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론(2) : 원칙대로 이루어지는 부활섭리

2013. 1. 30. 01:31참사랑 영원까지/원리강론

지난 강의에서 부활의 의의가 무엇인가를 알 수 있었습니다.

부활은 인간이 그의 타락으로 초래된 죽음 즉 사탄주관권 내에 떨어진 입장으로부터 복귀섭리(復歸攝理)에 의하여 하나님의 직접주관권 내로 복귀되어 나아가는 그 과정적인 현상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활섭리라는 말이 필요한 것입니다.

만약에 무덤 속에 썩어져 버린 육신이 다시 살아나는 것이 부활이라면 무슨 섭리라는 말이 필요하겠습니까? 마지막 한순간에 부활시키면 되는 일이겠지요. 타락으로 사탄주관권에 빠진 인간을 하나님의 직접주관권 내로 복귀하시려니 섭리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 증거가 바로 성도들의 간증입니다. 눈물겨운 성도들의 간증을 들으면서 하나님께서 한 사람의 부활섭리를 위해 얼마나 수고하시는가를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타락인간에 대한 부활섭리는 어떻게 이루어질까요?

<부활섭리의 원칙은 무엇인가 ?>

부활(復活)은 타락인간이 창조본연(創造本然)의 인간으로 복귀하는 과정적인 현상을 의미하는 것이므로, 부활섭리(復活攝理)는 곧 복귀섭리(復歸攝理)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복귀섭리는 곧 재창조섭리(再創造攝理)이므로 부활섭리는 또한 재창조섭리가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부활섭리는 창조원리에 의하여 섭리하시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자연의 섭리가 창조원리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처럼, 부활섭리도 창조원리에 의하여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첫째로, 시대적인 혜택에 의해서 이루어집니다.

부활섭리역사에 있어서 그 시대마다 사명적인 책임을 맡았던 인물들이 비록 그 자신들의 책임분담을 완수하지는 못하였다하더라도 , 그들이 하늘의 뜻을 위하여 충성을 다하였기 때문에 그 만큼 타락인간이 하나님과 심정적인 인연을 맺을 수 있는 터전을 넓혀 나왔던 것입니다.

따라서 후대의 인간들은 복귀섭리역사 흘러갈수록 그 이전의 선지선열들이 쌓아 올린 심정적인 기대로 말미암아 복귀섭리의 시대적인 혜택을 이전 사람보다 더 많이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과학문명의 혜택과 비교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과거에 과학자들이 쌓아올린 지식기반으로 말미암아 시대적인 혜택을 받고 있습니다.

2000년 전 예수님 당시에 살았던 사람들과 오늘날 우리들의 삶을 비교해 본다면 이해가 될 것입니다. 그 당시에 주거환경과 교통통신수단이니 지식기반을 오늘날과 비교한다면 얼마나 우리가 혜택을 많이 받고 있는가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당시에 무지한 인간들을 보시고 탄식하시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요한복음3/12). "이것을 비사로 너희에게 일렀거니와 때가 이르면 다시 비사로 너희에게 이르지 않고 아버지에 대한 것을 밝히 이르리라"(요16:25)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부활섭리도 그와 같은 입장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3600년 전 모세는 시내산에서 40일 금식을 두 번씩이나 하면서 십계명이 기록된 석판을 받았지만 중생이 무엇인지? 부활이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시대에 살았습니다.

또한 2000년 전 신약성도들은 인간의 타락의 근본뿌리와 주의 재림과 참부모와 중생의 근본원리를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이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만으로 새 진리를 들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맣은 성도들이 완성부활섭리시대에 살고 있으면서하나님의 말씀은 2천년 전 신약시대(장섭부활권) 혹은 3600년 전 구약시대(소생부활권)에 머물러 있다거나 구약 전 시대(부활기대 섭리시대)에 머물러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렇게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지상생활을 청산하고 영원한 영계로 떠나간다면 얼마나 억울하고 분하고 원통하겠습니까?

또 그렇게 살아가도록 인도하고 가르친 종교지도자들에 대해서 얼마나 원망하고 탄식하겠습니까?

둘째로, 인간은 그 자신의 책임분담으로 말씀을 믿고 실천해야만 부활할 수 있습니다.

창조원리(創造原理)에 의하면 하나님의 책임 분담(責任分擔)으로서 창조된 인간은 그 자신의 책임분담으로서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믿고 실천하게 될 때 완성하도록 창조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부활섭리(復活攝理)를 하시는 데 있어서도 하나님의 책임분담으로 섭리를 위한 말 씀이 있어야 하고, 거기에 타락인간이 그 말씀을 믿고 실천하는 책임분담을 해야만 그 뜻이 이루어지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타락인간에 대한 부활섭리를 하시면서 어느 기준에 도달하면 그 심령에 해당하는 말씀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부활섭리를 따라가면서 가장 소중하게 생각해야할 것은 부활섭리를 위해 주시는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고난을 받고 수고로운 노정을 걸어간다고 하더라도 하늘이 주시는 새 말씀을 받지도 않고 듣지도 않는다면 더 이상의 부활섭리를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에 이스라엘 민족의 지도자들이 그런 위치에 있었습니다. 소생구약말씀의 터전위에 장성신약말씀을 주시려고 했지만 그들이 받아들이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소경된 인도자, 천국문을 막고 저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자, 저주받을 자들이 되었던 것입니다. (마태복음 23장)

따라서 우리는 하늘이 주시는 새 말씀을 겸허히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믿고 실천해야 합니다.

마음으로 믿고 , 몸으로 실천해야 합니다. 믿고 실천하는 대로 부활은 이루어집니다. 소생말씀을 믿고 실천하면 소생만큼 부활하고, 장성말씀을 믿고 실천하면 장성만큼 부활합니다. 완성말씀을 믿고 실천하면 완성부활하는 것입니다.

실천이 없는 믿음은 영계에 가면 중풍병자와 같은 한이 맺힌다는 것입니다.

신문보도에 보니 중풍에 걸려 10여년을 넘게 살아오던 노파의 아들이 그간의 고통을 견디다 못해 어머니가 보는 앞에서 목을 매 죽었다고 합니다. 죽은 지 10여일이 지나서 이웃에게 발견되었는데--- 자식이 목메어 죽어 가는데도 말리지 못하고 시체가 되어 천장에 데롱데롱 매달려 있는 데도 끌어내리지 못하는 어머니의 마음은 지옥중의 지옥이었을 것입니다.

실천생활이 없는 성도의 믿음은 영적으로 중풍병자와 같습니다.

말씀을 믿고 실천하지 않고는 부활섭리가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셋째로, 육신을 터로 부활섭리를 하십니다.

창조원리에 비추어 볼 때 인간의 영인체(靈人體)는 육신을 터로 해서 성장하여 완성되도록 창조되었습니다.

따라서 복귀섭리(復歸攝理)에 의한 영인체의 부활도 역시 지상의 육신생활을 중심하고서만이 이루어지게 되어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육신이 이미 땅 속에서 썩어져버린 성도들은 부활섭리를 위해서 육신을 다시 써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재림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입니다. 구약성서에 엘리야의 재림에 관한 내용이 있고 예수님께서는 그 재림자가 세례요한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와 같은 원리에 의하여 모든 종교는 그 교주가 다시 온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넷째로 섭리기간의 질서적인 3단계를 거쳐서 완성 합니다

인간은 창조원리를 따라 성장기간의 질서적인 3단계를 거쳐서 완성하도록 창조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타락인간에 대한 부활섭리도 그 섭리기간의 질서적인 3단계를 거쳐서야 완성하게 되어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부활은 하루아침에 되는 것이 아니라 성장기간의 일정한 단계를 거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질서적인 3단계 성장과정에 입각해서 자기자신에 대한 하나님의 부활섭리의 현주소를 파악하고 완성부활의 길을 가야할 것입니다.