수를 죽이니 再臨이라는 問題가 生起게 되었다. 牛는 完成의 表示었는데 왜 牝牛이었든가. 즉 完成할려면 해와 한 存在가 問題되는 中心點이니 牝牛는 해와를 表示하는 뜻이다.

 

 이 해와가 卽 完成할 수 있는 目的相對이었다. 簡單한 祭物內容을 紹介하였지만 다시금 本論으로 들어가면은 사탄은 이삭의 實體에서 뜻을 세우지 못하고 다시금 其 子孫에 대하여 對立的 態度는 勿論이며 實體子孫에 侵入의 길을 찾으려고 試圖하였다. 이삭의 한 存在가 豫約代身祭物에 侵入을 보였기에 그 이삭에게도 不順從의 터는 벌써 始作할 수 있는 可能性이 잘못하면은 생길 것을 사탄이는 바라보게 되었다. 그것은 祭物을 自己것으로 하였든 사실이 있음으로 사탄은 如前하게 그 後孫에게 對하여 對立性을 갖고 대하게 되었다.

 

  그런고로 이삭에게 子息을 낳으니 雙胎인지라 卽 에서와 야곱이었다. 이 雙胎는 무엇을 意味하는가 하면 아브라함의 失敗로 因하여 祭物에 願치 않는 存在의 侵入이 있었든 것이므로 이 實體子息 이삭이 問題되어 또다시 찾았으나 이삭의 子息한테 대하여는 사탄 亦是 찾고저하는 한 터를 양보하였든 失手가 있었으니 그 子息되는 雙胎는 怨讐的 表示의 所有者와 하나님적 表示의 所有者가 한 胎中에 있음을 表示함이었다. 그래 에서와 야곱은 腹中에서부터 싸우심은 이와같은 根本的으로 背馳되는 存在이니 腹中부터 싸운 것이다. 子息낳으니 에서와 야곱이러라. 에서는 원수 사탄의 代表요, 야곱은 하나님 便的 代表이었다. 卽 에서는 아브라함의 먼츰 祭物의 失敗의 씨요, 다음 야곱은 잃어버린 이삭을 實體로써 찾아서 祭物까지 찾아 세우게 되었으니, 하나님이 第二次的 存在인 야곱을 通하여서 뜻을 세우고저 함은 根本이 그와같이 되었기에 빼앗아서 成事하는 양이니 하나님은 에서의 祝福을 야곱에게로 돌리는 根本意義는 여기에 有함이다.

 

  그때에 祭物 失敗있으면 이삭 子息에 하나님이 미워하는 에서와 같은 존재는 없었다고 할 존재가 生起게 된 것은 다시금 사탄을 分立하여야 하날 便과 사탄편을 完全分立케 하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이 사탄이 다시는 아브라함의 子孫한테 미련을 남기지 않게 하기 위한 것이 目的이므로 이와같이 表示的 事實로서 야곱이 에서의 장자의 職分을 빼앗음을 알아야 한다. 이것은 예수와서 원수의 피를 받은 全人類를 빼앗아 넘길 것을 豫告하는 事實이니 그런고로 이 한 事實이 根本을 밝혀주는 것인 同時에 뜻 成事의 한 表徵으로 가는 바가 되어야 하는 바는 아브라함의 言約은 全目的의 表示인 約束이었기에 이런 意味의 한 分岐 存在가 이삭이므로 其 子孫 에서와 야곱이 사이에 되어진 事實이었다. 이러한 結果의 影響을 받고 났기에 맛 子息은 하나님 앞에 사랑 받지 못한 事實의 原因이나 창세기 全面에서 보여주는 事實이다.

 

  例를 찾으면 이삭, 야곱, 요셉 에브라엘, 아벨 等等의 事實은 이와 같은 사탄 피를 받고 났기에 맛 子息은 미움의 相對이었다. 여기서 뜻 成事의 出發의 후손은 야곱을 中心하고 택한 百姓 十二 兄弟는 十二支派으로 시작의 출발은 야곱부터 시작케한 것은 根本意義로 보아 알 수 있는 바이다. 이삭은 하나님과 사탄이 바라는 存在立場이 아담과 같은 두 相對立場이었기에 根本出發 못했다. 卽 이삭부터 애급 出發이 아니고 야곱부터 되는 바는 以上 解說 中 原理로서 明白한 事實이다. 이리하여 擇한 하날 百姓이 되어야 할 그 根本은 애級으로 옮겨지게 되는 바는 뜻 成事의 첫 出發이다. 지금부터 하나님과 사탄과의 分立되어 復歸의 出發은 始作된다. 이것이 즉, 하나님的 分擔責任成事의 出發의 始作이라는 것을 알어야 한다.

 

 그런고로 이것이 根本이 되어 卽 標本이 되어서 長成과 完成的 使命分擔 責任者의 本이 되어야 하는 第一次 하날的으로 하나님 直接 使命코저하는 基礎는 始作함인 同時에 祭物表示蘇生過程의 發露이었다. 그런고로 애급에서부터 가나안 復歸까지는 예수 오셔서 할 基本表示工作과 같은 模樣으로 나타나지 않으면 한 目的을 한 完成으로 볼 수 있는 한 터의 工作이니 애급서부터 솔로몬 王까지 第二次 完成하여야 할 存在가 나타나서 成事할 한 豫告的 表示로 되어있다. 卽 예수 오셔서 애급서부터 가나안 福地로가는 樣으로 우리 人間理想 復歸地로 찾어들어가는 한 使命的 基礎表示로 展開시키고저 함의 意義를 알어야 한다.

 

 애급서부터 가나안 復歸路程은 예수의 路程을 表示한바이라는 것이 하나님의 根本 뜻이다. 그리하여 墮落시킨 人間 對하여 하나님이 自己自身 責任分擔 對하여 始作하는 것이 즉 모세의 세우심이었다. 모세는 하나님을 代身하고 바로는 사탄을 代身하고 나오게 되었다. 모세가 擇함을 받은 原因은 원수가 이스라엘 百姓을 極度로 虐待하는 同時에 强制로라도 全滅시키고저 하는 行動으로 나가게 되어 苦役 中 원수의 사람과 이스라엘 사람과 싸우는 것을 보고 애급인을 죽이는 모세는 本來 애급 宮中에서 長成하였으나 애급 사람을 怨讐示하는 바는 이스라엘 子孫이라는 表示하지 않는 志操는 果然 하나님이 擇하시는 貴여운 行使이었다. 애급 宮中에서 자라 났으나 애급 사람이 아니고 하날의 百姓의 變함없는 그 자체이었다. 이 自體는 애급 원수의 모든 第一 미워하는 自體인 同時에 사랑받고 자라는 存在이었다. 이 自體가 애급 宮中에서 나왔으니 애급과는 다시 結託 안하는 存在라는 것은 事實이다. 그런고로 그 위에 애급 사람 對하여 憎惡心을 갖고 있는 確固한 存在이니 하나님이 擇한바가 原因이 있는 바이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모세를 보내여서 애급 王 바로를 對하여 工作을 하게 하기 爲한 시작을 命令하게 되었다. 그 때에 하나님의 命令을 받게 되는 모세는 自己自身이 애급 百姓앞에 信게 할 수 있는 證據를 要求하니 杖으로 蛇이 되게 하는 첫 異蹟을 보게 하신지라. 그리하여 祖上에 現된 하나님을 알게 하여 뜻 順從하여야 한다는 것을 알게함이었다.

 

  그 다음에는 手를 품에 넣으라 하심에 手을 품에 넣으니 癩病이 된지라. 그 다음에 다시금 품에 넣었다가 다시 꺼내매 낳은지라. 그 다음에는 듣지 않거든 江水를 가저다가 부으라 그리하면 피가 되리라고 하나님은 말삼하시었다.

 

  그 다음에는 모세는 言을 要求하였다. 이와같은 射殺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보내려 할적에 이런 異蹟을 보여주었나하면은 하나님이 將來하시고저 하는 事實의 터가 되는 行使이니 그 表示되는 모든 뜻은 全部 예수 오셔서 할 目的成事의 한 象徵이라는 것을 表示하는 것이 되어야 할 原理的 目的이 있는 바이다. 또 杖라는 것은 代身 依支者를 表示함이었다. 卽 나를 代身保護할 것을 말함이고 全 앞길을 잡아준다는 뜻이며 또 合當치 않은 것을 치어 뜻대로 成事하게 하는 뜻이 있는 바이었다. 이것은 卽 예수가 우리의 全生命에 對하여 保護가 될 것을 말함이었다. 蛇를 보여 주심은 배암으로 誘引한 表示的 存在로 해와 役事한 것을 보여 주었으니 예수와서 배암과 같은 役事로 사탄 중에서 빼앗을 役事하여야 할 하날 蛇的 表示를 豫告하기 爲하여서 着手할 것을 意味하심이었다. 사탄이 네가 蛇갖고 했으니 나도 蛇갖고 예수로 役事한다는 것이 根本杖도 蛇되게 한 意味가 있는 바이다. 모세 蛇 예수는 사탄 뱀을 잡아먹어 勝利할 것이 豫告的 表示였다.

 

 모세 手을 품에 넣은 것은 첫 번은 사탄의 誘引받아 사탄 품에 안긴 해와의 行動은 人間을 죽이는 役事였으니 다시금 手를 품에 넣으심은 예수 오셔서 해와를 품는 事實은 癩病과 같은 死中에서 蘇生하여 산다는 表示로 手의 病이 낳은 것을 보여줌이었다. 卽 第一次 품은 것은 死亡이나 第二次 품으심은 生命이라는 永生의 始作을 豫證한다.

 

  江水로 피된다는 바는 水은 世上을 表示함인데 예수와서 死亡中에 處한 存在들이 예수 오셔서 피로되는 生命 注入을 始作한다는 것을 表示한 바이었다. 言의 要求는 相對 目的 成事할 수 있는 重要 責任個性体니 言을 要求하심은 創造物 全部를 말삼으로 지은 것이 잃어버린 것을 예수와서 言 相對의 理想的 實體를 다시금 成事한다는 뜻을 表示한 바이었다.  卽 言은 創造目的 物實体를 말하심이다.

 

 아담 해와를 찾는다는 것과 全人類와 萬物을 찾는다는 意味가 있음이다. 그 때 모세가 要求하는 全部를 許諾하시고 애級으로 가라하심에 모세는 自己의 妻子를 데리고 하나님의 杖을 들고 애級으로 들어가 바로에게 請하기를 이스레엘은 나의 長子라하라. 그러므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섬기게하라.    그래도 바로 보내지 않으면 長子를 죽이라 하라하는 命令을 받고 들어가는 途中 한 宿所에서 여호와 모세에게 顯하야 모세를 죽이고저 할 때에 모세의 妻는 아들 陽皮를 벗겨던져서 死를 免케하면서 妻가 曰 당신은 피흘리는 男便이로다 한지라 그것은 割禮를 한 緣故여라. 여기에 야곱 母가 야곱과 合하여서 살리는 行例를 成事한 것이었다. 그 根本意義는 무슨 뜻인가하면은 모세는 卽 割禮를 成事못하면 死는 것이고 成事하면 生한다는 重大意味가 있는 바이다.

 

 예수 오시면 무슨 目的이나 하면은 割禮 根本目的完成하는 實體인데 그것은 그 母親과 合하여서 만이 成立되는 根本意義있다는 것을 보여줌이었는데 妻子가 合하는 일이 없으면은 뜻 成事 못하고 예수는 死는 十字架의 死있다는 豫告的 事實을 表示함이었다. 그런고로 이스라엘 長子로 成事하느냐 못하느냐 하는 問題가 모세가 生하여만이 될 것이었는데 모세 한 生命은 全이스라엘의 代身生命이고 전 이스라엘의 代身 存在라고 할 수 있는 存在이었다. 이 모세에게 있어서 割禮 없으면은 모세는 勿論이고 全이스라엘 百姓도 全部 死亡하는 表示的 行例이었다.

 

  그런고로 모세 妻子가 割禮가 있었기에 살게 된다는 것은 예수님이 오셔서 生死의 重要問題를 右左하는 根本問題成事의 責任을 표시한 바다. 이 立場에서 모세 妻子 合함의 큰 勝利的 條件의 成立을 봄이었다. 이 뜻을 세우지 못하였으면 모두 失敗할 수 있는 難한 問題이었다. 그런고로 이 한 모세의 妻子의 한 割禮가 全 擇한 百姓에게 對한 長子의 名分을 完成하게 하는 根本自體가 卽 割禮이었다.  이와같이 예수님도 오셔서 母親과 合力하여 割禮成事의 뜻을 成事하여야 할 것이었으나 예수 이 뜻을 못 成事한 失敗的 根本이었음은 누구나 아는 事實이다. 그런고로 母親 뜻 받들지 못하였기에 예수는 母親에게 對하여 갈릴리 가나에서 異蹟을 볼적에 女人이여하신 말삼의 根本意義가 있음이라. 그에 母親 對하여서 女人이여 너와 나와 무슨 相關이 있는가 한 말삼 等等의 始作은 예수는 뜻 成事의 第一 始作의 失敗를 가져오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十字架 上 死의 始作의 聯關性을 가지게 되었다. 卽 모세가 하나님 앞에 뜻 成事할 수 없는 自己 生을 가지지 못한것과 한가지 事實이었다. 이와같이 하나님이 하시는 路程의 숨어 있는 原理目的을 누가 알 수 있으랴.

 

 여기에 割禮에 對하여 말하기로 하다.

本來 聖經에 割禮라는 名詞가 生起게 된 것은 墮落되었기에 基因되는 事實인데 本來 해와가 사탄 피를 받고 아담까지 墮落되었기 때문에 割禮의 中心問題가 要求되는 바이다. 그런고로 아담이 主管하여야 할 해와를 主管하였다면은 墮落조차 防止하였을 터인데 해와한테 主管받고나니 墮落됨이었다. 즉 아담 陽部를 通하여 全墮落을 成事되었으니 貴任은 아담 男子에게 있는 것이었다. 이 男子되는 아담이 主管받고나니 하나님 앞에 설수 없는 存在로 되며 墮落의 始作의 成立을 보게한 實體는 즉 男子의 陽部이었다.

 

 그런고로 어두움의 被를 받아들인 그 自體이니 어두움의 피를 다시름 빼는 事實을 表徵함이 目的이었다. 그런고로 아브라함 子孫은 割禮하여만이 즉 어두움의 피를 먼츰 받아서 死케되었으니 그 自體로서 살려면 그 自體로서 死亡의 피를 빼여만이 하나님께 屬할 수 있는 始作을 봄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事實이다. 그러므로 割禮는 아브라함의 永遠한 規禮로 세움이었다. 그리고 割禮있으므로 主觀性을 다시금 復歸하는 男子의 資格을 賦與함이다.

 

割禮에는 미움의 割禮가 있고(신10/16) 肉身割禮가 있고(창17/10) 萬物割禮가 있다(레19/23). 이것은 사탐의 墮落으로 인하여 온 天宙가 더렵혀 짐을 말한다.

 割禮는 (1) 死亡의 피를 빼는 表

        (2) 主管性을 다시 찾는 表

        (3) 根本 뜻의 子女의 길을 찾는 約束의 表

以上과 같은 重大意味를 갖는 것이 卽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이 命令하시는 根本의미하는 것을 人間은 至今까지 未知의 것이다. 또 몰라야 하는 것이 한 原理였었다. 그런고로 모세의 이 行例는 全이스라엘에게 질머진 全目的成事를 表示함을 다시금 알어야 한다. 그런고로 모세 行動如何는 예수 오셔서 할 使命的行路의 前形 表示로 그의 모든 일은 表徵된 바라는 것이 原理로 보아 알 수 있는 事實이다. 卽 하나님의 使命分擔責任의 過程은 예수의 基礎되겠으니 같은 뜻의 目標表示으로 萬事는 드러내여 나아가는 것이 根本意義였다.

 

 모세에게 아론을 주어서 이스라엘의 贖罪的 行例의 代表者로 세우심은 모세를 協助하여 한 目的 뜻을 成事코저하는 侍從이었다. 卽 百姓의 代身贖罪責任 役割을 하심은 해와 自體로 될 聖神과 함께 예수늬 뜻을 侍從하여 人間 對하여 直接 贖罪貴任을 할 것을 表徵함이었다. 모세에게 한 代身 協助者없다하여서 아론을 준바는 아니지만 말삼의 代身을 要求하게 될 때에 아론을 세우심은 아론은 말삼 代身자임을 表示하니 말삼의 最高 問題者는 해와의 한 存在이었다. 卽 말삼 成事는 해와를 完全하게 찾는 目的으로 基因되니 즉 아론을 세워 代身贖罪하심은 예수, 해와가 合하여서 人間 贖罪의 直接 問題를 하여야 할 自己 自身의 使命分擔役割이었다. 즉 해와는 罪를 지었으니 해와로서 代身 씻는 役割을 해야 할 責任分擔이 되었으니 아론은 모세의 한 相對格者로서 百姓을 대하여 모세의 뜻 卽 하나님의 뜻을 成事하게 協助한 바는 예수 오셔서 말삼 相對찾어 뜻 成事를 잡을 것을 表徵하는 意義이다.     모세의 以上과 같은 諸條件의 成立을 보니 바로를 대하여 直接對面을 取하여 나서게 되었다. 그때 바로는 모세의 要求에 對하여서 順從치 않는 反面에 도리어 모세에 屬한 이스라엘 百姓에게 더 憎惡心을 갖게 끔 하나님은 바로를 剛爆케 할 것을 말하면서 바로 앞에 가서 이스라엘 百姓을 놓아주어 曠野에 나아가 三日쯤 여호와께 祭祀하기를 請하라 하시었다.

 

 여기 三日路程 이라는 것은 이스라엘의 前生命이 놓으느냐 안 놓으느냐 하는 問題는 三日路程이라는 問題를 걸어 놓고 始作하게 되는 基本要求條件이었다. 이 三日間이 許與 안되면은 이스라엘 全部的 目的은 始作할 수 없는 問題를 말하는 바이었다. 이 三日路程이라는 것이 모세가 하나님의 뜻을 成事하게하는 工作의 基本되는 要求條件이었다. 그런고로 예수 오셔서 사탄 對하여 三日期間에 對한 過程에 妻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었다. 이 過程을 成事할려면은 모세에게 屬한 具備條件 같은 諸條件具備를 보아야 할 것이었는데 이 具備條件은 曠野試驗 通하여 그러는 사탄에게 勝利함으로 成立되었으나 그의 代身役者 아론과 같은 해와의 存在의 具備成事를 보지 못하여서 三日路程 始作 路程을 自由롭게 넘어서지 못한 原因으로 十字架 三日間의 基本的 根本은 始作이었다. 이때 예수 앞에 어머님과 合하여 뜻 成事를 중심하고 해와 한 存在와 人間들이 하날 便쪽으로 順從하였으면은 예수의 十字架 路程은 다른 方向으로 效果的 路程을 보아 사탄 對하여 積極對象의 成立을 始作하였을 것인데 그 對象을 어떻게 해서라도 成事할 責任이 예수의 責任이니 죽어서 三日 期間을 터치는 使命的 責任分擔을 完成하야 할 意味가 있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